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닮은, 청년 백호
Still a summer Youth, 백호가 남긴 여름의 말들.

며칠 전 이곳을 둘러보고 인터뷰 장소로 정했어요. 경치가 참 좋죠? 네. 10년 넘게 연예계 생활을 했는데, 이상하게 오늘 이 장소가 유독 마음에 남을 것 같아요. 바다가 바로 앞에 있고, 사람도 많지 않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불고요.
백호 씨는 여름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본인도 그렇게 느끼나요? 사실 아직 잘 와닿지 않아요. 작년에 워터밤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처음 섰거든요. 올해 두 번째죠. 그래서인지 어떤 이미지를 쌓아왔다기보다는, 그 순간의 인상이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여름이면 작년의 내가 떠오르고, 그때 무대, 뜨거운 공기, 열정 같은 게 생각나요. 그래도 그 여름에 나름 최선을 다했구나, 그런 생각은 들어요.
여름과 겨울 중 선호하는 계절이 있다면요? 이제는 확실히 여름이요. 살면서 여름에 좋은 일이 많았어요. 무대 위에 다시 설 기회도, 사람들이 저를 다시 바라봐주는 시선도, 다 여름에 왔어요. 그래서인지 날이 더워지는 게 반갑더라고요. 해가 강해지는 걸 느끼면, 다시 나도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요즘 준비 중인 작업물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여름과 어울릴까요? 아직 공개 전이라 많은 걸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작업물이라는 점은 확실해요. 영상과 음악이 함께 들어가는 작업물인데, 뮤직비디오보다는 ‘백호’라는 브랜드의 캠페인 필름처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했어요. 음악은 이미 다 만들었고, 영상도 거의 마무리 단계예요. 살다 보면 기록해두고 싶은 순간이 있더라고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땐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요. 기대하셔도 좋아요.(웃음)

올여름 페스티벌도 곧 앞두고 있겠네요. 네. 7월 4일 워터밤 무대에 서요. 여름을 실감하는 순간 중 하나죠. 그리고 또 몇몇 페스티벌에도 참여할 예정이에요. 사실 무대라는 게 매번 새롭진 않지만 ‘엘리베이터’ 같은 노래를 부를 때면 관객들과 어우러져 즐기는 순간이나 환호성이 너무 좋아요. 그 목소리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거든요. 무대 위에 선 제 자신을 다시 한번 사랑하게 돼요.
최근 무대를 준비하면서 재발견한 뉴이스트의 곡이 있는지. 한 대학교 행사에서 ‘여보세요’를 정말 오랜만에 불렀어요. 예전엔 자주 부르던 곡인데, 어느 순간 잘 안 부르게 되더라고요. 관객이 따라 부르는 모습에 가슴 벅차던 기억이 나요. 그 무대 안에서 제 과거와 현재가 맞닿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요.
관객이 오래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 감정이 북받칠 것 같긴 해요. 그럼요. 예전엔 교복 입고 오던 친구들이 이제는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댓글에 “예전에 좋아했는데, 지금은 어른이 됐어요”라고 남겨주시면, 마음이 이상해져요. 같이 나이를 먹고, 같이 시간을 지나온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팬이라는 단어보다 ‘함께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와닿아요.
2012년 ‘FACE’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무대를 경험했죠. 그간 아쉬움이 남는 무대,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무대도 있을 것 같아요. 아쉬운 무대는 많죠. 근데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때의 저는 그게 전부였거든요. 지금의 제가 보기엔 부족해 보여도 그 당시엔 진심이었고, 최선이었고. 그래서 후회나 아쉬움보다는 그 마음을 잘 ‘안아주는’ 편이에요.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도 가능하다는 걸 믿고 싶어요.
‘내가 이 길을 잘 가고 있구나’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무대에 설 때요. 아, 그리고 오늘처럼 화보 촬영을 할 때도요. 전 카메라 앞에서 제가 아닌 누군가의 얼굴을 입는 순간이 좋아요. 스타일리스트가 입혀준 옷, 포토그래퍼가 원하는 눈빛, 그 안에서 저라는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느낌이거든요. 그 짧은 순간에도 창작하는 사람들과 호흡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 ‘아 내가 이 길에 있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창작이나 예술 활동을 꿈꿨나요? 전혀요. 어릴 땐 장래희망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어요. 진지하게 뭘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캐스팅됐어요. 연습생이 되고, 노래도 해보고, 춤도 추고, 멤버들도 만나고. 그렇게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거죠.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품은 꿈이 가수였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서울이 아닌 제주도에서 캐스팅됐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신기한 건 우리 팀 멤버도 모두 지방에서 발탁됐어요. 그땐 길거리 캐스팅이 자주 이루어지던 시절이었거든요. 감사하게도 제주도까지 와서 캐스팅해준 분이 있었고, 그게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꿨어요. 당시에는 그냥 ‘이런 일도 있네?’ 하고 지나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기적 같았죠. 제주도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간절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주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그냥, 따뜻하고 소박했어요. 저희 집이 카센터였거든요. 해 질 무렵이 되면 셔터를 내리고, 가족끼리 밖에 나가 고기 구워 먹고, 별 보면서 이야기하고. 그게 일상이었어요. 그땐 그게 특별한 줄도 몰랐죠. 그런데 서울에 오니까, 어? 왜 숲이 없지? 왜 바다가 없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제야 깨달았어요. 내가 참 예쁜 곳에서 살았구나. 그래서인지 지금도 제주도에 가면 바다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걸 좋아해요. 별것 안 해도 참 좋더라고요.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 그 시절에서 비롯된 걸까요? 특히 현대 갤로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어릴 적 아버지가 갤로퍼를 몰았기 때문인지 여전히 마음이 가는 차예요. 어린 눈엔 크고 각진 외형이 유난히 멋져 보였거든요. 오랫동안 ‘나중에 꼭 타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죠. 그런데 성인이 됐을 땐 이미 갤로퍼가 단종됐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육지에 가서 최대한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된 차를 구했어요. 그걸 제주도로 보내서 아버지가 직접 손봐주셨고요. 그렇게 제 첫 차가 됐고, 지금은 동생이 타고 있어요. 가끔 제주에 가면 제가 몰기도 해요.
갤로퍼를 운전할 때면 가족과의 추억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겠어요. 그럼요. 특히 아버지와 함께한 일들이 떠올라요. 저희 집은 대형차를 주로 다루는 카센터였는데, 예전엔 갤로퍼에 로프를 묶어 고장 난 차를 끌어오기도 했죠. 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아버지랑 단둘이 산길을 달리거나, 겨울철 눈길을 조심조심 올라가던 기억도 선명하고요. 지금도 그 차를 몰면 공기며 풍경이며,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나요. 참 따뜻하고 귀한 기억이죠.
서울에서도 올드카인 BMW 7시리즈를 타고 있다고요. 네, 맞아요. 지금 타고 있는 7시리즈도 단순히 올드카라서가 아니라 그 차만의 감성과 무게감이 좋아요. 차를 고를 때 ‘지금 내 기분과 어울리는 차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당연히 복원 과정은 쉽지 않지만,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애정도 큰 편이에요. 전 그런 일련의 시간이 좋아요. 차가 점점 내 것이 되어가는 기분이 드니까요.
드림카도 있을 것 같아요. 있죠. 포르쉐 911의 공랭식 모델을 꼭 한번 갖고 싶어요. 아날로그적 감성과 엔진의 울림이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니, 말 그대로 ‘드림카’일뿐이죠.(웃음)
드라이브는 주로 어디로 떠나는 편이에요? 목적지는 정하지 않아요. 그저 라디오를 튼 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죠. 누가 대신 선곡해 주는 라디오 특유의 재미가 있거든요. 무드에 딱 맞는 노래가 나올 때는 그 순간의 풍경이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고요.
결국 잘 해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어차피 너 그만두지 못할 거 알아, 계속 가.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스트레스도 드라이브를 하며 푸나요? 네. 그리고 괜히 카센터에 가기도 해요. 고장 난 게 없어도요. 그냥 뭔가 손으로 만지고 싶고, 기름 냄새나는 공간에 있고 싶고. 그럴 때가 있어요. 고민한다고 당장 해결되진 않지만, 그런 공간에 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되거든요. 서울에 있을 땐 그냥 아무 도로나 달리는 편이고, 제주도에 있을 땐 자연스럽게 바다 쪽으로 가요.
제주도의 드라이브 코스를 추천해줄 수 있나요? 무조건 해안 도로를 달려요. 애월 쪽에서 자라서인지, 애월 해안 도로가 가장 익숙하고 마음이 편해요. 거기서 조금 더 달리면 한림 해안 도로가 나오는데, 그쪽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좀 더 고요한 분위기죠. 바다와 눈높이를 나란히 하며 달리는 풍경이 참 예쁘거든요. 바다 옆을 걷고 있는 느낌이랄까.
추천 고마워요. 최근엔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해나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호흡을 맞춰가야 하니까요. 자연스럽게 더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걸 느꼈군요. 네. 예전엔 혼자 해결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같이’의 의미를 더 많이 느껴요. 팬들과 어떤 분위기로 지내고 싶은지,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제겐 중요한 고민이자 목표예요.
이제 곧 서른이에요.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나요? ‘청년’이요.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 고민도 많고, 불안도 있고, 그 속에서도 해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계속 움직이는 사람. 멋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은 그냥 제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싶어요.

청년 백호, 어딘가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이네요.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의 소년 백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결국 잘 해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가끔은 ‘이 선택이 맞았나?’ 고민도 했는데, 지금은 확신이 들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어차피 너 그만두지 못할 거 알아, 계속 가.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웃음)
요즘 가장 몰두하는 건 뭐예요? 일이요. 촬영도 많고, 작업도 많고. 바쁘게 지내는 게 좋아요. 지금 이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할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욕심도 커져요. 한 가지를 해내면, 또 다른 걸 해보고 싶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청년’이요. 고민도 많고, 불안도 있고, 그 속에서도 해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계속 움직이는 사람. 멋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은 그냥 제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