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홍화연의 지금
서툴러도 진심 어린, 흔들려도 씩씩한, 기어코 웃음을 발견하고야 마는 배우 홍화연의 지금.

골드 장식의 나폴레옹 오간자 블라우스 모두 KHAITE.

더블브레스트 코트와 오나 니하이 부츠 모두 KHAITE, 쇼트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우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유독 시선을 끄는 눈이 있더라고요. 오늘 화연 씨도 그랬어요. 눈이 참 맑고 깊더군요. 스스로는 자신의 어떤 얼굴을 가장 좋아해요? 집에 돌아가 깨끗이 씻은 뒤의 얼굴이요.(웃음) 하루를 잘 마치고 이제 쉴 준비가 됐다는 마음이 더해져서인지 그때 거울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초콜릿 고마워요. 스태프 한 명 한 명 챙겨준 마음에 다들 감동했어요. 어제 모처럼 쉬었는데, 마실 겸 나가서 초콜릿을 사 왔죠. 더 맛있는 걸 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쿠키집이 문을 닫았더라고요. (웃음)
촬영이 이어질 때는 잘 쉬는 것도 중요하겠어요. 평소에는 어떻게 충전해요? 요즘은 홈 케어에 재미 붙였어요. 좋은 향을 맡으며 힐링하기도 하고요. 촬영장에서도 막 샤워 루틴을 공유하거든요.
샤워 루틴 하나만 알려준다면? 요즘 촬영하면서 스프레이를 많이 뿌리다 보니 헤어 제품에 관심이 생겼어요. 머리를 감고 헤어 팩을 한 채 반신욕을 하기도 하고요. 샤워할 때는 아로마 오일을 벽에 한두 방울 묻혀두는데, 수증기와 함께 향이 퍼져서 기분 전환에 도움이 돼요.
필모그래피가 늘고 있어요. 지난 4월에 방영한 드라마 <은밀한 감사> 이후 <파이널 테이블>과 <주한이국대사관>까지 두 작품이 더해졌죠. 작품이 하나하나 쌓일 때마다 어떤 기분이에요? 아직은 늘 새롭고 신기해요. 누군가에게는 제가 맡은 역할이 비슷해 보일 수도,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비슷해도 제게는 새롭고, 다르면 그만큼 더 새로워요.
10월 23일 <파이널 테이블>이 공개됩니다. 최고 한국인 요리사를 가리는 서바이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죠. 화연 씨가 맡은 최송이는 아버지가 남긴 레스토랑 ‘파밀리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홀 매니저인데, 최송이 역에 화연 씨를 캐스팅한 이유를 연출진에게 직접 들은 적이 있나요? 촬영은 봄에 시작했는데, 김도훈 연출가님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가을이었어요. 송이를 어떤 배우에게 맡길지 고민을 많이 하셨대요. 그러다 어디선가 제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셨나 봐요. 제 오빠가 지적 장애가 있고, 그 영향으로 제가 교육에 관심이 생겨 사범대에 진학했거든요. 제가 지나온 시간을 보시고 ‘이 사람이라면 송이 역을 잘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듣고 깜짝 놀라면서도 감사했어요. 송이는 순수하고, 선하고, 뭐든 열심히 하려는 아이예요. 감독님은 제 안에 있는 그런 모습을 꺼내 송이에게 녹여내길 바라신 것 같아요.
감독이 발견한 홍화연과 최송이의 접점을 스스로도 느끼나요? 송이가 겪는 일들은 꽤 커다란 파도 같아서 저보다 훨씬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친구예요. 근데 하나하나 헤쳐나가는 방식이 저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동안 도회적이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맡았다면, 송이는 수수하고 순수해요. 서툴 때도 있지만 씩씩하게 해내려고 하죠. 저만큼 다른 분들도 송이를 사랑해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보물섬>의 여은남, <당신의 맛>의 장영혜, <러닝메이트>의 윤정희, <은밀한 감사>의 박아정, 그리고 최송이까지. 꽤 다른 얼굴이지만 모두 씩씩하고 솔직한 인물이네요. 저도 그동안 맡은 역할이 모두 솔직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송이를 만나면서 솔직함에도 여러 결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솔직함도 있지만, 무언가를 투명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자연스럽게 솔직함이 드러나는 인물도 있더라고요. 배우로서 또 다른 결의 솔직함을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좋은 기회고, 반가운 캐릭터였어요.
<러닝메이트>의 윤정희 역을 맡을 당시 연기를 ‘퍼즐 맞추는 일’에 비유했더군요.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줄 수 있나요? 당시 정희는 저와 조금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야망도 승부욕도 강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인물이거든요. 정희가 되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주변 배우들이 저를 정희로 바라봐주니까 자연스럽게 자세와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때 처음 ‘연기는 퍼즐 같다’고 느꼈어요. 주변 배우들이 맞춰주는 조각 덕분에 저도 완성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러닝메이트> 이후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또 퍼즐이 맞아떨어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그 퍼즐이 진화했어요.(웃음) 그저께 <파이널 테이블>에서 되게 중요하고 감정이 큰 신을 찍었어요. 처음에는 감독님과 상대 배우를 보면서 이 신을 완성해야겠다, 또 퍼즐을 맞추듯 생각하고 갔죠.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카메라 감독님과 조명 감독님을 비롯한 모든 분이 제가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이 퍼즐이 꼭 배우들만 맞추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감정 신이라 많이 갈 수 없고, 우리에게 기회가 많지 않으니 한 번에 확실하게 찍자는 마음으로 정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려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그래서 혼자 또 정을 쌓고 왔어요.(웃음) 두 번 찍었는데, 첫 테이크 때 조명 감독님이 엄지를 치켜세우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또 살짝 이용하기도 했고요.(웃음)
배우가 되기 전에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죠. 사범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생 실습까지 마쳤어요. 진로를 완전히 바꿀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했나요? 작품을 보고 감상에 젖는 것도 좋아했지만, 연기를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죠. 학업을 이어가던 중 우연한 기회로 지금의 회사를 만났는데, 회사 오디션을 볼 때까지만 해도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포함해 네 차례 정도 오디션을 거치면서 회사분들이 저도 알지 못하던 가능성을 봐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믿어주시니 저도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핸들을 확 꺾었죠.


골드 장식의 나폴레옹 오간자 블라우스와 블랙 레더 팬츠 모두 KHAITE.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 가장 큰 도전이 배우가 된 일이었나요? 맞아요. MBTI가 ISFJ라 안정을 추구하는 편인데, 배우는 정반대잖아요. 현장에 나가면 변수도 많고, 어떻게 보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하나씩 부딪혀가며 배우고 있으니 저한테는 배우가 된 것 자체가 큰 도전이 아닌가 싶어요.
배우와 교육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이 두 가지를 선택한 마음에는 공통점도 있을 것 같아요. 애초에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빠의 영향도 있지만, 저는 ‘교육’ 자체를 좋아한 것 같아요. 꼭 교사가 아니더라도 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대학 때 교수님이 “교육이라는 학문은 인간에 대한 긍정적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교육을 통해 사람이 더 나아질 수 있고, 결국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 말이 굉장히 와닿았어요. 어떤 방법으로든 그런 일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배우를 시작할 당시부터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더군요. 배우가 줄 수 있는 좋은 영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교육자는 많은 사람을 만나잖아요. 배우도 그 못지않게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해요. 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날 수도 있고, TV나 스크린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도 있고요. 작품을 통해 메시지나 생각할 거리를 드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냥 저를 보고 긍정적 기운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넓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화연 씨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좋은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요? 너무 많죠. <미스 리틀 선샤인>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누가 “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걸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물론 그런 작품도 좋아하지만, 큰 의미나 울림을 주는 작품도 좋아해요. 최근 광복절을 맞아 다시 떠올린 <미스터 션샤인>도 그렇고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처럼 보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작품도 좋아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다양하게 보려고 해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어떤 의미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나요? 호불호가 많이 갈린 작품이라 궁금하네요. 정말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잖아요. 우선, 지금의 내가 과거의 수많은 선택과 실패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온전히 지금을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참 좋았어요. 실패조차 지금의 나를 만드는 밑바탕이 된다는 게 제게는 충격이었거든요. 사실 저는 실패하고 싶지 않고, 틀리거나 시간에 늦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꼭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았어요. 또 하나는 가족의 정이에요. 영화에서 아버지가 “Be kind”, 다정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사람들이 막 싸우고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인 상황에서 한 번 더 웃어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블랙 하프 집업 보머 재킷과 저지 소재 톱, 셔링 스커트 모두 Gucci, 블랙 앞코 유광 스틸레토 힐 Gianvito Rossi, 골드 컬러 커브드 이어링 MaxMara.
배우가 된 뒤에는 영화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영화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번에는 소상공인을 연기하다 보니 <다큐 3일>도 많이 봤어요. 저는 식당에 가면 늘 손님일 뿐 셰프나 오너로 살아본 적은 없잖아요. 아침 일찍부터 늦은 시간까지 일하면서도 그 안에서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보고 싶었어요.
마음속으로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역할도 있어요? 독립운동가요. 반드시. 모르겠어요. 독립운동 이야기를 보면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뭔가가 있어요. 최근에는 광복절이라 역사 강연 클립이 많이 뜨더라고요. 몰랐던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을 접했는데 밥 먹으면서 보다가 혼자 울기도 하고요.(웃음)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인데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이 역할을 꼭 해야지’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전혀 생각지 못한 길에 들어선 만큼 스스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배우로 지낸 시간이 쌓이면서 점점 커지는 마음과 반대로 작아지는 마음이 있다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요. 연기도 잘하고 싶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맡는 역할이나 비중이 커지고 인물이 해내야 할 일도 많아지다 보니, 더 섬세하고 다양하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커지고요. 반대로 작아지는 건, 굳이 하나 꼽자면 작은 것에 연연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디테일을 놓친다는 뜻은 아니고요. 파리나 날파리 하나가 날아다녀도 ‘언젠간 날아가겠지’ 하고 보는 것처럼, 사소한 잡음에 너무 귀 기울이지 않으려 해요. 그래야 제가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촬영 내내 밝은 에너지를 보면서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더 마음이 단단하군요.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함께하는 사람들 덕이 제일 큰 것 같아요. 배우와 스태프 모두 무해하고 재미있는 분들이거든요. 지금 <파이널 테이블> 촬영을 진짜 열심히, 어떻게 보면 힘들게 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자꾸 웃을 일을 발견하게 돼요. 머리 감으면서도 생각하고, 자기 전에도 한 번 더 떠올리며 웃고요.
좋은 것만 보고 기억하는 편인가 봐요. 나쁜 것도 보이죠. ‘왜 저럴까?’, ‘왜 저렇게 말할까?’ 하고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해서, 혹은 그 상황이라고 해서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최대한 좋은 것과 나를 웃게 할 수 있는 걸 찾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오늘 이 인터뷰가 끝나면 다시 <파이널 테이블> 촬영장으로 가죠. 촬영장으로 향할 때는 어떤 마음이에요?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걱정하기보다는 기대가 더 큰 것 같아요. 사실 오늘은 대사가 그렇게 많지 않아 반가운 얼굴들을 보러 가는 설렘이 더 커요. 하루밖에 안 봤지만 또 보고 싶어요. 그리고 차 안에서 제이슨 므라즈의 ‘A Beautiful Mess’를 한 번 더 들어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