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생동하는 박재범의 초상
고요히 생동하는 박재범의 초상.


오랜만에 월드 투어에 나섰다. 6년 만인가?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다.
투어를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늘 숙제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대충 하고 싶지는 않았다. 월드 투어를 하면 온전히 거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무대에서 격하게 춤추고 에너지를 쏟아붓는 스타일이라 체력 소모가 크다. 그간 음악 외에도 비즈니스가 많아 장기간 몰입할 여유도 없었고. 이러다 계속 미룰 것 같아 작년에 미리 스케줄을 비우고 공연장을 먼저 잡았다. 그러면 어떻게든 하게 되니까.
우선 저지르고 봐야 하는 일도 있다. 그렇다. 페스티벌과 달리 오로지 나를 위해 찾아와준 관객이고, 나 역시 이름을 걸고 선 무대이기에 더욱 특별했다. 신인 시절 음악부터 신곡까지 함께 즐기는 관객의 모습을 보니 고맙고, 가슴이 뭉클했다.
오랜만에 선 무대인 만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솔직히 무대가 그리운 적은 별로 없었다. 6년간 페스티벌 무대에는 간간이 섰으니 큰 갈증은 없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혹시 매진되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있었고.
박재범이? 당연하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6년 만의 공연치고는 빨리 매진됐다. 공연 준비도 순조로웠고, 의도했던 ‘박재범다운 공연’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 만족한다. 내년에 조금 더 큰 공연장에서 앙코르 콘서트를 열까 생각 중이다.

투어가 2026년까지 이어진다고 들었다. 체력 관리도 녹록지 않을 텐데, 무대를 준비하며 특별히 신경 쓴 게 있나? 셋리스트 구성에 가장 신경 썼다. 대학교 축제나 페스티벌에서 자주 부르는 곡은 새롭게 편곡했고, 중간중간 댄스 브레이크를 넣어 예상치 못한 재미를 주려고 했다. 레이저, LED, 무대 설치 등 시각적 연출에도 꽤 공들였다.
셋리스트 구성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콘서트 제목 ‘세레나데즈 앤 바디롤즈(Serenades & Body Rolls)’ 그대로였다. R&B 곡을 좋아하는 팬도 있고, ‘몸매’처럼 퍼포먼스나 파티 분위를 기대하는 팬도 있다. 그래서 다양하게 구성했고, R&B, 발라드, 게스트 무대, 댄스, 힙합 순으로 텐션을 끌어올렸다. 스물일곱, 여덟 곡을 준비했다.
서른 곡에 가까운 셋리스트라니, 새삼 15년 커리어가 실감 난다. 그 시간 동안 음악을 대하는 마음이 좀 달라지기도 했나? 권태기가 올 수도 있고.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음악은 ‘자극’이었다. 음악 덕에 힘이 났고, 음악을 위해 용기도 낼 수 있었다. 내 정체성을 만들어준 것이 바로 음악이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카세트테이프를 몇 번이고 되감으면서 가사를 받아쓰고 랩을 따라 했다. 마치 에미넴이나 어셔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듣고 따라 하다 보면 그들이 품은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음악이 직업이 된 후에는? 또 달랐다. 데뷔 후에는 ‘박재범은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가’를 증명해야 했다. 인정받기 위해 독기를 품기도 했고. 그렇다고 나를 보여주는 음악만 만드는 게 전부는 아니더라. 상업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길을 가면서, 부족한 실력도 갈고닦으면서, 수입도 생각하면서 음악을 하는 것.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그건 지금도 어렵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았으면 음악을 놓고 싶은 순간도 있었겠다. 증명하고, 결과도 내고, 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만들어보기도 했다. 음악에 질린 적은 없는데, 음악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새로울 게 없다고 느껴지는 때는 오더라. AOMG, 하이어뮤직 같은 레이블을 만들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해 함께 작업한 건 음악을 지속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내가 계약한 아티스트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니, 동기부여가 됐다. 그들이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고 인생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오히려 내가 힘을 얻을 때도 많았다. 지금 준비 중인 아이돌 그룹에게도 큰 에너지를 받는다. 이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는 ‘언제쯤 활동을 그만둘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매년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등장한다. 부담감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대단한 그림을 그리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정이 들고 욕심도 생기더라. 각자 색깔도 분명하고. 무엇보다 음악에 욕심도 많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친구들이다. 요즘은 이 친구들과 같이 작업하고, 춤추고, 운동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데뷔는 언제쯤? 내년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신뢰를 잃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




앞서 ‘하고 싶었던 음악’을 마음껏 하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기는 언제인가? 데뷔 초기에는 열정만 있었지, 실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경험과 감이 쌓이니 생각만큼 할 수 있는 시기가 오더라. 2015년과 2016년, <WORLDWIDE>와 <EVERYTHING YOU WANTED> 앨범을 낼 때다. 그즈음에는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밤 11시부터 다음 날 오후 1시까지 작업하고, 낮에 스케줄을 소화했다. 지금은 섭외를 받지만, 당시에는 발로 뛰며 내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이것저것 판을 벌리려던 시절이다. 정말 순수하게 재미로만 음악을 했다. 완성도 있는,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드는 성취감도 그때 제대로 느껴봤다.
<WORLDWIDE>는 피처링 라인업이 정말 화려했다. 당대 힙합 레이블 수장은 거의 다 참여했고, 새로운 이름도 많았고. 그 시절엔 새로운 아티스트를 알아가고 우리끼리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게 재밌었다.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이거 어때?’ 같은 대화가 즐거웠고, 에너지를 얻었다.
과거 ‘자신의 꿈은 성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 바람은 여전한가? 사람이 내 원동력인 것 같다.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고, 내 일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주려면,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사람에게 마음을 쓰다 보면 실망할 일도 많지 않나? 그것도 맞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다가가도 인간관계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늘 갈등이 생기고, 선을 지키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결국 잘 풀릴 거라는 생각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좋은 사람의 기준은 뭔가? 좋은 의도를 갖고 사는 거다. 진정성 있는 사람. 관계를 맺을 때 물질적인 부분이나 손익부터 따지는 사람이 더러 있다. 계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냥 ‘현명하게’, ‘멋있게 살자’ 이거다.

비보이부터 아이돌 그룹 제작까지, 수많은 시도와 선택을 반복해왔다. 실패가 두려운 적은 없었나? 자기만의 것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그것으로 남을 설득하고, 따르게 하며, 책임까지 지는 건 더 어렵다. 우리 모두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나 자신을 믿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내 인생과 미래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나를 믿고 가는 길이 가장 안전하지 않을까.
리더로서 살아온 시간이 꽤 됐다. 수장 박재범은 힘들 때 누구에게 털어놓나? 잘 내색하지 않는다. 나는 신뢰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뜻대로 안 풀린다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신뢰를 잃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

데뷔 초 EVOLUTION(feat. GRAY)을 통해 ‘죽을 듯이 힘든 것들을 쉽게 견뎌냈어’라는 가사를 썼다. 박재범이 견뎌내는 방식이 궁금하다. 술, 그리고 감사하려는 노력.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건 훈련이 필요하다. 숨 쉬고 걷는 것조차 감사한 일인 걸 쉽게 잊는다.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 자체에 감사할 줄 알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괜찮게 느껴진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다 보면 불행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속도대로, 내 길을 간다. 나 자신을 믿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