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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민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시 시작한다.

스트라이프 벨트 셔츠, 데님 팬츠,
체크 로즈 뮬 모두 Burberry,
골드 네크리스 Mulberry.

7년여간 함께한 <런닝맨>과 이별한 지 1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사실 휴식기는 3~4개월밖에 안 돼요. 바로 <베란다>라는 영화를 찍기 시작했거든요. 그 후 <괴리와 냉소>, <오늘도 지송합니다>까지 계속 촬영했어요. 신기하고 감사하죠.

기다렸다는 듯 러브콜이 쏟아졌네요.
휴식이 길어질까 봐 살짝 겁을 먹기도 했어요. 업계가 어려운 데다 드라마 제작도 줄어들고 있잖아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것처럼 불안해서 처음에는 가계부도 막 썼어요. 친한 배우 김형민 오빠가 운영하는 카페에 나가 일주일에 하루이틀 일도 도와주고, 공허함을 잊기 위해 노력했어요. 다행히 금방 다시 일하게 됐지만요.(웃음)

<런닝맨>은 종종 챙겨 보나요?
숏폼으로 틈틈이 봐요. 최근에는 제작진 친구들이랑 만나 맥주도 한잔했어요. 워낙 오랜 시간 함께해온 프로그램이라 종종 안부 물으며 지내요. 실은 제가 게임을 정말 좋아해요. <런닝맨>을 안 하니까 게임에 대한 갈증이 생겨 보드게임 카페도 몇 번 갔어요.(웃음)

얼마 전 공개된 <괴리와 냉소>는 영산대학교가 공동 제작하는 드라마예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감독님이 직접 연락을 주셨어요. 저랑 너무 하고 싶고, 재밌게 만들 자신 있다고. 안 할 수가 없더군요. 촬영 스케줄이 <오늘도 지송합니다>랑 맞물려 잠시 망설였지만, 찾아주신 게 감사해서 하고 싶었어요. 2부로 나뉜 단편 드라마고, 코미디 장르에 유쾌한 내용이에요.

최근까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기 발랄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런 모습을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저도 <런닝맨>에서 이미지를 잘 녹여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아해주고 그리워하는 팬들에게 작품으로나마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요.

<괴리와 냉소>를 비롯해 이전 필모그래피의 <소녀>와 <나의 이름> 등 출연 작품을 보면 편견 없이 작품을 선택하고, 진심으로 연기를 사랑하는 게 느껴져요.
감사해요.(웃음) 기회가 주어지면 피하지 않는 편이에요. 나를 선택한 제작자들의 시선을 믿으려고도 해요. ‘나에게 작품이 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여기서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일을 해왔죠. 지금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계속 들어오니까 신나서 하기도 했어요.

그런 선택 덕분에 전소민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나 봐요. 오랜 시간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면서 드라마나 영화도 꾸준히 해왔죠. 캐릭터가 굳어지면 그 이미지를 탈피하기 어려운데, 예능과 연기할 때 모습이 확연히 구별된다는 평이 많아요.
그렇게 봐주시면 다행이죠. 나름 전략이었는데, 작품을 선택할 때 주로 예능 캐릭터와 상반된 이미지의 역할을 선택하려고 했어요. 코미디 장르를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저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실 텐데, 그런 걸 잘 충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도 있었거든요. 쉽진 않은 것 같아요.

고착되는 이미지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요?
이미지보다 예능 고정 스케줄이 있을 때는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긴 시간 지방 촬영이 있는 작품은 선택하기 어려웠죠. <런닝맨> 하차는 선택과 집중을 위해 내린 결정이에요. 엄청난 변화를 꿈꾸기보다 제 스스로 작은 변화가 필요했죠.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새로운 게 있을까 고민하는 시점이었어요.

페더 드레스 Sonjungwan,
팬츠 Burberry.

12월에 공개되는 <오늘도 지송합니다>는 휴식 이후 복귀하는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하는 장편 드라마예요. 촬영하면서 배우, 스태프와 호흡하고 친해질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저는 어딘가 소속될 때 안정감을 느끼나 봐요. 촬영장에 가면 촬영팀은 장비를 세팅하고, 배우들은 슛을 준비하는 등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때 문득문득 감동이 밀려와요. ‘나도 이 안에서 무언가 필요한 존재로 일하고 있구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저를 기쁘게 하죠.

작품 속 ‘지송이’ 역을 준비하면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면서요.
지송이는 신혼집 대출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만, 남편의 바람으로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이혼해요. 어쩌다 돌싱이 됐는데, 여동생 아들을 등하원시키다 신도시맘들한테 유부녀로 오해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죠. 송이는 ‘다른 사람들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럴까’라는 고민을 해요. 현재 제 삶과 맞물리는 부분도 있어요. 결혼을 엄청 하고 싶은 건 아닌데 가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비슷한 상황인 제 또래들이 보면서 공감하고, 신도시에 사는 어머니들도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예요.

연기할 때 더 와닿는 부분도 있겠어요.
제가 평소 하는 생각을 드라마에서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비슷한 면이 많아 좀 더 생생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같이 하는 공민정씨와 최다니엘 씨가 동갑내기라 기대도 많이 돼요.

합이 좋을 수밖에 없겠는데요.
아직 몇 회 촬영은 안 했지만 작가님도 동갑인 데다 연하남으로 나오는 김무준 씨는 띠동갑이에요. 드라마에 호랑이들이 많아 재밌어요.

오버사이즈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팬츠 모두 Maison Margiela,
체크 플리츠 스커트,
플랫 슈즈 모두 Marni.

노년기에는
그동안 해온 작품을 보고 싶어요.
지루하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기세가 좋네요. 드라마 외에도 영화 <열여덟 청춘>,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 <베란다>까지 공개를 앞둔 작품이 쌓여 있어요.
<열여덟 청춘>과 <온 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은 작년에 촬영을 마쳤어요. 소설이 원작인 <열여덟 청춘>에서는 남다른 교육관을 가진 담임교사 역을 맡았고, 영화는 학생들과 함께하며 전개되는 성장물이에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에서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요. 이단 종교 집단 교주라는 인상 깊은 역할이라 제가 꼭 하고 싶다고 했죠. 원래 시놉시스에 캐릭터 연령이 40대로 표시돼 있어 못할 뻔했지만, 한 달 후 “배역 나이를 낮출 테니 함께하시죠”라고 다시 연락을 주셨어요. <베란다>는 스릴러물인데, 생각해보니 이제는 작품 할 때 항상 아이가 있더군요.(웃음)

자연스레 배역의 변화를 느끼나요?
너무나요. 현장 스태프 중 저보다 어린 분이 많을 때, 호칭이 변했을 때 특히 체감하죠. 책임감을 느끼면서 현장에 가면 옛날보다 더 긴장해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부담감으로 임하죠. 연기에 대한 고민도 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경험한 걸 토대로 연기했다면 이제는 더 큰 상상력과 에너지로 살아보지 않은 ‘엄마’ 캐릭터를 해내야 하는 거니까. 결혼이 배우로서 필요한 일인지, 인생에서 나한테 중요한 부분인지 더 살피게 되는 지점이죠.

여전히 고민 중인가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있어요. 결혼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하겠지만, 출산은 또 다른 문제죠. 전소민 개인의 인생으로는 단순하게 미뤄둬도 배우로서 접근하면 어려워져요. 여러모로 결혼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공감해요. 글을 많이 썼더라고요. 가수 정인과 이기찬의 곡에 작사로 참여하고, <술 먹고 전화해도 되는데>를 쓴 작가이기도 해요.
책은 지금 보면 조금 창피해요.(웃음) 20대 때 일기처럼 쓴 글을 모아 낸 거죠. 작사를 하게 된 계기는 (지)석진 오빠가 포스티노 작곡가님을 소개하면서 시작했어요. “이런 곡이 있는데 한번 써볼래?” 해서 끄적끄적 초안을 썼죠. 감사하게도 작곡가님이 마음에 들어 해 ‘ONE ROOM’이라는 노래 가사를 썼어요. 이번에 또 연락이 왔는데 정인 언니의 곡인 거예요. 제가 언제 이런 가수분들의 곡을 써보겠어요. 기꺼이 하겠다고 했죠.

작사 과정은 어땠어요?
보통 제목을 먼저 정하고 글을 써 내려가거든요. 아티스트 이름과 비슷하기도 하고, 사랑 이야기지만 제목이 ‘증인’이면 색다를 것 같았어요. ‘사랑할 때 연인은 서로의 모습을 기억하는 증인이 된다’는 내용으로 가사를 풀었죠. 짧은 3~4분 안에 음절을 맞춰 담아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부족한 글이지만 엄청난 가수들이 불러줬을 때 그 글이 굉장히 아름답고 풍요로워져서 행복했어요.

셔츠, 원피스 모두 Nehera,
스터드 플랫 슈즈 Ash,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기할 때는
마치 취하는 것처럼
그 속에 푹 빠져요.
액션과 컷이 있는 것도 좋아요.
정해진 시간 안에서 나로부터
벗어나 무아지경으로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후련할 정도예요.
스트레스도 해소되죠.

종종 글을 쓰나요?
실은 요즘 펜을 잘 안 잡아요. 제 모든 것이 과도기인가 봐요. 예전에는 뭔가 정리되지 않을 때 글로 풀어내면 후련해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됐거든요. 요새는 어떤 문제가 저를 괴롭히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모른 척할 때도 있고요. 그렇게 하면 개인적으로는 행복하고 편안해요. 다만 고뇌하는 과정을 직면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마주하는 게 연기에는 도움이 되죠.

내 마음이 건강해야 나아갈 힘도 생기는 거니까요.
그런 것 같아요. 옛날에는 나를 너무 괴롭혔거든요.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익혔으니 당분간 나의 평화를 찾고 다음을 생각하고 싶어요.(웃음)

어느덧 데뷔 20년 차예요. 16주년에는 ‘또다시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20주년을 맞은 배우 전소민은 어떤 단계에 있나요?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도 시작하고 있어요.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변화를 원하고, 그 과정에 뛰어들고 있죠.

모두가 오늘을 처음 살잖아요. 시간이 지나 엄마가 되고, 더 지나 할머니가 되어도 우리는 계속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거 아닐까요?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위안이 될 것 같아요. 가끔 뒤로 가는 느낌도 들거든요. 내가 어디 있는지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하는 것도 오만일 수 있잖아요.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수상에 연연하거나 남들의 인정에 자유롭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연락할 때 ‘잘해왔구나’ 하고 위로받곤 해요. 서로가 작품 만든 과정을 알고 성적이 어떻든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여전히 연기를 사랑하죠?
그럼요. 연기할 때는 마치 취하는 것처럼 그 속에 푹 빠져요. 액션과 컷이 있는 것도 좋아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 정해진 시간 안에서 나로부터 벗어나 무아지경으로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후련할 정도예요. 스트레스도 해소되죠. 그리고 노년기에는 그동안 해온 작품을 보고 싶어요. 지루하지는 않을 거예요. <런닝맨>만 해도 몇 회예요.(웃음)

재킷과 팬츠 모두 Max Mara,
슬링백 Toteme.
에디터 김지수 사진 장한빛 헤어 이찬아 메이크업 서지영 스타일링 하은선 디지털 에디터 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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