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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 A.K.A. 매드맨

양동근의 쓰러지지 않는 하루.

블랙 오버 후드 재킷 톱 GmbH, 쇼츠 adidas, 슬리브리스와 하이톱 스니커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갈피를 못 잡던, 몸만 어른인 소년에게 스스로 치유하는 법과 좋은 것, 좋지 않은 것에 대한 구분을 알려주는데 그런 걸 처음 가르쳐주는 곳이 교회였어요. 제 마음에 클릭이 될 수밖에 없었죠.

“오늘 찍은 거 언제 나온다고요? SNS에만? 잡지에도 실리는 거예요?”

12월에 나와요. SNS에도 올라가고, 잡지에도 실려요. 최고다. 올해 마무리가 되게 좋네요. 2025년은 크고 작은 일로 꽉 차 있던 해였거든요. <오징어 게임 시즌 3>, <킹 오브 킹스>, <조각 도시>가 공개됐고, 화보와 인터뷰로 한 해를 마무리하니까요. 특히 마지막에 입은 옷이 너무 좋았어요. 빨간 시카고 불스 가죽 점퍼.

YDG 그 자체였죠. 걸음걸이가 바로 바뀌던데요? 스타일리스트 실장님 코드가 저랑 잘 맞았어요. 척척 갖다주면 착착 붙어요. 오늘 노래도 너무 좋았고요. 노래 선곡은 누가 했어요? 아, 맞다. 사진가 실장님. 전시한다던데. 함께한 스태프 이름은 꼭 외워야겠어요.

오늘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드나 보네요. 살면서 이렇게 마음에 드는 일을 할 기회가 잘 없어요. 제가 힙합 찬양하는 무대를 정말 사랑하는데, 마침 올해 그런 기회가 생겼죠. 다만, 예상치 못하게 시끄러운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지만. 하하.

논란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어요? 내 의사는 안중에 없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해석하잖아요. 연예계에 40년간 있으면서 ‘연예인의 삶은 무엇인지’ 아주 오랫동안 고민해왔어요. 어떤 게 진짜 위험하고 피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느끼는데, 그래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아마 이번 논란이 연예인 인생 마지막 관문이 되지 않을까. 처음으로 이런 자리에서 말하는 건데, 저는 정치 분야에 관여할 마음이 없어요. 어떤 편에 설 마음도 없거니와 누구의 편도 아니고요. 그저 내 일이나 잘해야지 하는 타입이에요. 어릴 때부터 대립, 분쟁이 있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성격이었고요.

스웨트셔츠 Willy Chavarria, 이너로 입은 후디 Protocol Index, 트레이닝 팬츠 We11done, 하이톱 스니커즈 본인 소장품.

그래서 어떤 판단을 했나요? 숙명처럼 받아들였죠.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말을 비로소 말할 수 있겠네. 이 한 문장이 입에서 나오려면 이 정도 고비는 넘겨야 자격이 생기는구나’하면서.(웃음)

지금보다 젊었다면 맞서 싸웠을까요? 무서운 게 없으니 치고받았겠죠. 그러나 지금의 저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아빠예요. 학부형으로서 그런 선택을 할 순 없었어요.

사실 이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저도요. 그리고 지금까지 일부러 안 했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은 제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그 사람들의 화법에 입각해 이야기할 의무도 없잖아요. 저는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자 힙합하는 사람으로서 무대에 선 거지, 그 외에는 어떤 의도도 없었으니까요.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네요. 중고등학교 때 춤을 먼저 추기 시작했어요, 스무 살이 될 즈음 자연스럽게 랩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요. 연기를 일찍 시작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이골이 났어요. 감정선도 거의 비슷하잖아요. 슬프고, 울화가 터졌다가 결국 이겨내는 패턴의 반복. 연기가 다른 사람이 쓴 글과 인물을 대변한다면, 음악은 내 감정을 뱉어내는 거니까 재밌었죠. 1집, 1.5집, 2집… 그때 앨범을 보면 두서가 없어요. 정리되지 않은 채 토해내듯 뱉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 그런 상태였구나 알게 됐죠. 엉망진창이라 지금은 못 들어요.

저는 그때의 YDG를 여전히 좋아하는데. 사춘기 시절에 쓴 일기장 같은 거죠. 다들 그때 생각하면 부끄럽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활동 초기에 관해 언급하면 아예 정색했어요. 그 이야기는 하기 싫다고.

솔직히 저도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오늘부터, 아니다. 적어도 오늘은 금기했던 판도라의 상자를 봉인 해제할게요.

블랙 재킷 Fear of God by MUE, 블랙 터틀넥 톱과 팬츠, 벨트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링 본인 소장품.

판도라의 상자에 봉인한 이유가 있나요?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져야 했거든요. 결혼했고, 아이도 생겼으니까. 가장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존재지, 예측 불가능한 영혼일 순 없죠. 그래서 자유분방한 양동근은 묻어뒀어요.

저는 ‘아카사카 Love’를 좋아해요. 전체적 분위기는 나른한데, 숨겨진 흥미로운 요소가 많더라고요. 아! 곡 이야기는 또 해줄 수 없어요.(웃음) 지키고 싶은 나름의 신의가 있거든요. 가장 애정 어리게 이 화보와 인터뷰를 볼 사람은 누구보다 아내일 거예요. 그래서 아내가 싫어할 행동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해요. 블랙코미디 같은 섹슈얼한 이야기도. 제가 신동엽 선배라면 괜찮겠지만, 저는 양동근이니까요.

양동근은 어떤 사람인데요? 온기가 필요했던 사람.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서 무슨 온기 타령이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혼자 다니면서 현실의 냉혹한 온도를 느꼈어요. 이렇게 자라서 당연히 이렇고, 다들 이런 줄 알았는데 남과 조금 다른, 사회의 눈치 따위 보지 않는 자유분방한 캐릭터가 되어 있었죠. 덕분에 사랑받았지만, 독이기도 했어요. 이렇게 해야 사랑받는구나 하면서 계속 곪아갔죠.

많이 외로웠나요? 그땐 그런 감정이 외로움인지도 몰랐어요. 늘 외로웠으니까요. 어릴 때,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나이는 아니잖아요. 집이 너무 싫었어요. 제가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거든요. 결국 조금씩 짐을 빼고 자연스럽게 나왔죠. 그래서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모든 우선순위를 가정에 두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엇나가지 않고 음악과 연기 두 가지 모두 병행해왔네요. 음악이랑 연기 둘 다 바쁘게 활동할 때 친한 형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게 됐어요. 목사님이 시카고에서 신학을 전공했는데, 음악을 통해 뱉는 메시지가 마음을 꽝꽝 울리더라고요. 갈피를 못 잡던, 몸만 어른인 소년이 신앙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는 법과 좋은 것, 좋지 않은 것에 대한 구분을 알려주는데 그런 걸 가르쳐주는 곳은 처음이었어요. 상처가 나면 어떻게 치료하는지도 몰라 곪는 대로 뒀는데, 상처를 대면하고 회복하는 법을 배웠어요. 제 마음에 클릭이 될 수밖에 없었죠.

화이트 셔츠 Uniqlo, 레더 타이 Deadwood, 스웨트 팬츠 Greg Ross, 스니커즈 Converse.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요? 충분히 젊었고, 괴로웠고, 방탕했어요. 지금의 제가 너무 소중해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어요. 그래도 한 가지 그립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대여섯 살 때 아빠가 사 온 치킨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때요.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니까. 지금의 제가 가치를 가장 많이 두는 부분이 식탁이거든요. 엄마는 집에서 식탁에 놓을 음식을 준비하고, 아빠는 식탁에 놓을 반찬 살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식탁에서 혼자가 된 순간부터 외로워진 것 같아요.

그래도 양동근은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죠. 객관적으로 저는 30대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사람이에요. 자조 섞인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랑받아서라기보다 잊히지 않게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군대 이후에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다면 저도 잊혔을 거예요. 저는 힘이 없어요. 회사를 잘 만난 덕분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이건 내가 피부로 느끼는 거예요. 주르륵 내려가는 하향 곡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요. 제 방향이 늘 옳기만 한 것도 아니잖아요. 내 의도는 이게 아니었는데, 더 좋게 해석돼서 수혜를 받는 경우도 있고요.

연기할 때도 그렇죠. 내가 하고 싶은 방향과 감독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기도 하잖아요. 맞아요, 이제는 그렇게 안 중요해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까지가 제 사명인 거죠. 그다음은 편집하는 감독의 챕터인 거고요.

음악은 무대에 서는 찰나의 순간으로 끝나지만 연기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 이상 캐릭터와 마주하잖아요. 감정이 연기가 되고, 연기가 다시 삶으로 스며드는 경계를 오가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내나요? 정답이 없어요. 10대 때, 20대 때, 30대 때, 40대 때 다 다르거든요. 젊을 땐 무조건 술 마시고 미친 듯이 춤췄죠. 영화 <수취인불명>처럼 감정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연기를 할 땐 ‘촬영 끝나고 서울 도착하면 힙합 클럽으로 달려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버텼어요.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탈출구 같은 존재였으니까.

스타디움 점퍼 Jeff Hamilton, 캡 New Era, 이어링 본인 소장품.

아무것도 모르는 대여섯 살 때 아빠가 사 온 치킨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때가 그립네요.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니까. 지금의 제가 가치를 가장 많이 두는 부분이 식탁이거든요. 엄마는 집에서 식탁에 놓을 음식을 준비하고, 아빠는 식탁에 놓을 반찬 살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연기에 깊게 몰입한다는 건, 영적인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정신적으로 세뇌하는 작업이다 보니 완전 동화되기도 하죠. 주어진 상황과 대사를 뱉는 행위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해도 실제 내가 사고해서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거든요. 그래서 역할을 가려서 해야 하는 게 중요하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내일(11월 5일) 공개되는 <조각 도시> 에서 ‘여덕수’라는 인물은 되게 힘들었어요. 굉장한 악역이거든요.

그럼에도 여덕수 역을 연기한 이유는요? 이번 작품은 처절하고 잔인한 복수극이잖아요. 연기가 직업인 가장이니까요. 하루에 몇 시간은 쓰레기같은 인간이었다가 다정한 아빠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제는 그런 균형과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베테랑 배우니까요. 여전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긴 합니다.(웃음)

연기하면서 나의 어떤 모습과 참 닮았다 싶은 순간은 없었나요? <뉴 논스톱>, <네 멋대로 해라>, 같은 작품의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해 줬어요. 그게 제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와 닮은 모습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저의 어떠함을 녹였을 뿐이죠. 예전에는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착각하니까 거부감이 생기기도 했는데, 끝나지 않은 숙제더라고요. 그리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제 일부라는 걸 느꼈어요.

음악은요? 가장 나답다거나 마음에 오래 남는 곡. ‘어깨’를 만들고 음악의 힘이 이런 거구나 느낄 수 있었어요. 이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보여주기 위해 음악을 했다면, ‘어깨’가 음악의 방향성을 다시 잡아줬죠. 아내도 ‘어깨’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만났고요. 이 곡을 통해 많은 사람이 힘을 받았다는 말을 해줬어요. 멋있다, 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힘이 됐다는 말은 거의 처음이었거든요.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고(故) 신해철 선배를 조문하러 간 영상이 종종 보이곤 해요. 그걸 보면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밥 한번 얻어먹고 싶은 사람이 또 있을지. 에이, 말 못 해요. 그리고 전 밥 사달라는 말을 잘 못 해요.

그럼, 밥 사주고 싶은 사람도 없으세요? 아, 그건 있지. 요즘 자주 먹는 친구들이 있어요. 헤리티지 매스콰이어의 이철규, DJ 렉스랑 ‘빠셋’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보컬리스트 아빠, 디제이 아빠, 래퍼 아빠 셋이라서 빠셋. 예전에는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끼니는 늘 뒷전이었어요. 막상 같이 작업했는데, 얼굴 한번 본 적 없으니 좋은 기억도 없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밥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일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겠다고 느꼈죠.

이제 인터뷰도 끝이네요, 저도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아니, 아까 먹었잖아요. 안 먹었어요? 에헤이, 얼른 먹어요. 나도 이제 엉덩이가 아프네.

에디터 강승엽 사진 장덕화 헤어 & 메이크업 윤혜정 스타일링 이종현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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