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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지예은

따사로운 햇살 같은 그의 지금, 이 순간.

시스루 톱과 스커트 모두 Gayeon Lee,
블랙 슬리브리스 원피스 Ganisong,
롱부츠 Dr. Martens.

화보 촬영 경험은 많지 않죠? 오늘 촬영은 어땠는지. <SNL 코리아>나 다른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느낀 것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많이 달랐어요. 혼자 찍으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시크한 표정도 지어야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서. 저는 사실 무표정이 어렵거든요. 그래도 하다 보니 몸이 풀린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도 느꼈는데 MBTI 앞자리도 ‘I’고, 내향적인 편이잖아요. <SNL 코리아>만 보면 대중은 상상하지 못할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밝은 모습을 끌어오려고 해요. 일이라고 생각하고 ‘쉬는 건 집에서 하자’ 다짐하는 거죠. 현장에선 최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려고 노력합니다.

<SNL 코리아>는 시즌 3부터 합류해 시즌 5까지 세 시즌을 함께하고 있어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기회였어요. 대학교 때 연기를 시작하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연기자로서 빛을 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포기하고 싶고 ‘이 길이 맞나’ 고민할 때 합류하게 됐어요. 오디션 소식을 듣고 꼭 붙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 절박함을 PD나 작가님들도 느꼈나 봐요.
느끼지 않았을까요. 연습실을 빌려 매일 밤새우며 준비했거든요. 오디션 전날도 밤새 연습하고 새벽기도 갔다가 다시 연습한 후 오디션 현장으로 갔어요. 그날은 너무 떨려서 잠도 안 오더라고요.

프로그램과 함께할 수 있던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밝은 에너지. 이런 말 해도 되나.(웃음) 제 자신이 호감형이라고 생각해요. 매체로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만, 만난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좋아하게 만들 자신이 있어요. 솔직하고 투명한 게 강점이죠.

그 덕에 데뷔 6년 차에 <SNL 코리아>를 만나게 됐어요. 최근 들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는데, 기다림의 시간은 어떻게 견뎠나요?
합류 당시에는 이 프로그램에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코미디를 정말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시트콤도 즐겨 봤거든요. 좋아하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이 가장 컸어요. 물론 다른 배우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할 때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죠. 그럴 때마다 ‘어떤 역할이든 내게 주어진 걸 감사히 하자’, ‘열심히 하다 보면 각자 때가 있을 거다’ 하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코미디를 좋아해서 팀에 더 합류하고 싶었던 건가요?
잘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학교 다닐 때 ‘코미디, 코미디’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사실 대학교 ‘연기 실습’ 수업에서는 F를 맞았어요. 제가 있던 팀은 잘해서 쇼케이스(특별 공연)까지 했는데 저도 모르게 재밌는 연기만 했던 거죠. 교수님은 제게 잘하고 있지만 너무 자신 있는 것만 하려한다고, “<맥베스> 같은 비극도 해봐야 하지 않겠니” 말씀하셨어요. 그 순간에는 교수님이 정말 원망스러웠죠. 후배들과 다시 수업을 들어야 했으니까. 다시 수업을 들으면서 <유령>이나 <고도를 기다리며>, <버지니아 울프> 등 깊은 감정선을 가지고 제 이미지와 정반대 캐릭터 위주로 했어요. 그때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하고 비극의 재미를 느꼈죠. 후배들과 많이 친해지는 계기도 됐어요.

어떤 부분에서 단단해지는 걸 느끼나요?
내면이나 연기 모든 면에서요. 공개 코미디는 못하면 끝이거든요. 그냥 서로 믿고 하는 거예요. 초반에는 떨려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지금도 당연히 떨리지만, 좀 더 대담하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참여한 연극 중 <모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그중 주인공보다 단역 캐릭터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 일인 다역을 맡았다고 했는데, 그래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와도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나 봐요.
저는 큰 욕심이 없어요. 그게 장점이라고도 생각해요. 살면서 너무 욕심을 부리면 힘들어지더라고요. ‘소소한 행복을 찾자’는 게 모토예요. <모모>는 학교에서 했던 큰 공연 중 하나였어요. 소설책과 대본을 모두 읽었는데, 주인공 ‘모모’가 나한테 어울리는 배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할 땐 냉정해지는 편이에요. 대신 자신있는 캐릭터 3개 정도 준비해 오디션을 봤고, 그 역할은 다 붙었어요.

재밌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알아주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지금은 그냥
연기하는 게 행복해요.

심사하는 분들도 인상 깊었을 것 같아요. 대다수가 주인공을 욕심 낼 때 비교적 작은 역 3개를 보여준 거 잖아요. 그 배역으로 오디션을 본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비비걸’이라는 인형 역을 포함해 아이들 무리 중 잘난 척하는 아이, 구경 온 마을 관광객 중 하나라든지. 공연 중간중간 짧게 나오지만 극을 환기시키는 인물이거든요. 자신 있었어요.(웃음)

나의 강점을 아는 건 배우가 갖춰야 할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SNL 코리아>는 공개 코미디로 진
행하는 코너가 있는 만큼 한 캐릭터에 순간적으로 몰입해야 할 때가 많을 텐데, 자신만의 팁이 있나요?

외적인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옷도 트레이닝복을 입으면 편안해지고 갖춰 입으면 긴장하게 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외적으로 먼저 고민하고 학교에서 배운 호흡과 발성 등을 총동원해 몰입해요. 목소리가 주는 힘이 크다고 느끼고요. 스타일링과 톤 두 가지로 거의 구현해요.

‘초롱이 여친’을 연기할 때 실감 나는 연출을 위해 아디다스 레깅스도 직접 준비했다고요. 원래도 비주얼적인 부분에서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편인가요?
학교에서 공연할 때 모든 준비를 저희가 다 했어요. 의상부터 무대 꾸미는 소품까지 동묘로 사러 가기도 하고, 주워 오기도 하고. 이걸 어디서 구했나 싶을 정도로 소파, 간이 계단 등 별의별 게 다 나와요. 그때의 경험이 연기할 때 도움이 됩니다. MZ 오피스 ‘대가리 꽃밭’을 연기할 때는 머리핀을 직접 사서 하기도 했어요.

바람직한 연기자네요.
대학생 때는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모하게 의상과 소품을 구하러 다녔는데, 그때 경험이 다 피와 살이 된 거죠.

공감해요. 저도 기자가 되기 전 어시스턴트 일을 하면서 정말 특이한 소품을 구하기도 하고, 당시에는 어렵게 느껴지는 일도 많았지만 지금 다 도움이 되거든요. 인생을 돌아보면 결코 무의미한 일은 없는 듯해요.
맞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어른들이 하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학교를 허투루 다닌게 아니구나 싶었죠. 재밌고 특이한 수업도 많이 들었거든요.

인상 깊은 수업이 있었다면?
‘움직임’이라는 강의에서 봄을 주제로 각자 연기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한 명씩 나가 봄을 표현하는 거였죠. 그때 다른 사람들 연기하는 거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짧지만 강렬했던 연기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보자기 속에 들어가 있다가 확 보자기를 열면서 “봄!”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새싹 같은 느낌을 표현한 거죠.

본인은 그때 봄을 어떻게 표현했어요?
저는 그때도 재밌는 걸 좋아해서 캠퍼스에 돌아다니던 어린이용 장난감 자동차를 활용해 연기했어요. ‘화장하
고 머리를 자르고 멋진 여자로 태어날 거야’라는 가사의 ‘여성시대’ 노래를 틀어놓고 전주 나올 때 차를 타고 나와 춤을 췄죠. 봄이니까 나들이 가는 느낌으로.(웃음)

배우의 꿈을 꾼 건 조금 크고 나서였죠. 원래는 전공할까 고려할 만큼 피아노를 오래 했어요.
처음에 배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못했고, 오히려 아이돌이 되고 싶었어요.(웃음) 3개월인가 댄스 학원에도 다녔죠. 내향적이긴 한데, 조용히 할 건 다한 것 같아요.

‘유난히 내성적이던 지예은’ 이런 느낌인가요?(웃음)
댄스 학원도 춤을 잘 추던 짝꿍을 따라간 거예요. 근데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피아노 학원을 다녔죠.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하고 싶은 건 다하게 해주셨어요. 아마 금방 그만둘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연기는 고3 때 친구 따라 연기 학원에 갔다가 시작했는데, 그때는 입시를 앞둔 때라 어머니도 조금 걱정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를 막을 순 없었죠.(웃음)

피아노는 어떤 계기로 시작한 거예요? 그만둘 때 아쉬움은 없었는지, 진로를 바꾼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궁금해요.
그만둔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소질이 있었나 봐요. 콩쿠르에서 특상도 받았어요. 하지만 연기를 하는 게 더 행복했죠.

배우 할 운명이었군요. 지예은 하면 인디언 보조개가 떠오를 만큼 참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보조개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건가요?
어머니도 살짝 있긴 한데, 제가 웃을 때 좀 세게 들어가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인디언 보조개인 줄도 모르고 싫어
했죠. ‘왜 나만 웃을 때 여기가 들어가지?’ 하면서 살을 채우려고 꼬집기도 했어요. 일부러 입만 웃으려 하고.보조개가 매력적이란 걸 깨달은 지는 얼마 안 됐어요. 귀엽다는 댓글을 보면서 저도 자연스레 좋아졌어요.

지난 3월부터 ‘배성재의 텐’(이하 배텐) 라디오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어요. 처음 도전한 라디오는 어땠나요? 다른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도 배텐을 선택했다고 들었는데.
재밌어요. 처음엔 제 목소리 듣는 게 어색했는데, 시청자들과 바로바로 소통하는 게 즐거워요. 배성재 아나운서님과 케미도 좋은 것 같고요. 제가 라디오를 한 지 얼마 안 돼서 아나운서님이 잘 받아주고 알려줘요. 사연을 읽었는데, ‘역시 한예종, 사연을 남다르게 읽네’라는 댓글을 보고 뿌듯했어요. 칭찬해주시니까 더 잘하고 싶고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배텐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게스트로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남성 청취자가 많아 ‘남심 저격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죠.(웃음)

계획대로 되고 있나요?
아직 모르겠어요.(웃음)

<SNL 코리아>촬영 후에는 거의 매번 참여할 만큼 회식도 즐기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해요. 언제 이렇게 이분들과 만담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거든요.회식 자리에서 인생의 교훈이나 조언도 많이 얻죠. 서로 친해지면 연기 호흡이 좋아지기도 하고요. 오전부터 폭풍처럼 지나간 하루를 풀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가능하면 꼭 참여하려고 해요.

작품 특성상 코믹한 콘셉트를 주로 맡는데, 연기자로서 이미지가 고착될까 봐 우려되는 점은 없나요?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데, 없어요. 오히려 고착돼도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 역시 ‘나’라는 배우를 안다는거잖아요. 재밌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알아주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지금은 그냥 연기하는 게 행복해요.

배우로서 지예은은 이제 시작이에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보면 기분 좋은 배우. 악역을 맡아도 밉지 않고 캐릭터 맛을 잘 살리는 연기자요. 나만의 연기로 잘 풀어내면 악역이라도 미워할 수 없지 않을까요.(웃음)

퍼프 디테일 드레스 Tav,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에디터 김지수 사진 장한빛 헤어 이영재 메이크업 박수연 스타일링 이태희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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