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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풍경

리장부터 시에나까지, 정지욱 그루스튜디오 대표가 채집한 영감의 조각.

800년 역사의 고성을 가득 채운 빽빽한 지붕과 만년설이 내려앉은 옥룡설산.
세계에서 가장 깊고 웅장한 협곡으로 알려진 ‘호도협’.

리장의 조형과 빛

아름다움을 탐미하는 것이 일상이고 일이다. 미술을 전공하고 20여 년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으니 갤러리나 아트 페어 방문이 여행 목적이 될 때도 많다. 하지만 지난 여행을 돌이켜보면 큰 감흥을 얻은 것은 미술관밖에 있었다. 이를테면 건물과 도시의 색감, 사람들 생김새와 패션, 식당 음식과 서버의 모습 같은 거다. 그래서 부러 ‘무엇을 보겠다’고 계획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여행의 묘미는 ‘우연한 만남’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풍경이든 사람이든, 무심한 틈에서 발견한 것들 말이다. 한 달 전 다녀온 차마고도에서 그 경험을 실컷 했다. 트레킹에는 문외한인 내가 차마고도를 걷겠다고 나선 이유는 실크로드보다 더 오래된 길,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명당에 호텔을 짓는 아만이 리장에 있다는 사실도 이 여행을 부추겼다. 차마고도는 중국과 티베트, 인도를 잇는 길인데 나의 목적지는 중국 리장이었다. 이번에도 ‘무엇을 꼭 보겠다’는 다짐 같은 건 없었다. 무심히 떠났다. 직항이 없어 중국 쿤밍을 경유해 리장에 도착했다. 나시객잔부터 차마객잔, 중도객잔까지 2일간 총 27km를 걸었다. 나시객잔과 차마객잔을 잇는 길에서 스물여덟 번이나 휘어진다는 최고 난코스 ‘28밴드’를 지날 때는 사람도 말도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걷는 길은 살벌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3시간을 걸었던가. 해발 약 2400m의 차마객잔에 다다랐을 때 감탄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설산과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협곡이 숨 막히는 장관을 이루고, 그 위를 흐르는 구름과 노을빛 물결은 미술관에 걸린 명작보다 강렬한 울림을 남겼다. 까만 밤하늘에서 춤추는 은하수도 봤다. 아이슬란드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을 그곳에서 만날 줄이야. 걸어온 고행길이 감사할 지경이었다. 참 축복받은 땅이다. 아만 호텔이 리장에 있다는 게 그 사실을 방증한다. 라이온 힐 꼭대기에 자리해 리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를 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것 하나 흘깃 볼 게 없고, 오랜 시간 들여다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리장에서 아만은 최고 선택지일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800년 역사의 고성을 가득 채운 빽빽한 지붕과 만년설이 내려앉은 옥룡설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에 조응하는 설산을 차분히 감상하기에 이만한 장소도 없을 테다. 또 공간을 디자인하는 게 업인 내게는 나키(Nakhi) 건축양식을 그대로 살린 목조 건물, 창틀과 안뜰에 장식한 나시족의 전통 문양 등 건축물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호텔에서 리장 구시가도 가깝다. 발길 닿는 곳마다 지천에 꽃이 만발하는데, 중국 전역에 유통되는 꽃 중 90%를 차지한다고. 검은색 기와와 붉은 벽면으로 치장한 목조 가옥, 그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길, 반들반들하고 납작한 응회암이 깔린 길, 오래도록 그 이미지들을 더듬게 될 것 같다.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한 대형 야외 공연 ‘인상여강’.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아만다얀의 창틀이나 안뜰에서 나시족의 평안을 의미하는 문양을 볼 수 있다.
나시족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문창궁.
리장의 소수 민족인 나시족의 문화를 반영한 아만다얀의 객실 디자인.

유구한 감각

리장에 머무는 동안 마침 얼마 전 다녀온 이탈리아가 겹쳐 보였다. 유구한 문화유산과 중세 도시 모습이 잘 보존된 곳이라는 점에서 퍽 닮았다. 특히 돌이 깔린 길을 걸을 때 그랬다. 리장은 1996년 대지진이 도시를 덮쳤을 때 구시가 건물만큼은 건재했는데, 이는 돌박닥이 충격을 흡수했기에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이탈리아는 그걸 직접 경험했다. 도시 전체가 유산인 로마는 한때 아스팔트를 깔았다가 오래된 건물에서 진동이 감지되자 이를 걷어내고 다시 돌을 깔았다고 한다.

13세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경마 경주 팔리오 디 시에나.
13세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경마 경주 팔리오 디 시에나.
13세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경마 경주 팔리오 디 시에나.

이탈리아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방문차 다녀왔다. 오랜만에 코모 호수, 피렌체, 시에나, 산지미냐노 등 밀라노 근교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이번에는 유독 옛것에 대해 사유할 기회가 많았다. 밀라노 중심부에 자리한 대저택 ‘빌라 네키 캄팔리오’는 1930년대 이탈리아 인테리어 장식 예술의 정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였다. 1930년대 건축가 피에로 포르탈루피가 설계한 이곳은 철강과 재봉틀 산업으로 부를 이룬 지지나 네키와 안젤로 캄필리오 부부의 거처였다. 아르데코 양식의 인테리어가 참 우아했다. 이탈리아 최초로 개인 수영장을 갖춘 주택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그림이 걸려있는 게스트 룸, 창밖 녹음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초록빛 거실, 앤티크 가구 등 이탈리아 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아쉽게 보지 못했지만, 시에나의 중앙 광장 피아차 델 캄포(Piazza del Campo)에서 열리는 경마 경주도 언젠가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 7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경마 경주 팔리오 디 시에나(Palio di Siena)가 지금도 이 광장에서 열린다고 한다. 13세기와 동일한 형태로 진행한다는 점도 감탄스럽다. 시에나 17개 구역 중 10개가 고유의 깃발과 복장을 착용하고 참여하며, 각 구역을 대표하는 기수와 말이 광장을 세 바퀴 돈다. 매년 7월과 8월 두 차례에 진행하는데, 이때는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호텔의 숙박료가 1000만 원을 호가한다. 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와 함성, 화려한 복장의 기수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 그 장엄한 광경을 보기 위해 시에나를 곧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정지욱 20년간 인테리어 회사 그루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다. 대전복합터미널의 광장을 문화예술스퀘어로 설계, 2024년 KIAF VIP 라운지(the hyundai) 공간 기획, 파리 메종&오브제 한국관 전시 공간 기획, 한남더힐의 커뮤니티 센터 레노베이션, 녹사평역사 레노베이션 등을 진행했다.

1930년대 이탈리아 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저택 빌라 네키 캄팔리오.
1930년대 이탈리아 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저택 빌라 네키 캄팔리오.
1930년대 이탈리아 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저택 빌라 네키 캄팔리오.
에디터 이도연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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