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하는 식케이
지금 힙합계에서 가장 뜨겁고도 맹렬한 남자.
원체 권위적인 걸 싫어한다. 권위적인 사람에게는 더 권위적으로 대하는 게 내 법칙이다.
‘강강약약’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
인터뷰를 위해 일주일 동안 줄곧 신보 <POP A LOT>만 들었다.
고맙다.(웃음) 어떤 곡이 가장 좋았나?
내 픽은 ‘Exotic & Toxic’이었다. 식케이 특유의 훅 능력이 잘 스며든 것 같아서.
나도 좋아하고 아끼는 곡이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다. 곡을 완성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수정 작업을 거쳤고.
앨범의 주제 의식이 궁금했다.
최근 3년간의 감정을 엮어낸 이야기라고 하던데. 우선 앨범을 만든 계기부터 설명해야겠다. 한동안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 군대에 복무할 때는 조울증이 심하게 와서 의가사 제대를 고민할 정도였다. 병원에 다니며 약도 처방받았는데, 나하고는 안맞는 기분이더라. 그래서 음악으로 이런 부정적 감정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 곡을 무대에서 신나게 풀면 더 좋은 거고. 일종의 리프레시라고 해야 할까. 내 인생의 해답을 여기서 찾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17곡의 음악으로 감정을 풀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항상 자신 있어 보이는 식케이가 조울증이라니, 조금 의외다.
조울증이라는 게 별 게 아니더라. 취미가 딱히 없어 계속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자꾸 (조울증이) 발현됐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한 만큼 나조차도 놀랐다. 그리고 그간 만난 친구들과 (감정적으로) 다 안 좋았다. 일에 집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이성 관계 자체에 피로감을 많이 느낀 것같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 살밖에 안 됐는데, 부모님도 자꾸 결혼을 보채신다. 큰일이다.(웃음)
동갑이라 그런지 공감이 된다. 그래도 아직 결혼하기엔 이른 나이 아닌가?
부모님 생각은 그렇지 않나 보다. 두 분이 워낙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얼마 전 친누나가 결혼한 이후 더 자주 얘기를 꺼내신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주변에도 하나둘 장가를 가더라. 우리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나 싶다.
아예 결혼 생각이 없나?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하고 싶지. 근데 아직은 없는 것 같다. 같은 업계에 있거나 행아웃하는 친구들을 보면 일단 너무 ‘영’하다. 어리다기보다 영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러다 언젠가 유년 시절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대화가 안 통하는 거다. 걱정하는것도 다르고, 이야기 소재가 달라서 당황한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라이프스타일이 다르니까.
맞다. 이쪽업계는 사실 나만 열심히 하면 더 벌지 않나. 근데 일반 직장인은 연봉 같은 개념이 어느 정도 책정되어 있다 보니 다른 세상 얘기 같았다. 서로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렇게 교집합 맞는 사람이 없다 보니 또 함께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사라지고.
군 생활도 쉽지 않았겠다. 부대원들과 교집합이 적지 않나.
힘들긴 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인 일이 많았다. 감정들을 느끼는 것 자체에서도 억울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군 시절 훈련도중 어깨쪽이 파열되어서 힘들었다. 어깨 부상이 심각하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 어깨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니 바로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라. 야구 선수들이 자주겪는 수술이라고 들었다. 참 고생도 골고루 한거다.
다시 앨범 얘기로 돌아가보자. 여러 가지 고생으로빚어낸 이 앨범이 목표치를 채운 것 같나?
어느 정도는.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새 출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앨범이다. 그리고 좋은 반응을 얻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올 초 유럽, 미국 투어에서 앨범 곡으로 셋리스트를 채웠다. 발매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반응이 뜨겁더라. 대부분 가사를 몰라도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곡이다. 공연장에서 쓰기 참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다.
‘레이지(rage, 신스 사운드와 리드 사운드 같은 전자악기만으로 이루어진 트랩 기반 힙합 장르)’장르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아티스트이지 않나. 이번 앨범은 특히 장르적 색채가 강하다.
팬데믹 시기 레이지 장르 아티스트의 곡을 자주 들었다. 이런 곡을 공연장에서 소화하면 어떨까 싶더라. 그래서 <ALBUM ON THE WAY!>라는 믹스테이프를 제작하면서 레이지 소스를 많이 착안했다. 사실 요즘은 레이지를 굳이 장르라고 따지기보다는 ‘다양한 전자음악 요소를 차용한 새로운 사운드의 힙합’ 정도를 통칭하는 것 같다. 아까 말한 것처럼, 가사를 몰라도 사운드 전체로 즐길 수 있다는 게 레이지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견해도 있다. 레이지 장르는 듣기엔 좋지만 국내 아티스트가 차별화된 음악으로 소화하려면 가사가 더 잘 전달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원체 발음이 안좋은 편이라.(웃음) 평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그렇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중 한 명이 제이지(JAY-Z)인데, 그도 평소 대화할 때와 랩할 때 발음이 똑같다. 굳이 정확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랩이 되는거지. 결국 대중이 아티스트의 상품성에 매력을 느껴야 소비가 일어나지 않을까. ‘내 음악? 내가 좋다면 들어라’ 나는 이런 스타일이다. 멈블 랩(mumble rap, 트랩에서 나온 랩 스타일 중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랩)도 누군가를 따라 한게 아니라 평소 내 말투와 가장 잘 맞고 편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또박또박 정형화된 랩 스타일을 안 좋아한다.
‘See You In Every Party’를 타이틀로 꼽은 이유도 궁금했다.
이 곡을 만든 지 벌써 2년이 되어가는데, 당시 ‘새 정규 앨범을 만들면 이걸 타이틀로 삼아야겠다’ 싶었다. 가장 차분한 동시에 가장 신나게 부를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힘을 좀 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곡. 투어무대에서도 부르기 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2019년에도 한 차례 월드 투어 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있지 않나. 무대에 임하는 소감이 그때와 다른 부분은 없나?
4년 전보다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온 것 같다. 정규 앨범, 믹스테이프 앨범 모두 발매 안 한 상태로 19개가 넘는 도시에서 공연을 돌았다.
발매하지 않은 음원으로 공연하는 게 더 긴장되지 않나?
아니, 오히려 더 편했다. 내 앨범을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아직 못 들은 곡이니 실수해도 모르지 않을까 싶었다.(웃음) 다 같이 편하게 하자, 이런 느낌인 거지. 근데 워낙 정신없어서 긴장감이고 뭐고 금방 사라진다. 공연하고 나서 씻은 뒤 바로 버스 타고, 한숨 잤다가 내려서 또 공연하고. 이렇게 30일 동안 19번 반복했다.
소화하기 쉽지 않은 스케줄이다. 월드 투어의 이점은 뭔가?
전 세계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 어느 도시든 일단 가보는 거다. 한 명이라도 나를 보러 올 사람이 있을 게 아닌가. 그래서 작은 규모의 클럽 공연이든, 큰 규모의 콘서트 공연이든 상관하지 않고 준비했다. 10명이 와도 간다는 생각으로 투어를 시작하는 거다.
월드 투어를 다녀온 직후 자신의 이름을 본뜬 레이블 ‘KC’를 설립했다. 갑작스러운 행보에 놀란 팬이 많던데. 갑작스럽다는 반응은 이해하지만, 나름대로 오랫동안 고민하며 계획한 일이다. 내가 확실한 ‘J’라서.(웃음) 설립한 이유는 무엇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좋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고, 이전 회사 사람들한테 피해도 안 주니까.
확실히 자기 회사가 생기면 더 자유롭긴 할 것 같다.
맞다. 그리고 이전 회사에 있으면 자꾸 동생이 생기고, 직원이 생기고 점점 회사가 커진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다들 힘들어지진 않을까 걱정도 들었고. 회사가 커지다 보니 앨범발매 시기를 잡는 것도 복잡했다. 나는 1년에 크고 작은 앨범을 네 장씩 내는 사람인데, 회사 입장에서는 계속 내 음원만 발매할 수는 없지 않나. 돌아가는 순서대로 다른 동생들도 발매해야 하니까. 이런 식으로 놓치는 것이 많다 보니 독립을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나?
나를 둘러싼 모든 것. 나라는 사람 자체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 내 일을 더 진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직원이 많지 않다 보니 스케줄 관리도 더 콤팩트하다. 그리고 오롯이 내 음원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인만큼 앨범 작업에도 더 효율적이다. 이번 정규 앨범을 만들 때도 새롭게 ‘내 팀’이 생긴 만큼 피드백을 수렴하기도 편했다.
CEO로서 레이블을 어떻게 이끌고 싶나?
일단은 음악이 좋았으면 한다. Mnet <쇼미더머니>가 많이 침체되었고, 힙합 신 자체가 죽은 만큼 앨범 작업만으로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 나 또한 운 좋게도 음원형 가수이다 보니 앨범을 내는 데 무리가 없지 않나. 사재기처럼 구린 냄새 나는 음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그런 아티스트들을 많이 만들어보려고 한다.
최근 스윙스와의 디스전이 힙합 신에서 큰 화제다. 일각에서는 이번 이슈가 올드 헤드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하더라.
내게 힘이 생기는 순간이 오면 이런 목소리를 꼭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옛날부터. 이제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 시작한 거다. 원체 권위적인 걸 싫어한다. 권위적인 사람에게는 더 권위적으로 대하는 게 내 법칙이다. ‘강강약약’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사람이라.
주변에 얽힌 지인도 많을 텐데, 부담이 컸겠다.
물론 주변에선 다 말렸다. 하지만 난 앞으로 10년은 보고 움직이는 계획형 인간이다. 그래서 걱정은 없다. 최근에는 다른 형들도 자기가 뭐 잘못한 건 없는지 갑자기 묻는 일이 많아졌다.(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올드 헤드는 없나?
올드 헤드까지는 아니지만, 재범이 형은 아직도 동경하고 인정하는 아티스트다. 상처도 아픔도 많겠지만, 자기가 원하는 걸 어떻게든 성취하는 선배다. 무엇보다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박재범과 언뜻 행보가 비슷하다.
그런가? 사실 이전 회사에서 나올 때도 형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내 5년 치 계획을 설명했는데, 흔쾌히 이해해줬다.
엄청난 작업량을 자랑하는 ‘허슬러’라는 점도 닮지 않았나. 이토록 부지런히 다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중에는 못 하니까. 일종의 ‘시한부’ 같은느낌이라고 표현하면 이해되나?
시한부라니, 실제로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건 아닌데, 음악을 그만두는 시점을 어느 정도 정해놓았다.(웃음) 스무 살 때부터 나라는 사람의 ‘브랜딩’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예를 들어 앨범을 몇 개 낸 뒤 투어를 진행하고, 언제 그만둬야 할지 기점까지 미리 정해둔거다. 거의 정해놓은 대로 살아간다.
다작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래도 군대 다녀와서는 조금씩 일을 덜어내고 있다. 바쁘더라도 금요일에는 꼭 놀려고 하고. 불현듯 내일 당장 못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슬럼프나 번아웃도 자주 오는 편이다. 근데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더 많은 일을 따내 잠재우곤 했는데, 이젠 조금 일정을 줄이더라도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트렌드를 좇지는 않지만, 항상 트렌디하고 싶다.
그게 내 오리지낼리티라고 믿는다.
자신의 행보에 대해 고민이 많은 듯한데, 사람들이 어떻게 봐주길 원하나? 한 인터뷰에서 “랩스타보다는 팝스타를 지향하며 살고 있다”고 답한 걸 읽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사회의 잣대라는게 있지 않나. 내가 힙합 음악을 다루다 보니 ‘래퍼’, ‘랩스타’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다. 하지만 랩스타라는 잣대에 나를 갖다두기에는 그 스테레오 타입에 안 맞는 부분이 많다. 나는 술도 거의 안 마시고, 많은 여자친구를 거느리는 편도 아니다. 딱 한 명이면 된다.(웃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단지 래퍼라는 이유로 그려지는 이미지가 확고하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딘딘 형에게 래퍼로서 이미지를 바라진 않지 않나. 이미 엔터테이너, MC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그 사람에 대한 대중의 시야가 훨씬 넓어진 거다. 나라는 사람도 그런 폭넓은 시야로 봐주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내가 더 다채로운 행보를 보여줘야겠지만.
음악에서는 어떤가? 오리지낼리티를 강점으로 가져가는 래퍼, 트렌디함을 강점으로 가져가는 래퍼. 요즘 래퍼들은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식케이의 경우 후자로 생각하는 이가 많은 것 같은데.
좋은 답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타임라인’이 있지 않나. 내 음악에도 그런 타임라인이 있다. ‘이번엔 누구 노래를 많이들었나?’, ‘어떤 아티스트 음악을 가장 좋아하나?’, ‘어떤 사운드 스타일을 좋아하나?’ 이런 질문 앞에서 나 스스로 제대로 답을 못 하는 순간 내 오리지낼리티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다. 패션과 힙합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디자이너들이 옷을 만들고 그것을 뒤따르는 컬렉션 피스가 많아지면 하나의 장르가 된다. 난 지금껏 무수히 많은 음악을 들었고, 그만큼 많은 음악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트렌디하다는 견해는 어떻게 생각하나?
트렌드를 좇지는 않지만, 항상 트렌디하고 싶다. 그게 내 오리지낼리티라고 믿는다.
지금 머릿속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무엇인가? 돈,꿈은 아닐 것 같은데.
글쎄, 내려놓는 방식?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멋있게 끝낼 수 있을까 고민이많다.(웃음)
이 인터뷰를 본 많은 사람이 또 한번 놀라겠다. 레이블 설립, 정규 앨범, 월드 투어까지 정말 많은 걸 이룬 한 해다. 남은 하반기 계획은?
거창한 계획은 없다. 12월 말쯤 어깨 수술을 한다. 원래 10월에 할 계획이었는데, 일이 많아 미뤄졌다. 아마 수술 후 한동안은 재활 치료를 해야겠지.
큰 수술이다. 재활 기간 동안 쉬기만 할 건가?
그럴 리가. 할 것도 없는데, 새 앨범이나 작업해야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