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의 시간
배우 이준혁과 사람 이준혁, 황혼이 내려앉은 그 시간에.
<범죄도시 3> 누적 관객 수가 개봉 일주일 만에 600만 명을 넘었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요즘 영화계 상황이 좋지 않아 걱정이 많았어요. 일단 ‘아 너무 다행이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크더라고요.
의외네요.
작품이라는 게 항상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모두 고생하고 열심히 했지만, 어려운 영화계 상황을 계속 듣는 데다 경쟁작도 세다니까. 그래도 너무 다행이죠.
전작 시리즈가 있고 강한 캐릭터인데, 어떤 마음으로 촬영을 준비했는지 궁금해요.
캐스팅된 후 대본을 처음 봤어요. 전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으니까 당연히 부담됐는데, 그럼에도 우린 다른 결로 또 가야 하니까요. 이 영화의 지향점이 시리즈마다 좀 달라요. 그 결로 가게끔 대본에 충실하려 했고, 그 안에서 체중 증량도 증량이지만 내가 유리한 포인트를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단순히 악당을 준비했다기보다 신선도를 높이려고 한 거죠.
관객으로서 그게 느껴졌어요. 촬영 전 주성철 역을 준비할 때는 일부러 거친 말투도 사용했다고요.
작품을 할 때마다 그런 기간을 거쳐요. <비밀의 숲> 서동재 캐릭터를 할 때는 그렇게 날뛰는 게 저한테는 되게 어색해서 현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일부러 동재처럼 말하고 다녔어요. 그때 저를 본 사람들은 ‘원래 저런 애인가 보다’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선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니까 그런 걸 시도해볼 기회가 많아요. 악역을 맡으면 말도 나쁘게 해보고, 자주는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친구들 만나면 일부러 맡은 캐릭터처럼 얘기하곤 해요. <적도의 남자> 이장일 때도 계속 그렇게 준비했어요.
오해를 사진 않았나요?
친구들과 함께하다 보면 너무 편하니까 욕을 할 때도 있잖아요. 주성철이 욕을 많이 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원래 덩치가 큰 사람이라든지 사회생활을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는 사람처럼 기본 텐션을 가져가려고 했어요.
처음 본 사람들은 오해할 수도 있었겠어요.
조금씩 달라요. 사람이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잖아요. 제가 지금 이런 톤으로 말하는 거랑 (격앙된 목소리로) 내가 이렇게 하는데요!는 다르니까, 그때 반응이 어떤지 흡수하려는 편이에요.
영화 속 액션 신은 칼로 재듯 합을 맞추기보다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알고 있어요. 실제 액션 스쿨에서 연습할 때도 임기응변식으로 연습 했다고 들었는데, 촬영 당시 어려움은 없었나요?
주성철은 롱테이크 액션에, 상황에 따라 변주하는 액션이 많았어요. 그래서 부담도 되고 집중을 해야 했죠. 스턴트분들이 고생을 좀 했어요. 머리끄덩이를 잡거나 누굴 때리는 게 처음엔 어색한 데다 난 잘한 것 같지만 막상 모니터를 보면 또 웃기거든요. 자연스럽게 할 때까지 그분들이 실제로 많이 받아주고 서로 신뢰하며 훈련을 했어요. 어느 정도 합은 있지만, 능수능란하게 유동적으로 액션을 바꾸기 위해.
멜로 장르에는 거의 참여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멜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모든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장르를 배척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뭘 선택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지금까지 멜로보다는 다른 장르가 주로 들어온 데다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선택해왔어요.
팬들은 그런 니즈가 있지 않나요? 이번 영화에서 강한 역할을 했으니 그 반대인 로맨스에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산업이 늘 그렇듯 사람들이 원하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의연하네요.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짧지 않게 해온 배우 인생 순간순간에서 아쉬운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못했거나 안 한 걸 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어요. 멜로물을 해도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선호하는 장르나 배역이 따로 있진 않나요?
저는 그냥 다 좋아요. 제가 보는 영화의 폭이 넓기 때문에 비주류 영화도 좋고 하드코어도 상관없어요. <야구 소녀>도 사실 독립 영화예요. 이미 했던 느낌의 캐릭터보다는 새로운 걸 시도해보려고 하죠.
시네필로 알려져 있어요.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요즘은 <이니셰린의 밴시>에 대해 자주 얘기해요. 해석이 열려 있는 데다 저만의 해석이지만 이번 홍보 일정을 소화하면서 많이 와닿은 영화죠. 처음부터 ‘엄청 좋다’는 아니었지만, ‘내가 혹시 저런 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 영화예요.
홍보 활동을 하면서 왜 그렇게 와닿았어요?
영화 내용을 스포할까 봐 조심스러운데, 절친 사이에서 한 명이 갑자기 절교를 선언하는 얘기예요. 콜름 역을 맡은 브렌단 글리슨은 예술에 집중하기 위해 절친이던 파우릭 역의 콜린 파렐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해요. 넌 너무 지루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계속 다가오면 자기 손가락을 잘라 던질 거라고도 해요. 아일랜드 내전에 관한 이야기라는 해석도 있지만, 콜름은 계속 곡을 쓰면서도 자신감이 없거든요. 저도 배우 일을 하면서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고. 나도 그 반대 입장일 때가 있고. 복합적이었어요. 간단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네요.
요즘도 왓챠에서 영화 평가를 하고 있나요?
평가는 아니고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나중에 찾아 보려는 저만의 감상 정도로.
5년 전쯤 어느 인터뷰에서 2000편 가까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고 했는데, 지금은 몇 편 정도인가요?
2천 몇백 편 정도 되지 않을까요.
1년에 몇 편 정도 보세요?
옛날에는 많이 봤는데, 최근에는 일 때문에 좀 줄었어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긴 하지만요.
보통 영화는 영화관에서는 잘 못 보죠?
영화관에 자주 가요.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죠. 전 극장이 좋아요. 극장이라는 장소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기도 하거든요.
팝콘과 나초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알고 있어요.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지금은 캐러멜 팝콘. 당이 떨어졌나 봐요.(웃음)
요즘 온라인에서 배우님이 과거에 남긴 ‘햄버거 속에 마요네즈 맛이 진하다!’, ‘양념통닭 맛있다 크하하하’, ‘페퍼로니 피자 역시 맛있어’ 등 트윗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어요. 한 트위터 사용자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 먹보 주민 같다’는 리트윗을 남겼고요.
오늘 라디오에도 출연했는데, 물어보더라고요. 정말 충격적이야. 그게 왜 다시 올라와.(웃음)
너무 재밌었어요. 다시 식단 관리를 하고 있나요?
<범죄도시 3> 촬영을 위해 너무 찌워서 살을 빼기도 했는데, 시사회 전 야윌 정도로 빠져서 지금은 좀 편하게 먹고 있어요. 근육도 다 빠져서 억울해 죽겠어요. 한 5kg은 빠졌나 봐요.
배우라는 직업이 단기간에 체중을 증량하기도 하고 감량하기도 해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직업을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 같은 게 있을까요?
저는 이게 꼭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건강도 많이 해쳐서 추천하고 싶진 않고. 어떤 배우는 타고난 매력으로 끝까지 갈 수도 있잖아요. 아직 내가 대표 메뉴가 없으니까 이것저것 차리는 게 아닌가.(웃음) ‘이번엔 장사가 안 되네’ 하면 또 새로운 메뉴를 들여 놓고 그런 편이에요.
다양한 얼굴과 그 안에 잠재된 캐릭터를 발견하고 요청하는 거죠.
그런 걸로 치면 해외나 국내에도 그런 열정을 저한테 반하게끔 해주는 선배들이 있으니 해보는 거죠. 하지만 그게 꼭 좋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힘든 것이 분명 있으니까요.
급격히 증량하거나 감량하는 건 시대가 발전하면서 디지털 기술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체중 조절로 유명한 크리스찬 베일이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만을 보고 전화를 했대요. 어떻게 그렇게 살을 찌웠느냐고. 그런데 게리 올드만이 “난 분장했는데?”라고 한 거죠. <다키스트 아워>에서 1kg도 찌우지 않고 분장을 잘 구현했거든요. 그래서 역할을 위한 변화는 정답이 아니고 자랑하고 싶은 포인트도 아니에 요. 스스로 가보고 싶은 어떤 지점에 도전하는 거지. 그냥 이런 맛도 있더라, 이 정도로 얘기하고 싶어요.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배우 일이 왜 좋은지 묻는 질문에 “영화 자체에 반해 배우를 시작했는데, 이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가는 게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다”고 한 답변이 기억에 남았어요. 이동진 평론가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한 말도 떠오르네요. “일이란 결혼과 비슷해서 아무리 사랑해도 언젠간 환상이 깨지기 마련인데, 어차피 깨질 환상이라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해야 치명적 권태를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두 가지인 듯해요. 분명 환상은 깨지고 어쩌면 우리가 환상을 잘못 배운 걸 수 도 있죠. 다음은 사랑도 마찬가지겠지만,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톱스타들이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고통이 더 많이 보여요. 공감하는 것도 있고요. 세상이 ‘여기가 원래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이만큼 해왔으니 다음부턴 너희들이 좀 해결해봐’라고 하는 것 같아요. 이 업계도 예전과 느낌이 많이 달라요.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하는 <바빌론> 영화에서도 그런 걸 느꼈어요. 예전에는 쪽대본, 밤샘 촬영 등 인간적이지 않은 스케줄이 많았죠. 어떻게 보면 그걸 견디는 건 어떤 애정이 아니었을까. 되돌아보면 불합리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견디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고요. 뭐든 버티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맞아요. 저는 연기를 할 때 행복하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 때가 많아요. 그런데도 아직 붙어 있는 걸 보면 ‘아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끼죠.
공감해요. 공개를 앞둔 차기작 <비질란테>에 대해 서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워낙 유명한 웹툰이에요. 저는 조강옥이란 캐릭터를 맡았죠. 제가 자꾸 이런 역에 빠지는 건지는 모르겠는데(웃음) 독특한 캐릭터예요. 다른 측면으로 이상한 짓을 하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캐릭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도 기대할게요. 최근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나와 미우새로 삼행시를 했잖아요. 마지막으로 ‘이준혁’ 삼행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혁을 어떻게 해요.(웃음) 이럴 수가, 준비도 못했는데. 혁을 어떻게 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