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걸음. 파라점퍼스와 변요한의 균형.
흔들리지 않는 걸음. 파라점퍼스와 변요한의 균형.

요즘 식단을 따른다면서요? 한창 작품 촬영 중이거든요. 감독님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과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거죠.
굶주림에 통달한 목소리처럼 들리네요. 굶진 않아요. 제육볶음과 된장찌개 대신 삶은 고구마와 방울토마토를 먹으면서 자극적인 맛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뿐이죠. 이제 습관이 돼서 괜찮아요.
오늘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카메라가 있건 없건 집중의 끈을 놓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종종 기분이 좋지 않거나 피곤한 걸로 오해받을 때도 있어요. 촬영 결과물이 잘 나오도록 하는 게 제 임무잖아요. 그래서 진중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 해요. 현장에 적응되면 저도 좀 더 편한데, 화보는 처음 보는 분들과 합을 맞추다 보니 매번 적응될 즈음 끝나서 아쉬워요.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긴장하는 편인가요?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데, 그중 격투기를 예로 들면요. 싸우기 위해 무대에 오르잖아요. 같이 운동하는 선수들을 보면 이기겠다는 투지도 강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간절함과 성실함이 느껴져요. 그들이 얼마나 자기 일을 신성하게 받아들이는지 알게 되면서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을 단 1초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숭고한 마음이 생겼죠. 그 후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의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선수를 좋아해요? 팀호프 식구인 최승우 선수랑 박현성 선수를 좋아해요. 플레이어로서 긴장할 줄 알거든요. 들뜨지 않고 자신의 삶을 꽉 채우는 모습을 보면 응원하지 않을 수 없어요. 굉장히 전사 같은 친구들이에요.

배우에게도 중요한 건 ‘빠따’겠죠. 한 방에 쓰러뜨리는 힘처럼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야 하니까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한 방을 꽂기 위해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용기를 가진 마음이고요. 그 마음을 가지려면 수많은 훈련과 인내, 차분함이 있어야겠죠.
한눈팔지 않고 집중하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네요. 딴짓 안 하는 스타일을 좋아해요.(웃음) 머랩 드발리쉬블리라든가,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 같은 선수가 떠오르네요. 경기를 치르는 과정을 지켜보면 이 사람이 평소 어떤 삶을 사는지 상상할 수 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선수의 유형이 대체로 잘 싸우고, 건강하게 선수 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변요한은 한 방이 있는 배우인가요, 맷집이 좋은 배우인가요? 배우에게도 중요한 건 ‘빠따’겠죠. 한 방에 쓰러뜨리는 힘처럼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야 하니까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한 방을 꽂기 위해 적진으로 들어가는 용기고요. 그 마음을 가지려면 수많은 훈련과 인내, 차분함이 있어야겠죠.
그래서 변요한은 어떤 배우라고요?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는데.(웃음) 무엇이 장점이고 단점인지 분명히 알아요. 그런데 그걸 커밍아웃하고 싶지 않아요. 더 많이 흡수하고, 순수해지고 싶거든요. 주먹이 어느 정도 강도인지, 내가 풀 스파링으로 몇 라운드를 뛸 수 있는지 의식하지 않으려 해요. 확실한 건 더 강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거죠.

‘웬만큼’ 혹은 ‘적당히’로 타협하지 않는 터프한 스타일이네요. 터프함도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용기와 패기를 갖고 싶었고, 지금은 노련해지고 싶어요.
노련해지기 위해 수행하는 훈련법이 있나요? 잘하고 싶어서 분석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만 물다 지칠 때가 많거든요. 그런 시기도 필요했지만, 지금은 최대한 단순하게 접근하려 해요. 변요한이라는 도구를 작품에 어떻게 활용할지 가장 잘 아는 건 감독님이니까, 저는 그 숙제를 잘 풀어가는 모범생이 되는 거죠.
어느덧 한 해가 저물고 있네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타짜: 벨제붑의 노래>를 촬영하고 있어요.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땐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컸죠. 지금은 믿고 함께하기로 한 결정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어요. 너무 즐겁거든요. 빨리 촬영장에 가서 연기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해요.



두려운 순간은 없나요? 첫 촬영 일주일 전부터 압박감이 스멀스멀 엄습하기 시작해요. 대사도 연습하고, 배역에 맞춰 스타일도 연구하다 보면 어디까지 만들어야 완성인지 알 수 없는 늪에 빠지는 시점이 찾아와요. 정말 미칠 것 같은 상태로 첫 오케이 사인받고 나서야 온몸을 옥죄고 있던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되죠.
지금은 좀 살 만한가요? 이젠 두렵지 않아요. 작품에 완벽히 접속되어 있거든요. 다음 신은 ‘어떻게 해결하지’가 아니라 ‘어떻게 끝장낼지’ 연구하는 상태예요.
마침, 오늘은 <중간계> 개봉일이기도 하네요. 한국 최초로 생성형 AI 기술을 도입한 장편영화예요. 뭐든 첫 번째 시도는 큰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 강윤석 감독님도 그런 목표로 만들었고요. <중간계>를 기점으로 분명 한국 영화 산업에도 AI 기술이 급속도로 도입될 거예요.
AI 기술을 활용한 방식은 3D CG 제작 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AI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구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CG로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요. 제작비도 어마어마하게 들고요. 실제로 광화문광장 일대가 <중간계> 촬영지였는데, 정말 조심스러운 로케이션이잖아요. 크리처가 나오거나 자연재해 같은 특수 효과는 AI 기술로 구현하니까, 오로지 스태프와 촬영 장비로 수월하게 진행했죠.
평소 AI 툴을 즐겨 쓰는 편인가요? 저는 한 번도 안 써봤어요. 직접 필사하듯 찾아보는 게 아직 편하더라고요. 언젠가 쓰게 되겠죠.

더 많이 흡수하고, 순수해지고 싶거든요. 주먹이 어느 정도의 강도인지, 내가 풀 스파링으로 몇 라운드를 뛸 수 있는지 의식하지 않으려 해요. 확실한 건 더욱더 강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챗GPT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배우가 생성형 AI 기술을 도입한 영화를 찍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제가 쓰지는 않지만, AI 산업이 우리 삶에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느껴요. 그래서 <중간계>에 참여하고 싶었고요. ‘AI가 인간의 연기에는 침범하지 않는다’ 같은 조건이 있기도 했어요. 저만의 옳고 그름 에 대한 기준으로 시대와 타협점을 찾는 거죠.
이승과 저승의 중간 지점인 중간계의 세계관이 흥미롭더군요. 이승에서 죽은 영혼이 저승이 아닌 중간계라는 세계에 불시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재물, 권력, 외모, 직업 등 이승에서 소유한 그 어떤 것도 의미 없는 곳이죠. 제가 연기한 ‘장원’은 국정원 블랙 요원인데 직업에 걸맞은 근엄한 모습은 거의 첫 장면뿐이고, 영화 내내 살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다니기 바빠요.
장원이 극에서 어떻게 보였으면 했나요? 이승에서 카리스마 넘치던 블랙 요원도 중간계라는 세계에서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인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풍 쏘고 불을 내뿜는 저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고작 인간이 뭘 할 수 있겠어요. 살고 싶은 건지, 저승사자가 무서운 건지 이유도 모르고 아등바등 뛰는 거죠.
많이 뛴 덕분에 밥맛은 좋았겠는데요? 촬영 밥차 음식이 진짜 맛있는데, 저는 잘 안 먹는 편이에요. 배부르면 하품만 나오고 집중이 잘 안 되거든요. 촬영장 가기 전에 충분히 먹고 죽어라 뛰는 거죠.



배우는 40대부터라는 변요한의 포부를 기억합니다.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네요. 배우가 멋있게 늙어가는 첫 번째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더 신중한 선택과 집중을 할 거예요. 좋은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좋은 배우란 무엇인가요? 지나간 세월의 모든 기록을 섬세하게 기억하는 사람. 감정을 연기에 잘 녹여내고 자신의 치부도 용감하게 인정할 수 있다면 좋은 배우가 아닐까요.
반대로, 30대의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요? 인생은 설계한 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어요.

배우 혹은 인간으로서 기준이 있나요? 기준은 늘 바뀌어요. 그 시기의 내 상태를 건드리는 감정 혹은 작품, 사람이 기준이 되기도 하죠.
평소 옷에 관한 기준이 있다면요? 오늘 입은 파라점퍼스는 알래스카의 항공 구조대에서 영감받아 만들었는데, 변요한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래전부터 파라점퍼스를 즐겨 입었어요. 옷에서 고집이 느껴졌거든요. 스쳐 지나가듯 봐도 파라점퍼스인 걸 알 수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뚝심을 존경해요.

스스로 볼 때 변요한은 어떤 스타일이 가장 잘 어울리나요? 입는 옷에 따라 걸음걸이도 달라지고, 마음도 달라지잖아요. 그런 걸 즐기려 해요. 배우는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야 하니까. 사실,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은 파라점퍼스인 거 알죠?
곧 겨울입니다. 연말 계획이 있다면요? 쉼 없이 달리는 게 목표예요. 일하는 게 좋거든요. 일에 집중하다 보면 곧 연말이겠네요.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미리 해피 뉴 이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