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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도쿄의 레코드 숍들

이참에 서울과 도쿄의 레코드 숍을 샅샅이 디깅했다.
올해 45주년을 맞은 시부야의 레코드 숍 ‘맨하탄 레코즈’가 서울에 상륙했다.

맨하탄 레코즈 서울의 내부.

맨하탄 레코즈 서울에 가면

6000여 장의 바이닐을 컬렉팅한 내가 일본에 가는 이유의 8할은 바이닐 때문이다. 거대한 타워 레코즈가 아직도 건재한 나라, 여전히 팝 앨범을 라이선스 발매하는 나라, 별별 마니악한 앨범을 태연하게 수입해 전시하는 나라. 가끔 이 ‘여전한 음반 대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중에서도 맨하탄 레코즈는 도쿄에 갈 때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다. 힙합 전문 레코드 숍이자 시부야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45년간 살아온 곳. ‘서울에도 이런 가게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품고 있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맨하탄 레코즈가 서교동에 문을 연 것이다.

맨하탄 레코즈 서울의 의류 섹션.
맨하탄 레코즈 서울의 외관.
맨하탄 레코즈 도쿄의 굿즈.

맨하탄 레코즈 서울을 탐색하기 전, 최근 몇 년간 서울 레코드 문화의 변화를 짚어봐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김밥레코즈. 소니 뮤직에 재직했던 김영혁 씨는 2013년 퇴사 후 실패의 지름길로 인식되던 개인・로컬 레코드 숍을 창업해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성공을 이루었다. 한국 로컬 레코드 숍의 2010년대 이후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선구적 가게다. 록과 메탈의 성지 도프레코드도 언급해야 한다. 록 공연을 기획하거나 록 앨범을 제작하던 김윤중 씨가 2017년 신수동에 오픈한 곳이다. 록과 팝 위주의 방대한 바이닐과 CD,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카세트테이프 보유량, 다양한 음악 잡지와 굿즈 등을 갖춘 도프레코드는 김밥레코즈와 또 다른 정체성으로 서울 대표 음반 매장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2년 전 확장 이전한 김밥레코즈 내부.

이 외에도 연남동 깊숙한 곳에 위치한 사운즈굿스토어, 을지로의 미오레코드, 레코드스톡, 신당과 상수에 위치한 모자이크 등을 언급할 수 있다. 나열하고 보니 서울에도 레코드 숍이 제법 많다. 그러니 도쿄의 레코드 인프라를 일방적으로 추켜세우는 건 현시점에선 이르다. 도쿄의 여전한 대단함을 존중하는 동시에 서울의 약진(?)을 함께 이야기해야 맞다. 이런 맥락에서 맨하탄 레코즈 서울은 양면적 의미를 지닌다. 척박한 땅의 한 줄기 빛까진 아 니지만, 다른 레코드 숍과 달리 도쿄 레코드 숍의 분점이라는 특수성을 가진다. 본점과 서울점을 굳이 이분법으로 비교한다면 본점은 맥시멀리즘에 가깝고, 서울점은 미니멀리즘에 가깝다. 본점은 1층도 2층도 가득하다는 인상이라면, 서울점은 쾌적한 공간이다. 이는 서울점의 바이닐 물량이 비교적 적다는 뜻도 된다. ‘이제 더 살 게 있겠어?’라며 문을 여는 내게 언제나 컬렉션의 미세한 빈틈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 본점이라면, 서울점은 물량과 밀도 면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차이는 서울의 특수성, 그리고 두 대표의 이력과 연관 지어 바라 보는 게 맞다. 전자는 서울의 바이닐 소비의 넓이와 깊이가 아직은 아쉽다는 점을 말한 것이고, 후자는 이를테면 이진복 대표의 의류 브랜드 경영 이력을 지칭한 거다. 실제로 서울점은 의류와 굿즈를 곁들여 판매하는 느낌보다 는, 바이닐도 다양한 상품 카테고리 중 하나라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자체 브랜드와 로고를 활용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본점의 최근 행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변화다. 서울점 역시 그 기조를 이어받았을 테지만, 그 디테일과 양상이 사뭇 다르다는 점은 흥미롭다. 본점은 운신하기 비좁기도 하면서 물건이 덕지덕지 빼곡하게 진열된 전통 레코드 숍이라면, 서울점은 세련되고 쾌적한 편집숍 같다. 바이닐 라이브러리에 관해 말하자면, 앞서 말했듯 본점보다 물량과 종류가 적다. 그러나 대형 글로벌 음반사와 계약한 유명 래퍼의 바이닐만 구비해놓은 다른 숍에 비하면 확실히 더 입체적이고 세세한 라이브러리를 갖췄다. 드레이크와 켄드릭 라마뿐 아니라 램페이지나 웨스트사이드건의 앨범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전 세계 레코드 숍이 자기 물건을 등록해놓고 판매하는 디스콕스(discogs)에서도 물량이 몇 개 되지 않는 레어템이 몇몇 보였다. 예를 들어 살람 레미의 <Black On Purpose> 같은 바이닐은 서울과 도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앨범이었다. 힙합 전문 레코드 숍이던 데이토나 레코즈가 문을 닫은 지금, 맨하탄 레코즈 서울은 서울에서 가장 좋은 힙합 바이닐 섹션을 갖췄다고 보는 게 맞을 테다. 맨하탄 레코즈 서울의 성공을 빈다.

연남동 골목에 자리한 사운즈굿스토어.
살람 레미의 ‘Black On Purpose’ 바이닐.

도쿄 레코드 숍 지형도

바이닐 컬렉터이자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의 레코드 지도. 메인 존은 우다가와초다.

Manhattan Records

바이닐 수집의 주 종목이 미국 힙합이기에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맨하탄 레코즈다. 힙합과 R&B를 비롯한 흑인 음악 장르 음반을 주로 취급하는 이곳은 도쿄에 살아 보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요즘은 신보와 새 앨범이 진열된 1층보다 다양한 중고로 가득한 2층에 먼저 올라간다. 그곳에는 ‘알아보는 사람만 사가세요’라고 말하는 듯 깊은 힙합 라이브러리가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 힙합 매거진 <emixshow>가 늘 부록으로 동봉했던 ‘Exclusives’ 바이닐 시리즈는 지금도 맨하탄 레코즈에서만 만날 수 있다.

Face Record

맨하탄 레코즈 바로 옆에는 (임시 휴업 중인) 페이스 레코드가 있다. 도쿄에서 가장 애정하는 레코드 가게다. 다양한 장르를 취급하지만, 이곳의 힙합 라이브러리는 최근 몇 년간 내가 필요로 하는 앨범과 가장 맞닿아 있었다. 컬렉션에 빠져 있는 리스트를 중얼거리며 이곳에 들어가면 내가 찾던 바이닐이 기다렸다는 듯 눈에 띄었다. 양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헤비 컬렉터가 찾을 법한 포지션의 앨범이 적절하게 포진돼 있다. 입문용 바이닐만 가득하지도 않고, 너무 레어한 바이닐로 허세를 떨지도 않는다. 적절한 깊이와 좋은 취향으로 작동하는 가게다. 일본에만 5개 매장이 있으며, 뉴욕점도 있다. 그리고 4월 24일 후쿠오카에 새로운 지점을 연다.

HMV

페이스레코드 건너편에 HMV 시부야점이 있다. HMV는 대형(혹은 중형) 체인점이다. 로컬 레코드 가게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처음엔 서울의 핫트랙스나 신나라레코드가 떠올라 전혀 기대하지 않고 찾았다. 그 두 곳에는 언제나 내가 구하던 앨범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HMV는 도쿄의 핫트랙스가 아니었다. 맨하탄 레코즈의 여집합에 맨하탄 레코즈의 80% 정도를 더한 듯한 레코드 숍이었다. 심지어 중고 섹션에서는 맨하탄 레코즈 같은 힙합 전문점에서 구하지 못했던 바이닐을 발견할 때도 종종 있다. 이러니 HMV를 그냥 지나칠 리가. 절대 놓칠 수 없지.

Tower Records

타워 레코즈는 HMV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시부야 한복판에 버티고 있는 타워 레코즈 건물은 마치 음반 체인계의 거대 괴수 버전 같다. 시부야의 가장 비싼 땅에 9층짜리 피지컬 음반 가게가 서 있는 걸 보고 있으면 감동과 경외심, 그리고 부러움과 질투가 동시에 밀려온다. 건물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팝 앨범도, 세계에서 100장밖에 안 팔렸을 것 같은 마니악한 앨범도 구비되어 있다. 또 일본어로 된 OBI가 둘러진 라이선스 CD와 수입 바이닐이 가득하고, 매달 발행되는 음악 잡지가 무가지 코너에 쌓여 있다. 무엇보다 까다롭고 세세한 취향도 이 건물 안에서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다. 시부야 한복판에서.

이 외에도 도쿄의 레코드 가게에 대해 할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디스크유니온의 수많은 점포의 특성에 관해서도 말해야 하고, 레코드시티레코판, 페이스레코드의 미야시타파크점,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나온 시모키타자 와의 Flash Disc Ranch 등에 대해서도 간증해야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이것일 테다. 도쿄는 음악을 사랑하고, 여전히 앨범을 구입하고, 음악적 취향이 분명한 사람에게 ‘행복의 땅’ 그 자체라는 것.

김봉현 에디터 이도연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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