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피티 시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보낸 올여름 가장 강렬한 나날.
매년 1월과 6월 밀라노 맨즈 컬렉션이 시작되기 직전 이탈리아 피렌체는 ‘피티 시티’가 된다. 남성복 박람회인 피티 이마지네 워모(Pitti Immagine Uomo)가 열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션 경향을 소개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컬렉션과 피티 워모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참여 브랜드의 성격이나 분위기, 프레젠테이션 방식, 구성 모두 확연히 구분된다. 컬렉션이 콘셉트를 담은 ‘쇼’라면, 피티 워모는 박람회에 가깝다. 각 브랜드의 부스를 통해 수주가 활기를 띠며 새로운 계절을 위한 준비가 이뤄지는 것. 3일간 피티 워모를 목도하며 잘 차려입은 남성과 클래식 아이템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피티 워모에서 발견한 새로운 변화와 주목해야 할 브랜드, 그리고 피티 워모를 빛낸 피티 피플(pitti people)을 소개한다.
STEADY AND STRONG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리넨 슈트와 피케 셔츠, 레더 아우터와 슈트의 조합을 주력 스타일로 내세웠다. 컬렉션 면면에는 복숭아, 자몽의 섬세한 파스텔 톤이 중성적 느낌을 자아냈고 니트웨어는 지난 시즌보다 다양한 스티치를 도입해 더욱 섬세한 형태를 완성했다. 마치 “이탈리아 남자는 이렇게 옷을 입어”라고 말하듯, 남자라면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아이템과 스타일링의 정수가 담겼다.
NEW BRAND
피티 워모 하면 슈트를 차려입은 멋쟁이와 격식 있는 남성복을 다루는 브랜드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슈트와 셔츠 등 정통 신사복 시장이 축소하며 피티 워모 역시 캐주얼 브랜드가 강세다. 그중 편안하고 입기 좋은 옷을 만드는 중국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독특한 프린팅 기법과 해체주의 방식으로 디자인을 완성한 ‘JDV’, 일상과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옷에 그대로 투영한 ‘Valleyouth’, 패딩 소재를 얼기설기 엮어 미래지향적 미학을 선보인 ‘Raxxy’ 등 신선한 브랜드가 대거 참여했다. 당장 구매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드는 아이템이 한가득이었지만, 현장 구입이 어려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길을 옮겼다.
SHOW & EXHIBITION
피티 워모 기간에 맞춰 피렌체 곳곳에서 행사가 열렸다. 이번 시즌 피티 워모의 게스트 디자이너로 마린 세르가 참여했다. 아이코닉한 초승달이 각인된 여권 케이스 초대장을 받아 마린 세르의 피티 워모 첫 번째 여정에 동행했다. 피렌체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유서 깊은 대저택 빌라 디 마이아노(Villa di Maiano)에서 펼쳐진 마린 세르의 2025 S/S 컬렉션은 고풍스러운 공간과 완벽하게 어우러졌고, 현악사중주 연주로 시작된 쇼 오프닝은 시간적・문화적 경계를 초월한 듯했다. 첫 번째 룩은 예술적 주얼리 톱과 관능적 신체 곡선이 돋보이는 후프 스커트로 시작됐다. 퍼플・캐멀・레드 등 진한 컬러로 물든 광택 가죽 아이템은 마린 세르의 이상향인 화려함과 우아함에 대한 비전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번 피티 워모의 가장 큰 환대가 아니었을까? 폴 스미스가 31년 만에 피티 워모를 다시 찾았다. 브랜드의 1960년대 아카이브에서 영감받은 이번 컬렉션을 위해 폴 스미스 경은 직접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1960년대 런던의 정취를 품은 하운즈투스와 프린스 오브 웨일스 원단으로 제작한 테일러드슈트, 꽃무늬 데님 초어 재킷, 시그너처 패턴으로 디자인한 오버사이즈 트렌치 코트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선보였다. 폴 스미스가 쌓은 영겁의 역사가 견고한 유산으로 거듭났다.
PITTI PEOPLE
피티 워모의 ‘꽃’으로 불리는 피티 피플을 직접 마주했다. 소싯적 매거진 표지 커버를 장식할 정도의 압도적 포스를 뿜어내는 이탈리아 멋쟁이들을 멋있게 담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피티 워모에서 직접 담은 피티 피플의 패션을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