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후 셰프의 여름 미감
‘페스타 바이 충후’에서 펼쳐지는 이충후 셰프의 여름 미감.

이충후 셰프가 국내 파인다이닝 신에 등장한 건 2013년이다. 네오 비스트로라고 명명한 그의 레스토랑 ‘제로컴플렉스’는 당시 꽤 혁신적이었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마감한 실험실 같은 공간, 널찍하게 배치한 테이블, 허브와 꽃이 흐드러진 접시까지 모든 것이 전무후무했고, 대담했다. 2016년 서른 살에 국내 최연소 미쉐린 스타 셰프가 된 것도 그러한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셸 로스탱과 르 샤토브리앙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프렌치 퀴진의 정신을 존중하면서도 끊임없이 탈피하고 새로움을 좇는 셰프다. 요즘 그가 푹 빠져 있는 곳은 호텔 주방. 미쉐린 3스타 셰프 강민구의 바통을 이어받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페스타’를 총괄하고 있다. 이곳에서 선보이는 요리는 ‘이노베이티브 센스 다이닝’이다. 혁신적 요리라기보다는 익숙한 재료와 요리를 재해석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호텔에서 기대하는 요리나 익숙한 맛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요. 생선의 익힘 정도, 고기의 질감, 플레이팅에 변주를 주는 거죠. 예를 들어 아주 부드럽게 익힌 대구에 생선 뼈 육수를 크리미하게 만든 필필 소스를 곁들이는 식이에요. 생선의 익힘 정도를 보고 접시를 물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있었어요.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스타터로 서브하는 갑오징어 요리도 마찬가지다. 메밀로 만든 칩에 살짝 익힌 갑오징어와 허브 마요네즈를 올린 다음 허브와 꽃을 빙 둘러 내는데, 여느 호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담음새다. 이 디시에는 메인 재료가 따로 없다. 누군가에게는 야들야들한 갑오징어가, 누군가에게는 단맛·신맛·짠맛 등 오미(五味)로 꽉 찬 허브와 꽃이 주인공일 수 있다. 이 외에도 셰프의 스타일이 곳곳에 배어 있다. 벽에 걸린 그림, 테이블과 의자 모두 미니멀한 스타일로 새 단장을 마쳤고, 그릇 하나도 페스타 바이 충후의 시그너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같은 디자인 제품만 사용한다. 그가 선택한 그릇은 프랑스 리모주 지방의 도자 브랜드 제이엘 코크(JL Cquet). 야닉 알레노, 알랭 뒤카스, 세계적 셰프와 협업해온 이 브랜드는 페스타 바이 충후의 테이블 위에서도 미장센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녹음이 짙은 여름은 그의 요리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오감을 깨워보길.
Inspired
늘 재미를 좇는 이충후 셰프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레스토랑은 어디일까.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은 지난 4월 빈호에서 팝업 다이닝을 연 오사다. 그는 코스 스타터로 샤르퀴트리를 내는 과감한 시도와 정갈한 플레이팅에 감탄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은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라 메종 트루아그로. 미감을 중시하는 그에게 이곳 요리는 예술 작품과도 진배없다.

LA MAISON TROISGROS
미쉐린 3스타를 최장 기간 지켜낸 레스토랑으로, 1968년 별 3개를 획득한 이후 단 한 번도 별을 잃은 적이 없다. 무려 57년이다. 여기에 1930년부터 이어온 가족 경영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이 그 별을 더욱 값지게 만든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동시대를 이끄는 선구자라는 뜻이다. “진화야말로 라 메종 트루아그로의 전통입니다.” 트루아그로의 3세대 셰프 미셸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철학은 이제 두 아들이 계승하고 있다. 총괄 셰프를 맡고 있는 세자르와 둘째 아들 레오다.
트루아그로 부자는 2017년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면서 또 한 번 변화를 꾀했다. 프랑스 시골 마을 로안에서 약 8km 떨어진 우슈로 이전하면서 상호를 ‘르 부아 상푀유(Le Bois sansFeuilles)’로 변경했다. 이 새로운 이름은 ‘잎이 없는 숲’을 의미하는데, 레스토랑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19세기 농가를 개조한 건물은 미셸의 오랜 친구이자 건축가인 패트릭 부솅이 설계했다. 수령 100년 된 참나무를 중심으로 식사 공간을 배치했고, 다이닝 공간 벽면을 유리로 마감해 계절의 변화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레스토랑 주변 대지에 과수원, 벌통, 농장, 목초지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자연과의 공존, 레스토랑이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면서도 고집하는 부분이다. 그 신념은 요리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단순함, 맛의 순도, 그리고 적당한 산미는 여전히 트루아그로 요리의 축이다. 그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리가 바로 사몽 아 로젤(수영초 연어)이다. 1962년 여름, 장 바티스트 트루아그로의 아들 피에르가 정원에 넘쳐나는 수영초를 보고 개발한 요리다. 얇게 저민 연어 필레, 샬럿·화이트 와인·베르무트·버터를 졸여 만든 소스, 그리고 수영초. 이 단순한 조합은 프랑스 미식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당시 프렌치 요리는 녹진한 소스와 장시간 조리가 주를 이루었는데, 피에르가 선보인 간결하고 산뜻한 연어 요리는 가히 혁신이었다. 1968년 <고 앤 미요> 가이드는 트루아그로를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평가했고, 같은 해 앙리 고와 크리스티앙 미요는 사몽 아 로젤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로 ‘누벨 퀴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본질에 집중한 누벨 퀴진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스타일로, 많은 요리사의 지침서가 되어주고 있다.
Add 728 Route de Villerest, 42155 Ouches, France
OSA
스페인 다이닝 신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오사. 스페인 대표 레스토랑 무가리츠에서 경험을 쌓은 호르헤 무뇨스와 사라 페랄이 2023년에 시작한 곳으로, 오픈 1년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따냈다. 만사나레스 강변에 정원이 딸린 2층 주택을 개조해 1층은 다이닝 공간으로, 2층은 와인 셀러로 사용하고 있다. 주방 한편에는 사냥한 짐승과 육가공품으로 가득한 숙성실이 있다. 정육과 훈연, 염장, 건조, 숙성 등 모든 샤르퀴트리 공정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오사의 철학을 응축한 공간이다. 샤르퀴트리는 오사에서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메뉴다. 멧돼지 머리를 돼지 볼살로 감싸고, 머릿속을 혀·볼살·껍데기 등으로 채워 약 40시간 조리한 뒤 2개월간 숙성한 갤런틴, 흑수탉의 목을 다릿살과 지방으로 채워 염장하고 자연 건조와 숙성을 거친 음식 등 다양한 종류를 서브한다. 이 외에도 베돈강에서 잡은 송어를 사과나무로 훈연해 송어알과 함께 제공하는 ‘트루차 베돈 만사노’, 포르투갈 포즈 지역에서 잡은 야생 장어를 숙성한 후 바삭하게 구워 데미글라스 소스와 함께 내는 ‘앙기야-아나고’처럼 대부분 코스가 훈연과 숙성을 거친다. 장시간 공들인 요리는 그릇에 담길 때 비로소 완성되는데, 담음새가 정갈하고 단정하다. 이는 오사가 추구하는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Add C. de la Ribera del Manzanares, 123, Moncloa – Aravaca, 28008 Madrid, S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