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욱의 스윙
스톤 아일랜드의 나침반 위로 떠오른 구자욱의 끝없는 여정.



화이트 스니커즈 모두 Stone Island.
슬럼프가 찾아오면 항상 고통스럽다. 다만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최대한 티 내지 않고, 그 시기를 벗어날 때까지 버티는 깡다구가 조금씩 늘 뿐이다.
지난해 10월 KBO 플레이오프 이후 어떻게 지냈나? KBO 시상식과 다른 행사에도 간간이 참석하고 20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비로 몸을 만들다 보니 금방 해가 바뀌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시즌이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다음을 위한 재정비에 바로 들어가야 한다.
옆구리 부상은 어떤가? 와일드카드부터 플레이오프까지 11전 대장정 속 모든 선수가 투혼을 펼쳤다. 쉬운 경기가 단 하나도 없었다. 시즌 중엔 모든 선수가 잔부상을 달고 산다. 미세한 근육 문제라,지금은 완벽하게 회복했다.
2025 시즌은 다사다난했다. 정규 리그 4위, 플레이오프 진출과 골든글러브 3연속 수상 등 속이 후련한 시즌일 것 같다. 야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시즌이었다. 빨리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선수 개인의 활약보다는 팀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에 긍정적인 마무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도 박진만 감독이 꾸준히 기용했다. 당시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눴나? ‘2군에서 폼을 회복하고 1군으로 복귀하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할 때, 감독님이 꾸준히 믿어주셨다. 팀의 지휘자가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데 더 이상 무슨 고민을 하겠나. 미디어와 인터뷰할 때도 “구자욱은 곧 살아날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항상 해주셔서 자신감이 생기더라. 그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더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박진만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는 어떤가? 강성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하기보다는 소통을 통해 팀의 사기를 올리는 스타일인 것 같다. 감독님은 선수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호흡하며 팀을 이끈다. 감독님과 면담하고 나면 선수들이 폭풍 활약을 펼치는 마법 같은 효과가 일어나는데, 그 비결은 바로 소통이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선수가 원한다면 언제든 대화를 나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순간 무너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다. 그런 신뢰가 있기 때문에 타석이나 마운드에 설 때 선수들이 압박감을 극복할 수 있다. 의심의 여지 없는 삼성 라이온즈의 사령관이다.


파나마 코튼 코치 재킷과 크루넥 니트 스웨터 모두 Stone Island.

라이트 불 데님 오버 셔츠와 멜란지 그레이 스웨트셔츠, 네이비 티셔츠,
라이트 불 데님 팬츠 모두 Stone Island.
2025 시즌 상반기 부진은 커리어 최대 슬럼프기도 했다. 본인도 야구 인생 최대 위기라고 했는데, 시즌이 끝난 지금 되돌아볼 때 무엇이 원인이었던 것 같나? 원인은 딱히 없다. 컨디션도 완벽했고, 기회도 자주 있었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덤덤하게 말하지만, 많이 답답했겠다. 내가 못하는 선수인 건 상관없지만, 나로 인해 팀이 어려운 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긴커녕 밥값도 못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더라. 슬럼프가 길어질수록, 팀에 피해만 끼치는 존재인 것 같아 동료들에게나 팬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못하는 건 상관없는데, 팀에 피해를 끼치는 건 견딜 수 없다’는 말 자체가 모순 아닌가. 팀의 일원인 내가 잘해야 팀도 강해지는데 말이다.
역경과 고난이라는 서사가 있어야 스포츠의 낭만이 꽃피지 않나. 어쨌든, 달빛 소년 구자욱은 늘 극복해낸다. 특별한 방법이 있나? 있었으면 좋겠다. 슬럼프가 찾아오면 항상 고통스럽다. 다만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최대한 티 내지 않고, 그 시기를 벗어날 때까지 버티는 깡다구가 조금씩 늘 뿐이다. 언제나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팀과 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2012년 스무 살 막내였던 구자욱이 어느덧 팀의 간판이자 기둥이 됐다. 플레이어로서 기록보다는 팀의 리더로서 더 크고 넓게 볼 시기일 텐데, 주장이 되고 나서 변화가 있다면? 주장이 되었다고 해서 마음가짐이 크게 변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성숙해진 느낌이 든다. 팀이 더 잘될 수만 있다면, 선수로서 활약상이 부족해도 상관없다. 그리고 팀이 잘되면, 선수도 따라서 잘하게 돼 있다.
한 시즌 144경기. 리그 기간, 거의 매일 경기를 펼치기 때문에 루틴화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도 경기 전 모든 행동을 숫자 4에 맞추나? 루틴이 생긴 이상 지켜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한다. 4에 맞추는 건 습관이 돼서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스트레칭도 동작별로 4회씩 하고, 인터벌도 4회씩 달리고. 딱 적당한 숫자라 다행인 것 같다.(웃음)

브라운 퀼팅 후드 재킷과 워싱 코튼 소재의 후드 스웨트셔츠, 쇼츠
모두 Stone Island.

캐멀 컬러 스웨이드 재킷과 캐시미어 크루넥 스웨터 모두 Stone Island.
2026 시즌 삼성 라이온즈는 더 이상 암흑기 탈출이 아닌 정상 탈환을 목표로 선수진을 보강했다. 그중 최형우 선수의 복귀는 참 반가운 소식이다. 워낙 기량이 뛰어난 데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니 많은 팀이 형우 선배를 탐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 해결하는 클러치 히터이기도 하고. 그리고 형우 선배는 삼성 왕조 시절의 블루 블러드가 흐르는 선수로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린다.
팀을 이끌어야 하는 주장으로서 아주 든든하겠다. 워낙 어릴 때부터 따른 선배라 마음이 한결 편하다. 나도 의지하고 응석 부릴 존재가 때로는 필요하거든.(웃음) 벌써 2026 시즌이 기대된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기는 게 당연한 팀이다. 긴 암흑기를 지나 구자욱을 중심으로 삼성 라이온즈가 다시 이기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2024년부터 지금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나? 최정상과 최하위까지 모든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팀이 어려울 때 어떻게 되는지 잘 안다. 성적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팀의 체제가 무너져선 안 된다. 강압적이지 않되 선수들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도록 팀의 기강을 지키려 한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면서 집중적으로 보강한 부분이 있다면? 특별한 훈련은 없다. 큰 부상 없이 144개 전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컨디션 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 시즌 두 경기에 결장을 했는데 아쉽더라.

인디고 데님 코치 재킷과 인디고 데님 아노락, 인디고 데님 팬츠,
블랙 스니커즈 모두 Stone Island.
투수와 타자의 역할이 각각 다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다.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투수는 팔이 부러져라 공을 던지고, 타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있는 힘껏 쳐서 담장 너머로 보낸다. 서로 돕는 역할이기 때문에 우리 인생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틀 후 WBC 훈련 캠프를 위해 사이판으로 떠난다. 2017 아시아프로 야구 챔피언십(APBC) 이후 아주 간만의 국가대표호 승선이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세계의 강국과 맞붙는 자리라 각오가 남다르다. 내가 속한 곳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뜨거워진다. 빨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오르고 싶다.
대한민국이 속한 본선 C조는 여러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난 일본, 대만과 같은 조다. 더욱 악착같은 승부를 겨룰 것 같다. 누구를 만나든 상관없다. 어차피 이겨야 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승부의 세계는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경기를 잘 치를 생각뿐이다.
WBC가 끝나면 곧장 KBO 정규 시즌이 시작한다. 초중고와 프로 생활까지 모든 커리어를 대구에서 해왔는데, 지금 시대에 보기 힘든 순혈 로컬 보이다. 학창 시절부터 프로 생활까지 한곳에 몸담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엄청난 자부심이다. 종종 마음을 잡기 힘들 때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봉덕동을 찾는다. 옛 생각에 잠겨 추억이 깃든 곳을 거닐며 초심도 찾고, 어릴 때 다니던 동전 노래방 가서 노래도 한 곡 부르고.(웃음)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투수일까, 타자일까? 아, 어렵다. 투수와 타자의 역할이 각각 다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다.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투수는 팔이 부러져라 공을 던지고, 타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있는 힘껏 쳐서 담장 너머로 보낸다. 서로 돕는 역할이기 때문에 우리 인생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야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게 뭔가? 먼 미래는 아직 모르겠다. 다가올 시즌 또한 아주 많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적어도 부끄럼 없는 선수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