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비상할 8인의 젊은 얼굴들
거침없이 비상할 8명의 젊은 얼굴을 만났다. 2026년 문턱에서 그들이 꺼낸 다짐.


BALLERINO
PARK YOUNJAE
“214번 박윤재!” 호명되고 무대 위로 달려가면서도 귀를 의심했다. 다섯 살에 발레를 시작한 이후 로잔 콩쿠르 영상을 보며 꿈을 키워왔다. 동경하던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우승이라니. 2025년 2월 8일. 그날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영예로운 상 그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 날이다. 그날만큼은 나를 인정해주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근육이 크고 다리가 굵어 몸짓이 무거워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로잔에서 심사위원들은 내 다리가 “아름답다”고 말했다. 체형이 어떻든 무용수는 각자 개성이 선명할수록 더 빛난다는 믿음에 확신이 생긴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엔진을 하나 더 탑재한 기분이다. 한국인 남성 최초 우승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예전엔 작은 실수에 관대했다면 이제는 엄격해진 나를 종종 마주한다. 연습실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다시 춤추려는 내 모습을 보고 ‘아 내가 진정으로 발레를 사랑하고 원하는구나’라는 걸 깨닫는다. 발레를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지만, 동시에 이런 마음을 경계한다. 집착을 버리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지치면 발레가 싫어질까 봐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붙잡고 늘어지지 않으려 한다. 꾸준함의 힘을 의심하지 않고 나아가려고 한다. 사실 로잔 콩쿠르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 다른 길로 가야 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관객의 환호와 박수, 자유롭게 춤출 때의 희열을 맛본 이상 발레를 놓을 수 없다. 무대에서 춤을 출 때는 ‘별과 가까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할 정도로 스스로 찬란하게 빛나는 기분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발레를 할 이유가 차곡차곡 늘어간다. 이루고 싶은 것도 하나둘 생기고 있다. 최근에는 야닉 르브룅의 작품 〈Human〉을 보면서 ‘죽기 전에 저런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다. ABT 스튜디오 컴퍼니 동료의 버전을 봤는데, 동물적 움직임과 관절의 유연성, 탄력과 강약을 기가 막히게 조율하는 모습에 소름이 돋고 헛웃음이 나왔다. 이것처럼, 앞으로 경험하게 될 레퍼토리와 무대를 상상하면 심장이 뛴다. 요즘은 2026년 1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발레 갈라<더 나잇 인 서울>을 준비하고 있다. ABT 스튜디오 컴퍼니에 합류하 고 처음 오르는 한국 무대라 기대가 크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춤을 즐기는 마음’만큼은 평생 변하지 않길 바란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욕심보다는 발레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화려한 무대에 서지 않아도 그 순정만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고 싶다.
박윤재 무용수들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프리 드로잔 2025’에서 한국인 남성 최초로 우승했다. 동시에 ‘최우수 인재상’도 거머쥐었다. 한국인 수상자로는 1985년 강수진(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시작으로 최유희(2002), 김유진(2005), 박세은(2007)이 있다. 당초 진학하기로 한 뉴욕의 JKO 스쿨 교육과정을 건너뛰고 2025년 9월부터 ABT(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스튜디오 컴퍼니에 입단해 활동 중이다.


ACTOR
HONG MINGI
1월 3일, KBS2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를 선보인다. 내가 맡은 역할은 ‘임재이’. 첫 사극이라 낯선 지점이 많았지만, 재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니 붙잡아야 할 감정의 결이 점점 또렷해졌다. 겉으로는 거칠지만, 그 안에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연을 품은 인물이었다. 그 입체성을 놓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촬영을 준비하며 내가 지나온 작품들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스터디그룹〉, 〈바니와 오빠들〉에서는 청춘의 얼굴을, 〈트리거〉에서는 이전과 다른 이미지를 보여줬다. 특히 〈트리거〉는 대본을 처음 읽을 때부터 속도감이 분명했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든 작품이다. 첫 악역이었지만, 자극적인 감정보다는 인물이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따라가는 데 집중했다. 교실 총기 난사 장면 역시 감독님과 긴 대화를 나누며 만들어갔고, 그 과정을 통해 연기의 범위가 한 단계 넓어졌다는 걸 실감했다. 지금은 ENA 〈존버닥터〉를 촬영 중이다. 사극과는 전혀 다른 리듬의 현장이라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 차이를 빠르게 흡수하려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현장의 긴장감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를 느끼는 순간은 대부분 모니터 앞이다. 자신 있게 했다고 생각한 장면에서도 부족함이 먼저 보이고, 그게 오히려 다음을 준비하게 만든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후회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감독님과 현장, 그리고 그 순간의 나를 믿는 편이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다. 학생 로맨스도, 체격을 살린 역할도 모두 궁금하다. 욕심이 있어서 가능한 한 많은 작품에 도전하고 싶다. 2026년을 앞두고 요즘 가장 많이 떠올리는 질문은 이것이다. ‘다음 장면에서는 어떤 사람처럼 보일까.’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에 더 배우고 싶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으려 한다.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채워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홍민기 넷플릭스 시리즈 <트리거>에서 ‘강성준’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주목받은 신예 배우. TVING <스터디그룹>의 ‘박건엽’, MBC <바니와 오빠들> 등을 통해 청춘 서사의 다양한 톤을 쌓아 왔다. 2025년 1월에는 첫 사극 도전작인 KBS2 <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 ‘임재이’ 역으로 등장할 예정이며, ENA <존버닥터>를 통해 또 한 번 장르 확장에 나서고 있다.


ACTRESS
LEE RE
여섯 살 무렵 TV를 보면서 ‘내가 저 스크린 안에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 ‘예쁘게 웃는 얼굴 콘테스트’에 나갔는데, 세 살 때부터 아동 잡지 모델을 한 경험 덕분에 1등을 차지했다. 1등의 영예는 연기 학원 한 달 무료 수강권. 그 기회로 자연스레 단역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연기를 잠깐 쉬었다. 그런데 TV만 보면 자꾸 연기를 따라 하고, 혼자 있을 때조차 독백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라는 사람한테 이미 연기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촬영장에 있을 때 연기의 진정한 힘을 느낀다. “레디 액션! 카메라 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최면에 걸린 듯 빠져들 때가 있다. 온몸이 떨리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폭발하듯 분출해 캐릭터와 완벽하게 하나 되는 것이다. 상대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이 진짜였다. 그 후 나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정확하겠다. 배우라는 환상에 젖지 않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것.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대학에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이유가 크다. 또래보다 2년 빠르게 입학한 캠퍼스는 아주 커 보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냉랭해 보였다. 알고 보니 대부분 과제로 넋이 나가 있었을 뿐이고, 전국 각지에서 연기가 좋아 모인 사람들이었다. 뭐야? 이거 완전 내가 찾고 있던 존재잖아? 한 가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대학 덕분에 연기가 더욱 재밌어졌다는 점이다. 결국 사람 덕분에 울고 웃는다. 연기가 존재하는 이유 또한 우리의 삶을 비추는 행위니까. 아! 요즘 고민이 하나 더 있다. 사랑이 궁금하다. 다들 사랑이 뭐길래 그렇게 난리인 건지. 과연 나는 2026년엔 사랑할 수 있을까?
이레 2012년 채널A <굿바이 마눌>로 데뷔한 14년 차 배우. 2013년 영화 <소원>에서 아역임에도 풍부한 감정 연기와 주연급 존재감으로 베이징 국제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25년 tvN <신사장 프로젝트>에서 주연급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해 활약 중이다.

FOOTBALL PLAYER
SHIN MINHA
강원 FC에 온 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내가 달고 뛰는 47번은 이 팀에서 의미가 큰 번호다. 처음에는 부담이 컸다. 양현준, 양민혁 등 앞선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팬들의 기대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무게가 나를 더 축구에 집중하게 해준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이 번호가 내가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기준점처럼 느껴진다. 프로 2년 차를 지나며 확실히 배운 것이 있다. 센터백은 그저 막는 포지션이 아니라는 것. 공간을 읽고 라인을 조율하며 팀 전체의 흐름을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빌드업과 시야, 순간적 판단을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족한 부분은 웨이트와 집중 훈련으로 보완하려 한다. “중앙 수비는 리더가 돼야 한다”는 한 선배의 말도 자주 떠오른다.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더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수비 라인을 정리하고 팀을 잡아주는 것도 내 역할이라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경기 뒤 영상을 보면 내 위치가 가장 냉정하게 보인다. 괜찮았다고 느낀 장면도 다시 보면 고칠 부분이 분명하다. 최근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부리람전 역시 쉽지 않았다. 상대 템포가 빨랐고, 수비 간격 유지가 중요했다. 승점 1점의 아쉬움은 있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결과라고 본다. 이제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결과가 갈리기에, 눈앞의 한 경기와 한 장면에 더 몰두하려 한다. 새해에 넘고 싶은 목표는 분명하다. 아시안 게임이다. 선발되는 것이 우선이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즐겨 봤고, 최근에는 파우 쿠바르시의 빌드업과 침착함이 특히 자극이 된다. 김민재 선수의 스피드와 피지컬,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 역시 배우고자 한다. 그런 경기를 볼 때마다 ‘저기까지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씩 채워갈 수밖에 없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잡으며 나아가고 싶다. 지금 보내는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47번을 달고 뛰는 의미도 결국 그 과정에서 완성될 것이다.
신민하 강원 FC 중앙 수비수. 고교 졸업 직후 프로에 데뷔해 빠르게 주목받은 K리그 대표 유망주다. 강원에서 상징적 ‘47번’ 계보를 잇고 있으며, 빌드업 능력과 강한 대인 방어로 ‘제2의 김민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생으로 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소(CIES)가 선정한 세계 10대 유망주 톱 200에 포함된 유일한 K리그 선수다.

RACING DRIVER
LEE KYUHO
포뮬러 리저널과 GB3에 참가할 팀(F4와 F3 사이 등급)을 알아보기 위해 며칠 전 영국에서 테스트를 보고 왔다. 정해진 건 없지만, 드라이버로 합류할 의사가 있는지 대화를 원하는 팀이 있다. 2025년 11월 마카오에서 열린 FIA F4 월드컵에서 열일곱 번째로 시작했던 그리드를 여섯 번째 그리드까지 올려 결승 레이스를 시작했다. 찰나의 실수로 포디엄에 오를 기회를 놓쳤지만, 괜찮다. 오늘만 달릴 건 아니니까. ‘재능과 노력 중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은 이제 의미 없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각자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재능과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선수를 후원하는 기업이다. 선수의 실력이 비슷하다면, 서킷에서 실전 감각을 더 많이 익히는 선수가 포디엄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훈련과 프랙티스(Free Practice), 퀄리파잉에서 차량 손상에 대한 걱정 없이 과감하게 달리는 선수가 가장 먼저 체크 플래그를 통과한다. 서킷을 빌리는 것도, 서킷을 달릴 때 필요한 소모품도, 드라이버와 차량 상태, 랩 타임을 분석하고 서포트해주는 스태프도 모두 자본이 받쳐줘야 한다. 빨리 달리는 것 하나만 몰두하는 선수가 F1에 진출할 확률이 가장 높다. 다른 선수보다 비교적 늦게 레이스를 시작한 만큼 남보다 늦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코너에 부딪히기 직전 브레이크를 밟고, 코너를 나서자마자 재빠르게 속도를 내 상대방을 추월한다. 앞날은 아무리 예상해도 알 수 없다. F1 시트는 선택받은 운명이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단순하게, 담담하게, 담대하게 할 일을 할 뿐이다.
이규호 2024년 유럽 진출 9개월 만에 FIA 카팅 OK-N 월드컵 한국인 최초로 우승해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25년부터 FIA F4 챔피언십(스페인,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활동 중이며, 전 세계 F4 드라이버 중 상위 20인에 선발돼 FIA F4 월드컵 마카오 그랑프리에 출전했다.


오른쪽 _
SKATEBOADER
KANG JUNI
아홉 살이 되던 해 가을, 단짝 친구가 놀이터에 가져온 스케이트보드가 시작이었다. 몇 번 타보니 어렵지 않게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그 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업이 끝나면 매일 양산 워터파크 공원에서 가로등이 꺼질 때까지 넘어지고 뒹굴며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겨울이면 아무것도 없는 공원에서 엄마가 만든 어묵탕이나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챙겨 컵라면을 먹었다. 믹스커피에 찍어 먹던 ‘에이스’ 크래커는 추워지는 이맘때 늘 생각난다. 양산은 스케이트보드 파크가 없어 제대로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때마침, 레전드 보더 크리스 조슬린을 한창 좋아할 때라 그의 주특기 중 하나인 다운(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점프하며 려가는 기술)을 즐겨 연습했다. 넘어질까 봐 무섭지 않느냐고? 전혀. 세 시간, 네 시간 동안 워터파크 공원의 가장 높은 단상에서 뛰어내리며 처음 킥플립 다운을 성공한 순간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는 인복이 많다. 첫 스승이자 형인 이길현 코치님은 전국 방방곡곡 소풍 다니듯 나를 데리고 다니며 함께 보드를 탔다. 길현 코치님 덕분에 스케이트보드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었다. 프로 스케이트보더가 되기로 결심하고, 스케이트보드 파크가 있는 서울로 이사 왔다. 지금은 신정혁 코치님과 함께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도 동행하며, 익숙지 않은 현지 분위기와 대회의 압박감을 케어해준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 주목받는 루키를 뛰어넘어 아시아에서 가장 잘 타는 스케이트보더가 한국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스무 살이 되는 2028년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경쟁한 뒤 전 세계 스케이트보드 신을 이끌 수 있는 아이코닉한 인물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내 이름이 새겨진 시그너처 덱 위에서, 그 모든 꿈을 향해 끝까지 달릴 것이다.
강준이 2024년 세계 최대 아마추어 대회인 탐파 AM에서 우승하며 글로벌 스케이트 신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차세대 선수로 평가받았다. 2025년에는 스케이트보드 최고 권위 대회 중 하나인 엑스게임 오사카 스트리트 종목에서 은메달, WST(World Skateboarding Tour) 기타큐슈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해 최종 7위를 기록했다.


PIANIST
LEE HYUK
“혁이는 음악이 들려오는 곳이면 어디서든 손뼉을 치고 엉덩이를 흔들었지.” 어머니는 울음과 웃음소리로만 구분하던 나의 갓난아기 시절에 대해 종종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음악은 내게 선택지가 아닌 본능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열 살이 되던 해, 잘츠부르크 미라벨궁전에서 생애 첫 협연을 했다. 연주를 마치고 객석을 바라보는 순간, 내 소리가 청중의 표정과 호흡을 바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연주라는 행위는 혼자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교감. 그날로 음악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다짐한 약속이 있다. 과도한 자의식으로 뭉친 나만을 위한 연주는 음악이 아니라는 것. 피아노 소리의 진동이 무대 위에서 멈추지 않고 청중이 앉아 있는 객석까지 닿을 때 비로소 음악의 진가가 발휘된다. 음표 뒤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이 곡은 어떤 풍경을 품고 있을지, 어떤 시대의 공기 속에서 탄생했을지 상상하는 일은 연주자로서 음악을 대하는 중요한 자세이자 연습만큼 중요한 과정이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를 보며 늘 깨닫는다. 세상에 대한 꼬임 없는 가장 순수한 연주자야말로 이 시대 가장 귀한 존재라는 것을. 화려한 연주를 뛰어넘어 친절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 우리 형제가 그리는 다음 장면은 처음 피아노를 마주했던 가장 순수한 시절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서는 무대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으니까!
이혁 2009년 리틀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 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미라벨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2016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최연소(16세)로 우승, 2021년 프랑스 아니 마토 쇼팽 콩쿠르 우승과 2022년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를 공동으로 우승했다. 202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준결승 진출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PIANIST
LEE HYO
일곱 살 터울의 형은 매일 피아노를 연주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기억하는 장면 역시 형이 건반 위에 손을 얹고 있던 모습이다. 그 풍경 속에서 피아노는 자연스레 장난감이 되었고, 나 역시 건반을 두드리며 자랐다. 형과 나는 서로를 어엿한 음악가로 바라보며, 견해가 다르더라도 갈등 없이 각자의 생각을 존중한다. 형은 필요 이상의 기교를 부리지 않는 편견 없는 섬세한 연주를 한다면, 나는 여유가 스며든 과감하고 자유로운 연주를 그린다. 곡에 따라 그 차이가 선명하게 대비되기도 하고, 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하나의 완성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쇼팽 콩쿠르 준결승에서 내가 먼저 연주를 마치고 다음 순서로 무대에 오르는 형과 포옹하던 찰나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의지하는 형제로서, 또 누구보다 깊은 영감을 나누는 동료로서 말이다. 형과 함께 바르샤바에서 지내고 있지만, 나를 가장 뜨겁게 만드는 사람은 부모님이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와 미래도 존재할 수 없듯, 부모님이 내어준 희생과 사랑을 떠올리면 음악가로서 더 높은 곳을 향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곁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건넨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기에 피아노를 경쟁 수단으로 여기지 않으려 한다. 청중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 울림이 작게나마 위로와 힘이 된다면 부와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
이효 2018년 모스크바 뮤지컬 다이아몬드에서 1위를 한 뒤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21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청소년 콩쿠르 3위와 2025년 파리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3위를 했으며, 202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이혁과 함께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한국인 연주자 형제가 동시에 쇼팽 콩쿠르 본선 무대에 오른 것은 2005년 임동혁·임동민 형제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