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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좋은 날

거침없이 나아가는 서은수의 다음 장면.

핀스트라이프 슬리브리스 재킷과 팬츠 모두 Sports Max, 화이트 슈즈 Bottega Veneta.

여름도 다 간 것 같네요. 여름을 좋아한다고 했죠? 원래 여름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겨울이 좋더라고요. 목에 머플러 두르고 한적한 거리로 나가 찬 공기 쐬며 발라드 듣는 감성, 아시죠.
잠깐 나가서 사진 찍을 때도 바람이 선선했어요. 겨울도 금방 오겠죠. 지금이 딱 좋긴 해요. 겨울엔 쓸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으니까. 오늘은 바람이 포근하게 불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재밌는 날씨잖아요. 매일 이런 날씨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 그러면 겨울에 붕어빵 먹는 행복을 못 느끼니 안 될 것 같고.
‘지금 딱 좋다’는 말, 요즘의 서은수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 같아요. 하루하루가 설레요. 지금 저녁 6시인데, 아까 <메 이드 인 코리아> 시즌 2 1・2화를 공개했거든요. (촬영일인 9월 9일은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2를 공개하는 날이기도 했다) 빨리 집에 가서 치킨에 맥주 한잔하면서 보고 싶어요. 흐흐.
배우들은 어느 정도 미리 보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지난 3월에 촬영이 끝났어요. 반년 정도 지나니까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화면으로 보면 완전히 새로울 것 같은 기분이에요.

코듀로이 재킷과 팬츠 모두 OUDE WAAG, 셔츠 Sports Max, 앵클부츠 EPURE, 타이 S.T. Dupont.

오예진이라는 인물은 당차고 씩씩하잖아요. 권력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남성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도 전혀 휘둘리지 않죠. 지금껏 연기하면서 가장 자유로웠어요. 나를 내려놓는 법을 <메이드 인 코리아> 현장에서 처음 깨우쳤거든요. 그전까진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틀에 가뒀다면, 오예진이라는 역을 통해 배우가 현장을 놀이터 삼아 어떻게 노는지 배운 것 같아요. 서은수와 오예진의 간극을 줄이고 싶어 일부러 당돌한 척했는데, 사람들은 원래 저런 성격이구나 하더라고요. 평소의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오예진과 서은수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오예진은 9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검사가 됐고, 서은수는 배우로 활동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으니까요. 심지어 부산이 고향인 것도 같네요. 시나리오를 보고 ‘나만의 오예진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예진에 관한 리포트를 만들어 미팅 때 가져갔죠. 감독님이 보시더니 “그래, 맞아. 이런 캐릭터야. 잘 봤네” 하셨어요.
엄청 뿌듯했겠는데요. <메이드 인 코리아>를 찍으면서 그런 순간이 참 많았어요. 데뷔하기 전에는 영화관 가면 사람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크린 아래에서 무대 인사하는 것처럼 관객석을 바라봤거든요.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인데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나도 언젠가 여기에 설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했어요.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1 시사회에서 부모님과 지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침내 꿈을 이룬 것 같았죠.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히 떠올라요.

위 _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 RE/DONE, 데님 팬츠 Isabel Marant, 레이어링한 브레이슬릿 모두 JUSTLOVER, 왼손 중지에 착용한 링 J.Gracelet, 레오퍼드 패턴 벨트와 오른손 소지에 착용한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래 _ 코듀로이 재킷 OUDE WAAG, 셔츠 Sports Max.

데뷔하기 전에는 영화관 가면 사람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크린 아래에서
무대 인사하는 것처럼 관객석을 바라봤거든요.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인데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나도 언젠가 여기에 설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했어요.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1 시사회에서 부모님과 지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침내 꿈을 이룬 것 같았죠.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히 떠올라요.고 싶은 걸 쟁취하기 위해 뭐든 했으니까.

딱 10년 전 인터뷰에서 부산 사투리를 쓰는 연기를 꼭 하고 싶다고 했어요.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요. 시즌 2 1화에 호피 무늬 스타킹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가발을 쓴 장면이 있는데, 저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요. 엄청 못생겨 보일 수 있는 표정과 각도, 자세였는데 되게 예뻐 보이더라고요. 제가 그 상황에 완벽하게 몰입해서가 아닐까 싶어요.
오예진을 연기하면서 좋은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쁜 척할 필요 없는 데다 확신을 갖고 시원시원하게 나아가는 성격이니까요. 오예진은 안 되면 되게 하는 성격이거든요. 덕분에 고함지를 일이 많았는데, 처음엔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할지 몰랐어요.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리는 기합을 지를 때 ‘나한테도 이런 큰 소리가 있구나’ 싶어 희열을 느꼈죠. 분에 차서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장면을 찍은 적도 있는데, 감독님이 통쾌하다며 밥을 사주셨어요.
시즌 2에서 인상 깊은 장면도 궁금하네요. 그게 앞서 말한 호피 무늬 스타킹과 가발, 레드 립을 바른 장면이에요.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저를 보더니 너무 세 보인다며 뒷걸음칠 정도였는데, 그 반응을 보면서 재밌는 그림이 만들어지겠다 확신했죠.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됩니다. 서은수에게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저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 같아요. 첫 연기도 그랬어요. 중학생 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허락해주지 않으셔서 두 분을 앉혀놓고 연기를 보여줬거든요. 한예슬 선배님을 따라 했는데 목소리부터 눈빛, 제스처까지 진짜 열심히 했죠. 지금 생각하면 대견하기도 해요. 하고 싶은 걸 쟁취하기 위해 뭐든 했으니까.

트렌치코트 Burberry, 원피스와 롱부츠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 번 만에 부모님을 설득하긴 어려웠을 것 같아요. 몇 번을 했는지는 저도 기억이 안 나네요. 보통 어른들이 “용돈 줄 테니 노래 불러봐라, 춤춰봐라” 하면서 부추기잖아요. 저는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춤추고, 노래하고 그랬어요. ‘봐라!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 하면서 뻔뻔하게.(웃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어요? “나 잘하지?” 하고 물으면 별 반응도 없고, 표정도 좋지 않았어요.(웃음) 결국 허락해준 건 제 진심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쉽게 허락할수록 금방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그러지 않으셨나 싶고요.
시즌 2에는 검찰 수사관이던 오예진이 검사가 되어 등장합니다. 이 외에도 바뀐 것이 있다면요? 크게 바뀐 건 없어요. 수사관일 땐 마냥 젊은 패기로 밀어붙였다면, 검사가 된 후로는 연륜이 쌓여 목표가 더 뚜렷해졌죠. 재작년부터 <메이드 인 코리아>를 찍었으니 오예진으로 산 지도 벌써 3년이나 됐네요. 그사이 저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요? 음,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제 모습이 바뀌는 것 같아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목소리 톤이 달라지면서 털털해지고, 현장에 있을 땐 굉장히 차분하고, 가족한텐 되게 무뚝뚝하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애교가 많아지기도 하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부쩍 헷갈리는 것 같아요. 말하고 보니 요즘의 고민 같기도 하네요.
다들 그렇지 않을까요. 오히려 고향 친구들한테 서울말 쓰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으으으. 그렇긴 해요.(웃음)

셔츠와 타이 모두 Juun.J, 이어링 Ferragamo.

바쁘게 사는 걸 좋아해요.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몰두할 거리를 찾거든요.
작품을 할 때는 끝까지 파고드는 걸 즐기고요.

평소의 서은수는 어떤 성격이에요? 바쁘게 사는 걸 좋아해요.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몰두할 거리를 찾거든요. 작품을 할 때는 끝까지 파고드는 걸 즐기고요. 의미 없는 하루를 보냈을 때 시들해지는 기분이 싫어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것 같아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에너지 소모도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 <바위>라는 영화와 <기프트>라는 드라마를 동시에 찍었거든요. <바위>는 어둡고 긴장감 가득한 작품이라면, <기프트>는 밝고 푸릇푸릇한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에요. 괴리감이 있어서 감정적으로 소모가 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전환이 잘되더라고요. 무의식중에 제가 작품의 늪에 허우적거릴까 봐 걱정하다 보니 좀 더 냉정하게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연기가 일이 된 지금은 작품 할 때 어떤 기분이에요? 항상 떨리는 감정이 커요. 데뷔작인 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찍을 때는 한 줄인 데도 벌벌 떨면서 대사를 했어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제법 여유로워요. ‘내가 준비한 걸 잘 해보자’라는 산뜻한 긴장감에 가슴이 설레고요.

레드 니트 톱과 롱스커트 모두 ASHLYN.

이런 맛에 연기한다 싶은, 기억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1을 촬영할 때 정우성 선배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연기가 끝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가와 “와 은수야, 방금 너무 좋았다. 이번엔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 하면서 같이 고민해주시고. 그때마다 이런 게 바로 시너지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반대로, 너무 좋은 작품이나 연기를 볼 땐 어때요? 감정을 똑같이 느끼면 좋을 것 같아 주변 사람들한테 무조건 보라고 강요해요. 보고 나서 나랑 이야기하자고. 흐흐. 요즘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를 보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요. 안 보는 사람이 손해일 정도로요. 그러니까 꼭 보세요.
얼마나 재미있길래. 일단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어 흥미롭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홀리듯 보게 돼요.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고 연기로 한바탕 판을 벌리는데, 에너지가 스크린에서도 느껴지거든요.
12월엔 고등학교 야구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기프트>를 방영할 예정이죠? <기프트>는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노력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건지, 그리고 그 힘이 얼마나 큰 재능인지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요즘 대체로 결과 중심적이잖아요. 1등이 아니면 외면하고요. 한동안 중독일 정도로 매일 운동하다 권태기가 왔는데, <기프트> 덕분에 자연스레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결국 계속 무언가를 좋아하고,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배우라는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아이돌을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결국 연기를 했을 거예요.(웃음)

에디터 강승엽 사진 양중산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이나겸 스타일링 황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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