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주목해야 할 남자 시계 8
성격과 특질, 정체성을 아로새기다.

BREGUET

브레게의 시계에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시계 역사에 기여한 자부심이 응축되어 있다. 클래식 퀀텀 퍼페추얼 7327 워치 다이얼 위 빛의 결을 섬세하게 쪼개는 클루 드 파리 기요셰도 그중 일부다. 18세기,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목재와 금속, 보석 세공품에 쓰이던 기요셰를 시계 다이얼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빛 반사를 고르게 분산시켜 눈부심을 줄이고 시간을 선명하게 읽기 위한 기능적 시도였다. 그는 시계 안에 기술과 예술, 합리와 우아함이 공존하게 했고, 브레게의 정체성을 완성했다. 브레게가 추구해온 ‘기능 속 아름다움’이라는 명제는 이 작은 격자무늬 위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빛난다.

BVLGARI

불가리가 2023년 옥토 로마를 리뉴얼하며 다이얼에 클루 드 파리 기요셰를 도입한 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정체성의 선언이었다. 브레게가 클루 드 파리 기요셰를 통해 빛 반사를 제어하고 시인성을 높이는 기능의 언어를 구축했다면, 불가리는 그 패턴을 로마 건축의 질서와 균형을 시각적으로 번역하는 조형 언어로 확장했다. 피라미드 형태의 격자무늬를 금속 다이얼 위에 장식해 규칙적 깊이를 만들고 팔각 케이스의 구조적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리려는 의도다. 옥토 로마는 이렇게 다이얼의 패턴을 매개로 시계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굳건히 다진다.

HUBLOT

티타늄 세라믹 워치는 빅뱅 컬렉션 탄생 20주년을 기리며, 오리지널 모델과 현대적 디자인이 교차하는 지점을 조합해 빅뱅 고유의 미학을 계승했다. 특히 빅뱅의 상징적 요소인 카본파이버를 다이얼 패턴으로 치환해 20년이라는 시간을 기념한다. 이는 실제 카본 패널을 사용하는 대신 다이얼 위에 스탬핑으로 체크무늬를 구현해 전통적 카본 직조 조직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텍스처를 재현한 것. 양각으로 새긴 패턴은 빛의 각도에 따라 명암이 교차하며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역동적 입체감을 드러내고, 금속 본연의 질감과 빛에 대한 반응을 극대화한다.

TAG Heuer

다이버 워치의 존재감을 웅변하듯 심해의 흔적을 다이얼 위에 새긴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300 데이트. 750°C로 달군 황동을 400톤의 압력으로 눌러 형성된 수평의 물결무늬는 깊은 바닷속에서 빛이 부서지는 장면을 다이얼 금속 표면에 옮겨놓은 듯 하다. 표면의 미세한 패턴은 프레스 공정이 남긴 물리적 흔적이자 시계의 고유한 특징을 다루는 은유적 방식이다. 스탬핑과 절삭, 연마를 거친 다이얼에 블루 그러데이션 컬러를 입혀 심연으로 스미는 듯한 농담을 재현했고, 다이아몬드 인덱스와 로듐 도금 핸드가 마치 파도처럼 반짝인다.

CHOPARD

알파인 이글 컬렉션은 독수리 홍채를 연상시키는 다이얼로 우뚝한 정체성을 확립했다. 황동 플레이트 위에 스탬핑 가공으로 중심에서 외곽으로 퍼지는 방사형 무늬, 즉 선버스트 패턴을 새긴 형태다. 이 요철은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밝고 어두운 골이 교차하며 평면의 다이얼에 깊이를 더한다. 록 재스민이라 명명한 다이얼의 핑크 톤은 단일 색조지만 결마다 빛이 흩어지며 색의 농도와 명암이 달리 보인다. 이는 독수리 홍채 콘셉트의 입체감을 강조한다. 여기에 정제된 로마숫자 인덱스와 화이트 골드 핸드는 유동적으로 물결치는 다이얼의 균형과 중심을 가다듬는다.

OMEGA

스피드마스터는 원래 레이싱 트랙을 위해 태어났지만, 달에 간 최초의 시계로서 우주의 역사를 품게 되었다. 그 정신은 다이얼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다이얼 표면에 철과 니켈 합금으로 운석 특유의 결정구조를 구현한 것이다. 가공 방식의 특성상 각 시계가 서로 다른 무늬를 품기 때문에 나만의 시계를 소장한다는 의미도 있다. 패턴은 빛의 각도에 따라 은빛과 흑색이 교차하며 입체적 반사 효과를 내고, 미세한 요철은 반사광을 분산시켜 눈부심을 줄인다. 6시 방향에 자리한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는 실제 달 운석을 0.4mm 두께로 절단해 사용한 것으로, 시계 자체가 마치 영겁을 견뎌낸 듯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MONTBLANC

모델명이 곧 정체성인 아이스드 씨 오토매틱 데이트 제로 옥시전. 케이스 내부의 산소를 모두 제거한 상태에서 무브먼트를 조립한 이 시계는 이름처럼 몽블랑산맥의 가장 거대한 빙하 중 하나인 메르 드 글라스의 얼음에서 영감을 받았다. 다이얼에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고대의 그라테 부아제 마감 기법을 적용해 수천 년 동안 얼어붙은 빙하 속 결정이 서로 얽히고 갈라지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마치 다이얼 속에 실제 얼음이 응고된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질감은 거친 듯 정제된 표면이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은빛 파동을 생성한다.

HERMÈS

에르메스 아쏘 르 땅 보야주의 다이얼은 브랜드의 상징적 스카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디자이너 제롬 콜리아르가 그린 ‘말의 세계지도’를 기반으로, 에르메스는 이를 기계식 다이얼 위에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지도 윤곽과 대륙의 경계는 레이저 가공 후 래커로 채색해 깊이를 더하고, 바다는 섬세한 질감 처리로 빛의 방향에 따라 반사각이 달라진다. 경선과 도시명은 전사인쇄 기법으로 정밀하게 새겼으며, 도시 링은 새틴 브러시트 마감으로 부드러운 광택을 낸다. 여러 공정을 겹쳐 완성한 이 다이얼은 스카프의 예술성과 시계의 정밀함이 한데 어우러진, 에르메스다운 시간의 지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