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이 바라는 것
반복과 극복, 박성훈이 나아가는 방식.
저녁이 되니 다시 추워졌네요. 히터 좀 틀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봄이 왔나 싶었는데.
그러니까요. 인터뷰가 공개될 즈음에는 아마 많이 따뜻해질 거예요.
음, 이게 4월호니까(곰곰이 생각하며), 공개일이 대략 언제죠?
3월 말이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한창 방영 중이겠죠.
그러네요. (공개가) 얼마 안 남았네요.
‘월가 애널리스트 출신 M&A 전문가’라는 ‘윤은성’의 인물 소개를 읽었어요. 왠지 서늘하고 날 선 느낌이 들던데요.
‘윤은성’은 겉보기에 굉장히 영민하고 젠틀하지만, 그 안에 야욕을 숨긴 남자예요. 작중 권태기를 겪는 부부 ‘홍해인’과 ‘백현우’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감을 주는 인물이죠.
이번에도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구나 싶었어요.
그간에 맡아보지 못한 배역인 만큼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 2부터 아직 밝힐 수 없는 작품까지, 차기작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극이 가져다줄 수 있는 재미, 캐릭터의 매력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 원래 제 성향에 가까운 캐릭터보다는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도전 의식이 더욱 샘솟아요. 그만큼 일궈내야 하는 폭이 넓어지니까.
현실에서는 어떤 성격인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기본적으로는 내향적인 것 같아요. 제 MBTI 유형이 ISFJ거든요. 그렇다고 또 마냥 차분한 건 아니에요. 일상에서 작품의 영향을 크게 타곤해요. 밝은 캐릭터를 맡으면 현실에서도 밝아지고, 어두운 역할이면 현실에서도 무거워지는 것처럼. 딱 어떤 사람이다, 규정짓기는 어렵죠.
ISFJ가 가장 정의 내리기 어려운 유형이라고 하잖아요. 혼자 있으면 또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누군가를 만나다가도 불쑥 혼자 있고 싶어져요.(웃음)
성향과 먼 캐릭터를 연기할 때 도전 의식이 샘솟는다고 했는데, 이를테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전재준’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 속 악인을 연기할 때 그런 느낌이 들어요. 결과물에 대한 좋은 피드백도 선역보다는 악역을 연기할 때 더 받는 것 같고요.
아무래도 작품 속 악인이 주는 임팩트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KBS2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착한 역인 ‘장고래’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이도 많던데요. 작중 입체적 서사를 갖춘 캐릭터인 만큼 소화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하나뿐인 내편>은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고, 캐릭터 자체가 착한 역이다 보니 초・중반까지는 촬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러다 나중에 간경화 말기 진단도 받고 아내와 엄마의 관계를 풀어나가야 하는 신부터 (감정을 소화해내기) 어려웠죠. 부족하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작품이에요.
<더 글로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재준의 임팩트가 워낙 컸잖아요. 이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전재준의 경우 대본상으로 ‘그냥 개XX’라고 되어 있었어요.(웃음) 그 만큼 거침없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정말 날라리 같은 인물인 거죠.
저는 지금도 데뷔 초부터 여전히 진행형이고, 부족한 게 있다면
거듭 반복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게 지금의 몫이자 살아가는 방식 같아요.
이전에도 여러 악역을 거쳤죠. 전재준을 연기할 때와 KBS2 드라마 <저스티스>, tvN 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에서 악역을 연기할 때 다른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같은 악역이라도 성향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었죠. <저스티스>의 ‘탁수호’를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의 ‘서인우’를 사이코패스라는 정형화된 악인으로 정의한다면 <더 글로리>의 전재준은 ‘자유
분방한 악인’으로 수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 입장에서 그 만큼 자유롭게 이것저것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 더 열려있다고 해야 할까요. 친딸 ‘하예솔’을 생각하는 모습은 진심인만큼 다른 역할보다 입체적인 인물이기도 하고요.
딸이 불법 촬영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차를 타고 달려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앞차에 욕을 퍼부으며 클랙슨을 마구 울리던.
감사합니다.(웃음) 사실 작품에서 유일하게 제 애드리브가 담긴 신이에요. 촬영할 때 대사는 한두 줄 정도만 있었고, 감독님께 추가적으로 애드리브를 요청받은 상황이었거든요.
유독 고함지르거나 공격적인 대사가 많았던 인물이에요.
연극 무대에 선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는 오롯이 그 장면을 위해 감정을 쏟아붓고 관객을 설득하니까요. 그런 감정선을 잊지 않기 위해 미리 연습하죠.
아, 집에서요?
아니, 주로 운전할 때요. 집에서는 소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연습하고 실전에서 대사를 외치다 보면 해소되는 부분도 있어요. 왜, 나이 들수록 화낼 일이 점차 줄어들잖아요. 화가 나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잦아지고. 이런 신이 없다면 언제 그렇게 누군가한테 마음껏 소리 질러보겠어요. 현실에서 그런다면 인성에 문제있는 사람이죠.(웃음)
전재준의 대사를 보면 김은숙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묻어나잖아요. 이를테면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차 타고요”라고 말하는 대사처럼. 그런 부분도 기존에 없던 악역 형태예요.
그렇죠. 그런 ‘말맛’ 덕분에 더 특별한 캐릭터고, 작품 같아요.
촬영을 마치고 대박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나요?
어느 정도 좋은 예감은 들었어요. 김은숙 작가님이 워낙 훌륭하게 써주셨지만, 연출가님과 작가님의 호흡도 잘 맞았거든요. 함께 연기한 배우 한 명 한 명이 캐릭터와 찰떡이었고요. 그럼에도 기대보다 훨씬 더 잘되었죠.
배우 생활에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제 얼굴을 대중에게 알린 작품인 만큼 애틋한 마음이에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전보다 많은 분이 알아봐주시거든요.
워낙 배역의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에 말 걸기가 무서울 것 같은데.
오, 맞아요! 예전에 <하나뿐인 내 편>이 잘될 때는 사진 요청도 해주셨는데, 요즘은 멀찌감치 서서 알아봐주시는 편이에요.(웃음) 그래도 인사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이전부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두려운 것을 작품으로 만나
직접 부딪히거나 깨고 싶어 한 것 같아요.
<더 글로리> 이후 달라진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이제 막 새로운 챕터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굴을 알린 이후 행보가 더 중요하다고 믿거든요. 그렇게 따져보면 또 다른 시작점에 들어선 거죠. 좋은 배우가 되려면 이 세계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굴 좀 알렸다고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죠.
신인 시절 인터뷰에서 ‘다작’을 최우선 목표로 했어요. 그 목표는 지금도 변함없는지 궁금합니다. 덧붙이고 싶다거나.
많은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은 사실 지금도 변함없는 것 같아요. 한 작품 한 작품 해나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원체 워커홀릭이기도 하고요. 또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단순히 다작만 하는 게 아니라 늘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신뢰감을 주는 배우라, 이를테면 어떤 배우가 있을까요?
이병헌 선배님이요. 선배님이 어떤 작품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작품을 보게 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늘 기대치를 경신하는 선배죠.
필모그래피를 보니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달려왔더군요. 스스로 배역을 위해 몰아붙이는 타입인지도 궁금해요.
그런 편이에요.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그릇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고 믿거든요. 이전부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두려운 것을 작품으로 만나 직접 부딪히거나 깨고 싶어 한 것 같아요. 성소수자를 다룬 퀴어 연극 <프라이드>에 도전할 때도 그랬어요. 어릴 때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기에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거든요. 캐릭터를 통해 편견을 깨고 도리어 그분들을 이해해보고 싶었어요. 영화 <곤지암> 때도 그래요. 겁이 많은 편이라 호러물은 전혀 못 봤는데, 제가 닿지 못한 곳이기에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일련의 과정이 저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고 믿고요.
스스로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곳까지 이끌었네요.
그러네요. 사실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도 그런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를 막연하게 고민하다 연기 학원에 다녔는데, 그중에서 가장 연기를 못했거든요. 떨기도 많이 떨었고. 이상하게 그런 제 자신을 극복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때부터 연기라는 가치가 제게 가장 큰 과제가 되었어요.
연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다들 놀랐어요.(웃음) 당시만 해도 제가 워낙 소극적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아버지는 “네가 뭘 해도 응원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파야 한다”고 하셨어요. 믿어주신 거죠. (아버지가) 젊을 때 진로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하셨는데, 그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길게 남았던 것 같아요. 대학로에서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30대 초반까지 아버지의 그 말씀이 불안한 마음을 단단하게 지탱해주었죠.
불안감이 사라진 시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사실 거창한 건 없어요. 오디션을 안 보고도 연극 공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배우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불안감이 사라졌어요. 아르바이트를 더 이상 하지 않고도 오롯이 무대에서 연기를 보여줄 수 있구나 싶었죠. 물론 돈은 여전히 부족했지만요. 동료들과 지지고 볶고 하면서 우리의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그때는 그 부분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옥탑방 고양이>, <올모스트 메인> 등 다양한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선보인 바 있죠. 연극 무대에서 처음 희열을 느꼈던 순간, 기억나요?
그럼요.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첫 워크숍 연극 오디션을 봤는데, 갑자기 주인공이 된 거예요. 모두가 의아해했죠.
당시 워낙 난다 긴다 하는 친구가 많았거든요. 스스로도 우리 학번 중 가장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했고요. 처음 무대 위에서 대사를 시작하는데, 객석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리던 게 기억나요.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관객들이 내 대사에 집중한다는 걸 무대 위 공기로 접할 수 있었어요. 거기에 압권은 커튼콜이었어요. 내 마지막 대사가 끝나고 커튼콜에 다가서는 순간, 관객의 박수 소리와 함께 엄청난 쾌감을 느꼈죠.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해 연극 무대에 계속 서게 된 것 같아요.
배우에게 연극 무대는 고향 같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연극 무대로 복귀하고 싶을 때는 없나요?
‘고향’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초석과 기반을 다져준 곳이니까. 무대에 안 선 지도 벌써 7년이나 됐더라고요. 다행히 올해 6월에는 <빵야>라는 연극으로 오랜만에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요. 작년 공연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좋은 기회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7년 만의 무대인 만큼 느끼는 소회가 남다르겠네요.
무엇보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아요. 매번 공연을 시작할 때마다 들리던 관객의 소근소근거리는 소리, 무대 뒤에 설치된 조명까지 아른거리거든요. 처음 공연할 때마다 ‘오늘도 잘해야지’라고 다짐했던 순간도요. 중간에 긴 공백이 있었던 만큼 무대에서 감을 찾기 위해 다시 연습해야죠.
여유가 생기면 조금 쉬어도 될 텐데, 워커홀릭 맞네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좀 그래요.(웃음) 딱히 취미 생활도 없고, 쉬면 좀 불안감을 느끼는 타입이죠. 일하는 게 너무 좋고요. 연기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크거든요. 아, 요즘 빠진 게 하나 있긴 한데, 이게 취미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어떤 건데요? 제가 한번 판단해볼게요.
요즘 ‘불멍’ 영상에 빠졌어요. 실제로 불을 쬐는 건 별로 안 좋아하고, 영상으로나마 불을 접하면서 릴랙스하곤
해요. 불멍 영상 딱 틀어놓고 집에서 혼자 와인 한 잔 마시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디지털 불멍’인 셈이네요. 배우들은 매번 작품을 통해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 압박감을 느낄 때는 없나요?
음, 지금보다 신인일 때는 크게 느꼈죠. 작품을 할 때마다 방송 모니터링을 지독하게 많이 했고, 촬영 현장에 나가기전에는 휴대폰으로 계속 제 모습을 촬영했어요.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수정하고, 또 촬영하고. 몇 번이나 그 과정을 반복했죠. 결국 그런 압박감은 어느 곳에서나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감정이고, 수없이 깎아내고 이겨내야 극복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믿어요.
그런 믿음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최근 방의걸이라는 화백의 전시에 다녀왔어요. 그분의 글귀 중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이 길을 걸어오면서 좌절하고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여기에 이르렀으니 팔자요 천직이라 여겨진다.’ 저는 이 말을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가르쳤다’고 해석했어요. 미술과 음악, 연기를 왜 예술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놓았을까 궁금했는데, 글귀를 보니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방 화백이 미술을 대하는 태도와 내가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닮아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저는 지금도 데뷔 초부터 여전히 진행형이고, 부족한 게 있다면 거듭 반복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그게 지금의 몫이자 살아가는 방식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