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CEO, 마티아스 바이틀 대표의 퇴근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CEO 마티아스 바이틀이 일상 속 리듬을 다듬는 방식.


가파른 도시의 리듬 속에서도 자신만의 호흡을 찾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 부임한 지 2년 차,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이하 ‘벤츠’)를 이끄는 마티아스 바이틀(Mathias Vaitl) 대표다. 그는 취임 이후 신형 E-클래스와 CLE, GT 같은 신모델 도입, 새로운 스탠더드 휠 베이스 트림 론칭을 통한 S-클래스 트림 확장, 세계 최초의 ‘마이바흐 브랜드센터 서울’ 오픈까지 굵직한 과업을 이끌어냈다. 성과 뒤에는 치열한 시간이 있었고, 그 무게를 균형 있게 감당하도록 만든 건 업무 이후 이어지는 그의 리추얼이었다. 남산을 달리며 마음을 정돈하고, 스티어링 휠을 잡은 채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이 리더로서 전환점이자 또 다른 힘이 되었다. 9월 10일, 이날도 그런 순간의 연장선이었다.
16:30
외부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향하는 길 마이바흐 뒷좌석에서
외부 미팅을 마치고 마이바흐 EQS SUV 뒷좌석에 앉은 바이틀은 잠시 눈을 감았다. 비 갠 하늘, 창밖으로 한강이 스쳐 지나갔다. 차 안은 바깥 소음과 단절된 듯 고요했다. 돌비 애트모스로 흘러나오는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작은 콘서트홀처럼 선명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고요할 수 있으니 놀랍죠.”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곳은 긴장된 하루의 리듬을 조율하는 조용한 쉼터였다.
바이틀에게 벤츠는 어린 시절부터 일상 속 한 풍경처럼 자리해왔다. 할아버지가 몰던 C-클래스 조수석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자리는 마이바흐 EQS 뒷좌석으로 바뀌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이제 서울을 달리는 벤츠의 수장이 되었다. 그가 처음 벤츠에 입사했을 때 가족들은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집에서 드디어 ‘벤츠인’이 나왔다고 좋아했죠.” 그의 첫 출근은 온 가족의 기쁨이었다. 바이틀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치열한 시간을 쌓아갔다. 마침내 그 길은 오늘 한국에서 벤츠를 이끄는 자리로 이어졌다. 취임 후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성과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새로운 모델의 도입과 마이바흐 브랜드센터 서울 개관을 꼽았다. “한국 시장에서 신형 E-클래스, S-클래스 스탠더드 휠베이스, CLE, 신형 GT 등을 성공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건 큰 의미였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최초의 마이바흐 브랜드센터를 열어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17:30
업무를 마무리하며 사무실에서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다음 날 미팅 목록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의 하루는 대체로 미팅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예산과 세일즈 전략, 한국에 들여올 트림 결정과 가격 책정, R&D·서비스·법률 등 회의마다 다양한 안이 오가지만, 방향을 정하는 건 늘 그의 역할이었다. 바이틀은 “미팅이 많지만 그때마다 머리를 비우고 새 마음으로 준비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책상 한가운데에는 두툼한 노트가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쓰기 시작해 대략 1년에 한 권 채운다고 했다. 그 옆에는 아이패드와 노트북이 나란히 놓여 있다. 상황에 따라 주로 영어로 메모하는데, 때로 독일어가 끼어든다. 그는 한때 1년간 디지털 메모만 써보려 했지만, 결국 펜으로 돌아왔다. 손으로 써야 오래 기억되는 것이 이유였다. 잉크가 스며든 한 귀퉁이에는 굵은 영문 글씨로 이틀 후 있을 터키 출장 일정이 적혀 있었다. 그는 필요한 자료를 업무용 서류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가벼운 동네 산책을 제외하고는 휴가 중에도 이 가방을 꼭 챙기는 편이에요.” 쓰지 않더라도 언제든 대응할 수 있다는 감각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고 했다.


18:30
러닝을 하며 남산 둘레길 위에서
퇴근 후 그는 러너가 된다. 30대 초반,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던 축구를 내려놓고 러닝을 시작했다. “물론 축구도 즐거운 스포츠지만, 팀원 모두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번거롭더라고요. 러닝은 그런 제약이 없어서 좋아요. 시간, 날씨, 계절에 상관없이 뛰기만 하면 되니까요.” 회사 근처 남산은 그에게 놀라운 공간이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넓은 숲이 있다는 사실, 계절뿐 아니라 조경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색채가 그의 마음을 다독인다.
그는 늘 러닝 앱으로 자신의 코스를 기록한다. 몇 km를 뛰었는지, 어떤 페이스였는지, 작은 수치가 모여 지난 시간을 증명한다. 때때로 아이들과 함께 타워까지 걸어 올라가 도심을 내려다보기도 하지만, 이날 저녁 그는 운동화 끈을 묶고 달리기에 나섰다. 2km쯤 지나면 호흡이 고르고, 머릿속은 비워진다고 설명했다. 10km 러닝을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그는 종종 특정 주제를 정해 뛰며 고민을 곱씹는다. 다음 날 딜러 미팅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새로운 차종의 가격 책정을 어떻게 설득할지, 혹은 인증 과정에서 마주할 정부와의 협의를 어떻게 풀어갈지. 본사의 기대와 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은 늘 무게로 다가온다. 그러나 1시간 남짓한 러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적어도 한 가지 해법은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다.
한편 그의 루틴은 개인적 균형을 넘어 사회적 울림으로 확장된다. 벤츠 코리아가 9년째 이어온 러닝 행사 ‘기브앤 레이스(Give ’N Race)’는 바로 그 연장선이다. 참가비 전액은 아동을 위한 기부로 쓰이고, 수많은 러너들이 함께 도심 속을 달린다. 올해 부산에서 열린 12회 행사에는 2만 명이 모여 광안대교를 건넜다. 그는 설명한다. “혼자 달릴 땐 문제 해결을, 함께 달릴 땐 연대를 배웁니다. 개인의 리추얼이 사회적 경험으로 번지는 거죠.
아울러 그는 러닝처럼 회사의 방향도 꾸준히, 명확히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체험과 투명성이 핵심입니다. 마이바흐 브랜드센터와 같은 오프라인 공간뿐 아니라, 온라인 공식 판매 채널 등을 통해 더 투명하게 고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건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삶의 일부를 경험하게 하는 것, 고객 경험에서 1위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19:30
AMG CLE 카브리올레의 스티어링 휠을 잡고 한남대교 위에서
낮의 마이바흐가 정숙한 휴식 공간이라면, 밤의 AMG CLE 53 4MATIC+ 카브리올레는 긴장된 하루를 해방시키는 무대가 된다. 귀가하는 그는 직접 스티어링을 잡고 톱을 연 채 도심을 가른다. “한남대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늘 새로워요. 특히 컨버터블 카인 이 차로 대교를 건널 때면 서울이 전혀 다른 도시 같아요.” 카브리올레의 스포티하고 몰입감 있는 주행 반응은 그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리듬처럼 보였다. “스티어링 휠의 반응, 브레이크 감각, 그리고 ‘벤츠를 타고 있다’는 느낌.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차에 대한 대화는 어느새 ‘벤츠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명차’ 이야기로 번졌다. “S-클래스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명차입니다. 도로에서 보기만 해도 아름답죠. SL은 헤리티지와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모델이고, 독일에 머무른 시절 몰았던 E-클래스 T-모델 역시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소년으로 돌아간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운 단종 모델이 많습니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20:30
일과를 마무리하며 집에서
저녁 8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이미 꿈나라에 가 있다. 대신 그는 아내와 하루 이야기를 나눈다. 짧지만 진솔한 대화가 그에겐 가장 소중한 쉼이다. “독일 본사와의 시차 때문에 밤에도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받습니다. 완전한 퇴근이란 없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압박은 늘 따라오지만, 그가 해외 지사와 본사를 오가며 일해온 긴 시간 동안 버팀목은 언제나 가족이었다. 체코, 중국, 독일을 거치며 이국 생활에 적응해준 아내와 아이들이 곁에 있기에 그는 낯선 땅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집 안의 고요 속에서 그는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그렇게 다가올 아침을 위한 호흡을 가다듬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