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미술
제이슨함 갤러리 함윤철 대표의 스무 가지 취향.

2024년 홍콩 필립스 옥션에서 한국 신진 작가 이목하의 ‘I’m Not Like Me’가 165만1000홍콩달러에 낙찰되며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이 작가를 발굴한 인물은 제이슨함 갤러리 함윤철 대표다. 우르스 피셔, 사라 루카스 등 영향력 있 는 작가가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최근에는 올리버 암스의 한국 첫 개인전을 개최해 전 작품을 완판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7년 성북동에 문을 연 제이슨함 갤러리는 국내외 미술 시장에서 두터운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1990년대생 갤러리스트 함윤철은 전형적인 미술계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2013년 미국 코넬 대학교에서 고분자공학 학사와 재료공학 석사를 마친 후 컬렉터인 어머니의 부탁으로 갤러리를 찾았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어머니를 대신해 작품을 구하는 일을 하며 갤러리, 작가와의 관계를 넓혀나갔다. 김밥 장사든, 무엇이든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그는 갤러리에서 미래를 발견했다. 공학도에서 갤러리스트로, 그리고 글로벌 시장의 플레이어로 자리 잡기까지 그를 이끌어온 취향과 안목을 들여다봤다.
첫 컬렉션은 세실리 브라운의 작품이다. 대학 졸업 후 미술 전문 지식이 전무했던 때라 그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오롯이 감각만으로 구입한 작품이다.
인생을 바꾼 미술품은 나라 요시토모의 ‘Napping Girl in Green’이다. 나의 졸업식 참석을 위해 뉴욕에 온 어머니가 급히 귀국하는 바람에 혼자 남아 어머 니가 가고 싶어 하던 갤러리들을 대신 찾았다. 한 갤러리 창으로 보이는 작품이 집에 있던 것과 닮아 보여 뭔가에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다. 페이스 갤러리에서 치른 나라의 첫 전시였다. 월세만 해도 수억 원은 될 것 같은 공간에서 당당히 전시된 작품을 보며 ‘이런 비즈니스가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가고시안 갤러리를 보면 늘 감탄한다. 그들은 본질에 집중한다. 갤러리의 본질은 결국 작품의 퀄리티다. 지금까지 본 전시를 통틀어 가장 잊히지 않는 전시 역시 가고시안에서 열린 리처드 세라의 개인전이다. 작품 자체도 강렬했지만, 그 작품이 전시장에 놓이기까지 과정이 더 충격적이었다. 맨해튼이 섬이라 다리를 건너야하는데 다리가 작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해상으로 운송했고, 전시장 벽을 강화하는 공사까지 진행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감행한 일련의 작업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상업 화랑이지만, 단순히 판매를 위한 전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약 2000만 달러에 거래됐다. 이익에 앞서 비전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동시에 판매까지 성사시킨 것이다. 그들이 작가와 고객을 대하는 방식과 진정성을 깊이 존중한다.
뉴욕과 강원도 정선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정선에는 아내의 할머니 집이 있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 세상의 사악함이 싹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다. 정선은 충전을 위한 장소라면, 뉴욕은 열정과 영감을 자극하는 곳이다.
이목하 작가는 내 커리어의 전환점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직접 DM을 보냈다. 3평 남짓한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그의 천재적 자질을 피부로 느꼈다. ‘작업에 전념하려면 얼마만큼의 지원이 필요하느냐고 물으니, 300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1억 원을 지원할 테니 마음껏 작업해달라고 했다. 이후 작업물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무대를 만들어주려 노력했고, 그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줬다. 구단주가 선수에게 축구화를 제공하듯, 나는 지원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성과는 오롯이 작가의 역량이다. 올가을에는 아트 바젤 파리에서 솔로 부스를 열 예정이다.
‘다 안다’는 오만함을 경계한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할 때도 있고, 내가 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 한다. 타인이 무엇을 하는지 끊임없이 관찰하며 나의 알고리즘을 업데이트한다. 감각을 녹슬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 가지는 지식에 대한 갈증,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인식, 그리고 그림 한 점. 그림은 내게나 받는 사람에게나 의미 있으면서 교환 가치가 있는 작품이면 좋겠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행복은 성취와 그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다’.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이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돈을 벌 때도, 자극적인 경험을 할 때도 행복하다. 그런데 이것들은 반복되면 질리거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성취와 깨달음은 반복할수록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이끈다.
인생의 바이블은 <Ernst Beyeler A Passion for Art>. 유명 갤러리스트의 자서전은 대부분 읽었지만, 에른스트 바이엘러의 책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삶에는 낭만과 비즈니스가 동시에 존재한다. 아트바젤 창시자인 그가 미술계 주류에서 벗어난 도시 바젤에서 갤러리스트로 살아남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특히 인상적이다. 주옥 같은 문장 중 늘 마음에 새기는 구절이 있다. ‘모든 거래마다 두 번째 잠재적 구매자를 찾으려고 했다.’ 사람은 원래 작품을 급하게 살 이유가 없지만, 또 다른 관심자가 존재할 때 비로소 거래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지금도 실무에서 활용하는 원칙이다.
영원한 플레이리스트는 퀸이다. 퀸의 열렬한 팬이다. 영국에서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의 공연을 관람했고, 대학생 시절에는 앨범은 물론 옥션을 뒤져 머큐리의 소품을 모으기도 했다. 2000년에 발매한 <솔로 컬렉션>은 특히 아끼는 컬렉션이다. 머큐리의 솔로 커리어를 기록한 메모라빌리아Memorabilia)다. 머큐리의 음악처럼, 수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작품을 찾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까르띠에의 순금 안경이다. 워낙 고가라 선뜻 구매하지 못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아내가 내게 선물했다. “시계보다 얼굴을 많이 보니까, 얼굴에 더 값진 물건을 투자하는 게 가성비 좋지 않느냐”라는 말과 함께.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다크나이트>. 영화가 품은 미학이 좋고, 재벌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설정도 좋다. 히스 레저의 얼굴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만약 다른 삶을 산다면 역사에 남을 만한 수학자 또는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 수학 천재는 애초에 뇌의 피지컬이 다르다는 걸 대학생 때 깨달았다. 논리 속도, 복합적 사고, 순발력, 기억력까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 혼자 이해하는 상태, 그 고독과 즐거움은 어떨까 상상한다.
10만 원을 가장 만족스럽게 쓰는 방법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제철 생선회를 먹는 것이다. 한 달에 한번은 꼭 방문한다.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와 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액션을 보며 큰 에너지를 얻는다.
지금,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의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게시물은 수산 시장 생선잡이다.
미술 외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는 거시경제다.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은 1시간 정도다.
즐겨 사용하는 앱은 아서 애널리스틱. 미술 시장을 분석하는 AI 기반의 데이터 플랫폼이다.
갤러리스트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좋은 인연이 쌓일 때다. 확신을 가진 작가와 초기부터 커리어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은 영광스럽다. 고객이 이익을 얻을 때도 기쁘다. 작품에 대한 만족이든 작품의 가치가 오르든, 어떤 이유로든 “이 갤러리와 인연 맺길 잘했다”는 신뢰를 확인할 때 가장 뿌듯하다.
꿈꾸는 갤러리는 최고 재능을 지닌 작가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갤러리로 거듭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