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밖 리추얼
무심함과 집요함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속도로 창작하는 김희천의 취향.

김희천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다 카메라와 스크린을 다루는 미디어 아트로 넘어온 작가다. 2015년 첫 영상 <바벨>로 데뷔한 이래 그는 디지털 데이터가 현실을 대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바벨> 속 ‘세계는 스크린이 되었다’라는 문장은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진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가 됐다. 그가 다루는 도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스마트폰 카메라, 페이스 스왑 앱, VR 헤드셋, 그리고 최근의 생성형 AI까지. <썰매>(2016)에서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로 뒤바뀌는 장면으로 데이터가 정체성을 잠식하는 공포를 그렸고, 부유 탱크에 몸을 담근 채 만든 <탱크>(2019)는 감각이 차단된 순간 현실과 가상의 위계가 뒤집히는 경험을 시각화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게임사회>(2023)의 <커터 3>와 <더블포져>는 화면을 녹화한 영상이 아니라 실시간 렌더링되는 ‘자동 재생 게임’이라는 형식 자체로, 정보화된 세계의 변화하는 시간성을 실험했다. 이 실험은 평단의 지지로 이어졌다. 2023년 서도호, 임민욱을 배출한 제 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단은 “누구나 사용하는 테크놀로지로 신체와 감정, 기억, 자아 인식의 재구성이라는 이 시대 가장 시급한 질문을 다룬다”라고 평했다.리움미술관과 백남준아트센터, 미국 KADIST 등에서 그의작품을 소장 중이며, 지난해에는 아트넷이 꼽은 ‘주목해야 할 떠오르는 아시안 작가 7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26년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개인전 <김희천: 두더지들>에서는 게임 엔진 유니티와 생성형 AI로 빚어낸 신작 <레몬>과 <말린>, 그리고 휴대폰으로 찍은 5841장의 사진 중 골라낸 연작 <.dng>를 처음 공개했다. 무심함을 자처하는 그의 태도와달리 이 신작들은 기술이 지워버린 인간의 감각과 실존을 여전히 집요하게 묻는다.
군 전역 후 떠난 아르헨티나 여행이 내 인생을 바꿨다. 아르헨티나는 유럽 이민자가 많아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있다. 여행 중 만난 또래 친구들이 자신을 ‘아티스트’라 칭했고, ‘한국에도 이런 젊은 작가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유행하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예술가가 직접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미디어 아트를 하게 된 대단한 이유는 없다. 작가로서 전시하고 싶은 마음보다 전시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가 재밌어 보여 시작하게 됐다.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그림 그릴 줄도 모르고, 뭔가를 만드는 손재주도 없으니 그나마 금방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영상 작업을 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업물이 <바벨>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사고 이후의 복잡한 감정,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관한 생각이 녹아 있다. 첫 작업물이라는 점과 여러 기억이 섞인 <바벨>은 의미가 조금 남다른 작품이다.
취미로 컴퓨터 자수 작업을 한다. 자수가 들어간 것을 좋아하는데, 기왕이면 좋아하는 그림을 넣고 싶어 컴퓨터 자수 기계를 샀다. 모자에 자수를 넣어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조카에게 자수를 넣은 손수건을 만들어줘 삼촌으로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근데 요즘은 귀찮아서 잘 안 한다.
최근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은 <씨너스: 죄인들>이다. 영화 중반에 시대를 아우르는 온갖 시대의 음악가들이 한 공간에 등장하는장면이 있는데, 정말 황당한 동시에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음악으로 세대와 시간을 연결한다’라는 의도를 감독이 대놓고 보여준다. 이렇게 정면 돌파한 작품은 본 적이 없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많다는 걸 군대에서 체감했다. 말로만 듣던 일상적이지 않은 환경에 사람이 무작위로 모이는 경험을 하면서 영화나 소설에서 맞닥뜨릴 만한 상황, 사전에서 찾아볼 법한 단어의 성격을 가진 인물을 마
주했다. 군대를 떠올리면 살면서 다시 느끼지 못할 기묘한 감각이 아직도 떠오른다. 미디어 아트라는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모호한 지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군 복무 시절의 감각이 묘하게 겹쳐 보일 때가 있다.
홍제천과 봉은사에서 산책하는 걸 좋아했다. 두 곳 모두 근처에 살 때 자주 다니던 곳인데, 멀리 가지 않아도 도심과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의 안식처 같았다. 머리가 무겁거나 작업이 막힐 때 나가서 바람에 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고, 친구와 통화하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이랄까.
올해의 잘 산 물건 1등은 이어플러그다. 집중하기 좋을 것 같아 시험 삼아 샀는데, 효과가 기대 이상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일상의 소음에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아 이어폰 대신 끼고 다닌다.

생활체육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김희천 작가.
취미로 레슬링을 열심히 하고 있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벌써 3년가량 됐다. 재작년 연말 레슬링 체육관 회식이 있던 날, 잔뜩 취해서 체육관 관장님과 생활체육 대회 약속을 해버렸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주변에서도 계속 물어보니 이렇게 등 떠밀 때 아니면 언제 나가보겠나 싶어 출전했다. 근데 2등을 해버렸다. 솔직히 좀 더 열심히 하면 1등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 정도면 체면 구기지 않고 성과도 이뤘으니 충분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그만하고 싶어졌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준비해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
레슬링에 빠진 이유 중 레슬링화도 한몫한다. 얇고 날렵한 실루엣에 신었을 때 발과 땅이 기분 좋게 맞닿는 착화감이 마음에 든다. 입맛에 맞게 색상을 조합할 수 있는데, 남들과 차별화하고 싶어 따로 염색했다.
느닷없이 UFC에도 빠졌다.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만, 보는 건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저스틴 게이치가 말도 안 되는 투지와 맷집으로 라이트급 챔피언이 된 걸 보고 UFC를 조금씩 챙겨 보기 시작했다.
쓸데없지만 귀여운 물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날 어머니가 세절한 5만 원 폐지를 넣은 은행 볼펜을 선물로 주셨다. 볼펜을 보면서 아들을 떠올려준 마음도 귀엽고, 볼펜 자체도 웃겨서 자주 사용한다. 한창 <말린>과 <레 몬>을 작업할 때 모니터 아래에 부적처럼 아주 작은 피겨를 모아뒀다.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막막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많다. 그럴 때 귀여운 피겨를 보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받곤 한다. 버티컬 마우스를 분신처럼 들고 다닌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장시간 작업하다 보니 어깨가 아팠다. 이젠 짐을 꾸릴 때 가장 먼저 챙길 만큼 버티컬 마우스가 없으면 작업을 못 할 지경이다. 문서 작업을 많이 하는 지인을 만나면 무조건 써보라고 권유한다.
클로드는 나의 피트니스 매니저다. 작년 레슬링 생활체육 대회에 나가기 위해 체중을 줄여야 했는데, 클로드가 시키는 대로 하니 큰 어려움 없이 감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클로드에게 운동 기록 관리를 맡긴다.
1년 동안 닭 가슴살을 336봉지 먹은 적도 있다. 바쁜 일상에서 현대인에게 가장 편리한 단백질 보충 수단은 닭 가슴살이다. 보통은 100g짜리를 먹는데, 한 번에 많이 먹으려고 200g짜리를 샀다. 냉장고 안에는 지금도 닭가슴살이 가득 차 있다.
언젠가 초고속 카메라를 써보고 싶다. 실험 다큐나 예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총을 쏠 때 탄알이 나가는 궤도부터 물건에 닿아서 터지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볼 수 있는 카메라다. 슬로모션으로 어떤 현상이나 물체를 관찰하는 작업을 해보면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내가 게이라는 소문이 있다. 사실이 아니지만,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 즐긴다. 나를 섬세하고 미감이 뛰어난 사람으로 봐준다는 말로 느껴져서 오히려 감사하다.
3대 500이 올해의 목표다. 왠지 마흔에 가까워지면 과도하게 무거운 걸 드는 운동이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아 꼭 달성해보려 한다. 늘 480 언저리에서 멈췄는데,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강도를 올리면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