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남자
무엇에 매료되었나?
박제언
박제언 30세, 평창군청 소속 노르딕 복합 국가대표 선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여름이었을 거다. 누구나 인생에서 과도기가 있지 않나. 나 또한 그랬다.
노르딕 복합이 비인기 종목인 데다 등록 선수가 나 혼자다 보니 성적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감이 컸다. 게다가 팬데믹 때문에 올림픽을 2년 앞두고 계획했던 해외 훈련이 모두 무산됐다. 불안감도 컸고, 번아웃이 왔다. 그때 핀란드 코치가 내게 명상과 요가를 권했다. 지금은 시합 전 명상을 하며 큰 도움을 얻고 있다. 노르딕 복합은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를 결합한 종목인데 스키 점프대에서 내려가기 전, 크로스컨트리 경기 전 잠깐이라도 명상을 한다.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할까’ 등 잡념이 사라지고 오롯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 요즘 JTBC 예능프로그램 <뭉쳐야찬다>에 출연중인데, 축구 경기 전에도 명상으로 큰 도움을 얻는다. 일상에서 평정심이 필요할 때 잠깐씩 눈을 감으면 마음이개운해진다.
향수를 뿌린다.
명상은 호흡에 집중하는 행위다 보니 주위의 향에 자극받기 마련이다. 명상 시작 전, 그날 기분에 어울리는 향수를 고른다. 마음이 들떠 있으면 차분한 우드 향을, 심신이 지칠 때는 상큼한 과일 향을 뿌린다. 르 라보와 산타 마리아 노벨라 향수를 즐겨 사용한다.
<우파니샤드>.
고대 인도의 경전 모음집으로 알려진 이 책을 자주 열어본 다. 첫 페이지의 ‘명료한 의식으로 당신을 깨닫게 하소서’라는 문장을 시 작으로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흐트러진 의식과 마음 을 다잡을 수 있다. 외적 감각 활동을 멈추고 내적 고요함을 유지하는 명상이나 요가처럼 말이다.
오로라 아래서의 명상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훈련을 위해 1년 중 절반 이상을 핀란드에서 지내다 보니, 이 버킷리스트를 빠르게 달성할 수 있었다. 종종
오로라 헌팅을 다니며 눈밭에 앉아 명상이나 요가 수련을 한다. 눈을 감은 채 호흡을 이어가다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광경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별이 쏟아지고, 푸른빛 오로라가 춤을 춘다.
그야말로 황홀하다. 가장 고요하고, 가장 어두운 곳이 이상적인 명상 장소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로라가 펼쳐진 곳은 꿈같은 장소다. 제주도 바닷가에서 매트에 앉아 했던 명상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처음으
로 1시간 동안 명상을 한 날이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봄이었고, 파도 소리, 바람의 촉감, 바다 내음을 오롯이 느꼈다.
내려놓는 법.
명상 수련 후 얻은 것이다.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인데, 생각의 많은 가지를 쳐내는 과정이 곧 명상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명상 전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를 비로소 알게 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5분도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명상도 운동처럼 꾸준히 할수록 늘기 마련이다. 10분, 30분, 45분 늘리다 보면 어느새 1시간씩 명상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정형록
정형록 39세, 웰니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파지티브호텔’ 대표.
내 삶에서 명상이 큰 의미로 자리 잡은 지는 5년 정도 됐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웰니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파지티브호텔’을 론칭했다. 사람들이 내 브랜드를 통
해 긍정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길 바랐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달라져야 했다. 그때 명상이 도움이 됐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명상이야말로 멀리 내다보는 힘을 길러주고 행복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파지티브호텔을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명상에서 비롯했다.
수령 100년 이상 된 반얀나무로 둘러싸여
명상을 했던 건 손에 꼽는 경험 중 하나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명상과 요가를 할 수 있는 장소를 꼭
물색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이 미국 라나이섬이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는 작은 섬으로, 원래는 파인애플과 바나나 농장이 있었는데 한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웰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리조트가 생겨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라나이섬은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삼림욕과 명상을 할 수 있는데, 보통 나무가 아니다. 수령 100년 이상 된 반얀나무. 반얀나무는 많은 가지가 땅으로 내려와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얽히고설켜 공간을 압도한다. 그 아래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다 보면 땅속 미세한 에너지가 온몸을 자극하는 듯 신비로운 경험에 휩싸이게 된다.
사무실 한편에 명상 아이템을 진열해두었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Astier de Villatte)의 인센스와 동일 브랜드의 고양이 모양 인센스홀더는 가장 애정하는 물건. 인센스 향은 흙 내음, 마른 건초, 파촐리 그리고 남미의 마테 향을 블렌딩한 ‘남체 바자르(Namche Bazar)’를 특히 좋아한다. 남체 바자르는 네팔의 마을 이름에서 따왔는데, 에베레스트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2023년 히말라야에서의 수련을 계획중이라 더욱 끌리는 향이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파지티브호텔에
서도 향을 선보일 예정인데, 비가 내린 후 숲속을 거닐며 맡을 수 있는 향이다. 또 한편에 있는 가부좌를 튼 곰 인형 ‘메디테디(Mediteddy)’는 나의 요가 메이트다. ‘명상’과 ‘테디 베어’의 합성어인 ‘메디테디’는 특수 프레임으로 제작해 거의 모든 요가 시퀀스를 구현할 수 있다. 요가 교육용으로 사용할 만큼 손의 방향, 발의 방향까지 디테일하게 움직일 수 있다. 요가 클래스에서 배운 동작을 이 곰 인형과 함께 수련한다. 최근에 들른 파리의 ‘오가타(Ogata)’에서도 꽤 인상적인 명상 아이템을 발견했다. 티 아틀리에이자 갤러리인 오가타에서 판매하는 다채로운 향의 인센스와 단아한 공예품에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보고, 맡고, 마시며 오감으로 명상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웃는 일이 참 많아졌다.
사실 명상을 알게 된 후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예전엔 ‘내가 행복한 사람이구나’라고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면, 이제는 틈틈이 명상을 하면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마음에 심는다. 또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
게 된 점도 긍정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타인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도구와 같다. 명상하는 시간이 쌓이면 누가 맞고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많은 직원과 소통해야 하는 CEO 자리에 있는 내게 명상을 통해 얻은 변화는 값진 수확이다.
‘GOOD IN BAD OUT’.
운영 중인 브랜드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좋은 생각과 마음은 안에 새기고, 부정적 생각과 마음은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주로 새벽 명상을 선호하는데, 일단 새벽에 일어나면 머릿속이 비워진 상태라 좋은 생각을 채우기 좋다. 반면 저녁 명상은 비우는 시간이다. 2023년 명상을 시작하고 싶다면 딱 한 가지만 기억하자. 명상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사실. 눈을 감고 딱 30분만 호흡과 내면에 집중하며 나만의 리추얼(ritual)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