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감 EP. 2 강민서 박사
시대의 흐름을 읽는 두 사람, 송길영 작가와 강민서 박사가 그리는 내일.

기술의 속도와 인간의 온도, 강민서 박사
카이스트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박사학위를 마치고, 하버드에서는 AI 연구원으로 활동한 걸로 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AI 교육과 컨설팅, 솔루션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저 기술을 잘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기업 현장에서 마주친 건 ‘거부감’이었다. 몰라서 안 쓰는 게 아니라 두려워서 피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지금은 방향이 바뀌었다. 컨설팅의 80%는 ‘두려움을 해소하는 일’이다. 이게 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도와주는 기술이라는 인식의 전환. 그걸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AI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1년, 데이터 마이닝이라는 단어도 낯설던 시절이었다. 송길영 박사님의 강의에서 “기저귀를 산 남성이 맥주도 함께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핏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두 물건의 연관성. 그것이 실제 데이터로 입증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데이터가 인간의 무의식적 선택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고, 자연스럽게 이 분야로 들어오게 됐다.
연구자 입장에서 AI 기술 발전의 속도를 실감하나. 물론이다. 너무 빠르다. 박사과정을 밟을 때는 1년에 논문 한 편 쓰는것도 대단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달에 한 편을 쓴다. AI가 리서치를 대신하고, 논문 수도 1년에 60만 건을 넘는다. AI가 논문을 읽고, 실험을 설계하고, 이론을 추론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연구자들이 말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다가오고 있다. 이 지점 이후엔 기술 발전 속도가 완전히 수직 상승할 것이다.
지금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 분기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1년 사이에 거부감이 기대감으로, 다시 혼란으로 바뀐다. 기술의 품질은 올라가고, 가격은 내려가고, 사용법은 쉬워졌다. 그럼에도 오히려 혼란은 커질 것으로 본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불안함도 같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기술이 극적으로 발전할 때, 인간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남아 있을까?’를 자꾸 묻게 된다.
기술이 사회 불안을 초래할 수 있을까. 지금은 대기업에서 신입 사원을 잘 뽑지 않는다. AI가 대신할 수 있으니까. 취업 시장이 불안정해졌고, 주니어들은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빅테크 연구자들은 잠을 줄이면서 경쟁하고 있다. 기술이 주는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수면 부족, 불안, 탈락이 있다. 그래서 나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동시에 온다고 말한다. 선택은 우리 몫이다.
AI가 공감까지 대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엔 어떻게 반응했나.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챗GPT 모델의 추론 능력이 좋아지면서, 그 공감이 깊이를 갖기 시작했다. 실제로 힘든 순간이 찾아왔을 때 AI에게 털어놨는데, 돌아온 문장이 예상보다 정교했다. 상담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위로가 됐다는 사실 그 자체가 충격이었다. 인간과 AI의 경계가 흐려지는 경험이었다.
그러면 AI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은 무엇일까. 휴머니즘이다. 아무리 기술이 정교해져도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안정감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아니까. 그건 데이터로 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감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최근 AI에게 위로받은 적이 있다. 놀랍고 섬뜩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건 감정이 아닌 알고리즘이 주는 기술의 결과다. 결국은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온도는 없는 거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처럼 AI가 인간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보는가. 가능성은 있다. 프롬프트 인젝션으로 폭탄 제조법이 유출된 사례도 있었다. AI 모델은 모든 데이터를 학습하기에 방어선을 뚫으면 언제든 위험한 정보가 나올 수 있다. 100% 보안이란 없으니까. 최근 챗GPT의 핵심 설계자인 일리야 수츠케버가 회사를 나가 AI 안전 회사를 세운 것도 의미심장하다. 안에서 뭔가를 봤기에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다음 산업구조는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는가. 지금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의식주 모두 비대면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제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오프라인 모임, 명상, 영성 같은 감성적 키워드가 다시 뜨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삶을 대체할수록, 사람은 사람을 다시 찾게 된다. 나는 그다음 시대의 키워드는 ‘내면’이라고 본다.
AI가 특정 직업을 대신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는지? 지식을 가르치는 일은 AI가 더 잘한다고 믿는다. 학교는 이제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주입식 교육은 의미 없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건넨 교사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은사님’이라고 부른다. 학교의 진짜 역할은 그런 것이다.
생산성 시대에서 존재성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기술이 모든 생산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게 될까. 사실 그 견해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은 원래 생산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를 증명할 필요도 없다. 나 역시 과거엔 많은 걸 증명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리스트를 채우듯 목표를 달성했다. 하버드 대학에 가고, 커리어를 만들고. 그런데 다 이룬 순간, 공허함이 찾아왔다. 인간 존재의 가치는 성취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강민서
AI 전문가이자 컨설턴트. 카이스트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AI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교육과 컨설팅, 솔루션 개발을 통해 조직과 개인이 AI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도록 돕고 있다. 기술과 인간의 간극을 좁히며, AI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연결되는지 꾸준히 탐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