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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빈을 둘러싼 여전한 것들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컬렉션과 김우빈의 만남.

시어링 에이비에이터 재킷과 셔츠, 니트 베스트,
그레이 플란넬 팬츠, 브라운 첼시 부츠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는 나를 위해 하루에 10분을 쓰는 사람이야.’ 이런 거죠.
남이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든든해져요. 다 연습이고 노력이더라고요.

아직 덥긴 한데, 그래도 오늘은 가을 날씨 같죠? 그렇던데요. 처음엔 촬영하기 위해 나무에 무슨 작업을 한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이 동네에 있는 나무가 전부 가을 색이더군요.
그러게요. 보기엔 좋았는데, 우빈 씨가 두꺼운 옷을 입고 촬영하느라 고생했죠. 전 좋았어요. 감정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됐고. 무엇보다 예쁘더라고요.
우빈 씨가 촬영장에 처음 들어올 때 시트러스 향이 확 퍼졌어요. 분주한 촬영장이 한순간 환기가 됐어요. 상큼한 향을 좋아해요. 후각이 예민해서 향으로 기억하는 것이 많아요. 작품을 할 때도 그 캐릭터에 맞는 향수를 항상 골라서 뿌려요. 시간이 지나 그 향을 맡으면 당시 작품을 준비할 때나 캐릭터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거든요.
옷을 고르는 취향도 궁금하네요. 일단 클래식한 옷을 좋아해요. 평소엔 트레이닝 차림도 즐기고요. 나이가 들수록 더 그래요. 모델 출신이다 보니 예전에는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는 걸 좋아했어요. 과거엔 막 꾸민 듯한 옷을 즐겨 입었다면 지금은 클래식하면서 편안한, 소재가 좋은 옷에 손이 더 많이 가요.
그런 옷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드러내죠. 맞아요. 보면 아시겠지만, 오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랄프 로렌 제품을 입고 왔어요. 절대 이 촬영 때문에 맞춰 입은 게 아닙니다.(웃음) 클래식한 멋을 굉장히 잘 표현해주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고전적이지만 요즘 20~30대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 같고. 무엇보다 제 체형에 잘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랄프 로렌의 온라인 스토어를 자주 찾는데, 오늘 입은 옷도 온라인으로 직접 구매한 거예요. 다양한 컬러의 폴로셔츠만 봐도 설레지 않나요? 이 셔츠를 고를 때도 엄청 고민했거든요.

수작업으로 완성한 스티치 장식이 돋보이는
웨스턴풍 가죽 재킷과 버건디 폴로 스웨터,
베이지 치노 팬츠, 프티 스카프, 브라운 첼시 부츠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모델학과 교수를 꿈꿨다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죠. 인터뷰를 보면 모델 시절을 종종 언급하던데, 그때가 그립기도 한가요? 둘 다 제가 너무 사랑하는 일이고, 그 두 가지 일에 경계를 정하지 않아요. 사실 오늘도 모델로서 카메라 앞에 선 거잖아요. 모델로 섰지만, 또 연기를 하니까. 화보 촬영도 연기하듯 해요. 다만, 패션쇼는 제가 못 한 지 꽤 되어서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한번 서보고 싶어요.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
배우는 어떤 매력 때문에 시작하게 됐나요? 연기는 모델의 연장선 같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모델을 할 때도 항상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콘셉트에 대해 여쭤보고 제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했어요. 표현이 되든 안 되든 제 안에 들어 있는 것을 표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요. 처음 연기를 배울 때는 표현 방식이 다를 뿐 감정을 다루고 걸어가는 길은 어쩌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연기가 좋았고요.
오늘 촬영에서는 어떤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나요? 굉장히 고뇌했죠.(웃음) 30대 중반 남성의 가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일상과는 좀 다르지만.
일상은 어떤가요? 이렇게 각 잡힌 모습은 아니죠. 오늘 화보는 편안함보다는 조금 더 갖춘 느낌이랄까. 의상이 심플하지만 힘이 느껴졌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영화 <무도실무관>이 곧 크랭크인이라 무술을 연마 중이고, 예능 프로그램도 촬영하고 있어요. 나영석 PD님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인데, 사랑하는 멤버들과 함께 출연해요.
사랑하는 멤버? (웃음) 사랑하는 광수 형, 기방이 형, 경수, 저까지 네 사람이 출연해요.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새로울까 봐 걱정도 되고요.(웃음)
<지락실(뿅뿅 지구오락실)>의 남자 배우 버전 같은 걸까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웃음) 평소 거의 이 형들만 만나는데, 허물없이 지내는 형들과 함께 출연하니 방송이지만 일상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형들과 있을 때의 제 모습이 여과 없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수다스럽고, 텐션도 많이 올라가고, 목소리도 막 얇아지고.(웃음) 저한테 이 정도 고음이 있었나 싶을 정도예요.
우빈 씨의 텐션을 높여주는 건 뭔가요? 동료 배우, 아니면 작품 이야기죠. 저도 데뷔한 지 거의 15년 됐고, 작품도 꽤 한 만큼 저희끼리 교집합이 많아요. 그래서 서로 아는 배우나 작품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어요. 최근엔 인성이 형과 (김)성균 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인성이 형이 <무빙>에서 성균 선배님과 호흡을 맞췄는데, 좋았던 경험을 말해주더라고요. 저도 이번에 <무도실무관>을 함께하게 되어 기대하고 있어요.
또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인성이 형, 광수 형, 경수. 정작 저와 제일 친한 형들과 연기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어요. 저희 다 같이 한 작품에 출연해도 좋을 것 같아요. <오션스 일레븐> 같은?
감독님들이 이 인터뷰를 봐야겠네요. 최동훈 감독이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웃음)
차기작 <무도실무관>에서 맡은 이정도 역이 도합 구단이라고 들었어요. 아까 무술 연습 중이라고 했는데, 작품 준비 과정이 녹록지 않겠어요. 태권도, 검도, 유도 세 가지를 동시에 배우고 있어요. 또 역할에 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체중도 늘리는 중이고.
<외계+인 1부>, <택배기사> 등 복귀 이후 액션 신을 더 많이 소화하는 것 같아요. 사실 <택배기사>에 액션이 좀 많았던 터라 당분간 액션물은 피하고 싶었는데. <무도실무관> 시나리오가 너무 좋으니 놓치기 싫더라고요.
어떤 부분에 매료된 건가요? 이야기가 좋았어요. 액션 신이 많긴 하지만, 감독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끌렸어요.
그 메시지가 뭐죠? 아직 공개된 내용이 많지 않아 조심스럽긴 한데, 무도실무관이라는 직업에 관한 이야기예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직업인데, 비정규직이고 되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이에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그 직업을 가진 분이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고요. 제가 맡은 이정도라는 평범하고 건강한 청년이 우연히 이 직업을 알게 된 후 매력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워싱 가공으로 자연스러운 멋을 배가한 바이커 재킷과 셔츠,
체크 패턴 니트 스웨터, 데님 팬츠, 첼시 부츠
모두 Ralph Lauren Purple Label.

<무도실무관> 외에도 <다 이루어질지니>도 벌써부터 기대가 커요. <상속자들>에서 함께한 김은숙 작가,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호흡을 맞춘 수지, <스물>의 이병헌 감독, 이 세분과 재회하는 작품이잖아요. 흥행작의 주역이 뭉치는 셈이네요. 저는 뭐 너무 감사한 일이죠. 지난 작업이 나쁘지 않았기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잖아요. 누구라도 한 쪽에서 반대하면 못 만날 텐데. 첫 만남보다 모든 면에서 수월할 테니 저도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2019년 복귀 이후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는데, 워라밸은 잘 유지하고 있나요? 과거에 비하면 무척 여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과거에는 1년 중 쉬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특히 20대 때는 더 그랬고요. 그땐 제 삶 자체가 일이었어요. 예를 들어, 앞으로 일주일 후 밤 신을 촬영해야 하면 제 일상의 바이오리듬을 바꿔놓기도 했어요. 일부러 밤에 깨어 있고, 해가 뜨면 자고. 이제는 제 삶이 더 소중해요. 물론 일도 중요하지만, 제가 더 소중하거든요. 삶의 균형을 잘 맞추면 일할 때도 도움이 돼요.
일과 건강을 모두 챙기는 게 쉽진 않죠. 신경 써서 노력하는 것이 있나요? 몸에 안 좋은 건 덜 먹고, 열심히 체력 관리를 하죠. 수면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해요.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보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잖아요. 휴대폰 하다가 쓸데없이 버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해요. 아마 지금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제가 제일 건강할 거예요.(웃음)
복귀한 지 4년 정도 됐지만, 저처럼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죠? 그때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게 불편하진 않아요? 뭐 다 아는 이야기니까. 그런 질문을 해주시면 제 복귀가 인상적이었고, 저를 기다려줬다는 느낌을 받아요.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많은 분이 제 건강을 염려하고 응원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고 믿어요.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좀 달라졌겠죠? 아무래도 더 감사한 마음으로 하게 되죠. 건강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 때가 많잖아요. ‘몸이 안 좋아져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못 하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평소엔 잘 안 하잖아요. 저는 건강을 한 번 잃어봤고,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해봤기에 제가 하는 일, 누리는 시간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아요. 이제는 특별한 무언가를 바라기보다는 무탈한 하루를 꿈꿔요. 별일 없는 하루.
그 마음을 지키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죠. 물론 저도 지치고 짜증 나는 순간이 문득문득 찾아와요.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하죠. 전구를 탁 켜듯이 하루아침에 뭔가가 달라지진 않아요. 스님들도 명상하는 게 연습이라고 하잖아요.
명상도 하나요? 매일 하죠. 매일 10분씩. 한 6년 됐어요.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알람을 10분씩 당겨 맞추고 자요. 아침엔 눈을 뜨자마자 앉아서 명상을 합니다. 명상이 무엇보다 좋은 건 자존감이 높아져요. ‘나는 나를 위해 하루에 10분을 쓰는 사람이야.’ 이런 거죠. 남이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든든해져요. 다 연습이고 노력이더라고요. 운전 연습을 하면 실력이 늘 듯이 행복도 연습할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행복을 연습한다… 제가 인터뷰에서 자주 하는 말인데, 일단 하루에 하늘을 두 번 보는 건 제게 엄청난 도움이 돼요. 비록 1~2초지만 마음이 편안해지죠. 쉬울 것 같지만 어려워요. 의지가 필요한 일이죠. 그리고 저와 대화하는 사람을 관찰하려고 해요.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렇고요. 친구와 한참 놀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 친구가 뭘 입고 있었는지도 모를 때가 많잖아요. 상대를 관찰하고 매 순간에 집중하면 그 시간을 더 잘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오늘 관찰한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뭔가요? 가을 색을 입은 나무. 좀 억울할 정도로 가을 같았어요. 되게 더웠는데 말이죠.(웃음)

에디터 정유민, 이도연 사진 김희준 헤어 이유진(아우라) 메이크업 김성혜 스타일링 이혜영, 장빛나 장소협조 그레이니 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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