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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뜨거운 여성 러너 5

달리고 뛰어넘는다. 다섯 명의 여성 육상 선수가 말하는 러닝의 맛과 멋.

블랙 컷아웃 톱 Courre`ges, 복싱화 Adidas,
볼륨 퍼 스커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혜정 PARK HYE JEONG

해남군청 소속 멀리뛰기 선수.

나라는 러너

초등학생 때 재미로 지역 육상 대회에 나갔다. 대회에서 한 체육 중학교 코치님의 눈에 띄었고, 제대로 육상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쉬고 싶을 때 쉬어도 되고, 소시지 먹으면서 운동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넘어갔다. 뭣도 모르고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예상과 다른 환경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기록은 뛰어봐야지, 이 목표는 이뤄봐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 마음은 여전히 나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한 동료를 많이 만났고, 자기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운동할 때는 열심히 운동하고, 쉴 때는 좋은 음식을 먹고 푹 잔다. 술을 마시거나 늦게까지 친구를 만나는 등 다음 운동에 지장을 주는 행동은 지양한다. 쉬는 날에도 아침이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한다. 요즘은 유다빈밴드의 ‘LETTER’를 듣는데, ‘빛나는 날을 허락해주세요 … 나의 창틀에도 가끔 햇빛이 반짝일 수 있다면’이라는 가사에 위로를 받는다. ‘박혜정’을 빨리 말해 생긴 ‘애정’이라는 별명처럼 운동을 향한 애정은 피곤한 아침 눈도 번쩍 뜨게 한다. 곧 열정으로 변환되는 애정이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목적지

요즘 부족한 부분인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해 30m, 50m, 70m를 달리는 짧은 스피드와 미니 허들을 추가하면서 뛰어오르는 훈련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물론 지칠 때도 있다. 그때마다 ‘24시간 중 N시간, N분만 참으면 되는 건데’라고 생각하며 이겨낸다. 곧 끝나니까. 이것만 하면 쉴 수 있으니까. 최근 <테니스 이너 게임> 이라는 책을 봤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능력을 갖춘 뒤 현재에 몰두하면 이완된 집중과 함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최근 서천 대회에서 완벽하게 해내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탓에 근육도 수축되고 더 긴장했다. 평소에 아쉽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실전에서는 한 템포 여유를 두고 자연스럽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6m라는 기록을 넘어서고 싶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생각하는 멀리뛰기 선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태극 마크를 달고 1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3등을 하더라도 그만둘 때 후회 없는 결과를 만들고 싶다.

후드 드레스 Michael Kors, 니하이 부츠 Ferragamo,
실버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지은 KIM JI EUN

전북개발공사 소속 단거리 및 허들 선수.

나라는 러너

스스로를 ‘노력형 선수’라 정의한다. 강한 의지와 악바리 근성이 가장 큰 재능이다. 실업팀 생활을 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훈련했고, 부상을 막기 위해 관리와 재활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노력 없이 얻는 것은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힘든 순간을 버텨왔다. 러닝은 단순히 경주를 위한 운동이 아니다. 매년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자체가 삶이 되어야 한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늘 압박감을 느꼈다. 운동이 전부였기에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힘들 때마다 나를 강하게 다그치기도 했다. 러닝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변화는 ‘완주’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경기든 훈련이든 끝냈을 때 느끼는 보람과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목적지

최종 목표는 다시 한번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라스트 댄스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은퇴 전에 꼭 400m 54초, 400m 허들 59초대라는 개인 기록을 달성하고 싶다. 경기에서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을 때의 짜릿함, 모두가 인정해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22년째 현역으로 뛰고 있지만 경기장에 서면 늘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서곤 한다.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배우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필수지만, 결국 즐기는 사람이 가장 멀리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현정 LEE HYEON JEONG

영동군청 중장거리 선수.

나라는 러너

나에게 러닝은 ‘태양’이다. 가까이 가면 뜨겁지만 태양이 없으면 우주가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늘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남달랐고, 공부보다 운동에 더 흥미를 느꼈다.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4등만 했다. 매번 시합이 끝나면 아쉬웠고, 자주 울었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등수를 기록할 때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보다 1등을 하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쉽게 1등을 했다면 벌써 그만뒀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4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영 선수 이야기인 <4등>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누구보다 공감되고 안타까워 펑펑 울었다. 건강한 욕심으로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 무너질 때마다 긍정적인 말로 나를 다시 일깨운다. ‘할 수 있다’고 말하면 그 말은 내 귀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들으면 놀랍게도 기분이 좋아지고, 달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운동선수가 아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나만의 팁이다.

목적지

처음에는 막연히 전국체육대회에서 1등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운동선수라면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 출전은 해봐야지’라는 마음이다. 나이가 들수록 근력은 약해지고, 지구력은 좋아진다. 30세 전에는 국가대표로 출전해보고 싶다. 중거리 육상을 하다가 마라톤에 도전한 이유다. 국내에서 가장 큰 경기인 전국체육대회를 마치면 시즌이 종료돼 휴가를 받는다. 지난해 800m와 1500m 경기를 뛰고 쉬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노는 것보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다. 당시 2주 후 ‘2024 JTBC 서울마라톤’을 목표로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휴가 기간에 길게 뛰는 연습을 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3시간 이내로 완주하는 서브 3를 즐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자부 4위를 기록했다. 또 4위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였기에 그 어떤 휴가보다 달콤하고 값진 경험이었다. 재밌고 짜릿한 중거리와 성취감을 주는 마라톤을 병행하면서, 은퇴하기 전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고 싶다.

큐빅 디테일의 블랙 톱 Sandro, 바이커 쇼트 팬츠 Nylora,
트랙 톱 저지 Adidas, 보잉 바이커 선글라스 Gentle Monster,
앵클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한송 KIM HAN SONG

인천 남동구청 여자 육상부 소속 단거리 선수.

나라는 러너

유년 시절부터 달리기는 ‘하고 싶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부모님께 하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도 달리기였다. 뚜렷한 꿈은 없었지만,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좋았다. 러닝을 하면서 스스로 한계를 깨는 과정도 즐거웠다. 달리기를 하면서 가장 크게 성장한 부분은 인내심과 절제력이다. 기록은 땀을 꾸며내지 않는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생활이 철저해야 하고, 매 순간 스스로를 감독해야 한다.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은 대학교 4학년 첫 경기였다. 원래 200m 경주를 피하는 편이었지만, 마지막 학년이라는 생각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 도전이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200m에도 흥미가 생겼고, 더 넓은 가능성을 보게 됐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제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스스로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목적지

목표는 늘 명확하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 그리고 11초 벽을 깨는 것. 한때 슬럼프에 빠져 기록이 13초대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중심을 잡고 달리기에 집중했다. 달리기는 순간의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경기장에서 10여 초를 위해 모든 생활을 조절해야 한다. 식단은 물론 생활 패턴 하나하나가 기록과 직결된다. 경기 전에는 절대 인스턴트 음식을 먹지 않는다. 대신 생선과 채소 위주 식단을 유지한다. 훈련 스케줄도 철저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운동을 하고, 일요일에만 휴식을 취한다. 쉬는 날에도 스트레칭은 필수다. 부상이 가장 큰 변수이기에 몸을 확실히 풀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루틴 중 하나다. 경기가 가까워질수록 부담감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컨디션이 좋고 연습 기록이 잘 나올 때는 기대가 크지만,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높을수록 부담도 커진다. 하지만 그 기대감과 부담감은 목적지를 향하는 새로운 동력이 된다. 앞으로도 조급해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기록을 깨는 데만 집중하고 싶다.

김애영 KIM AE YEONG

시흥시청 육상단 소속 단거리 선수.

나라는 러너

처음부터 달리기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남보다 잘해서 시작했지만, 잠시 그만둔 후에야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행위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이후로는 온전한 ‘나의 육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달리기는 노력의 결과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더 의미 있고 뿌듯하다. 물론 준비를 철저히 했음에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힘들지만, 그런 과정조차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요소다. 달리기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노력’과 ‘겸손’이 깊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교만함에 빠지지 않고 늘 부족한 점을 찾는 것,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곧 겸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훈련 중 가장 힘든 건 인터벌이다. 짧은 시간 동안 전력을 다해야 하는데, 심폐 지구력이 약한 내게는 매 순간 큰 고비다. 가장 중요한 건 달리는 순간의 즐거움이다. 오직 즐기는 사람만이 이 길을 계속 달려갈 수 있다고 믿는다.

목적지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누군가는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지만, 내가 바라보는 가장 높은 곳이기에 언제나 달릴 뿐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수다. 수면, 식단, 훈련 루틴까지 모든 것이 달리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운동선수로서 삶은 치열하지만 단순하다.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순간의 유혹도 이겨내야 한다. 건강한 마음가짐도 필수다. 선수권 대회에서 코치님이 해주신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당시 나는 상대적으로 어린 고등학생 선수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때 코치님이 “스타트 라인에 서는 순간, 나이와 경력은 의미 없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선수다”라는 말을 해주셨고, 불필요한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다. 지금은 이전보다 가볍되 뜨거운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지칠 수도 있지만, 꼭 끝을 보고 싶다. 나중에 이 길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에디터 박찬, 김지수 사진 양중산 헤어 이봉주 메이크업 김신영 스타일링 이필성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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