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사와 나오키가 확장한 미래적 연대기
일본 만화계의 거장인 우라사와 나오키가 2003년작 <PLUTO>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선보인다.
바쁜 일정임에도 인터뷰 제의를 수락해 감사하다. 당신의 만화가 발매 20년 만에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아사 이야기> 연재와 애니메이션화 작업을 병행하기 쉽지 않을 텐데.
20년 전에는 동시에 두 작품을 연재했다. 매달 여섯 번의 마감을 거쳐야 할 정도로 힘든 스케줄이었다. 그에 비해 요즘은 <아사 이야기> 한 작품만 연재하는 데다 마감일도 여유 있는 편이다. 감수 작업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
었다.
애니메이션계 거장 마루야마 마사오(Masao Maruyama)가 직접 프로듀싱한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소통하는 과정은 어땠나?
마루야마 마사오 프로듀서와는 <YAWARA!>, <마스터 키튼>, <몬스터>, <초원의 왕 도제> 등의 작품을 하며 30년 이상 인연을 이어왔다. 함께 자주 식사할 만큼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가까운 사이다. <PLUTO>에 대한 기획은 20년간 함께 논의해왔다.
<PLUTO>는 데즈카 오사무(Osamu Tezuka)의 <철완 아톰> 속 ‘지상 최대의 로봇(The Greatest Robot in the World)’ 편을 재구성해 완성한 작품이다. 당시 ‘우라사와 나오키×데즈카 오사무’라는 서브 타이틀로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전설적 만화로 꼽히는 <철완 아톰>을 다룬다는 것 자체에 강박감이나 불안감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철완 아톰>은 일본 만화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것에 상당한 중압감을 느껴 집필 당시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겼을 정도다. 그의 메시지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노력했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데즈카 오사무의 사인을 따라 할 정도로 엄청난 팬이라고 들었다. 오사무의 아들 데즈카 마코토(Makoto Tezuka)에게 작품 리메이크를 요청할 당시의 에피소드를 간략하게 들려준다면.
작품 속 ‘아톰’이 태어난 해가 2003년이다. 그해가 실제로 다가오자, 일본 만화계 여러 곳에서 “아톰의 탄생을 기념한 새 프로젝트에 참여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이에 대해 나는 “패러디나 일러스트 말고 인기 에피소드 ‘지상 최대의 로봇’을 리메이크하는 게 더 뜻깊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편집자들이 입을 모아 “우라사와 씨가 직접 그리면 되겠네요”라고 말하더라. 물론 나는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지만, 이후 나가사키 다카시 (Takashi Nagasaki)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기획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는 이미 <PLUTO>에 대한 스토리 골격이 어느 정도 잡힌 시점이었다. 일단 내 머릿속에 든 이미지를 스케치로 그려 마코토에게 보냈지만, 기획 자체가 실현 불
가능했기에 한동안 방치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반년쯤 지났을까. 마코토가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기획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가 “그러면 우라사와 씨,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거다.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마코토는 “<PLUTO> 말입니다”라며 이 기획을 승인해주더라. 그에게도 각별한 의미의 작품인 만큼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후 <PLUTO>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신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인간성, 인간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휴머니즘에 대한 주제 의식은
<마스터 키튼>, <몬스터>로 계승되며 <PLUTO>에서도 빛을 발했다. 인간에 대해 본질적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작가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했다.
물론이다. <PLUTO>의 주인공은 로봇이지만, ‘감정’이 테마다. AI 진화의 마지막 종착지는 그들(로봇)이 감정을 갖추는 것이다. 즉 인간에게 훨씬 더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나는 만화를 그린다는 건 결국 인간의 감정을 그려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PLUTO>에서도 그 신념을 이어가게 되었다.
<PLUTO>를 처음 접할 때는 등장인물들이 로봇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문득, 마치 오래된 자동차를 폐차할 때 느끼는 슬픔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해하기 편하더라. 로봇의 죽음에 감수성을 입히기 위해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
어려운 부분이지만, 작품의 주제 의식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PLUTO>의 테마는 감정이다. 흔히 오사무의 작품이 가볍고 유쾌하다는 오해가 있는데, 사실 원작인 <철완 아톰: 지상 최대의 로봇>은 상당히 어두운 내용이다. 물론 당시 일본의 황금 시간대에 TV에서 방영한 만큼 가족 친화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오사무의 작품을 조명한다면 시대적 어둠을 느낄 수 있다. ‘세계 7대 로봇’이 죽을 때 특히 감정이 고조되며, 작품의 분위기 또한 뚜렷해진다.
이제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보자. 만화가가 되고나서 자는 시간과 식사 시간 빼고는 거의 작업에 몰두한다고 들었다. 40년 가까이 이러한 루틴을 지속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토록 꾸준히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네 살 때부터 만화를 그려왔기에 따져보면 50년 넘게 이어온 일이다. 내겐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작위적으로 창작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영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갈 뿐이다.
스토리라인을 보면 잘 짜인 영화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실제로 만화를 구상하는 초기 과정은 영화 속 스토리보드를 제작하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감독 제안을 몇 번 받았다. 하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면 아주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예산이나 배우들의 캐스팅 등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처럼 말이다. 그에 비해 만화가라는 직업은 자유롭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나만의 표현 형식을 이어갈 수 있어 좋다.
얼마 전 <20세기 소년>을 보면서 무한한 상상력을 느꼈다. 종이에 인쇄한 만화임에도 카메라 앵글이 돌아가는 듯 인상적이더라. 등장인물이자 어둠의 세력인 ‘친구’는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영어나 한국어로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도모다치(ともだち, 친구)’라는 일본어 단어를 들을 때 항상 회의적이었다. 일본의 동요 중 ‘친구 몇 명 있어, 친구 몇 명 사귀었어?’라는 가사가 있다. 아이들이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곡이지만, 결국 경쟁을 부추기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사실
진정한 친구를 찾는다면 평생 한 명이어도 족하지 않을까.
최근 들어 만화를 보는 플랫폼이 지면에서 휴대폰과 PC로 변화했다. 이런 시대에 장편 단행본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일본에서조차 단행본 매출은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 새롭게 떠오른 전자 매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단행본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대부분 종이를 통해 문학과 만화를 접한다. 또 다른 예시를 들면, LP 음반을 선호하는 리스너도 증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지면 단행본 시대인 셈이다. 물론 요즘 많은 만화가가 전자 서적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나는 (전자 서적화를) 한 번도 진행해본 적이 없다. 본래 만화라는 건 좌우 페이지를 펼쳐가며 읽는 창작물인 만큼, 스마트폰이나 랩톱 같은 전자 매체로 감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본질적 재미를 놓칠 수 있으니까.
10년 전 한 인터뷰에서 “만화라는 건 두 번 다시 같은 것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조성에 대한 그 견해는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 내 작업물이 대중들 사이에서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그다음에 만들 작품은 또 다른 방식의 영감을 따라야 한다. 물론 이는 만화뿐 아니라 모든 창작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다. 만화란 타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냉혹한 작업이다. ‘이제 이건 아니야’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심오한 질문 하나 던지겠다. 당신은 왜 만화가로서 삶을 이어가고 있나?
다섯 살 때 부모님이 데즈카 오사무의 책 두 권을 사주셨다. <밀림의 왕자 레오>와 <철완 아톰: 지상 최 대의 로봇>이다. 이후부터 그 두 권만 꾸준히 읽었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그림체를 따라 그리기 시작했고, 사인을 흉내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열세 살 때는 오사무의 <불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장대한 인간 드라마를 접하며 만화의 표현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프로 만화가로 데뷔한 지 올해로 40년째에 접어든다. 나는 여전히 만화의 무한한 표현력에 매료돼 있고, 앞으로도 계속 만화를 그릴 것이다. 이보다 즐거운 인생은 없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