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은 누가 될 것인가
지난 2월, 세계 3대 IT 전시회 중 하나인 ‘MWC 2024’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MWC에서는 보통 차세대 스마트폰이 크게 주목받지만, 올해는 삼성전자의 ‘갤럭시링’이 데뷔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기존에도 ‘오우라링’ 같은 반지 형태의 스마트링은 존재했지만, 글로벌 스마트 디바이스 리더 격인 삼성전자가 야심 차게 선보인 만큼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갤럭시링이 크게 주목받자, 자연스럽게 애플에도 시선이 쏠렸다. 애플이 ‘애플링(가칭)’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널리 알려졌고, 업계 최대 라이벌인 삼성전자가 스마트링 시장을 선도하는 모습을 마냥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6월에 열릴 개발자 콘퍼런스(WWDC 2024)에서 애플링의 모습을 공개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한편 스마트링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애플뿐 아니라 중국 기업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중국 기업이 삼성전자와 애플이 선보인 기술을 따라잡기에 급급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기술 격차가 매우 줄어든데다 일부 분야에서는 오히려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 기업이 전통적으로 보유한 가격 경쟁력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인 만큼 스마트링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의 존재감은 대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갤럭시링이 등장하자 곧바로 중국의 ‘아너’가 스마트링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삼성전자, 애플, 중국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질 스마트링 시장에서 어떤 요인이 성패를 좌우할까? 우리는 그 정답을 비전프로의 오답 노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애플의 비전프로는 혁신적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디자인과 실용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기며 대중성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록 디바이스 형태는 다르지만, 스마트링에서도 이 두 가지 요소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디자인 측면에서 경쟁 VR 제품이 일상에서도 편안하고 스타일리시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선글라스 같은 경량 형태로 발전하는 반면, 애플 비전은 전통적 헤드셋 형태로 출시됐다. 이러한 디자인은 더 깊은 몰입감을 제공하지만, 무게중심 문제와 어지러움을 유발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링 역시 반지 형태의 특성에 따라 장시간 착용해도 편안한 인체공학적 디자인은 필수다. 특히 수면 중이나 타이핑 같은 업무 중에도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스마트링 본연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외관 디자인도 중요한데, 이는 스마트링이 패션 아이템으로 착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용성 측면을 살펴보면, 현재 비전프로의 경우 활용 가능한 앱이 제한적이라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마트링도 초기에는 수면 품질 분석, 심전도 모니터링 등 헬스케어 기능 중심으로 탑재될 예정인데, 이 기능만으로는 소비자의 관심이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 따라서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관심을 끌 만한 ‘와우포인트’가 동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스마트링은 크기의 한계 때문에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기 어려운데, 이 한계를 극복하면 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AI Pin’이 보유한 레이저 잉크 디스플레이 방식은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 또 모션 인식을 활용한 디바이스 제어, 생성형 AI를 활용한 대화형 인터랙션, 다양한 기기와의 연동을 통한 활용성 증대를 예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기업이 앞으로 이 시장을 선도하게 될까? 만약 2024년 초를 기준으로 예상했다면, 주저 없이 애플을 꼽았을 것이다. 애플의 견고한 생태계가 애플링이 연착륙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연합(EU)과 미국의 규제가 애플 생태계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갤럭시링은 착용감과 디자인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스마트링과 마찬가지로 애플보다 앞서 출시된 ‘AI 폰’과 자유로운 연동을 통해 활용 폭을 넓힌다면 삼성이 가까운 미래에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더욱 커 보인다.
이재훈
테크 및 IT 칼럼니스트. AI 스타트업 BD, 금융사 DT 기획 등의 업무 를 경험하고 현재는 테크 및 비즈니스 동향을 전하는 뉴스레터 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