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향은 하나의 장면으로도 오래 기억된다. 네 사람의 일상에 스며든 향과 순간에 대한 이야기
THE MEMORY NOTE
MAISON FRANCIS KURKDJIAN

김연수(메종 프랑시스 커정 마케팅팀) / OUD SATIN MOOD EXTRAIT DE PARFUM
향수의 첫 느낌 유려하게 흐르는 새틴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우아하고 달콤한 다마스크 로즈가 오우드를 부드럽게 감싸며 따뜻함이 감돈다. 향의 서사는 패키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블랙에 가까울 만큼 짙은 네이비 보틀을 보고 있으면 별이 가득한 사막의 밤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계절에 뿌리는 이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균형 잡힌 향이 일교차가 큰 가을에 제격이다. 처음 느껴지는 다마스크 로즈의 달콤함은 지나온 여름을 닮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오우드와 바닐라가 차분한 온기를 전한다.
뿌리고 싶은 날 해가 지는 시간의 드라이브나 낮은 조도의 조명과 푹신한 소파가 있는 카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이 향이 함께하면 좋을 듯하다. 가까이 다가서지 않아도 은은하게 존재감을 남기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특별한 기억 한동안 뜸하던 사람과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대화였는데도 헤어진 뒤 옷깃에 남은 그의 향이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오우드 새틴 무드를 맡을 때마다 그날 우리가 나눈 표정과 목소리, 머무른 공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TOM FORD

오시원(톰 포드 뷰티 어시스턴트 마케팅 매니저) / WHITE SUEDE EAU DE PARFUM
향수의 첫 느낌 마른 잎과 가느다란 줄기를 손가락으로 비빌 때 느껴지는 풋풋한 향 사이로 사프란 특유의 서늘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이 향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부드럽고 포근하게, 또 누군가에게는 드라이하면서 관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하기보다 본연의 체취와 피부, 스타일에 따라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이 계절에 뿌리는 이유 옷뿐 아니라 향에서도 질감을 찾게 되는 시기다. 시간이 흐를수록 향의 결이 부드러워지고, 가까이에서 맡을 때 향이 그 진가를 발휘한다. 새하얀 장갑의 매끈한 안감이나 피부 위에 얇게 내려앉은 파우더, 목을 감싸는 캐시미어 니트처럼 섬세한 촉감을 연상시킨다.
뿌리고 싶은 날 해가 지기 전 미술관에 들러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고 조용한 바에서 위스키 한잔 마시는 날 함께하고 싶다. 작품을 관람하며 차분하게 보낸 낮부터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저녁까지. 하루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시간과 잘 어울린다.
특별한 기억 처음 보는 사람과 압구정의 한 바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 떠오른다. 어두운 조명 아래 가까이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던 화이트 스웨이드 향이 그날의 긴장감과 설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금도 이 향을 맡으면 그와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오른다. 그날 상대는 지금의 남편이기에 이 향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DIOR

최연준(디올 뷰티 디지털 & 스페셜 PR 스페셜리스트) / SAUVAGE EXTRAIT
향수의 첫 느낌 스치는 향만으로도 ‘피부에 오래도록 흔적을 남기는 향’이라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기존 소바쥬의 특징은 유지하면서 진귀한 원료인 베트남산 오우드를 더해 입체적으로 깊어진 우디 향이 인상적이다. 익숙한 향조에 새로운 깊이를 더했다는 점에서 소바쥬의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계절에 뿌리는 이유 깊고 묵직한 우디 향조의 오우드가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단정한 재킷이나 코트처럼 차분한 옷차림으로 가을을 즐기는 날 함께하기 좋다.
뿌리고 싶은 날 과하지 않은 세련된 존재감이 매력적이다. 해 질 무렵 한남동 골목을 천천히 걷다가 조명이 하나둘 켜지는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 정신없이 흘러간 낮과 달리 차분해진 도시의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천천히 마무리하기 좋은 향이다.
특별한 기억 처음 시향했을 때. 퇴근길에도 몇 번이나 손목을 확인했고, 향이 닿은 곳을 무심코 다시 맡아보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향의 변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첫 향부터 잔향까지 이렇게 오래 곁에 두고 즐긴 향수는 오랜만이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유독 기억에 남았다.
LE LABO

구슬기(르 라보 커뮤니케이션 & 파트너십 매니저) / CITRON 28 EAU DE PARFUM
향수의 첫 느낌 군더더기 없는 유리 보틀에 심플한 라벨만 더한 르 라보 특유의 패키지는 언제 봐도 맘에 든다. 여린 재스민을 시작으로 레몬과 생강의 쌉싸름한 기운이 겹쳐지며 한강의 바람과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을 대표하는 향이라는 수식이 유독 잘 어울리는 대목이다.
이 계절에 뿌리는 이유 향의 중심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머스크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른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더한다. 베개와 이불 안쪽에 가볍게 뿌리고 잠들면 침구에 깃든 온기가 포근함으로 이끈다
뿌리고 싶은 날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날에도,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즐기고 싶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향의 결이 매력적이다. 좋아하는 책과 캠핑용 의자를 챙겨 공원에 앉아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향을 느끼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특별한 기억 진저와 재스민이 어우러진 향이 외국인에게도 꽤 인상적인 것 같다. 시트롱 28을 뿌린 날이면 길을 걷다 마주친 외국인이 “Nice, Perfume!”이라며 향수 이름을 묻곤 한다. 그때마다 자신 있게 대한민국, 서울의 향이라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