세 대의 괴물 자동차
포르쉐 718 카이맨 GT4부터 컨티넨탈 GTV8까지.
PORSCHE
718 CAYMAN GT4
SPECIFICATION
구동 방식 수평 대향 6기통
4.0L 가솔린 자연흡기
최대출력 428마력
복합 연비 7.6km/L
가격 1억3870만 원
언제부터였을까? 6세대 911(코드명 997)이 출시된 2004년이었을까, 아니면 카이엔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2002년이었을까? 스포츠 DNA가 진하게 풍기던 포르쉐에서 편안함이라는 작은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편안한 차가 무슨 불만이냐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포츠카에서 편안함은 운동 성능의 대척점이다. 물론 자동차를 많이 팔기 위한 브랜드의 전략이겠지만, 점점 더 편해가는 포르쉐가 그리 반가울 리 없었다. 포르쉐는 스포츠카의 대명사니까.
718 카이맨 GT4는 왜 포르쉐가 스포츠카 명가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모델이다. 718 라인 중에서도 최상위 모델이자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이 모델은 그동안 편해진 포르쉐에 잠들어 있던 감각적 야수성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생김새부터 남다르다. 앞부분 에어커튼은 프런트 스포일러 립과 프런트 휠을 따라 공기 흐름을 다스린다. 이 외에도 싱글 챔버 아치리어 사일런서나 리어 머플러 등 다양한 요소가 에어로다이내믹에 힘을 보태며 이전 세대 대비 약 50%의 추가 다운포스를 발생시킨다. 눈에 띄는 건 서스펜션의 높이다. 포르쉐 액시트 서스펜션 매니지먼트 댐핑 시스템을 적용해 서스펜션의 높이를 10mm 더 낮췄다. 서스펜션 높이의 변화는 더 낮은 무게중심으로 이어진다.
섀시에도 변화가 있다. 섀시의 직접 연결부는 볼 조인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량 스프링 스트럿과 앞뒤 액슬 구조는 모터스포츠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일반 도로가 아닌 트랙으로 무대를 옮겨도 별다른 튜닝이 필요 없다. 718 카이맨 GT4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운전석 등 뒤에 있는 수평 대향 6기통 4.0리터 자연흡기 엔진이다. 최대출력 428마력을 발휘하는데, 이를 기반으로 최고속도는 시속 302km,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은 단 3.9초다. 무거운 슈퍼 SUV나 고성능 럭셔리 쿠페 등이 보여주는 3.9초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빠르고 민첩하며, 힘을 꺼내는 그 과정 또한 직관적이고 옹골차다. 엔진에는 정속으로 주행하거나 연료를 아끼기 위한 어댑티브 실린더 컨트롤 기능도 탑재했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주행할 때는. 오롯이 차가 주는 피드백과 조작에서 움직임까지 과정,
8000rpm에 달하는 높은 엔진 회전에서 나오는 카랑카랑한 엔진 사운드와 함께한다면 도로 위에서 청룡열차를 타는 듯 묘한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대는 변해 효율과 친환경이 자동차 시장을 집어삼켰다. 얼마 후 고성능 내연기관을 얹은 경량 스포츠카를 볼 수 있는 건 오로지 트랙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선 911만큼 718 카이맨 GT4의 인기가 대단하다. 911에 필적하는 인기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금 당장 포르쉐 전시장을 방문해보라. 출고하려면 적어도 3년은 기다려야 한다.
_ 김선관(자동차 칼럼니스트)
TOYOTA
GR86
SPECIFICATION
구동 방식 수평 대향 4기통
2.4L 가솔린 자연흡기
최대출력 231마력
복합 연비 9.5km/L 가격 4030만 원
GR86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차와 운전자의 교감이다. 가장 큰 교감 요소는 역시 수동변속기다. 작은 힘만으로 각 단에 쏙쏙 빨려 들어가는 기어 레버의 조작감은 미소를 짓게 한다. 풋레스트에서 쉬던 왼발도 할 일을 찾았다. 클러치 페달은 유격 없이 전 영역에서 클러치 패드가 맞물리는 느낌을 선명히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원하는 만큼 적당한 가속력으로 출발하기 편하다. 언덕에서의 밀림 방지 기능이 있어 일상 주행에 부담도 적다.
엔진은 배기량을 2.4리터로 키웠다. 최대출력은 231마력, 최대토크는 25.5kg·m로 높아졌다. 정지 상태에서 진동은 심한 편이다. 특히 좌우로 흔들리는 진동이 거슬린다. 수평 대향 엔진의 태생적 문제다. 그럼에도 자연흡기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건 장점이다. 엔진 반응은 4000rpm을 넘기면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엔진음은 5000rpm을 넘기면서 앙칼지게 변한다. 최대 회전수는 6000rpm을 지나 7400rpm까지 치솟으며 짜릿함을 더한다. 납작한 엔진은 최대한 낮게 배치해 무게중심을 최대한 내렸다. 단단한 하체와 조화를 이루면 코너에서 조금의 차체 쏠림 현상도 허락하지 않는다.
뒷바퀴 굴림인데도 타이어는 앞뒤 사이즈가 같다. 트레드 폭도 215mm로 좁은 편이다. 얼핏 드리프트를 위한 세팅인 듯싶지만, 날카롭게 코너를 썰어나가는 실력을 보면 GR86은 분명 그립 주행에 강점이 있다. 비밀은 타이어에 있다. 시승차는 미쉐린이 최근 출시한 파일럿 스포츠 5를 신었다. 노면이 차가워지는 겨울 초입까지 노면을 강하게 붙드는 비법이다. 물론 주행 모드를 트랙에 두면 전자 장비 개입은 줄어들고 조금씩 흐르는 꽁무니를 제어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드리프트를 즐기고 싶다면 타이어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자율주행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GR86은 신차의 탈을 쓴 골동
품일지 모른다. 하지만 운전을 즐기는 이에겐 얼마 남지 않은 최고 장난감이다.
_ 홍석준(<모터플렉스> 기자)
BENTLEY
CONTINENTAL GTV8
SPECIFICATION
구동 방식 V8 4.0L 가솔린 트윈 터보
최대출력 550마력 복합 연비 7.4km/L
가격 3억2000만 원
벤틀리는 럭셔리 카지만 레이스 DNA도 품었다. 원래 자동차 경주가 귀족의 취미라는 전통을 강조하듯이. 그런 이유로 벤틀리는 진중하면서도 젊다. 이 차이가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를 가른다. 롤스로이스가 위압적인 성 같다면, 벤틀리는 화사한 귀족의 대저택 같다. 독특한 구조나 화려한 장식을 스스럼없이 배치한다. 벤틀리를 보면 그렇다. 고풍스럽지만 자유분방하다. 더 젊고 역동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컨티넨탈 GT라면 더욱 그렇다. 차체 형태에서부터 거대하지만 긴장감이 느껴지는 굴곡을 드러낸다. 섹시한 럭셔리 카랄까. 늘씬한 차체를 강조하는 뒤 펜더는 백미다. 밖에서 볼 때야 더없이 흐뭇하고, 운전석에서 사이드미러로 볼 때도 시각적 쾌감이 크다. 실내는 전통과 첨단을 적절히 조율했다.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처리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버튼만 누르면 3면이 돌아가며 나타난다.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사용할 수도, 뒤집어 원형 계기반 3개를 품은 우드 베니어로 바꿀 수도 있다. 더 깔끔하게 우드 베니어만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디스플레이 정보가 필요할 땐 모니터가 알아서 회전해 보여주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기에 벤틀리다. 디지털 기술의 이점은 취하면서 벤틀리의 매력인 고풍스러움 또한 최대한 보존하려는 벤틀리의 자세. 이런 노력이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다.
컨티넨탈 GT는 기본적으로 시종일관 편안하다. 럭셔리 카니까. 반면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가슴속을 후벼 파는 짜릿함도 선사한다. 레이스 DNA를 품었으니까. 으르렁거리는 V8 엔진의 포효가 실내를 채우면 뒤쪽 배기구에선 축포가 연달아 터진다. 최대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78.5kg·m를 발휘하는 거대한 포탄을 쏘아대는 호쾌함. 그럴 때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긴장해서라기보다 짜릿해서.
흥미로운 점은 흉포한 출력으로 차체를 밀어붙여도 시종일관 흐트러지지 않는 거동이다. 코너에서 급격히 움직여도 액션캠 수평 조절 기능처럼 좌우 롤링을 다잡는다. 덩치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벤틀리 드라이브 다이내믹 라이드’ 덕분이다. 전자식 액티브 롤링 제어 기술이 담겼다. 그랜드 투어링다운 진중함을 고수하는 벤틀리의 방향성을 대변하는 기술이다. 벤틀리의 역동성을 우아하게 뽐낸다. 컨티넨탈 GT가 도달한 지점이다.
_ 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