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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의 시작과 끝

에르메스의 이퀘스트리언 메티에 부서는 말로부터 시작됐고, 말을 위한 물건을 만들며, 말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끌로에 노베쿠르 디렉터를 만났다.

Selle Rouge © Nacho Alegre

에르메스에 첫발을 들인 게 바로 이퀘스트리언 메티에 부서예요. 그 뒤로 고객 경험 부서와 리테일 머천다이징 파트를 거쳤고, 이퀘스트리언 메티에 파트로 복귀해 디렉터 자리를 맡고 있죠. 여러 부서의 경험이 현재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운 좋게도 여러 부서를 이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어요. 이퀘스트리언 메티에에서 에르메스의 경력을 시작했지만, 고객과 매장에도 관심이 갔어요. 승마가 에르메스의 뿌리고 장인정신이라면 고객과 매장은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한거죠. 어떻게 보면 에르메스의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한 셈인데, 덕분에 브랜드 내 얽히고설킨 구조를 살뜰히 파악할 수 있었고, 각 단계를 자연스러운 상황을 통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퀘스트리언 메티에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요?
이퀘스트리언 메티에 안에는 다양한 세계가 존재해요. 먼저 에르메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말에 관한 것이 있죠. 안장・굴레와 관련한 모든 용품, 말을 탈 때 입는 옷이나 필요한 도구 등을 포함하죠. 1920년대부터는 반려견 컬렉션도 선보였어요. 말의 굴레를 만드는 노하우를 활용해 반려견의 하네스 같은 용품을 제작하는 거죠. 다를 것 같지만, 상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에르메스는 마구 제조업으로 시작해 근본을 잊거나 잃지 않고 지금까지 영겁의 역사를 이어오며 브랜드를 확장했어요. 전통과 혁신, 기능과 패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죠.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통은 진보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맥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화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뜻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 치우치기보다 동시대적 사고로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해요. 우리 부서를 예로 들면, 파트너 기수와 긴밀한 소통을 중요시합니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펼치는, 그런 방식. 결국 기능을 충족하는 디자인이 탄생하는데, 이런 제품은 종류를 불문하고 에르메스의 순수한 미학을 투영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어지죠. 1930년대 에르메스 캠페인에서도 ‘기능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문구가 있었어요.

얼마 전 경마공원을 방문했어요. 경기 전 기수와 말이 관객 앞을 나란히 걷는데, 긴장감 속에서도 말과 기수마다 친밀의 기류가 각각 다르더라고요. 승률을 보지 않고 (봐도 잘 모르지만), 관계가 더 돈독해 보이는 쪽에 베팅했어요. 결국 승리했죠. 기수와 말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느낀 지점이에요. 실제 기수의 의견이 반영된 제품을 소개해주세요.
프랑스어로 커플은 말과 타는 사람의 조합을 뜻해요. 안장을 일컫는 새들은 프랑스어로 연결 고리라는 의미고요. 잘 만든 안장은 말과 타는 이를 유연하게 연결해준다고 해석할 수 있겠네요. 달리는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말과 사람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지 않나요? 말은 말을 할 수 없으니 타는 사람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최근 선보인 포부르 안장도 파트너 기수의 의견을 반영해 만든 거죠. 말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물리적 거리를 좁혀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장 시트를 더 깊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여러 패널로 이루어진 안장을 하나로 통합했는데, 말과 사람이 서로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거죠.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 행사에서 장인이 안장을 만드는 모습을 봤어요.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일반 안장과는 다른 점이 느껴지더군요.
에르메스 안장은 가죽부터 달라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최고급 가죽을 써요. 풀 그레인 레더, 그러니까 가벼우면서도 마감 처리를 하지 않은 가죽을 사용해요. 코팅하지 않아 가죽의 흠결을 숨길 여지조차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안장에 사용하는 가죽은 새것보다 누군가 사용하던 가죽을 선호해요. 시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결이 묻어나기 때문이죠. 안장을 만드는 제작 공정도 특별해요. 말의 등 실루엣에 99개 지점을 맞춘 뒤 정확하게 그 형상을 재현하죠. 이렇게 만들면 말 등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요. 말의 컨디션이 달라졌을 때 수정도 쉽게 할 수 있고요. 진정한 명품은 수리가 가능한 제품이에요. 이퀘스트리언 메티에뿐 아니라 에르메스의 모든 제품은 언제나 수선을 거듭하며 세월의 가치를 담습니다.

오늘 대화에서 “기능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됐어요. 이퀘스트리언 메티에의 아이템이 딱 그래요. 승마를 위한 옷이지만, 일상에서 입고 싶을 만큼 멋지고요. 전문가 입장에서 일상 속 적합한 제품을 추천해주세요.
이퀘스트리언 메티에의 아이템은 모두 착용감이 편해요. 기능을 우선으로 만든 것이라 그렇죠. 세탁도 수월하고 야외 활동에도 특화되어 있어요. 그렇기에 일상에서는 더없이 잘 어우러져요. 개인적으로 말을 탈 때나 타지 않을 때, 늘 입고 챙기는 제품은 케이프예요. 특히 자전거 탈 때 아주 좋아요.

케이프 코드 시계와 샹당크르 주얼리가 잘 어울려요. 말이나 승마를 모티브로 만든 제품 중에서는 어떤 걸 좋아해요?
말 입에 물리는 재갈을 잠금쇠 부분에 차용한 가방을 특히 좋아해요. 델라 카발레리아 같은 가방 말이죠. 재갈 모양 잠금쇠로 가방을 여닫을 때의 느낌이 정말 좋아요. 말과 관련한 도구나 용품이 메탈 디테일로 승화된 경우가 많아요.

승마와 관련한 단서가 에르메스 컬렉션 전반에 녹아 있어요. 옷은 물론 시계와 스카프, 주얼리, 가방 등 제품을 가리지 않죠. 다른 부서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나요? 에르메스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영감의 원천이 지천으로 널렸다는 거예요. 19세기부터 다양한 오브제를 수집해온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을 포함해 과거 컬렉션을 전부 볼 수 있는 아카이브도 있어요. 공방을 방문하기도 하고, 에르메스 파트너 기수와 대화도 많이 하죠. 말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도 충분하고요. 특별히 제가 어떤 도움을 주지 않아도 에르메스에는 각자 방식으로 영감을 얻을 만한 재료가 풍부해요.

마지막으로 에르메스의 DNA를 한 줄로 정리해볼까요?
‘Less is more.’ 에르메스는 순수한 디자인을 추구해요. 불필요한 것을 모두 제거했을 때 기능이 돋보이고 그 바탕에 있던 순수한 미학이 드러나면서 시간을 초월한 디자인으로 귀결되죠. 찰나의 시간, 한때의 유행, 단발성 이벤트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세대에 걸쳐 물려주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요.

Chloé Nobécourt © Lee Whittaker
Selle Rouge © Freddie Barbera
에디터 홍혜선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LUXURIOUS BOLDNESS ARCHIVE CHIC BOLDNESS AND 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