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예술가
길을 걷다 마주친 네 명의 예술가.
찍어야 하는 사람, 초즌원
사진엔 삶과 추억이 담긴다.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초즌원은 카메라를 들었다. ‘초즌원’은 예전부터 춤
을 춰온 그의 댄서 네임. 춤과 사진의 만남이라, 그야말로 서브컬처와 뗄 수 없는 관계다. 그가 세 번째 사
진집을 냈다. 흑백사진 속 사람과 동물, 배경 모두 우리 삶과 함께 초즌원이 어떻게 사진가가 되어가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거리에 보이는 것, (클럽을 비롯해 함량 높은 언더그라운드의 베뉴에서) 친구들과 어울
려 노는 순간을 주로 찍고요. 요즘엔 사람을 주로 찍어요. 예전에는 독특한 것만 일부러 찾아 다니면서 찍는게 멋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자연스러움을 따라가고 있죠.” 최근 사진 전시를 연 그는 8년 동안 찍은 사진을 고르면서 자신의 촬영 스타일을 돌아봤다. 사진에서 발견한 자신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예술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제 자랑 같아요. 내가 하는 게 이만큼 멋지고, 다른 사람도 멋있는 걸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사진을 찍는 대상은 다양하고, 작가에 따라 원하는 피사체가 다르기 마련이다. 초즌원은 사람에게 중심을 둔 사진을 찍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풍경에도 사람이 있어야 해요. 사람을 접사해 찍는 것도 더 많이 하고 싶죠.” 사진집을 내고, 전시를 하면서 갖고 있던 사진이 많이 소진됐다. 그만큼 새로운 사진을 찍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는 거리로 나설 때 언제나 카메라를 챙기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 치밀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있어요. ‘나’ 를 내려놓고 집중하면 된다는 것.”
그려야 하는 사람, 우매진
망원동 메인 거리엔 수상한 곳이 있다. 정비가 한창인 것을 보면 ‘화성 자동차 공업사’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데, 한쪽에 형형색색의 그림이 걸려 있다. 입구에는 ‘우매진 데뷔전 개인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업사에서 열리는 전시라. 예측을 벗어난 시도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예술은 예상을 뛰어넘으며 이미 알던 것도 새롭게 보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녔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압도적인 그림이 곳곳에 걸려 있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 자유로운 그림체와 추상적이면서도 분명한 색채로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 열 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매진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 어떤 작가라고 표현하기 힘든 게, 네다섯 살 아이가 벽에 낙서하는 걸 보며 작가로서 어떤 의도가 담긴 건지 궁금하지 않듯이 저도 그런 그림을 그려요.”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과장된 크기의 성기와 신체 등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 이유를 찾지 않는
다. 생각과 표현 사이에 어떤 ‘고민’이 없다. 다만 그릴 뿐이다. 그나저나 자동차 정비소에서 전시를 연 이유가 뭘까? “망원동에 자주 왔었는데, 이 근처에서 존 우드 팍(John Wood Park) 작가의 전시를 봤어요. 그러
다 저도 불쑥 이 동네에서 전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전시를 열 만큼 마땅한 공간을 찾기 어렵더라고요. 그렇게 돌아서는데 이곳 화성 자동차 공업사가 보였고, 홀리기라도 한 듯 들어왔어요. 여기서 전시를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사장님께 부탁했어요. 공업사 한쪽에서 목공 작업을 하고, 부리나케 보름 남짓한 시간동안 열 점을 완성했어요. 전시명은 제가 평소 여자들을 자주 그리니까, 쉽게 ‘화성 자동차 공업사의 여인들’이라 지었고요.” 우매진은 이번 전시를 여는 데 임근준 미술평론가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전시 팸플릿의 QR코드에는 이번 우매진의 데뷔전에 마음이 동한 뮤지션 한오월이 각기 다른 장르의 곡을 만들어 힘을 보탰다. “이제 데뷔를 했으니 작가가 된 거잖아요. 그림은 언제나처럼 그릴 건데,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이보다 더 멋진 걸 보여줄 수 있거든요.” 우매진 작가는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
한 손에 펜을 쥐고, 종이에 선을 그리며.
‘티’ 나야 하는 사람, 김도영
한 가지에 집중해 오랜 시간 공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그것으로 많은 사람 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건 더더욱 어렵다. 9년째 티셔츠 작업을 하고 있는 김도영 은 티셔츠에 자신의 열정을 담아내며 주목받았다. ‘랩티’, 래퍼 이미지가 들어간 티 셔츠. 힙합 문화를 옷에 접목하고, 사회의 다양한 인물을 주제로 팬 아트 형식의 티 셔츠를 만들었다.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 작품인 것이다. 김도영의 티셔츠는 무라카미 다카시, 웻보이 등 많은 사람과의 협업으로 이어졌다. “제가 만든 티셔츠를 잘 포장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제가 좋 아하는 걸 만들어 예술적으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크죠.” 새로운 것을 만들 때 어 디에서 영감을 얻을까. “요즘은 브랜드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아이스크림・자동 차・페인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연락이 많이 오는데, 티셔츠를 파는 게 아니라 이 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거예요.” 랩티는 시작에 불과했다. 주제 에는 한계가 없고, 김도영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소개란에는 ‘티셔츠보다 과일 장사가 더 잘 돼요’라고 쓰여 있다. 다마스를 끌고 ‘김씨네 과일’ 을 오픈해 과일 티셔츠로 플리마켓, 전국 출장 판매, 홈쇼핑, 백화점 행사 등을 하는 그는 최근 KBS2 프로그램 <요즘 것들이 수상해>에 출연하며 티셔츠를 세상에 알 리고 있다. 이쯤에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 왜 티셔츠일까. “제가 관심 받는 건 좋아 하는데, 나서는 건 싫어해요. 제게 티셔츠는 ‘나’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수단입니다. 티셔츠에 그림이나 메시지 등 무엇을 담아도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한 번씩 보니까 요.” 현재 ‘김씨네 과일’이 잘돼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김도영은 더 큰 꿈을 꾸고 있 다. “여러 곳과의 협업도 감사한 일이지만, 일단 매장을 내는 것이 큰 목표예요. ‘김 씨네’ 네트워크 사업도 확장하고 싶고요. 진짜 과일 가게라면 어떻게 성장했을지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현실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요.”
전통을 받든 사람, 조대
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 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 ‘그라피티’는 누군가에 겐 낙서일 수 있지만, 조대 작가에겐 예술이자 재미이 며 삶의 전환점이 됐다. “충남 서천 시골 마을에서 자 랐어요. 당시 흑인 힙합 문화를 접했는데, 친구가 김수 용 작가의 만화 <힙합>을 보고 그라피티라는 걸 알려 줬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저도 따라서 시작하 게 됐죠. 처음엔 벽에 투박한 모양의 글자들이 나타나 는 게 재미있어 보였어요.” 서울로 상경한 그는 유능하 고 멋진 친구들을 만나 서울 곳곳을 누비며 그라피티 를 그렸다. 서울은 조대가 꿈을 펼치기에 최적의 장소 였다. 서브컬처에 매료돼 근사하고 창의적인 친구들 과 어울리며 서브컬처 신(scene)에서 자신만의 영역 을 구축했다. “20년 동안 그라피티를 하다 보니 고민 이 생겼어요. 그라피티는 물론 현대미술, 예술의 범위 가 점점 커졌거든요. 또 대중의 입맛을 맞출 것인지, 작가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할 건지도 말이죠. 대 중 미술도 그들의 영역이 있는 건 당연해요. 다만 저는 제 길을 가려고 해요. 저 같은 형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후배, 동생들에게 보여주면 이 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까요?” 그런 그가 요즘 꽂힌 게 있다. 바로 ‘전통문화’ 다.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조대의 그라피티 작품을 보 고 있으면 조선시대 어의(御衣), 산수화, 용 문양이 있 는 예술을 보는 듯하다. 직선과 각이 주를 이루는 선이 많고, 단청의 모양에서 나온 돌귀 모양 선도 발견할 수 있다. “박물관에 자주 가는데, 전통문화 관련 유물을 보면 흥미로워요.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과정이 고스 란히 담겨 있죠. 거기서 영감을 받아 전통문화 유물 느 낌의 패턴으로 그라피티 작품을 만들게 됐어요. 전통 문화기능사 자격증을 내년에 취득하는 게 목표예요. 기존 작업을 확장할 수 있고 지금 그리는 그림도 전통 발전의 단계인데, 그 전통 또한 이어가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