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리오
음악을 좇아 고집스럽게 버텨낸 시간. 마침내, 또렷하게 빛을 내는 리오.
가수의 꿈을 안고 열일곱 살 때 호주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리오(LEO). 그의 데뷔를 기다린 건 리오 자신뿐이 아니었다. 수십만 명의 팬들도 학수고대했다. 데뷔하기도 전에 인스타그램 37만 팔로워를 거느릴 수 있었던 건 빅히트 뮤직 연습생으로 이름을 알리면서부터. 외로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노래와 춤에 매진하며 5년의 시간을 보낸 그는 지난해 연습생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돌연 빅히트 뮤직을 나왔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멈춤이었다. 이후 5개월의 침묵을 깨고 그가 전해온 소식은 데뷔 싱글 발매. 자욱했던 안개를 걷어내고 8월 17일 마침내 데뷔 무대에 오른다. 이는 음악을 향한 고집스러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출발선에 선 리오를 만나 치열했던 지난 5년과 꿈에 대해 물었다.
데뷔가 얼마 안 남았네요. 8월 17일이죠?
사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없는데, 팬들이 저보다 더 설레하고 기뻐해줘서 데뷔를 실감하고 있어요.
데뷔 후 가장 기대되는 건 뭔가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일단 첫 번째는 데뷔 무대예요. 미국 로스앤젤레스(키스 FM K-팝 빌리지 앳 케이콘 LA 2023)에서 첫 공연을 해요. 두 번째는 만족할 만한 앨범을 내는 거예요. 그것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어요.
첫 무대가 미국이군요. 해외 팬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네요.
저를 기다려준 분들과 데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라도 좋다는 생각이었는데, 기대보다 훨씬 더 좋은 무대에 서게 되어 감사해요.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겠어요.
그렇죠. 이 순간을 위해 계속 불확실함 속에서 지내야 했거든요. 덕분에 지금을 즐길 수 있는거고요.
2022년 빅히트 뮤직에서 연습 생활을 그만둔 후 공백이 있었죠. 그러다 갑자기 131 레이블 입단 소식을 전해서 놀랐어요.
2023년 새해 첫날 열 가지 버킷리스트를 적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회사에 들어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131 레이블에는 우연한 계기로 들어가게 됐어요. 친구 작업실에 놀러 갔다가 131 대표님을 만났는데, 저를 알아봐주시더라고요. 그땐 잠깐 인사만 나누었고, 한 달 뒤 연락이 와서 영입을 제안하셨어요. 그런데 바로 확답하지는 않았어요. 미팅을 여러 번 했고, 만날 때마다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눴죠.
왜 주저한 건가요?
회사의 방향성이 저와 비슷했으면 했거든요. 일하다 보면 부딪히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고자 하는 길은 같아야 하니까요. 그런 지점에 대해 계속 질문을 드렸어요. 또 제가 겁도 많고, 걱정이 많아요.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제 이미지나 음악 스타일, 사소하게는 프로필 사진 한 장 고르는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체크하고 신경 쓰는 편이죠. 그 과정에서 제 의견을 내놨을 때 받아들여지는 관계이길 바랐어요.
말을 듣다 보니 대형 기획사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회사가 성향에 맞겠다 싶네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뮤지션으로서 자유가 주어지는 쪽이 저와 더 맞는 것 같긴 해요. 선택권이 주어지는 만큼 책임감이나 부담감도 따르지만. 예전엔 큰 울타리 뒤에 숨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제가 전면에 나서는 느낌이랄까.
비아이, 레디와 한솥밥을 먹게 됐는데 사이는 어떤가요?
회사가 가족 같은 분위기예요. 한빈이 형(비아이)과 레디 형은 강해 보이지만, 따뜻한 분들이고요. 친형 같아서 존재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이제 데뷔 싱글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리오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첫 곡이라 공을 많이 들였을 것 같은데.
사실 노래 제목도 고심하느라 아직도 못 정하고 붙잡고 있어요. 아마 ‘One Look’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데뷔곡인 만큼 제 색깔을 담으려고 계속 수정한 것 같아요. 가사를 예로 들면 원래는 첫눈에 반한 사람에게 어필해 넘어 오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는데, 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전 소심한 편이거든요. 초면에 반할 수는 있어도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은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다만 사라진다는 내용으로 바꿨죠.
장르는 뭐예요?
아프로비츠와 알앤비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있어요. 요즘 아프로비츠에 빠져 있는데, 다행히 회사에서도 이런 트랙 위주로 제안을 하더라고요. 브루노 마스의 프로듀서인 스테레오타입스, 9am, 데스티니 로저스가 참여했어요.
5년간 고군분투한 끝에 마침내 빛을 보게 되네요. 한국으로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정말 음악 하나만 보고 왔어요. 평범한 루틴이 지루하게 느껴졌거든요. 학교 다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그런 정해진 흐름대로 살고 싶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게 음악이었어요. 마침 그때가 한국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던 시기였고, 한국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도전해보고 싶었죠. 2018년 빅히트 뮤직 오디션을 보기 위해 무작정 한국에 왔는데, 떨어졌어요. 그런데 호주로 돌아가기 전날 연락이 와서 다시 오디션을 볼 기회를 주셨고, 합격할 수 있었죠. 1년정도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어요.
외롭진 않았어요?
사실 외로울 틈이 없었어요. 학업도 중단하고 연생 생활에 잠식되어 살았거든요. 그때 함께한 멤버들이 지금 하는 말이, 제가 늘 따로 행동하는 데다 말을 걸기조차 힘들었다고 해요. 전 그때 ‘이거 아니면 안 돼’, ‘반드시 데뷔해야 해’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죽도록 연습만 했으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의 내가 정말 외로웠겠다 싶어요.
빅히트 뮤직을 나와 131 레이블에 들어가기까지 5개월의 공백기 동안 어떻게 보냈나요?
오랜 시간 연습 생활을 하다 나오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뭘 좋아하지’, ‘진짜 음악을 하고 싶은 게 맞나.’ 제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제가 또 노래를 쓰고 있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것 같아요. 음악을 꼭해야겠다고.
음악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지네요.
예전엔 그냥 음악을 즐기기만 했어요. 이제 조금 깊이감이 생기니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게 음악이란 생각이 들었고, 더 애착이 생겼죠. 제가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음악으로 저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방식이 재미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나요?
부모님과 누나 모두 음악을 좋아해서 항상 집 안에 음악이 흘렀고, 다들 따라 부르느라 집이 조용한 적이 없었어요. 음악이 생활의 일부였죠. 호주는 록 밴드 문화가 활성화되어 자연스럽게 록을 즐겨 들었는데, 한때는 록 스타나 밴드를 꿈꾸기도 했어요.
어쩐지… 촬영 내내 오아시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같은 록 가수의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본능적으로 바이브를 타는 모습이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웃음) 맞아요. 춤추고 싶은데 참느라 좀 힘들었어요.
롤모델이 있나요?
퍼렐 윌리엄스. 뮤지션으로서뿐 아니라 프로듀서로서, 제작자로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요. 2003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의 절반 이상이 퍼렐이 만들었다는 말도 있잖아요. 대단하죠. 좀 이른 말이긴 하지만 저도 나중에는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고, 제작자나 디렉터 위 치까지 올라가보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