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의 질주’ 리차드 밀
21세기 워치메이킹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리차드 밀.
그들의 새로운 작품에 대적할 만한 시계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손목에 올린 슈퍼카
RM65-01 AUTOMATIC SPLIT-SECONDS CHRONOGRAPH MCLAREN W1
리차드 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분야와의 왕성한 협업이다. 물론 여기서도 일반적인 경우와는 큰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제조상 어려움으로 다이얼 속에 협업 대상의 이름을 추가하거나 약간의 장식을
더해 신모델을 출시하는데, 리차드 밀은 언제나 파트너의 특징이나 니즈를 최대한 이끌어낸 완전히 새로운 설계의 시계를 선보인다.
최신작은 2016년부터 함께해온 영국 슈퍼카 제조사 맥라렌과의 네 번째 작품 RM65-01 맥라렌 W1.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맥라렌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강력한 최신형 머신 W1에서 영감받았다. 맥라렌은 리차드 밀을 위해 2022년 W1 최초의 클레이 모형에 대한 독점적 접근 권한을 제공했고, 이 슈퍼카를 위에서 내려다본 오버헤드 뷰를 기반으로 새로운 RM65-01의 디자인을 시작했다. 덕분에 상단 베젤은 기존 토노형과 달리 맥라렌 W1 기술의 정수 중 하나인 공기역학적 설계를 이어받아 위아래로 오목하게 들어간 유선형 라인으로 완성했다. 디자인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변화를 줬는데, 5등급 티타늄을 베이스로 리차드 밀의 자랑 카본 TPTⓇ 를 인서트로 조립한 이중 베젤로 외곽 라인을 더욱 날렵하고 선명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또 미들 케이스와 백케이스 역시 일반적 카본 복합 소재에 비해 파손 응력에 25% 더 강하고 미세 균열에는 200% 강한 카본 TPTⓇ 를 사용해 뛰어난 강성과 가벼운 무게를 동시에 충족했다. 시계를 옆에서 보면 모든 파트가 손목에 자연스럽게 감기도록 곡면을 이루는데, 사실 가공하기 어려운 이 신소재를 복잡하고 섬세한 형상으로 제작했다는 점만으로도 리차드 밀의 시계는 이미 독보적이다.
무브먼트가 들여다보이는 오픈워크 다이얼 역시 티타늄이다. 맥라렌 W1 휠에서 영감받은 브리지 라인이 눈에 띄며, 슈퍼카의 대시보드를 연상시키는 화려하지만 직관적인 디자인이다. 특히 크로노그래프 첫 번째 초침과 인덱스는 하늘색으로, 두 번째는 주황색으로 색을 나눠 2개의 랩타임을 손쉽게 측정 가능하다. 무엇보다 내부에 탑재한 칼리버 RMAC4는 리차드 밀에서도 가장 복잡한 무브먼트 중 하나로 워치메이킹의 정수인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를 베이스로, 자동차 변속기처럼 크라운을 빼지 않고도 크라운 중앙 버튼을 눌러 와인딩(W), 날짜(D), 시간 조정(H) 포지션을 조정 가능한 펑션 셀렉터 기능을 갖췄다. 여기에 특허받은 고속 와인딩 메커니즘 까지 더했는데, 케이스 옆면 7시 방향의 오렌지 컬러 버튼을 누를 때마다 크라운이나 로터의 도움 없이도 빠르게 태엽을 감을 수 있다. 이처럼 RM65-01 맥라렌 W1만의 유니크한 기능 외에도 5등급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한 무브먼트 플레이트와 브리지, 이 강력한 소재를 기존 클래식 머티리얼과 동일한 수준으로 마감한 뛰어난 피니싱, 고급 크로노그래프 구동 방식인 칼럼 휠과 수직 클러치, 3만6000vph로 진동해 10분의 1초까지 측정 가능한 하이비트 밸런스 휠 등 기본 스펙도 뛰어나다. 가히 손목에 차는 레이싱 머신이라 불릴 만한 맥라렌과의 협업 모델은 500개 한정 수량 제작한다.
가장 강력한 초경량 시계
RM27-05 FLYING TOURBILLON RAFAEL NADAL
리차드 밀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자 브랜드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을 위한 최신 모델로 80개 한정판이다. 아마도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이 시계의 무게는 스트랩을 제외한 총중량이 11.5g에
불과하다. 리차드 밀은 2010년 그를 위해 최초의 나달 시계를 제작한 순간부터 초경량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도전 했다. 격렬한 움직임과 섬세한 컨트롤이 동반되는 테니스 선수의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도록, 아니 손목 시계를 착용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도 없는 시계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리차드 밀은 합성 소재 전문 기업인 노스 씬 플라이 테크놀로지(NTPTTM)와 5년의 연구를 거쳐 개발한 신소재 카본 TPT B.4Ⓡ로 미들 케이스와 백케이스를 결합한 모노블록 케이스를 제작했다. 기존 카본 TPT보다 밀도는 4% 높고, 15% 더 단단 하며, 마모 저항력은 30% 증가해 가공은 어렵지만 강성을 희생하지 않고도 더 얇게 완성할 수 있었다. 실제 케이스의 전체 두께는 7.20mm로 울트라 씬에 속하는 수치다. 또 기록적인 가벼움을 위해 전면 글라스도 일반적 사파이어 크리스털 대신 스크래치 방지 코팅한 경량 PMMA 폴리머 소재를 사용했다.
그 안으로 마치 다이얼을 가로지르는 쇄기처럼 디자인한 V자형 브리지 양쪽 끝으로 5N 골드로 코팅한 화려한 배럴과 투르비용 브리지가 자리한다. 덕분에 굉장히 공격적이고 역동적 인상이 물씬 풍기는데, 플라잉 투르비용 과 함께 두께가 0.72mm에 불과한 플라잉 배럴을 개발해 완성된 RM27-05 무브먼트는 두께 3.75mm, 중량 3.79g으로 혁신적 울트라 플랫이자 울트라 라이트 칼리버다. 게다가 엄격한 내구성 테스트를 거쳐 1만4000g의 가속도를 견디는 놀라운 충격 저항성을 지녀 경쟁 상대를 찾을 수 없는 놀라운 내구성까지 갖췄다. 이는 강력한 회전과 충격이 지속적으로 전해지는 테니스 경기를 끝낸 후에도 시계가 안정적으로 구동하기 위한 필수 스펙 이다. 그리고 이를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대회에서 라파엘 나달처럼 직접 시계를 착용하고 라이브로 증명한 건 리차드 밀 시계가 유일하다.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최고’, ‘최대’, ‘최초’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이처럼 시계 역사의 혁신을 주도하는 리차드 밀과 그랜드슬램 단식 우승 22회를 거머쥔 라파엘 나달은 14년간 우리에게 브랜드의 슬로건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면과 작품을 수없이 보여줬다. 얼마 전 테니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라파엘 나달이 은퇴하며 이제 그의 손목에서 활약한 RM27-05 플라잉 투르비용 역시 전설로 남을 만한 작품이다.
리차드 밀의 고전
RM17-02 MANUAL WINDING TOURBILLON TITANIUM
스포츠 워치에 투르비용, 그것도 스켈레톤 무브먼트는 흔한 조합은 아니지만 오히려 리차드 밀에는 탄생부터 함께해온 고전적 스타일의 타임피스라 할 수 있다. 특히 카본이나 세라믹 등 합성 신소재가 주류인 브랜드의 현행 모델 사이에서 금속 특유의 은은한 광채를 띠는 티타늄은 브랜드의 시작을 함께한 의미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이 역시 티타늄 90%, 알루미늄 6%, 바나듐 4%로 제조한 5등급 티타늄 합금으로 뛰어난 경도와 내식성은 물론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 생체 적합성까지 갖췄다. 전면과 옆면은 섬세한 결의 브러시드 피니시, 모서리와 스크루가 관통하는 기둥 같은 포인트는 미러 폴리싱해 포인트를 준 마감으로 전형적 스포츠 워치의 공식을 따르며, 특유의 스리피스 구조로 뛰어난 입체감을 선사한다.
물론 무브먼트 역시 티타늄으로 제작했다. 완벽한 스켈레톤 구조만으로도 볼거리지만, 대칭을 이루는 12시 방향 배럴과 6시 방향 투르비용 주변의 브리지를 골드와 블루 PVD 코팅해 더없이 화려하다. 그 옆 2시 방향에는 자동차 계기반 같은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4시 방향에는 크라운의 현재 기능을 알려주는 펑션 셀렉터로 메커니컬한 매력을 극대화했다. 게다가 사진상으로는 다이얼이 아예 생략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란색 숫자 인덱스가 놓인 얇고 투명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판이 존재해 조명 여부에 따라 신비롭게 반사하는 모습까지 즐길 수 있다.
새로운 표준
RM30-01 AUTOMATIC DECLUTCHABLE ROTOR WHITE CERAMIC
리차드 밀의 오랜 스테디셀러 RM030의 후속작. 디자인과 기술적인 면까지 다방면으로 많은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토노형 케이스는 여전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모델은 시리즈 최신작으로, 앞서 선보인 레드 골드와 티타늄에 이은 화이트 세라믹 케이스 버전이다. 세라믹은 다양한 컬러
구현이 가능하고, 매끈한 질감과 따뜻한 감촉으로 21세기 워치메이킹의 주 소재로 급성장해 활약 중이다. 가장 큰 장점은 금속과 비교되지 않는 높은 표면 강도. 일상적 생활에서는 상처 걱정 없이 언제나 새 제품 같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다이얼을 살펴보면 직선을 강조한 다이아몬드 형태 프레임의 브리지를 볼 수 있다.
일반적 무브먼트는 원 운동을 하는 태엽과 기어트레인을 기반으로 설계하기에 대부분 곡선 구조를 이뤄 시계
를 오래 접한 애호가일수록 신선하게 다가올 만한 모습이다. 중앙에 위치한 시・분・초 핸드 주변으론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한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와 오버사이즈 데이트 윈도가 있다. 그 사이에 놓인 3시 방향 펑션 셀렉 터는 케이스 옆면 2시 방향의 버튼을 눌러 원하는 기능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건 모델명에도 붙은 디클러처블 로터다. 강렬한 회전으로 동력을 공급하는 회전 로터는 효율이 좋을수록 강한 원심력과 토크로 내구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오버와인딩으로 태엽이 손상되는 걸 막기 위해 리차드 밀은 파워 리저브가 55시간에 도달하면 로터 메커니즘이 자동으로 기어트레인에서 분리되고, 40시간 이하로 떨어지면 다시 자동으로 연결되는 혁신적 메커니즘을 완성했다. 이는 다이얼 11시 방향에 자리한 온・오프 인디케이터로 확인 가능하며, 언제나 최적의 동력 효율을 제공할 수 있다. 단순히 시간을 표시하는 도구에서 진화해 시계의 현재 상태를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안정적 셀프와인딩까지 제공하는 RM30-01은 새로운 시대의 표준이 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