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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삭의 여름은

그의 음악처럼 청량하기도, 녹진하기도.

하늘색 니트 톱 Vivienne Westwood,
와이드 팬츠 Cmmn Swdn by G.Street 494 Homme,
브레이슬릿 Tom Wood

지금 음악 신에서 계속 하고 있는 분들은 그런 것보다
자기 음악을 그냥 꾸준히 했더라고요. 내 스스로 어떻게 생존할까 아등바등한 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싱어게인3> 제주 콘서트 일정을 끝내고 막 서울에 온 거죠? 톱 10 멤버와 조금 더 머물다 온 걸로 알아요.
투어가 곧 끝나거든요. 아쉬웠어요. 단톡방에 제가 먼저 제안했어요. ‘혹시 이틀 더 있을 사람 있냐, 게스트하우스 내가 쏜다!’고. 스케줄이 안되는 한두 명을 빼고는 흔쾌히 모두 함께해줬죠.

의미 있는 시간이었겠어요.
톱 10이 연령대가 다양해요. 서로 조심스러울 때도 있지만, 혼자 튀거나 모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즐겁기만 했죠. 마침 제주도에 사는 가수 안신애 씨가 초대해줘서 그 집에 놀러 가기도 했어요. 최근 안신애 씨 앨범이 나와서 즉흥적으로 다 같이 신곡 부르면서 영상도 찍었고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같이 있으면 매 순간 그루브가 넘칠 것 같아요.
그게 좋아요. 저희가 잘 지내겠다고 확 느낀 순간도 비슷해요. 톱 10이 되고 나서 공연 전에 15분 정도 대기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추)승엽이 형이 갑자기 ‘Let it be’를 기타로 연주했는데, 자연스럽게 다 같이 화음을 내면서 부르는 거예요. 그런 순간이 자주 있었죠. 이번 여행은 음악뿐 아니라 사람 간 화음을 맞춰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사람 간 화음을 맞춰간다’는 말도 참 좋네요. 요즘 앨범 작업도 하고 있나요?
어떻게 할지 조금씩 찾아가고 있어요. <싱어게인3>를 통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과 내 음악의 방식을 알게 됐다면, 이제 내 이야기와 음악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까 초석을 다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낼 때 간극이 생기는 건가요?
온전히 감성적일 수 있을 때 내 얘기와 음악이 잘 연결돼요. 지금까지는 음악을 하기 위해 부수적인 일을 많이 했고 곡 하나, 뮤직비디오 한 편을 찍더라도 경제적 부분을 먼저 생각했죠. 오랜 시간 그런 환경에 있다 보니 이성적 사고가 몸에 밴 거예요. 오디션 프로그램도 짧은 기간에 완성도 있는 무대를 준비해야 하잖아요. 계산적으로 임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모든 일정을 빼고 며칠간 떠난다든지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제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 이것조차 감사한 적응기인 거죠.

음악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때는 어떻게 했어요?
항상 찝찝함이 있었어요. 완벽할 순 없겠지만 ‘이걸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왜 이것밖에 못했지?’ 싶죠.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면 더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완벽을 추구하는 것 같기도, 겸손한 것 같기도 해요. 지금까지 쌓아온 작업물이 적지 않고,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이라는 쾌거도 이뤘잖아요.
아직 빈틈이 많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인정받은 부분이 있지만, 당당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요. 계속 습작을 내는 느낌인 거죠.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싱어게인3>를 통해 빈틈을 잘 메울 수 있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지금처럼 인터뷰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다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음악으로 승부한다기보다 무대나 이야기 등 요소가 복합적이잖아요. 오롯이 음악적으로 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그렇군요. ‘썸데이 페스티벌 2024’, ‘그린캠프 2024’ 등 여러 공연도 앞두고 있어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건 언제나 즐겁나요?
늘 환호해주시는데 어떻게 안 즐거울 수 있겠어요. 오히려 약간 버릇 나빠질까 봐 걱정은 하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조심해요. 아, 가끔 페스티벌에 따라 셋 리스트를 준비하면서 난처할 땐 있어요. 저는 신나는 곡을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 같은 무대 때 ‘물은 언제 뿌리지?’ 고민하죠.(웃음)

셋 리스트를 꾸릴 때 내가 하고 싶은 곡과 대중이 원하는 곡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나요?
결국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할래?’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둘 다 잘하고 싶어요. 페스티벌 같은 경우 제 음악을 찾아준 거니까 하고 싶은 걸 해요. 대신 그게 대중에게 잘 가닿길 바라면서.

얼마 전 부모님이 계신 우간다에 다녀왔죠. 그곳에서의 시간은 어땠어요?
계속 있고 싶었어요. 일단 자연 그 자체로 너무 좋아요. 어릴 때 파푸아뉴기니에 잠시 살았는데, 해발 1500m에 위치한 곳이었어요. 우간다는 2000m죠. 고지대 열대지방은 해발이 높아 공기가 선선하고 습하지 않아요. 땅이 비옥해서 과일도 정말 맛있죠. 물론 인터넷이 잘 안 터지고, 가끔 전기가 끊기는 단점이 있지만.(웃음) 부모님이 계시니 안정적이고 마음의 여유도 있었어요.

톱과 팬츠 모두 Zegna,
체인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핀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 모두 Stussy,
화이트 티셔츠 Our Legacy.
사파리 재킷과 셔츠, 팬츠 모두 Lemaire.

음악 말고는 다른 게 딱히 없었어요.
제겐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선택이라 생각하고요.
그게 곧 운명인 거죠.

우간다에 현수막은 안 달렸던가요? ‘<싱어게인3> 우승 홍이삭’ 같은.
현수막은 안 달렸지만, 거의 우간다 투어를 했죠.(웃음) 아버지가 계신 곳이 ‘쿠미’ 라는 지역인데, 주변 150km 안에 있는 한국인은 거의 다 모인 것 같아요. 그래봐야 40명 정도지만. 아버지가 선교사라 선교 단체부터 기아대 책 본부, 굿네이버스 등 협업하는 분들이 오셨죠. 명절처럼 재밌는 분위기였어요. 계속 사인하고, 아버지가 시키면 노래하고.(웃음) 이색적인 풍경이었어요.

현수막만 안 달렸지, 거의 잔치였네요. 요즘은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하나요?
사실 비슷해요. 초반에 음악을 할 때 홍대에서 공연을 몇 번 해봤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때 시장도 이미 죽어있었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음악이 알려질 수 있을까’ 나름 대의를 가지고 이것저것 해봤지만 돌아보니 아차 싶더군요. ‘내가 돈을 어떻게 벌고 사람을 어떻게 모을지만 고민하고 있었구나’ 하는. 지금 음악 신에서 계속 하고 있는 분들은 그런 것보다 자기 음악을 그냥 꾸준히 했더라고요. 내 스스로 어떻게 생존할까 아등바등한 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그걸 언제쯤 깨달았어요?
되게 오래 걸렸어요. <싱 어게인3> 나가기 직전이에요. 그 시점에 지금 회사를 만났고. 그래서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더 드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일을 벌리고 있어요. 친구들과 3년째 글을 쓰고 있는데, 마치 아이돌의 세계관처럼 인디 뮤지션의 서사를 만들어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 중이에요. 사람들에게 끌리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생기면 좀 더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나중에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건가요?
하다 보니 목표는 복합 예술이 됐어요. 다큐로 아티스트의 생존 이야기를 하고, 그 결과 앨범과 책까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구체적인 계획은 있어요. 스토리 마감일이나 다큐 공개 시기 등에 대해 이야기는 했지만, 얼마나 정확하게 지켜질지는 모르겠어요.(웃음)

구체적 계획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죠. 어떻게 음악을 해야 할지 깨달은 게 최근이라고 했는데, 지난해 진수영 재즈 피아니스트와 함께 낸 앨범즈음일까요?
맞아요. 그때가 계기이기도 했어요. 수영 님이랑 대화를 하면서 처음엔 대중적인 걸 해볼까 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오히려 계속 이야기하고 곡을 쓰다 보니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사적인 감정과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게 됐어요. 수록곡의 가사를 쓰면서 ‘내가 이걸 했어야 했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대중적인 것도 몇 곡 만들었지만, 데모로만 남아있죠.

개인적으로 앨범에서 진솔함을 느꼈고, ‘a bird’라는 곡에서 위안도 많이 얻었어요. ‘a bird’는 종교적인 색을 지닌 곡인데도 ‘아티스트의 깊은 내면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예술성이 극대화된 곡 같다’는 등 대중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저는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교까지 모두 기독교 학교에 다녔어요. 종교를 떠나 삶 자체가 기독교 문화와 밀접한데, 일부러 그걸 멀리 두고 있었죠. 그 안에서만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걸 부정하니까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없는 거예요. 이 존재가 나한테 너무 크니까 구멍도 그만큼 컸던 거죠. 그래서 그냥 다 가져가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담아 적나라하게 썼어요. 한편으로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되나 걱정했지만, 좋아해주는 분이 많아 저도 신기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리스너들도 느꼈나 봐요. 경연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I love you’나 <도시남녀의 사랑 법> OST ‘Kiss me kiss me’를 들으면 마치 가수 크리스토퍼가 떠오를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요. 그만큼 소화할 수 있는 음악 폭이 넓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음악 스타일은 패션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무채색 옷을 주로 입는 사람이 화려한 옷을 잘 안 입는 것처럼, 내가 부를 수 있는 음악은 생각보다 광범위하지만 늘 하던 것만 해서 몰랐던 거죠. ‘I love you’를 들을때도 마냥 어렵게 느껴졌는데, 부르니까 또 불러지는 거예요. ‘나에게 이런 곡을 부를 수 있는 능력치도 있구나’ 했죠. 어떤 음악이 맞는지는 옷 입는 것처럼 시간과 전환점이 필요해요. 선호하는 것과 살짝 거리는 있더라도 몸을 던져보는 거죠.

다양한 스타일의 아티스트 홍이삭을 기대할게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어릴 적 교회에서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고, 음악을 안 할 이유를 못 찾아 이 길을 걷게 됐죠. 운명 같은 음악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질문이 결국 대답이 되는 것 같아요. 음악 말고는 다른 게 딱히 없었어요. 제겐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선택이라 생각하고요. 그게 곧 운명인 거죠.(웃음)

니트 베스트와 울 팬츠 모두 Jil Sander,
이너 셔츠 Lemaire.
에디터 김지수 사진 주용균 헤어 경민정 메이크업 김부성 스타일링 박태일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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