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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도 아이돌처럼

대국민 미술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대국민 미술작가 오디션 화100>의 명과 암에 대하여.

한 작가가 거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통찰력을
갖춘 조력자가 필요하다.

평면 회화 작가 100팀이 라운드마다 미션을 수행하고 전문가 평가와 대중 투표를 거쳐 우승자를 선발한다. 흡사 아이돌 오디션 같은 이 장면은 대국민 미술 서바이벌을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 <대국민 미술작가 오디션 화100>이다. 일부 스타 작가의 활동이 K-팝 스타와 비슷하며, 실제로 K-팝스타가 전시를 여는 현실이라지만, 과연 서바이벌을 통해 ‘좋은 작가’가 성장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서 미술이라는 장르와 작가 양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납작한 시선이 드러난다.

미술이 의미를 생산하고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해서는 작가뿐 아니라 다양한 관계자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작가가 성장하는 모든 단계에 함께하는 갤러리스트는 전시만 기획하는 큐레이터, 작품만 판매하는 아트 딜러와 구분된다. 이들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신진 작가에게 투자하며, 작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고, 소속 작가가 명성 있는 미술관에서 전시하거나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연결한다. 또 안목 높은 컬렉터와 기관에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키워낸 작가들은 국제 비엔날레, 미술상 등을 무대로 예술적 가치를 드러낸다. 갤러리 또한 이 과정에서 작가와 동반 성장하며 고유의 가치를 만든다.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 같은 유명 갤러리가 하나의 브랜드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탄탄한 전속 작가 제도를 운영하는 갤러리는 흔치 않다. 빠르게 열매만을 취하려는 아트 딜러나 플랫폼은 이미 팔리는 작가를 찾고, 영세한 갤러리들은 작가를 키워놓으면 떠날까 봐 불안해한다. 이런 상황을 지적이라도 하듯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했다. YG의 IP 전문 자회사 YG플러스는 지난 2월 국내 첫 아트 레이블 ‘피시스’를 선보이며 도예, 가구, 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다. 예술을 일상에서 쉽게 향유하기 위해 K-팝 수출 시스템과 아이돌 육성 노하우를 미술에 접목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미술계에서 콘텐츠 기획사가 주도하는 예술가팀이 눈에 띄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술의 가치 평가 방법은 매우 복잡다단하다. 세부 장르의 구분도 모호하고 한 가지 기준으로 줄 세우기도 어렵다.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독특한 가치를 지니는 영역이다. 그러나 대중의 선호도에 맞춰 작가를 프로듀싱하며, 기업과 콜라보를 중개하는 등의 사업은 가치와 의미보다는 당장의 유명세와 부를 얻기 위한 생산 활동에 가깝다. 기획력과 조직적 전략이 뒷받침되면 대중의 취향을 맞추거나 대규모 작업을 따내기 유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뛰어난 사업적 성과와 예술적 성취는 비례하지 않는다. 기준에 맞추려고 애쓸수록 핵심은 사라진다. 오히려 한창 자기 세계를 구축해야 할 젊은 작가들이 중요한 시기에 소모될 가능성이 크다. 대중성은 작가에게 양날의 검이지만, 신진 작가 스스로 정도를 판단하고 완급을 조절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작가에게 보상이 될 수 있는 작품가 상승 또한 호재만은 아니다. 갤러리는 복잡한 미술 시장에서 작가의 경력, 수요나 공급에 따라 작품가를 조절하며 작가의 커리어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경매가가 비정상적으로 오를 경우 갤러리가 이를 조절하기 어려워진다. 쉽게 오른 가격은 작은 악재에도 쉽게 떨어지고 이후에는 쉬이 다시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 시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에서 미국의 유명 작가 마릴린 민터는 이러한 ‘화이트 히트’를 경고한다. 젊은 작가가 생전에 자기 작품이 100만 달러에 낙찰되는 일을 겪으면 쉽게 판단력이 흐려지고 결국 시장에 휩쓸려 커리어를 망치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형 기획사가 키워낸 K-팝 스타의 빛나는 성취는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그사이 빠른 성과를 내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우리가 열광하는 아이유나 이찬혁 같은 대체 불가능한 뮤지션은 어떻게 길러졌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K-팝 스타 양성 시스템으로 길러낼 작가들의 향방 또한 가늠할 수 있을 테다.

도시 풍경을 그려낸 강렬한 회화로 유명한 서용선 작가는 풍경화 작업의 방향을 조언해준 갤러리스트 이영희 대표를 “예술적 동지”라고 불렀다. 한 작가가 오랜 시간을 견뎌 거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작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은 물론 미술과 시장에 관한 통찰력을 갖춘 조력자가 필요하다. ‘예술적 동지’라는 표현에서 생산과 경쟁이 아니라 동반 성장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꺼내 곱씹어본다. 오래, 멀리 함께 가는 방법이 거기 있다.

김지연
미술비평가.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마리나의 눈>, <필연으로 향하는 우연> 등의 책을 냈다.

에디터 <맨 노블레스> 피처팀 일러스트 최익견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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