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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 TALK with SLOM

비트메이커 슬롬이 고른 세 잔의 술. 그리고 세 가지 이야기.

1st SHOT
진토닉과 비트메이커

일반화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음악 마니아는 술을 좋아한다’는 공식이 있는데, 슬롬은 어떤가?

음악을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 중 의외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많더라. 레이블 식구 가운데 술을 즐기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 술친구는 따로 있고, 혼술도 즐긴다.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술 취향은 어떤가?

막걸리 빼고는 가리지 않고 마시는 편이다. 막걸리는 다음 날 숙취가 심해 잘 마시지 않는다. 첫 술로 진토닉을 고른 이유는? 처음 가는 바에서는 꼭 진토닉을 주문한다. 진토닉을 마셔보면 그곳에서 칵테일을 시켜도 될지, 그냥 위스키만 마셔야 할지 판단이 서기 때문이다. 사실 ‘232’의 진토닉이 기준이다. 단것보다 드라이한 술을
선호해 토닉워터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진토닉은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인터뷰 장소인 232의 단골이라고 들었다. 이곳에서 종종 디제잉도 하는 걸로 아는데, 요즘도 하나?

이번 주에도 음악을 튼다. 디제잉을 시작하고 제대로 음악을 튼 게 몇 번 안 됐을 때인 2017년부터 이곳에서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한동안 디제잉을 못했는데, 올해는 편하게 오가며 자주 해볼 생각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 비트메이커, 프로듀서, DJ라고 말한다. 음악적 커리어의 시작은 뭐였나?

비트메이커로 가장 먼저 음악에 입문했고, 지금도 전업은 비트메이커다. DJ로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프로듀싱은 사실 Mnet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본격적으로 했을 뿐이다. 내 앨범을 작업하지 않는 이상 의뢰받았을 때만 프로듀싱을 하고, 본업은 비트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비트메이킹에 꽂힌 계기가 있었나?

랩 녹음도 해봤는데, 적성에 맞지 않는 데다 내 목소리를 듣는 게 민망하더라. 평소 음악을 들을 때 가사보다는 멜로디나 사운드에 먼저 반응하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과 비슷한 소리를 내고 싶어 연습 삼아 계속 비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외주로 아티스트와 작업하게 됐고, 그걸로 수익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본업으로 이어진 것 같다.

미국 UCLA에서 학부 생활을 하면서 국내 아티스트와 함께한 다양한 작업물을 내놓았다. 박재범의 ‘Seattle 2 Seoul’, 자이언티의 ‘Complex (feat. G-DRAGON)’, ‘눈(feat. 이문세)’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 곡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는데, 어떤 인연으로 함께 작업하게 됐나.

학부 생활을 하면서 비트를 만들 때 옆 학교에 다니던 DJ 돕쉬(Dopsh) 형의 소개로 릴 보이 형이나 DJ 어글리덕 형을 알게 됐다. 어글리덕 형이 재범이형에게 내가 만든 비트를 추천해 함께 작업하게 됐고, 그렇게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면서 자이언티 형과도 인연이 닿았다. 군대를 전역한 뒤 자이언티 형을 만났는데, 성격이 잘 맞아서 계속 작업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친분을 쌓았다.

고등학생 때 어머니에게 미디 키보드를 선물받을 정도면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건데,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할 생각은 없었나?

입시를 치를 정도로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그 속에서 경쟁할 자신도 없었다. 관심이 있어도 대입은 또 다르지 않나. 대학 성적도 잘 나온 편이라 안정적인 길을 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잘한 결정인가?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를 전공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학을 전공한 게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회 속 개인의 삶과 행동에 대한 걸 공부하는데, 그걸 바탕으로 스스로 심리학적 진단을 내리곤 한다.(웃음)

지난해 자이언티가 새롭게 론칭한 레이블 ‘스탠다드 프렌즈’에 영입됐다. 종종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자이언티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케미가 잘 맞는 것 같다.

MBTI가 INFJ인데, ENTP와 잘 맞는 편이다. 자이언티 형이 ENTP다. 형은 내가 뭔가를 고민하고 있으면 “해!” 하며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난 계획적인 성격이라 일이 틀어질까 봐 웬만한 일은 시도하지 않는데, 해솔이 형
은 “실패해도 괜찮으니 해” 하며 힘을 실어준다.

두 사람은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음악 이야기만 하나?

어제도 함께 있다가 새벽 5시쯤 헤어졌는데, 오늘 이 질문이 가장 걱정된다고 이야기했다. 둘이 함께 있으면 진짜 실없는 이야기만 한다. 서로 말꼬투리 잡는 식의 아재 개그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첫 정규 앨범 <Weather Report>를 발매했다. 자이언티, 크러쉬, 빈지노 등 피처링진이 화려한 트랙 사이에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빛과 소금의 곡을 앨범에 포함시킨 이유가 있나?

빛과 소금의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발라드를 만들거나 재해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는 가사가 초월적인 데다 사랑 노래 같기도, 이별 노래 같기도 하다. 그런 양가적 감정이 이번 앨범 분위기와 잘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Weather Report>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겪은 경험과 감정, 내가 지나온 날씨를 엮은 앨범이라 다양한 감정선이 녹아 있다.

이번 앨범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 & 소울 앨범’과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노래’ 두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앨범이 품절되는 등 첫 정규 앨범을 내자마자 큰 성과를 얻었는데, 소감이 어떤가?

사실 앨범을 낸 뒤 축하를 받고도 기뻐하거나 감사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다음 주까지 <쇼미더머니> 음원을 만들어야 해서 머릿속이 꽉 찬 상태라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큰 시상식 후보에 오른 건 매우 감사한 일이고, 음악인으로서 인정받은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또 내가 만드는 음악의 방향에 조금 더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회전목마’ 등 히트곡을 탄생시킨 <쇼미더머니>는 음악적 커리어에서 중요한 역할도 했지만, 힙합 프로듀서로 각인되어 뮤지션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내 음악의 스펙트럼을 쌓기 전 힙합 프로듀서로 알려진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평을 받은 것 자체가 큰 수확이었다. 거기에 의의를 둔다.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줄 기회는 아직 많으니. K-팝에도 관심 이 있고, 사운드트랙 작업도 해보고 싶다.

2nd SHOT
헤네시 하이볼과 취향

최근에 마신 헤네시 하이 볼이 맛있어서
그때 기분을 되살리려고 한 잔씩 시켜 마시고 있다.

하이볼 베이스로 헤네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 산토리 가쿠 하이볼을 즐겨 마신다. 최근에 마신 헤네시 하이볼이 맛있어서 그때 기분을 되살리려고 한 잔씩 시켜 마시고 있다. 하이볼에 진저에일이나 토닉워터를 섞는 곳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탄산수를 탄 하이볼을 좋아한다.

헤네시 하이볼은 어디에서 처음 접했나?

최근 하이볼을 전문으로 파는 곳에 들른 적이 있다. 브랜디를 편하게 마시기 위해 탄산수를 섞어 먹던 게 하이볼의 시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본 마케팅’에 약한 편이라 원조라고 하면 일단 경험해보는 성향이다.
*위스키 하이볼이 대중적이지만, 하이볼에 대한 최초의 기록에는 브랜디도 언급돼 있다. 1895년 크리스 라울러(Chris Lawlor)가 작성한 <더 믹시콜로지스트(The Mixicologist)>에 따르면, 하이볼은 얼음과 탄산수를 채운 잔에 1.5oz의 브랜디나 위스키를 섞는 것이라고 한다.

스포티파이에 공유하는 플레이리스트에서도 그 성향이 드러나더라. 1960~1970년대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장르마다 뿌리를 찾아 듣는 것 같더라.

뭔가를 접하게 되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파고드는 편이다.

최근엔 유튜브에도 ‘한시간 걷기 플레이리스트’를 올리던데 콘텐츠 아이디어가 흥미롭더라.

최근 자이언티 형의 유튜브 채널 ‘솔의눈’에 나갔을 때 형이 “유튜브를 하면 어떤 콘텐츠를 올리고 싶냐”고 묻더라. 그래서 한 시간 동안 걷는 영상을 만들면 잘할 것 같다고 했다. 걷는 김에 노래도 같이 녹이면 좋을 것 같아 ‘한시간 걷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한 시간 가량 걷는 영상에 믹스셋처럼 좋아하는 음악을 삽입해 제작한 거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롤러코스터의 ‘가만히 두세요’를 보고 반가웠다. 그 앨범이 발매됐을 때는 슬롬이 여덟 살 아니었나.

롤러코스터의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아버지가 구워놓은 CD를 듣다가 롤러코스터를 알게 됐다. 롤러코스터와 김진표의 노래가 섞인 CD였다. 한국 음악만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을 따로 만들어두셨는데, 그걸 CD플레이어로 자주 들었다.

클래지콰이, 토와테이 등 일렉트로닉이나 하우스 스타일이 한창 인기일 때 구운 CD인가 보다.

그 부류의 음악이 내 음악의 기반인 것 같기는 하다. 테크노를 기반으로 한 대중가요라든지, 애시드 재즈와 시부야케이에서 영향을 받은 음악을 좋아한다.

아버지에게 음악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버지 덕분에 스포티파이가 나오기 전 스포티파이를 접한 느낌이다. 팝부터 클래식까지 장르별로 LP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걸 하나씩 찾아듣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자산이 되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음악은?

베스트로 꼽는 앨범이 여러 개 있는데, 가장 최근에 자극을 받은 앨범은 도날드 페이건의 ‘The Nightfly’라는
곡이다. 예민해 보일 만큼 칼로 깎은 듯한 소리와 사운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확실히 비트메이커라 음악을 들을 때 사운드에 집중하나 보다.

스피커를 테스트할 때나 휴대폰을 테스트할 때 들으면 좋은 곡을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는데, 대체로 그런 음악이 내 귀에도 듣기 좋더라. 고해상도 음악에 적응하는 데 시
간을 쏟아부은 때도 있었다.

영향을 받은 음악인 중 직접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시간을 거슬러 브라질을 갈 수만 있다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만나보고 싶다.

보사노바도 좋아하나 보다.

아버지가 라틴 장르를 매우 좋아하신다. 언젠가 브라질로 가족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가
족 모두 안전을 선호하는 편이라 아직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웃음)

3rd SHOT
오반 14년과 30대 김민우

오반은 피트 향이 느껴지면서도
달짝지근한 맛도 있다. 그 밸런스가 좋다

마지막 잔으로 위스키를 시켰다.

보통 바에 가면 칵테일로 시작해 위스키로 마무리하는 편이다.

오반을 처음 접한 건 언제인가?

20대 중반부터위스키를 마셨는데, 바에서 추천 받아 마시기도 한다. 오반도 추천을 통해 알게 됐다.

오반이 마음에 든 걸 보면 피트 향을 꺼리진 않나 보다.

피트 향을 좋아한다. 라프로익이나 아드벡처럼 아일레이 위스키를 즐기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소독약 같다고 꺼리는데, 그게 오히려 난 (술을 마시면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더라.(웃음) 오반은 피트 향이 느껴지면서도 달짝지근한 맛도 있다. 그 밸런스가 좋다.

슬롬과 닮은 술 같다. 누구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달콤함과 취향 확실한 사람들이 즐기는 피트 향을 두루 갖춘 느낌이랄까.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나.

걱정이 많은 사람.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남에게 해 끼칠까 봐 속으로 억누르는 편이다. 음악을 할 때도, 어떤 행동을 할 때도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데, 그래도 실수는 많이 하더라. 잡생각이 많다.

어릴 때 상상했던 30대 김민우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나?

생각보다는 참 자연스럽게 원하던 것들을 이루었다. 아직도 이루어야 할 것이 많다.

생각했던 모습은 뭐였나?

원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 그건 어느 정도 이루고 있는데, 계속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음악적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

상업적이진 않더라도 복합적이고 가치 있으면서 대중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 위치적 목표를 좇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AI가 음악인을 대체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AI가 인간의 예술성을 대체한다고 해도 어쨌든 사람이 만들어놓은 데이터 안에서 움직이지 않나. 아직 인간의 몫이 남아 있을 때 더 열심히 음악을 만들고 싶다. 내 음악이 ‘2020년대 사람들에게 감흥을 준 음악’으로 AI 데이터에 쌓이면 좋겠다.

마흔 살이 되기 전, 30대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반려자 찾기. 마흔 살 전에는 찾으면 좋겠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주위에 자기 일을 잘하면서도 연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더라. 지금 삶에 만족하지만, 또 다른
가치를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디터 이도연 사진 송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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