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서다. 지금 여기, 김필.
FEEL, HERE

10월 29일 정규 2집 <Journey> 발매를 앞두고 있어요. 지금 막바지 작업 중인가요? 촬영도 하고, 음원 마무리 작업도 확인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3년 전 EP <LIFE>를 발표하긴 했지만, 정규 앨범은 7년 만이에요.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궁금하네요. 음악 활동은 계속했지만, 정규 앨범을 내지 않아 공백이 길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사이 코로나19 팬데믹도 있었고, 음악이 소비되는 방식도 계속 바뀌었으니까요. 영화를 비롯해 문화 예술 산업 전반이 어려워졌고요.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젖을 만한 여유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선뜻 앨범을 내기가 어렵더라고요. 사실 EP를 낼 때도 정규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7년 동안 쌓아둔 곡도 상당할 것 같은데요. 늘 습작을 해둬요. 하고 싶은 이야기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틈틈이 기록하죠. 이번 앨범은 예전에 써둔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더라도 곡 자체는 대부분 새로 만들었어요. 이전에 만들어둔 곡은 두 곡이고, 나머지 일곱 곡은 올해 새로 만들었습니다.
음악적으로 시도하고 싶은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대중에게 알려진 곡이 주로 발라드나 포크 장르라 저를 발라드 가수로 생각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이번 앨범은 리듬감이 두드러지는 곡이 절반 이상이고, 밴드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곡도 많아요. 페스티벌이나 콘서트에서 제 무대를 보신 팬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요.

공연하는 2시간 반이 가장 저다운 순간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제 모습이기도 하고요.
선공개곡만 들을 때는 그런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어요. 나름의 작전이었어요.(웃음) 익숙한 음악, 말하자면 ‘아는 맛’을 먼저 공개한 거죠. 타이틀곡 ‘Life Is Life’는 록에 가까워요. 컨트리와 블루스 느낌도 있고요. 하고 싶은 사운드를 마음껏 담았습니다.
오랜만의 앨범인 만큼, 신곡을 무대에서 선보일 순간도 기다려질 것 같아요. 맞아요. 공연을 마쳐야 비로소 완성된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앨범은 11월 콘서트를 염두에 두고 작업 했거든요. 곡을 만들 때면 무대에서 어떻게 들릴지 상상하는 편이에요. 머릿속에 그렸던 코러스와 연주가 실제 무대에서 그대로 펼쳐질 때면 음악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가마다 음악 활동의 중심을 두는 곳이 다르잖아요. 이를테면, 장르는 다르지만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나 스틸리 댄처럼 스튜디오 작업에 몰두한 음악가도 있고. 김필 씨는 꾸준히 공연해왔지만, 왠지 무대보다는 녹음실이나 혼자 음악을 만드는 공간에서 더 편안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공연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요. 의외죠? 무대에서 가장 자연스러워지거든요.

그럼, 가장 김필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무대인가요? 그렇죠. 무대에 오르면 온갖 생각을 멈추고 오롯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스무 살부터 음악을 시작했으니 벌써 21년째 노래하고 있네요. 이제는 무대에 서는 일이 한결 자연스러워졌어요. 아는 것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배울 것도 많고요. 공연하는 2시간 반이 가장 저다운 순간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제 모습이기도 하고요.
무대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어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머릿속에 그리던 사운드와 실제 무대에서 마주하는 관객의 반응이 하나로 맞아떨어질 때죠. 객석을 바라보고 관객들의 함성을 듣다 보면 ‘내가 생각한 게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확신이 들어요.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하고요. 음악은 손으로 붙잡거나 눈으로 볼 수 없잖아요. 결국 느끼는 대로 판단해야 하니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아요.
관객 입장에서도 그런 짜릿함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럼요. 아까 촬영할 때 사용한 기타 보셨죠? 1년 전쯤 그 기타를 사러 갈 겸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봤어요. 그전까지 라이브를 직접 본 적이 없었거든요. 공연을 보다가 울었어요. 사실 울 만한 곡도 아니었는데.(웃음)
무슨 곡이었어요? ‘I Shot the Sheriff’였어요. 연주자들이 각자 솔로 연주를 하다 함께 사운드를 고조시키는 부분이 있거든요. 여기에 코러스까지 더해지면서 소리가 층층이 쌓이는데, 그 합이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라이브 영상으로 수없이 본 장면인데도 현장에서 들으니 다르더군요. 모든 소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마치 음원을 듣는 것처럼 착착 맞아떨어지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최근 몇 년간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크게 감동한 순간 중 하나였어요.
그런 공연을 보고 나면 큰 자극이 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래, 음악은 저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 잊고 있었죠. 앨범 이야기를 더 해볼게요. 아홉 곡을 관통하는 주제가 ‘여정’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여정을 담았나요? 우린 늘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잖아요.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 마음도 바뀌죠. 어떤 상황을 처음 마주할 때와 시간이 흐른 뒤돌아볼 때의 생각도 다르고요. 시간과 감정, 계절, 삶처럼 끊임없이 흐르며 변화하는 것에 관한 앨범이에요.

앨범이 하나의 여정이라면, 지금의 김필 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은 무엇일까요? 두 번째 선공개곡 ‘Circle’이 아닐까 싶네요.
이유는요?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예요. 처음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때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분명 다를 거라고 믿었어요. 모든 걸 수직이나 수평으로만 바라봤죠. 올라가야 할 곳, 도달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삶이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런데 지난 7년간 개인적으로 많은 일을 겪었고, 어느덧 데뷔 15년 차가 됐어요. 오랫동안 가수로 지내면서 기대와 현실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간극도 있었죠. 예전의 저는 날이 서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 뭉툭해진 것 같아요. 물론 플레이어이자 프런트맨으로서 해야 할 일에는 여전히 예민하지만요. 아직은 모든 걸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이제는 삶의 모든 것이 과정에 있고, 원을 그리며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과거 김필이 그린 ‘도달해야 할 지점’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10년 전에는 지금쯤 연차에 걸맞은 성취를 이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더 대단한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죠.(웃음) 그런데 지나고 보니 기대와는 다르더라고요. 그러면서 생각도 달라졌어요. 음악을 만드는 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한 일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그 가치를 낮춰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음악도 결국 제 삶의 일부라는 뜻이죠. 제게 음악은 여전히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내가 음악을 해야지, 음악이 나를 하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음악이 나를 하는 모양새. 어떤 의미인지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내 자신이 빠진 음악을 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음악을 할 때도 있겠죠. 하지만 그 안에 내가 없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배에 몸을 싣고 떠내려가는 기분일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까지 발표한 음악을 보면 늘 김필 씨 자신이 중심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트랙을 소개하는 짧은 글에도본인의 생각과 감정이 짙게 담겨 있고요. 곡은 보통 어디에서 출발하나요? 감정인가요, 단어인가요, 아니면 이미지인가요? 대개 한 줄의 문장에서 출발해요.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거든요. 그런 문장을 적어뒀다가 자연스럽게 멜로디를 붙이고 싶어질 때 곡이 되죠.
이번 앨범을 위해 꺼낸 문장 중 가장 오래 묵혀둔 게 있다면 알려줄 수 있나요? 그대로 말씀드리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그 글을 보여줬더니 함께 작업한 사람들이 너무 깊고 무겁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일부러 빠른 비트 속에 숨겨뒀어요. 유심히 들어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요.
어떤 곡인가요? ‘a sign’이라는 곡이에요. 오래전부터 하던 생각을 담았어요. 첫 EP에 수록된 ‘Pierrot (광대)’라는 곡이 있는데, 만들고 보니 그 곡의 2탄 같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이유는요? 아무래도 제 안의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보니, 모든 분이 공감하시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같은 것을 듣고 봐도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설명하는 데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더 궁금해지네요. 직접 들어볼게요. 그런데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에는 다른 가수의 피처링이 없었잖아요. 누군가와 함께 노래하는 작업은 생각해본 적 없나요? 그런 건 아닌데…. 이번에 박지윤 선배님과 함께한 듀엣곡이 있어요. 제 앨범에서는 처음이죠.

모든 걸 수직이나 수평으로만 바라봤죠. 올라가야 할 곳, 도달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삶이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중략) 삶의 모든 것이 과정에 있고, 원을 그리며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왜 박지윤 씨였나요? 처음으로 듀엣곡을 선보이게 된 이유도 궁금하네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혼자 풀어내기보다는 다른 목소리가 더해지면 감정이 한층 풍부해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던 중 평소 즐겨 듣던 박지윤 선배님의 라이브 영상을 다시 보게 됐죠. 선배님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가 이번 곡과 잘 어울릴 것 같아 연락을 드렸어요. 단순히 목소리의 조화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함께 표현할 수 있을지도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번 곡에서는 감정을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전하고 싶었거든요.
곡 제목은 뭐예요? ‘사라져 가’. 오래전에 써둔 곡이에요.
두 분 목소리의 합이 궁금하네요. 이번 앨범에 사운드가 다채로워진 만큼 보컬에서도 새로운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김필 하면 떠오르는 묵직하고 긁힌 듯한 음색이 있잖아요. 아무래도 제 목소리가 가진 고유의 색깔이다 보니, 이번 앨범에서도 자연스럽게 묻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이번에는 훨씬 자유롭게 노래했어요. 녹음할 때 필요한 디테일은 놓치지 않으면서도 톤이나 뉘앙스를 편하게 표현했죠. ‘내 음악 중 이렇게 편하게 노래한 곡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어요.
보컬 색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자신의 음색을 살리는 것과 새로운 음악적 시도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거쳐 지금 김필 씨가 생각하는 좋은 가창, 좋은 음악은 무엇인가요? 제가 음악을 하게 된 건 노래를 들으며 좋았던 순간, 위로받은 기억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결국 중요한 건 공감인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대중성이기도 하고요. 보컬리스트로서도 마찬가지예요. 이제는 가창력을 보여주는 것 보다는 음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어떤 감정을 나눌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이야기에 어울리는 톤을 찾고, 감정선이 흐트러지지 않게 부르는 것. 그게 지금 제가 생각하는 좋은 가창이에요.
한 장의 앨범을 내기까지 이토록 신중하고 자신에게 솔직하려는 만큼 그 과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음악을 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요? 음악을 할 때만 제 스스로가 괜찮아 보여요. 그리고 팬들의 응원은 큰 동력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