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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린가드의 뉴 챕터

FC 서울 캡틴 제시 린가드가 확장해나가는 축구, 그리고 제2의 삶.

더블브레스트 슈트 셋업 모두 Bottega Veneta,
레더 슈즈 Ferragamo.

3월 말이라 겨울 서리가 채 가시지 않은 일요일 아침, 201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이하 ‘맨유’)의 스페셜리스트이자 ‘삼 사자 군단’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그리고 지금은 FC 서울 주장인 제시 린가드가 스튜디오를 찾는 날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얼굴은 2017년 올드 트래포드 위에서의 앳된 모습이었다. 장난기 넘치면서도 다혈질적 면모, 화려한 몸선의 춤까지. 약 8년이 지나 마주한 린가드는 조금 달라 보였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만큼 얼굴과 체격에는 그간의 세월이 촘촘히 드러났다. 그는 말없이 나를 보자마자 악수를 건넸다. 눈매는 전날의 빅 매치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전날 대구FC와 치른 경기에서 3대 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전반 페널티킥 성공과 후반 페널티킥 실축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간 터였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한 후부터는 린가드 특유의 재치와 에너제틱한 무드가 느껴졌다.

촬영이 끝난 뒤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의 말투는 사뭇 진지했다. 화두는 바로 전날의 플레이였다. 그라운드 위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비결을 묻자,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축구는 역동적 스포츠예요. 항상 성공할 수는 없죠. 그래서 정신력을 갈고닦는 게 중요해요. 그만큼 힘들지만요.” 축구의 역동성을 이야기할 때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경기 스케줄, 훈련량이 많아서 지치곤 해요. 육체적 스트레스로 시작하지만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감사한 건 ‘축구선수’ 라는 어릴 적 원대한 꿈을 이뤘다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필드로 나서면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지죠.”

린가드는 2000년 맨유 유스에 입단한 직후 폴 포그바, 라벨 모리슨 등과 함께 2010-2011 시즌 FA 유스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한 바 있다. 맨유 유스의 중심이자 잉글랜드 국가대표의 찬란한 유망주였던 셈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축구 외 영역에는 열정을 쏟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축구에 재능이 있다고 처음 느낀 순간이요? 아마 거의 태어난 직후부터일 거예요. 14개월부터 축구를 접하고 다섯 살 때 로컬 팀에 들어갔어요. 그때부터는 리버풀 FC나 첼시 FC 같은 유명 구단이 스카우트를 해가죠. 그러다 저도 아홉 살 때 처음 계약을 하게 됐어요. 그 후 정상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죠.”

생애 가장 긴 전반전을 겪다

맨유 1군에 콜업된 유망주였던 그가 궤도에 올라 선 시점은 다름 아닌 루이스 판 할 감독의 부임이었다고 했다. 레스터 시티 FC, 버밍엄 FC,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에 임대를 전전하던 린가드는 판 할의 부름에 붉은 악마(The Red Devils)의 일원으로 데뷔한다. “데뷔하자마자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입었어요. 6개월 동안 출전할 수 없었죠. 이후 구단과 계약 해지까지 우려했지만, 놀랍게도 판 할 감독은 챔피언스리그에 나를 기용했어요. 감사한 일이죠.” 2014년 8월, 스완지 시티와의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에서 그는 선발 출전했지만 전반 24분 무릎 부상으로 교체 아웃됐다. 프로 데뷔 속에서 설렘이 아닌 아쉬움을 경험한 셈이다. 그리고 그 고배 속에서 판 할은 스물한 살의 젊은 유망주에게 단맛을 처음 느끼게 해주었다. 자연스럽게 지나온 감독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지만 세세한 답변을 듣기는 어려웠다. 이전 소속 감독이나 선수를 되도록 거론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은 각기 다른 훈련 방식으로 나를 이끌어준 분들이에요. 경기장 안팎에서 내가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케어해주셨죠. 언제든지 필요할 때 서슴없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그의 찬사가 과거형을 나타내는 것인지 묻자, 린가드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물론 지금은 연락을 안 하니까 과거형이지만, 언제 봐도 우린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예요.”

와이드한 라펠 재킷과 니트 톱 모두 Ferragamo, 네크리스 Tom Wood.

두 번의 FA컵 결승, 영광과 쓴맛 사이

그렇다면 그의 프로 선수 커리어 중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두 FA컵 경기를 꼽으며 찬찬히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2016년 우승한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연장전이었다. 린가드는 이날 교체 투입된 이후 연장 후반전 강렬한 발리슛으로 우승을 견인했다. 교체 멤버였던 그가 ‘FA컵 히어로’로 자리매김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2018년 첼시와의 결승전이었다. 이날 맨유는 첼시에 0대1로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고, 린가드는 경기 후 자신의 SNS에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느낀 최악의 기분’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해당 결승전에 대해 성숙해진 답변을 덧붙였다. “경기에 패배했을 때는 어쨌든 ‘레슨’이라고 생각해요. 실패를 곱씹다 보면 결과 이상으로 배워가는 게 있거든요.” 그는 이런 종류의 감성적 회상에 미련을 갖지 않는 듯 보였다.

“성인이 된 선수가 7년 동안 톱이 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에요.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외로운 길이라도 늘 스스로를 희생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죠.” 린가드는 자신의 인간관계가 매우 좁다고 덧붙였다.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 3~4명만 있으면 충분해요.” 그는 SNS, 경기장 속 유쾌하고 서글서글한 모습에 오해를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해하면 뭐 어때요?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내가 진지할 때는 돌변한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축구만큼은 결코 장난스럽게 하지 않거든요. 물론 그 외 영역에서는 젊고 짜릿하게 살고 싶어요. 되도록이면 24~25세처럼 젊게요.(웃음)”

“친구들은 내가 진지할 때 돌변한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축구만큼은 결코 장난스럽게 하지 않거든요. 물론 그 외 영역에서는 젊고 짜릿하게 살고 싶어요. 되도록이면 24~25세처럼요.”

지금 그가 가장 고대하는 것들

작년 2월, FC 서울이 제시 린가드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이 이뤄진 데에는 선수 본인이 역제안을 넣었고, 상당한 연봉 삭감까지 감당했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K리그에서 역사상 가장 높은 네임 밸류의 등장이기도 했다. 린가드는 구단이 자신을 데려온 이유에 대해 ‘경험’을 꼽았다. 선수로서 경력 자체도 많지만 맨유 시절 빅 매치를 소화한 경험을 높게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구단의 37대 주장으로서 승리를 이끌어내겠다는 일념도 함께 전했다. “지난 시즌 (구단은) 최종 순위 4위를 기록했어요. 이제 우리에게는 우승만 남았어요.” 은퇴에 대한 현실적 이야기도 오갔다. ‘언젠가 은퇴하면 축구계를 완전히 떠날 것’이라고 했던 맨유 시절과 달리 지금의 린가드는 축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은퇴한 선수들은 보통 골프를 치거나 방송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축구계에서 좀 더 액티브한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요. 지금까지 해온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그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이번에는 축구가 아닌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린가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죠. 하나뿐인 딸, 나를 알아주는 친구들, 이런 잡지 화보 촬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매일 아침 눈뜰 수 있음에 감사해요. 어쩌면 죽으면 인간이 아닌, 나무로 태어날지도 모르잖아요. 인간으로 지내는 지금 이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감사히 살아가야죠.”

“어쩌면 죽은 뒤 인간이 아닌, 나무로 태어날지도 모르잖아요. 인간으로서 지내는 지금 이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감사히 살아가야죠.”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박배 헤어 문민경 메이크업 김신영 스타일링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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