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물건’ 스모킹 아이템 5
작은 물건 하나에도 깊숙한 애착을 갖는 이들이 있다. 태우지 않고 간직한 스모킹 아이템에 얽힌 이야기.

수십 년을 지나 내게 온 작품
빈티지 라이터를 포함한 스모킹 관련 소장품은 일상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물건이다. 흡연할 때, 인센스와
촛불을 켤 때도 특유의 감성을 자아낸다. 1910년대, 1930년대 제작한 매치 세이프(성냥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상자), 1950년대 제작한 불도그 형상 재떨이 등 다양한 소장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가
는 제품은 1967년 제작한 레디 킬로와트 지포 라이터다. 이 캐릭터가 새겨진 아이템은 높은 희소성을 자랑
한다. 주기적으로 기름을 넣고 부싯돌도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짤까닥거리는 느낌을 접하면 끊
을 수 없다. 빈티지 아이템을 수집하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이 물건이 거쳐온 수십 년의 시간을 상상하는 데
있다. ‘빈티지 컬렉터’라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도 그 과정을 가장 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
가 그냥 지나치는 것에서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흔하지 않은 디자인이나
한정판 스모킹 아이템은 내게 하나의 작품과도 같다. _ 이지현(콜렉터블 빈티지 쇼룸 ‘라따몬따’ 운영)

하루 끝, 가장 고귀한 선물 세트
쿠바산 시가를 애용하는 편이다. 여행을 가게 되면 달라진 풍경 앞에서 하루 끝을 시가 향으로 되짚어본다.
쿠바산 시가 한 스틱은 평균적으로 15만 원대다. 1시간 정도 태우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꽤 사치스러운 취
미다. 그런 부분에서 시가는 자신에게 주는 가장 고귀한 선물인 셈이다. 자연스럽게 관련 소장품도 하나둘
모으게 되었는데, 그중 듀퐁 시가 커터는 친한 지인에게 선물받은 만큼 가장 아끼는 제품이다. 한편 쿠바 시
가 마스터에게 수여받은 하바노스 배지는 시가 문화에 대한 나의 열정과 애정을 상징하는 아이템이다. 소장
하고 있는 전용 악어가죽 시가 케이스와 커터는 마치 고급차에 탑승했을 때처럼 큰 자부심과 여유로움을 주
는 존재다. _ 주경진(사업가 겸 크리에이터)

내 안의 질감을 새기는 물건
1930년대 론손의 담배 케이스 겸 라이터를 가장 아낀다. 라이터 위쪽은 불을 붙이는 부분, 아래쪽은 70mm 담배를 보관할 수 있게 설계했는데, 담배를 직접 말아 피우는 내게 딱 맞는 물건이다. 또 1970년대 제작한 매치 스트라이커에 직접 커스텀한 소장품도 애정한다. 상단을 열어 기름을 넣고 사이드에 있는 부싯돌을 긁어 사용하는 방식이다. 빈티지 라이터는 작동 방식과 디테일, 그리고 시대의 흔적을 담아낸 만큼 고유한 감성을 지닌다. 오래 입을수록 그 옷에 애착이 생기는 것처럼, 빈티지 라이터는 시대적 질감을 삶에 새기는 존재다. 일회용 라이터가 아닌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름 라이터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과 공간은 기능적이거나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감정과 상상력을 풍요롭게 하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은 찰나지만 그 순간과 공간, 물건이 주는 경험은 가장 특별한 가치라고 느낀다. _ 임동호(파인 아티스트 겸 세라믹 브랜드 운영)

삶의 일부가 된 촉감, 그리고 소리
처음에는 그저 ‘멋’이었다. 국내외 다양한 영화 작품을 보고 듀퐁 라이터를 구매하게 됐다. 남자 주인공이 ‘핑’ 하는 소리와 함께 꺼내 드는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구매한 라인2 산토스 콤비는 이후 내 삶의 일부가 됐다. 단종된 모델(1990년대 초창기 제작)인 만큼 애착이 컸고, 금장과 은장이 섞인 디테일이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더욱이 빈티지 라이터 특성상 부싯돌이나 가스 충전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정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유욕을 자극했다. 듀퐁 라이터의 경우 40~60개 부품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작은 오링까지 모두 구할 수 있으니 ‘평생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와닿았다. 구매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라이터를 만지면서 느끼는 촉감과 소리는 언제 어디에서 들어도 신선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감각이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_ 김선욱(타투이스트)

가장 온전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
약 2년 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재 이후 한국 최초의 시가 바 ‘피에르 시가 바’를 물려받았고, 트리니다드의
‘푼다도레스’라는 빈티지 시가를 처음 접하며 그 문화에 눈뜨기 시작했다. 당시 처음 장만한 ‘양(羊)’자 휴미 도어는 시글로 제품으로, 나의 양띠를 상징하는 소장품이다. 더블 코로나 사이즈 시가를 보관할 수 있는 고급 트래블 시가 케이스, 제트 토치 라이터 모두 시가를 즐기는 데 필수 제품이다. 한편 레솔베르 시가에서 구매한 듀퐁 스트레이트 커터는 경쟁사에 대한 파트너십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클래식하면서 고고한 실루엣을 갖춰 늘 몸에 지닌다. 이제 내게 시가는 사치품이 아닌 과거 향수와 현재 여유를 잇는 매개체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시가를 즐길 때도 좋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은 홀로 그 쉼을 깊숙이 음미할 때다. _ 마티아스 코헨(‘피에르 시가 바’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