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감 EP. 1 송길영 작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두 사람, 송길영 작가와 강민서 박사가 그리는 내일.

호명과 선언 사이, 송길영 작가
왼쪽 소매에 ‘MINING MINDS’라는 문구를 수놓았다고 들었다. 어떤 의미인가. 사람의 마음을 캔다는 의미다. 그게 내 직업의 시작이자 이유였다.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감정, 생각, 선택의 흔적을 읽는 일이니까. 그래서 ‘데이터 분석가’보다는 ‘마인드 마이너’라는 수식어를 더 좋아한다. 늘 사람의 마음과 사회현상,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시기는 예측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팬데믹 초기에 비대면 문화가 그렇듯 빠르게 자리 잡을 줄 몰랐던 것처럼.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맞다. 더구나 요즘은 기술이 사회를 바꾸는 게 아니라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일종의 공진화다. 너무 덥고 불편하면 우리는 기술을 찾게 된다. 단열이 잘된 집, 태양광, 지열 등의 기술은 사회의 필요가 먼저였고, 기술은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거다.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등장하고, 그걸 쓸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 수요가 다시 기술을 발전시키는 구조다. 그래서 지금은 예상보다 빠르게, 더 많은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기술은 급변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일상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겉보기에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을 수도 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유비쿼터스. 우리는 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똑같이 출퇴근하는 일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일상은 매 순간 바뀌고 있다. 예전엔 포토샵에 능숙한 사람이 잘나갔지만, 지금은 AI가 리터치를 대신한다. 직업도, 기술도 빠르게 생기고 사라진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에 있든 계속 ‘현행화’한다는 것이다. 익히고, 갱신하고, 나를 새롭게 정비하지 않으면 금세 도태된다.
2024년에 발간한 저서 <시대예보: 호명사회>에서 ‘이름이 사라지고 직무만 남은 사회’를 거론한 바 있다. 요즘 가장 주목하는 호명 방식이 있다면? 요즘은 누군가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전화번호보다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묻는 것이 자연스럽다. 인스타그램 계정엔 그 사람의 취향과 일상,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연락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을 설명하는 ‘이름’처럼 작동하는 셈이다. 팔로우 버튼 하나에도 고민이 따르는 건,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나와 어울릴지 먼저 따져보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를 소개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어디 다녀요?”라는 질문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거기서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이 먼저다. 회사명보다 구체적인 역할이 중요해졌다. 말과 태도, 소비한 콘텐츠와 쌓아온 기록까지, 우리는 이미 ‘호명될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바뀌었고, 이제는 그 이름에 담긴 실질이 곧 신뢰가 되는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서 가장 날카롭게 사람을 나누는 ‘호명 방식’은 뭘까. 젠더, 계층, 학벌, 지역 같은 범주로 묶는 건 점점 더 갈등을 낳는 방식이다. 이건 호명이 아니라 분류다. 나는 ‘불러주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구조가 되어야 진짜 ‘의미 있는 호명’이 가능하다.
2023년에는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핵개인화 시대’라는 단어를 대중에게 처음 설파했다. 개인이 더 이상 집단의 일부가 아니라 고유한 존재로서 삶과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고 드러내는 시대를 일컫는다. 이때 핵개인화 사회에서 중요한 건 ‘연결’이라고 했는데, 연결이 점점 SNS와 알고리즘으로만 이뤄지는 이 시점에서 진짜 연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무작위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닌 ‘감도와 결이 맞는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오랫동안 함께해온 도반들과 공부하고 있다. 그들과의 연결은 소개로 이어지고, 서로 잘 아는 사람의 신뢰를 통해 확장된다. 지인의 지인은 톤이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에서 만남이 시작될 순 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의 진짜 연결은 삶을 공유할 수 있는가에서 판가름 난다. 그리고 그런 연결 방식이 바뀌면서, 과거처럼 보편적이던 어떤 말의 무게 역시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예전만큼 실감 나지 않는 사회적 단어도 있나. ‘성공’이라는 말이다. 과거에는 재무적 성취가 기준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성공했네”라는 말이 가끔은 ‘(그 직장에서) 탈출했구나’라는 의미로 뒤바뀌기도 한다.(웃음) 가치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이가 자기만의 기준으로 일의 이유를 다시 묻는 시대다. 당신은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나. 사람의 마음을 알고, 배려할 수 있게 되는 이 일이 좋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결국은 누군가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다.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나 역시 배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지금은 ‘시대의 마음’을 읽고 있다. ‘시대예보’ 시리즈도 그 관찰의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최근 양산에서 강연했는데, 설에 제사를 지냈다는 사람이 20%뿐이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80%에 달했는데, 그만큼 사회적 합의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흐름을 기록하고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관찰자 위치에서, 지금의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나. 굳이 정의하자면, 나는 ‘발견하고 선언하는 사람’이다. 과거엔 소속이 곧 정체성이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을 인식하고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다. 나는 그걸 계속 배우고,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송길영 빅데이터 분석가이자 저술가. 사회의 말과 행동 속에서 시대의 무의식을 읽어내는 통찰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호명’, ‘핵 개인’ 같은 개념을 통해 기술과 인간, 사회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 흐름을 날카로우면서 유연한 언어로 풀어낸다. 저서 <시대 예보: 호명사회>를 비롯한 다수의 강연과 칼럼, 데이터를 통해 시대의 마음을 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