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의 색
생각하는 박신양, 그 이상의 기록.
11월이라기엔 봄처럼 포근한 아침, 우리는 4시간 거리에 위치한 경북 안동의 한 작업실로 향했다. 자동차 한 대에 몸을 욱여넣은 채 달려온 나와 스태프들은 서로가 생각하는 인터뷰이를 말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 가지 교집합이 있다면, 그가 확실한 ‘에고(ego)’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내 머릿속 박신양은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작업실에 다다르자 옅은 유화물감과 에스프레소가 뒤섞인 향이 났다. 수십 점의 그림과 다채로운 물감, 창밖 너머 낙엽 진 산책로와 유유히 흐르는 좁은 강. 작업실 주인보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잠시나마 공간을 향유했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헐렁한 셔츠 위에 입은 진녹색 재킷과 투박한 뿔테 안경. 비록 지난 30년 넘게 드라마에서 봐온 조각 같은 얼굴은 없었지만, 인사를 건네는 그의 말투에서 잔잔한 여유가 묻어났다.
박신양은 인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있는 그대로 자신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림 그리는 일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찾아왔는지, 그리고 공백기 동안 어떤 감정이었는지. “근래 연기가 아닌 예술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장르를 바꿨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뭔가를 바꾼 적은 없어요. 흐름을 타다 보니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게 된 것뿐이죠.” 신념에 가득 찬 그런 중요한 말을 이어가면서도, 그의 손은 손님에게 내어줄 빵과 과자를 찾느라 바빴다. 그런 모습에서 이제는 엄격한 배우가 아닌 친근한 삼촌이 그려져 묘한 웃음이 났다.
촬영에 돌입하기 전, 말수가 적어진 그를 설득하기 위해 “멋진 것보다는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우르는 화보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자, 박신양은 “아주 어려운 주제를 고르셨네. 그래도 멋있는 게 더 중요하죠”라고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오랜만에 본 미소 띤 입가에서 <범죄의 재구성> 속 ‘최창혁’ 특유의 털털하고 유머러스한 말투가 아른거렸다.
촬영이 끝날 즈음 노을이 불그스름하게 불타올랐고, 저물녘 몸이 움츠러드는 가운데 서로의 대화는 더욱 깊어졌다. 주로 나눈 대화 소재는 그림 그리는 일상이었다. “(작업실이) 한적하고 넓어서 좋아요. 특별히 서울에 일이 없으면 거의 여기서 그림을 그리죠. 꽤 먼 거리지만 이제 기차타고 오가는 일이 익숙해졌어요.” 그는 기차 안에서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같은 니체의 책을 읽는다고 덧붙였다.
자거나 산책할 때가 아니면 줄곧 그림 작업에 매진한다는 박신양에게 “생일에 뭘 하면서 보냈는지”, “여가 시간에 주로 하는 취미가 무엇인지” 같은 질문은 무용해 보였다. 그의 나이는 56세.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세기의 로맨티시스트였던 ‘한기주’ 역을 맡은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얼마 전 생일을 보낸 그를 보며 문득 나이 들면서 변해가는 가치관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박신양은 “그림을 그리면서 불분명했던 추상적인 것들을 자각하기 시작했어요. 삶과 앎.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런 가치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못 쓰고 살잖아요. 지금은 불분명한 것들을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천천히 설명했다.
박신양은 10년간 150점 이상의 그림을 그리며 지난 4월 30일까지 경기도 평택 엠엠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 <제4의 벽>을 선보였다. 그는 1990년대 러시아 유학 시절 힘이 되어준 친구 키릴이 그리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점차 그 감정의 흐름을 좇게 되었다. ‘김홍도’ 역할을 맡은 SBS <바람의 화원> 속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목이다. 극 중 스승 ‘김홍도’는 도화서 생도들에게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신윤복’은 이에 “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일 것이다”라고 답한다.
박신양에게도 그림은 그런 가치를 띤다. 마음속 관계를 무형의 선과 면으로 나타내며 흔적을 남기는 행위. 박신양은 동양화가 아닌 서양화를 택했지만, 그때의 신윤복처럼 마음속에서 본질과 추상을 끊임없이 메워보려는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중요한 가치가 있잖아요. 작가로서 지난 기억과 감정에서 창작의 근거를 가져오지만, 그건 향수나 침잠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긴 시간 동안 나와 타인은 무엇이고, 이들은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작용하는지 고민해왔어요.” 창작 기준으로 삼는 가치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이제는 창작을 위한 감정이 어느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요. 이때의 감정이 싸구려 부류라고 볼 수 있을까 싶죠. 하지만 감정의 힘은 이성적 논리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왜 감정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축소할까?’, ‘왜 모든 사람의 감정은 저마다 다른 것일까?’ 이런 복잡한 고민을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연기도 그렇게 스스로 질문해야 배우의 시각을 담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가 배우 활동으로 사유의 과정을 설명해준 덕분에 어렵던 이야기가 차츰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배우는 자신의 감정을 간단히 대답하라는 종용을 받지만, 작가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게 다른 부분이에요. 감정은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책으로 길게 기록할 수밖에 없었죠.” 지난해 11월, 박신양은 인문학자 김동훈과 함께 <제4의 벽>을 펴냈다. 지난 전시명이기도 한 제4의 벽(The Fourth Wall)은 본래 연극 용어지만, 그는 오히려 이 제목에서 ‘미술적 실존’을 느낀다고 했다. “‘절벽 끝에 선 투우’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죠. ‘상상과 현실’이라는 엄청난 주제가 들어 있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그 원리를 그림 속에 대입하고자 노력해요.”
그림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박신양. 사욕이 아닌 온전한 감정으로 작품을 채우고 싶어서였을까. 이에 대해 그는 “‘가격’에 집중하면 그림 자체의 감동과 의미가 사라지고, 그림이 주는 감정과 메시지가 잠식당하게 돼요. 그래서 (작품을) 판매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자 하죠.” 박신양은 또한 “예술가는 연기자와 달리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과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전시와 판화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과 작품을 공유하면서도 원화는 판매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그림을 팔지 않으며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계속해서 이 길을 나아가고자 합니다. 제 생각과 의지의 방향을 유지하기 위한 도전이라고 믿거든요.”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아이웨어 Plume, 이너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왼쪽 _ ‘피나 바우쉬 4’, 162.2×130.3cm, 2017 by 박신양
오른쪽 _ ‘움직임 연구 30’ 2000×2400cm, 2024 by 박신양
조금 더 깊숙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된 박신양에게 연기 활동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그는 열연했던 작품으로 인해 얻은 것도 많지만, 분명 잃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배우는 배역을 통해 알려지는 직업이잖아요. (배우가 역할을 잘 수행할 때) 대중은 그 배우를 연기자로서는 이해하지만, 사람으로서는 오해하게 되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특히 그를 힘들게 한 사연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지만, 박신양은 일말의 틈도 주지 않은 채 지난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은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는 뜻에 대해 항상 ‘이해한다’는 말로 결부시키진 않으니까.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좋은 점은 더 ‘나’에 가까운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건 참 새로운 국면이죠.”
박신양은 11월 14일 영화 <사흘>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사흘>은 죽은 딸의 장례 중 심장에서 깨어나는 무언가를 막기 위한 구마 의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투를 그린다. <박수건달> 이후 11년 만에 출연하는 영화이자, 데뷔 후 처음 도전하는 오컬트 장르다. “‘과연 오컬트 장르와 부녀의 애틋한 휴머니즘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그런 실험정신 때문에 도전했죠. 오컬트 영화는 분위기, 악마나 영혼의 정체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이 보통이거든요. 다른 종류의 정서적 개입이 쉽지 않은 장르죠. 그런 점에서 <사흘>의 기획은 새로웠어요.” 그는 이 작품을 택한 이유에 대해 나지막이 설명했다. 반나절 동안 그림에 대해 열정적으로 논하던 그가 연기 이야기에 돌입하자 또 다른 영역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목을 가다듬은 박신양은 이번 <사흘>의 ‘차승도’를 이해하는 시작점이 ‘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빠의 심정이 어떤 것일까?’라는 의문점이었다고 고백했다. “작중 의사인 승도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딸에 대해선 절대적 애착을 지닌 아버지예요. 그런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는 파국을 상상했죠. 무엇보다 관객들이 수긍할만한 캐릭터가 되어야 했어요.”
그는 이러한 당위성이 배역뿐 아니라 작품 전개에서도 필수적이었다고 상기했다. “우리는 악마의 존재를 구체화해야 했고, 그 악마가 벌이는 짓이 무엇인지 얘기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악마가 ‘왜 하필이면 차승도(박신양)를 꼽아 괴롭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야 했어요.” 그는 “악마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 내면까지 이해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어디에도 물어볼 데가 없으니까”라고 토로했다.
아이웨어 Laurence Paul,
이후로도 박신양은 여태껏 만난 그 어떤 배우보다 배역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재밌게도 ‘작가 박신양’이라는 모습으로 귀결되었다. ‘왜 꼭 둥근 형태의 사과를 그려야 하는가?’, ‘썩은 형태의 사과는 그
림이 될 수는 없는가?’ 20점이 넘는 연작 <사과>를 그릴 때 제기한 그의 질문이 차츰 다시 와닿는 순간이었다. ‘영화’와 ‘그림’이라는 두 세계. 박신양은 그 가운데서도 늘 스스로 질문했고,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
“<사흘>을 촬영하면서 10시간짜리 회의를 100회 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죠. 오컬트물의 본질은 무엇인지, 오컬트물과 휴머니즘이 어떻게 병행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한두 번 회의로는 되는 게 아니거든요.” 소탈하게 웃는 중년의 그를 보며 20여 년 전 <범죄의 재구성> 촬영을 위해 하루 9시간 이상씩 여관방을 잡아 회의한 젊은 박신양이 보였다. 당시 신인이던 최동훈 감독은 어느덧 상업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다. 고단했던 <범죄의 재구성> 촬영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자못 반가워하다가도, 금세 “영화를 할 때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돼요”라며 엄격히 말을 이었다.
“‘본질’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단어예요. 뭘 하더라도 본질이 빠지면 겉모양만 있다는 거잖아요.
참 고단하지만 본질을 찾는 것만큼 재밌는 일은 아직 없어요.”
“아까 ‘본질’이라는 말을 꺼내셨는데, 이전이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단어예요. 뭘 하더라도 본질이 빠지면 겉모양만 있다는 거잖아요. 참 고단한 일이지만 (본질을) 찾는 것만큼 재밌는 일은 아직 없어요.” 준비한 질문이 끝나갈 무렵 창밖은 이미 어두컴컴했다. 도로에 인접해 있음에도 이따금 귀뚜라미 소리만 적막을 깼다. 이곳에서 홀로 그림 그리는 일상, 새롭게 본질을 좇는 일이 외롭지는 않았을까. “당연히 외로웠죠. 그림은 타인에게 도움 받을 수 없는 작업이니까요. 하지만 계속 물고 늘어진 것 같아요. 외로움도 사람의 본능 중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믿거든요.” 녹음 정지 버튼을 누르고 정리하는 내게 그는 불현듯 말했다. “외로움은 사유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고독의 시간 속에서 얼마만큼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어떤 모티브를 찾을 수 있느냐는 자기에게 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