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SKY MORE WILD
추성훈과 나눈 와일드무어 세 잔과 세 가지 이야기.

윌리엄그랜트앤선즈 가문이 60년간 개인 소장용으로 수집한 몰트와 그레인위스키 원액 중 엄선한 ‘에이션트 리저브’ 원액으로 만든 Wildmoor. 몰트 마스터 브라이언 킨스먼이 스코틀랜드의 거친 자연에서 영감받아 탄생시킨 위스키로, 야생의 바람, 짙푸른 이끼, 빽빽한 숲, 거친 해안선 등 자연의 깊고 섬세한 풍미를 경험할 수 있다.
1ST SHOT
와일드무어 23년 다크무어랜드 +
녹슬지 않는 재미

스페이사이드·하이랜드 몰트 위스키 원액과 로우랜드 그레인 위스키 원액을 블렌딩한 와일드무어 23년 다크무어랜드. 아메리칸 및 유러피안 오크통에 숙성한 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시해 깊고 부드러운 바닐라와 셰리 향이 인상적이다.

애주가는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당기는 술이 다르죠. 주로 어떤 순간에 위스키를 찾으시는지. 예전엔 좀 묵직한 얘기를 나눌 때 마셨죠. 근데 최근에는 오히려 즐겁게 마신 기억이 많습니다. 초대를 받는다든지,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많은데 그럴 때 위스키를 챙겨 가기도 합니다.
오늘은 인터뷰를 하면서 마시게 됐네요. 인터뷰 전 미리 오픈해둔 와일드무어 23년 다크무어랜드의 향을 맡았는데, 바닐라와 캐러멜 향이 침샘을 자극하더군요. 향에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런데 또 마셔보면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스파이시한 맛이 있어요. 개성이 분명합니다.
반전이 있네요. 와일드무어가 한국에 출시되기 전 직접 스코틀랜드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확실히 스코틀랜드의 바람이나 습한 공기가 조미료처럼 맛을 살려주는 느낌이 있죠? 그렇죠. 진짜 좋았습니다. 그때의 바람, 물, 나무 냄새, 새소리, 뭐 다 기억납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바비큐할 때 사슴 한 마리를 통째로 돌리면서 구웠거든요. 근데 그거 시간 엄청 많이 걸려요. 그걸 또 추운 밖에서 먹었어요. 앉을 자리도 없었고. 그런데 고기 익는 동안 와일드무어를 마시면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갔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매치되는 느낌, 위스키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 예예. 그 장소, 그 분위기 너무 좋았습니다.

화이트 팬츠 Manner & Dapper.
또 들은 후일담이 있어요. 그곳에서 유튜브를 시작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도 꽤 하셨다고. 거긴 휴대폰이 안 터지니까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이런저런 고민도 나눴죠.
유튜브 하길 잘하신 것 같죠? 그런 말 하기엔 이르지만 뭐, 1~2년 지나봐야 ‘잘했구나’ 말할 수 있겠죠. 반대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즐기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재미있습니다. 사람 만나서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런데 몇 년 후에는 뭐 하고 있을지 모르죠. 세상은 또 바뀌니까.
그렇죠. 쉰 살에 유튜버가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테니. 상상하던 쉰 살과 닮았나요? 어릴 땐 50대면 할아버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요즘은 50대, 60대가 돼도 멋있고 에너지 넘치잖아요. 저도 제가 상상했던 모습은 아닙니다. 확실히 뭘 하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가 있어야 에너지도 생기고.
끌리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는 말씀이죠. 사실 요즘 재미만 가지고 뭘 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고 봐요. 다 힘들지만 열심히 버티고 있겠죠. 근데 그중에서도 뭔가 재미있는 거리가 있을 거란 말이죠. 힘든 게 100%는 아닐 거란 말이에요. 3%, 5%라도 재밌는 뭔가가 분명 있을 거고, 그거를 확장해야 하는 거죠.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 운동 꾸준히 하고, 브랜드도 만들고, 재밌는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합니다. 내가 만든 브랜드의 옷을 누군가 멋지게 입고 있는 모습을 거리에서 보고 싶다든지, 내가 만든 커피를 누가 정말 맛있게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든지. 그런 장면을 상상하면서 계속 움직이는 거죠.
2ND SHOT
와일드무어 30년 러기드코스트 +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선의 거칠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와일드무어 30년 러기드코스트. 스페이사이드 스타일의 클래식 블렌드에 스코틀랜드 섬에서 얻은 피트 원액을 더해 스모키한 풍미가 돋보인다. 깊은 바닐라, 부드러운 셰리 스파이스 향이 특징이다.
영상 촬영할 때 와일드무어 30년에 망고 빙수를 페어링했어요. 전 맛보지 못했는데, 조합이 궁금합니다. 최고 맛있었습니다. 미즈와리로 마시는 것처럼 얼음이 입안에서 살살 녹으면서 위스키 맛이 부드러워져요. 그 뒤에는 망고와 함께 셰리의 단맛도 돌고. 진짜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30년은 피트 향이 살짝 돌잖아요. 이거야말로 스코틀랜드에서 캠핑하면서 마셔보고 싶네요. 저는 30년이 확실히 맛있어요. 딱 완성형입니다. 와일드무어 라인업의 기준이랄까. 와일드무어 30년을 시작으로 23년, 40년도 마셔 보고 취향을 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아까 촬영할 때 30년 마시다가 다시 23년을 마셨는데, 또 다른 맛을 느꼈어요. 오히려 좋았죠.
이런 거네요. 중년이 되어봐야 청춘의 풋풋한 매력을 알게 되는. 그래서 말인데, 유도 선수 시절 사진을 보면 새삼 훈남이었구나 싶더라고요. 최근에 삭발하고나니 그 시절 얼굴이 보이더군요. 30년 만의 삭발이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그래요. “격투기 시작했을 때, 열심히 했던(지금도 그렇지만) 시절 기억이 갑자기 올라온다” 그런 말씀하시는 분이 많아요.
본인은 선수 시절 추성훈을 떠올리면 어때요? 그때는 음, 100프로 한 것 같습니다. 예예. 뭐 그 이상은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20대의 추성훈에게 뭔가 팁을 주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그대로 열심히 해라, 포기하지 말고. 그럼 무조건 성공한다. 그거뿐이죠.
처음 유도복을 입었을 때 기억나세요? 진짜 시작은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 나요.
아무래도 아기 때부터 아버지가 가르쳤으니 그렇겠네요. 그러면 국가대표 시절로 질문을 바꿀게요. 가방과 유도복, 여기저기에 태극 마크가 쫙 붙은 걸 보고 ‘아, 애기 때부터 생각하던 그림이 현실이 됐구나’ 생각했죠. 너무 기뻤는데 그건 잠깐이고. 그 감정은 잊고 ‘그러면 이제 뭘 해야 되지?’를 생각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 부끄러운 시합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저는 추성훈 하면 아직도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라는 KBS 다큐멘터리 속 모습이 떠올라요. 지금의 추성훈보다 진중한 모습, 과묵한 아들의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는 유도하면서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았어요. 그러니 일본에 귀화하고. 또 일본 대표가 되어 열심히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욕도 많이 먹고. 뭐, 솔직히 정말 마음 아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열심히 하면 뭔가 바꿀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습니다. 또 부산시청 소속이던 친구들은 다 알아줬습니다. 제 마음을. 난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악플 다는 사람들, 단 한 번도 저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건, 저에게는 전혀 타격감이 없습니다. 제가 믿는 사람들이 제 마음을 알고 있으니, 아팠지만 괜찮았습니다.
그 시기에 가장 크게 배운 건 뭔가요? ‘자신을 열심히 믿어야 한다.’ 스스로를 믿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제자리에서 흔들리기만 합니다. 자기만 믿고 가는 거, 제일 어려워요. 다른 사람을 믿어야 편해요. 누군가에게 의지하면 뭐든 쉽죠. 근데 실패하면 남 탓을 하기 시작해요. ‘나는 사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이런 말 듣는 거 너무 싫거든요. 길게 보면 한 걸음씩 자기 의지대로 가는 게 원하는 곳까지 훨씬 빨리 도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3RD SHOT
와일드무어 40년 블랙마운틴 +
아버지와 시간

희귀한 그레인위스키 원액과 하이랜드 몰트위스키 원액에 에이션트 리저브의 고스트 스톡 원액까지 추가한 와일드무어 40년 블랙마운틴. 셰리 와인을 담았던 페드로 히메네스 캐스크에서 피니시해 깊고 우아한 풍미를 발산한다.
드디어 40년, 블랙 마운틴입니다. 계속 느낀 건데, 병이 참 독특하고 멋있습니다.
여느 위스키와 다르게 울퉁불퉁하죠. 스코틀랜드 글렌코 협곡의 지질을 표현한 거라고 하더군요. 이 병은 와일드하게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웃음)
40년은 국내 재고가 많지 않은 걸로 알아요. 오늘 더 디스틸러스 라이브러리에서 촬영한 덕에 한 잔 마실 수 있는 행운을 얻었네요. 맛은 어떠세요? 확실히! 이건 자연입니다. 나무, 시가 같은 향도 나고.
농밀함도 있고 풍미의 겹이 훨씬 촘촘해 곱씹게 되는 맛이죠. 이건 자기 전이나 혼자 시간을 보낼 때 마시는 게 좋겠습니다.
딱 40년 숙성 위스키 원액만 사용한 게 아니라 더 오랜 시간 숙성된 원액도 블렌딩했다고 하더라고요. 무조건 오래 숙성했다고 다 좋은 맛을 내는 건 아닌데, 잘 숙성된 건 색도 풍미도 그 시간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이런 게 확실히 사람과 위스키의 닮은 부분 같습니다.
숙성될수록 더 깊고 진해지는 것이 있죠. 본인은 나이가 들면서 더 깊어지는 것이 있나요? 흠.
짐작인데, 예를 들면 최근 아버지를 떠나보내시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졌을 수도 있고. 사실, 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느낀 건 시간이 짧다는 거죠. 예, 확실히 맞습니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워서 더 그랬을 것 같습니다. 추성훈씨에게 아버지가 워낙 큰 존재이기도 했고. 그렇죠. 제가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으니까요.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많은데, 하나하나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말씀은 뭔가요? “당연한 걸 당연 하게 생각하지 말고,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다고 생각해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완벽하게 이해됐어요. 갑자기 돌아가신 게 당시 제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죠. 근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군요. 누구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같은 거네요. 이 말씀도 참 좋더군요. “반드시 어려운 길을 가라.” 살면서 가장 어려운 선택은 뭐였나요? 유도에서 격투기로 전향한 것도, 예능을 시작한 것도 다 도전이었죠. 은퇴하고 다른 길을 가는 건 편해요. 그런데 격투기 선수로 남아 있으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사실 어려운 선택이었어요. 선수로서 성적이 떨어지면 ‘방송을 하니까 그렇지’ 하는 시선도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면 어려운 길이었죠.
선택은 늘 쉽지 않죠.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고민할 때 아버지가 또 한마디 했습니다. “포기해도 괜찮다. 그거는 네 선택이라 내가 막을 수 없다. 근데 네가 포기하는 순간은 누군가 성공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가슴에서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냥 내일 한 번만 더 달려보자. 그리고 다음 날이 오면 또 한 번 달려보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됩니다.
50년의 촘촘한 겹과 그 무게가 느껴지는 말이네요. 아무리 잘난 사람도 갑자기 대단한 자리에 못 올라가요. 하루가 있으니까 10년이 있지, 누구도 하루 없이는 10년으로 건너뛰지 못해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한 겁니다.
그것도 이 위스키와 닮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어떤 재료와 환경, 얼마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추성훈을 만들어준 재료는 뭘까요? 흠… 아버지, 나 자신, 시간, 믿음, 친구. 이 다섯 가지인데, 그것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추성훈 씨를 롤모델 삼는 사람이 많습니다. 본인에게도 롤모델이 있나요? 전 없어요. 그냥 자기 길 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