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박사가 제안하는 건강을 위한 선택
정희원 박사가 제안하는 건강을 위한 선택.

서울아산병원 진료실을 떠나 라디오 DJ(MBC 표준FM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를 맡고 있다. 꽤 파격적인 행보다. 먼저 나의 이력을 소개하자면, 의학 박사이자 내과 전문의다. MD-PhD(의사-과학자, Medical Doctor–Doctor of Philosophy)로서 대규모 인구 집단의 건강 궤적을 추적하며,100세까지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오랜 연구 끝에 일정한 해법을 찾았지만, 종종 무력함을 느끼곤 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는 하루에 새롭게 만날 수 있는 환자가 10명 남짓이고, 1인당 진료 시간은 길어야 2~3분에 불과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소수에게만 전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각자도생’을 돕는 길을 택했다.
박사님이 제안한 ‘저속노화’ 개념이 주목받는 만큼 더 큰 확성기가 필요할 것 같다. 맞다.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건강한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도록, 그런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매일유업과 공동 개발한 ‘매일두유 렌틸콩’도 그 연장선인가? 자극적인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건강한 선택지를 넓히고 싶었다.
두유의 원료로 직접 렌틸콩을 제안했다고 들었다. 내 책 <저속노화 식사법>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렌틸콩의 유익함을 지속적으로 소개해왔다. 하지만 특정 식단이나 식품에 집착하지 말라고 늘 강조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저속노화 식단의 큰 줄기는 같다. 가공식품과 정제당을 피하고, 콩과 채소, 통곡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다. 렌틸콩은 권장 식품 중 하나다. 손질이 간편하고 금세 익어 조리하기 쉬운 데다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등 다섯 가지 영양소를 고루 갖춘 완전식품이기에 개인적으로 즐겨 먹는다. 특히 팥처럼 고소한 맛이 진해 두유로 만들면 재밌는 맛이 나올 것 같았다.
두유에 포함된 여성호르몬 유사 물질 때문에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도 있던데. 파이토에스트로겐(식물성 에스트로겐, phytoestrogen)을 염려하는 분도 있는데, 실제로는 그 성분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훨씬 많다. 어떤 식품이든 과다 섭취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두유를 리터 단위로 마시지 않는 이상 문제될 게 없다.
현대인은 간편식이나 외식이 불가피하다. 더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팁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영양성분표다. 특히 당 함량을 봐야 한다. ‘단백질 쉐이크’라고 써놓고 당이 하루 권장량의 30% 들어간 제품도 있다. 그건 ‘당 쉐이크’다. WHO 기준으로 하루 첨가당 섭취 상한은 50g, 이상적으로는 25g인데, 콜라 한 캔에 이미 25g이 들어있다.

늘 주목받는 식단이 궁금하다. 오늘 아침에는 무얼 먹었나? 조찬 미팅이 있어 호텔 뷔페를 이용했다. 가성비는 좀 떨어지는 식사였지만.(웃음) 로메인을 깔고, 그 위에 연어, 토마토, 키위, 달걀, 그릭 요거트를 올려 한 접시로 끝냈다. 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아침엔 두유에 에스프레소 한 샷 넣어 두유 라테를 마신다. 이걸로 단백질 9g 정도를 섭취한다. 여기에 그릭 요거트나 달걀을 곁들이면 아침 단백질 목표인 20g 정도를 쉽게 채울 수 있다. 점심에도 프로틴 바와 두유 한 팩으로 간단히 먹는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자극적인 음식을 먹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강조해왔다. 어떤 원리인가? 단순당이나 술처럼 쾌락을 주는 음식을 섭취하면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노력 없이 얻은 도파민은 급격히 치솟았다가 곧바로 떨어지며 뇌에 고통을 준다. 도파민 수치가 기준선보다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식욕이 촉진돼 가짜 배고픔이 생긴다. 결국 스트레스를 풀려고 먹는 맵고, 짜고, 단 음식이 되레 스트레스를 주는 셈이다.
음식 외에도 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많다. 노화를 늦추는 메커니즘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대체로 30대 중반부터 신체와 인지 기능이 해마다 1%씩 떨어진다. 이 속도를 0.5%로 줄이는 게 일반적으로 말하는 저속노화다. 그런데 100점을 110점으로 끌어올리는 방법도 있다. ‘액티브 에이징(active aging)’이다. 인지 활동, 신체 활동, 사회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기능을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방식이다. 난 이 두 가지를 모두 운영할 수 있는 선순환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지’와 ‘향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액티브 에이징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굵고 길게 살아가는 삶의 모델이 이미 일본에 있다. 요양 시설이나 데이케어 센터에서 지내는 80대 중반 어르신들은 여전히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2014년 선배 의사 한 명과 강원 평창군에서 ‘평창 코호트’라는 연구를 진행했다. 독거 어르신을 대상으로 주 2회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했는데, 실제로 10년 이상 신체 기능이 향상된 사례가 관찰됐다. 몸을 움직이고 경제 활동을 하면 굵고 길게 살 수 있다.
저속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면? 많은 사람이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운동할지’에만 몰두한다. 삶은 나무와 같다. 흙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 뿌리는 삶의 원칙, 줄기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습관이다. 대부분 겉 모습, 즉 열매에 집중한다. 러닝을 하고, 건강식을 먹으니 잘 살고있는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핵심은 흙과 뿌리, 줄기다. 토양이 비옥해야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듯,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이 긍정적이어야 좋은 생활 습관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그래서 “내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What matters?)”부터 알아차려야 한다. 관점과 원칙이 건강하게 세워지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쌓이면, 100세에도 잎이 무성한 튼튼한 나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