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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배우의 희비

데미 무어의 오스카 수상 불발을 두고 말이 많다.

데미 무어의 오스카 수상 불발을 두고 말이 많다. 아카데미 회원들의 선택은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이었다. 언론은 ‘이변’, ‘충격’, ‘반전’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개인적으로 이 평가에 반만 동의한다. 오스카가 단순히 ‘연기 고수’나 ‘흠결 없는 작품’을 꼽는 시상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시청하는 로컬 시상식, 아니 할리우드 역량과 존재감을 펼쳐 보이는 ‘특급 이벤트’에 더 가깝다. 평소 극장에 잘 가지 않는 사람들도 호기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일정량의 오락과 스릴, 그에 합당한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하려는 게 오스카다. 그런 이들에게 이번 이변은 이변이 아닌 셈이다.

물론 데미 무어를 향한 응원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서브스턴스>는 데미 무어가 걸어온 인생 자체가 캐릭터에 스며들어 영화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경우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은 영화였기에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데미 무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매디슨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2년 전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더 웨일>의 브랜든 프레이저일 공산이 크다. 프레이저도 데미 무어처럼 자기 인생의 불행을 작품에 포개놓으며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니까. 2년 만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배우에게 상을 주는 게 오스카 입장에서는 무언가 부언한다는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오스카는 칸·베니스·베를린 등 국제영화제처럼 소수 심사위원단이 비평적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내지 않는다. 5000명의 회원 투표로 주인공을 가려내는 게 오스카다. 취향이라는 수사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걸작이 간혹 나오긴 하나, 수천 명의 취향은 대개 갈린다. 그들의 평가엔 취향 외에도 오스카라는 특수성, 앞선 시상식 결과도 무의식적으로 반영될 테다. 또 하나. 오스카는 ‘기세’다. 이 특급 쇼는 하루아침에 수상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6개월 전부터 디데이를 향해 작정하고 홍보전(오스카 레이스)을 펼친다. 적지 않은 외부 요소가 투표 향방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선거를 생각하면 쉽다. 아무리 유력한 후보도 변수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한다. 올해 이 기세에서 밀려난 건 최다 부문에 후보를 낸 <에밀리아 페레즈>였다. 잘나가던 도중, 트랜스젠더 주연배우 칼로 소피아 가스콘이 과거 소수자를 향해 혐오 발언을 쏟아낸 게 밝혀지면서 기세가 확 꺾였다. 가스콘의 행동이 성소수자를 조명한 영화 메시지에 전면 배치됐기 때문이다. <아노라> 역시 <에밀리아 페레즈>처럼 주류에서 덜 조명받아온 인물군(성 노동자)을 다룬 영화다. 재벌과 스트리퍼의 로맨틱 코미디처럼 전개되던 영화는 후반부 커브를 꺾어 성 노동자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작중 매디슨은 철옹성 같은 계급의 벽 에 가로막힌 ‘아노라 애니 메이헤바’를 마지막까지 존엄 있게 표현하며 주체성을 확보했다. 어찌 보면 매디슨의 수상은 ‘가스콘 논란’을 수습하는 가장 해피 엔딩적 결말인 셈이다. 이것이 오스카의 큰 그림은 아니었을 테지만, 여러 기세가 메디슨을 향해 움직인 부분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1999년생인 매디슨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스크림 5>에 출연했지만, 영화 팬들 사이엔 덜 알려진 배우였다. 이번 여우주연상 수상을 통해 할리우드의 초신성이 된 셈이다. 작중 주인공 아노라 애니 메이헤바는 신데렐라가 되지 못했지만, 배우는 현실에서 진짜 신데렐라가 됐다. 20 대 배우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은 2013년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의 제니퍼 로렌스 이후 12년 만이다. 흥미롭게도 <서브스턴스>에서 자신이 복제한 젊은 육체의 ‘수(마거릿 퀄리)’에게 밀린 데미 무어는 현실에서도 결정적 순간 20대 배우에게 고배를 마시게 됐다. 둘 다 영화적이라면 영화적인 상황이다. <아노라>와 <서브스턴스>가 오스카 무대에서 재현된 느낌이랄까.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각종 매체에 칼럼과 인터뷰를 기고하고 있으며 MBC 라디오, 네이버 등의 플랫폼을 통해 배우와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인터뷰집 <배우의 방>을 썼다.

에디터 <맨 노블레스> 피처팀 일러스트 최익견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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