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스터의 조우’ 최민식과 마이바흐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 한성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마이바흐 인테리어 콘셉트 ‘익스클루시브 라운지 플러스’를 적용한
청담전시장을 오픈했다. 이곳에서 집념으로 독보적 예술 세계를
창조하는 배우 최민식과 마이바흐의 묵직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오늘 촬영한 공간은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 한성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마이바흐 인테리어 콘셉트 ‘익스클루시브 라운지 플러스(Exclusive Lounge+)’를 적용한 청담전시장입니다. 배우 최민식과 마이바흐의 닮은 지점이 있다고 여겨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집념으로 한 분야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까요.
나는 아직도 불완전하고 갈 길이 멉니다. 어떤 가공의 인생을 표현한다는건 완성이 없습니다.
<파묘> 흥행으로 영화계가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어요. 배우님의 첫 오컬트 작품이라 더 주목받기도 했고. 40여 년 연기를 했음에도 새롭게 경험한 지점이 있었나요?
오컬트 장르라고 해서 아주 새로울 건 없었어요. 비현실적 소재의 영화라 해도 현실이라고 믿고 연기를 하는 거니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었죠.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뚫고 나온 작품이니까요. 영화인들이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파묘>가 물꼬를 튼 것 같아 의미가 남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가득 찬 객석을 정말 얼마 만에 보는 건지. 오랜만에 관객을 만나니 굉장히 신났어요.
그래서 머리띠 팬 서비스를 열심히 해주신 거군요. 참 친근해 보였어요.
막 눈이 뒤집혔죠.(웃음) 시간을 내주는 게 얼마나 고마워요. 못할 거 없죠.
맞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관객 수가 100만 명씩 불어났죠. 보통 배우님은 작품이 공개되면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는지 궁금합니다.
숫자에 신경 쓰기보다 관객과 더 소통하려 해요. 가급적이면 평론가나 영화인 말고 일반 관객과 섞이려 하죠. 어떤 주제에 대해 “자,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말을 건네는 거니까. 그때부터 관객과 대화가 시작되죠. 사실 그 재미에 영화를 만드는 거고요.
관객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좋은 예술은 곱씹어보는 묘미도 있고.
영화인 역시 그걸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하나의 시퀀스에서 관객은 우리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해요. <파묘>에서 묫자리 잘 쓰고 간다며 동전을 던지는 장면이 있지 않습니까. 원래는 10원짜리 동전 3개를 던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10원짜리 동전이 흙 색깔과 비슷해 묻히지 않기 위해 은색 100원을 던지는 걸로 바꿨어요. 100원 뒷면에는 이순신 장군이 있는데 그게 이 영화 주제와 맞물렸고, 관객들이 그 장면에 의미를 부여했죠. 그 점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촬영한 장면이에요. 해석에는 정답이 없어요. 예술이니까.
많은 작품을 하셨지만, 겹치는 감독은 별로 없습니다. 정지우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해피엔드>, 송능한 감독의 데뷔작 <넘버 3>, 류장하 감독의 데뷔작 <꽃피는 봄이 오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등 당시 신인이던 감독과도 작업을 많이 하셨죠. 그런 도전 속에서 수작이 나오기도 했고. 그 선택에는 의도가 있었던 건가요?
도전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유명 감독과만 작업하면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하려는 친구들은 설 자리가 없죠. 어떻게 먹고살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기회를 만들어주는 건 아니에요. 영화는 감독 예술이에요. 설령 연기가 조금 부족해도 감독의 연출로 근사하게 그려낼 수 있고, 감독이 헤매면 아무리 명배우라도 영화가 산으로 가죠. 그래서 나 역시 그들이 만든 단편을 챙겨보고, 그들과 대화도 나누면서 검증해요. 괜찮으면 함께 가는 거고 그러다보면 잘될 때도, 아닐 때도 있는 거죠.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할 때는 어떤 마음이 드세요?
‘아! 망했구나. 시원~하게 말아잡쉈네.’ 그냥 그러고 끝나는 거죠 뭐.(웃음) 다시 살릴 수도 없고.
낙천적이시군요.
그렇긴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는 건 아니고. 잘 안된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겠죠. 평단이나 미디어에서는 극찬하는데 대중이 외면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평단이나 미디어에서는 욕을 바가지로 하는데 대중은 좋아하는 작품이 있기 마련입니다. 양수겸장을 하는 작품은 평생 있을까 말까 한데, 그런 작품을 향해 가는 거죠.
그럼, 배우님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 있다면 뭘까요?
난 영화 <파이란>이 참 좋았어요. 그 영화를 선택했을 때 다들 말렸죠. <쉬리>가 끝난 직후라 주변에서는 작품을 더 받아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하더군요. 원작인 일본 단편소설 <러브레터>보다 각색을 한 게 너무 좋았어요. 혹시 삼중당문고 아시려나? 옛날에 거기서 발행하던 손바닥만 한 단편집이 있었어요. 포켓에 찔러 넣고 다니면서 보곤 했는데, <파이란>은 그 시절 단편소설에서 느껴지던 문학적 향기가 배어 있었어요. 투자자들은 이런 작품을 싫어하죠.(웃음) 하지만 난 누군가를 구원하는 진정성 있는 사랑이 좋았어요. 그걸 아주 현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고. 교회에서 하나님에게, 절에서 부처님에게 기도드리는 것만이 구원은 아니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는 거죠.
비운의 걸작이죠. 그래도 결국 진가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마니아층이 생겼어요. ‘강재’ 같은 역을 탐내는 후배 배우도 많은 걸로 알아요.
그 작품이 나중에 비디오 시장에서 난리가 났죠. 극장에서 흥해야 했는데.(웃음) 사실 플랫폼이 중요한 건 아니고. 흔히 명작이라고 일컫는 작품을 보면 잔상이 오래 남잖아요. 여운이 남는다는 건 마음이 흔들렸다는 거예요. 서로 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배우님의 필모그래피 중 MBC 드라마 <서울의 달>이 그런 작품입니다. 30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도 케이블 TV를 통해 보기도 하고, OST ‘서울 이곳은’도 가끔 찾아 듣거든요. 요즘 유튜브로도 시청하는 사람이 꽤 있더라고요.
참, 김운경 작가님은 극본을 정말 잘 쓰셨지. 배우끼리는 대사가 좋으면 “대사가 맛있다” 그래요. “입에 착착 붙는다”, “참 맛있다”고 하죠. 그때만 해도 사전 제작이라는 게 없었어요. 쪽대본을 받아 촬영하고 그랬죠. “아니, 왜 대본을 여태 안 줘?”라고 물으면 이제 막 쓰고 있다는 거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안 풀릴 때도 있고 그렇죠 뭐. 옥수동 달동네에서 스탠바이하고 있다가 팩스로 받은 쪽대본을 하나씩 나눠 가지고 삼삼오오 근처 다방에 가요. 커피 시켜놓고 대사를 외우거나 소품을 준비하거나.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김운경 작가님의 극본은 말이 참 맛있어서 금방 외워졌어요. 그 드라마를 통해 배운 게 많아요. 인간의 페이소스가 다 들어 있거든요. 표피적 드라마였다면 50%를 육박하는 시청률이 안 나왔겠죠.
영화 <명량>을 준비할 때 “꿈에서라도 이순신 장군을 보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보고 캐릭터를 향한 집념이 느껴졌습니다. 매번 모든 캐릭터에 그만큼의 열정을 쏟으시나요?
매번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연기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나이, 학력, 가족, 뭐 이런 캐릭터 분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카메라 앞에 딱 서면 온전히 그 인물이 되어야 해요.굉장히 예민한, 고성능 레이더를 장착해야 하죠. 그 인물의 냄새, 눈빛, 자그마한 움직임까지 표현해야 하니까. 말이 거창하지만, 그 캐릭터의 영혼을 품어야 해요.
영화 <악마를 보았다> 속 장경철처럼 가늠조차 안 되는 인물을 연기할 때는 어떤가요? 더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 같은데.
장경철 역이 들어왔을 때는 한 번 겪어보고 싶었어요. 궁금했죠. 도대체 저 친구는 왜 그렇게 사람을 죽일까? 사람을 죽일 때 어떤 감정이 들까? 연쇄 살인마나 사이코패스의 세계는 어떨까? 정상은 뭐고, 비정상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그 인물을 공부하는 거죠.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은 김지운 감독이 맡으면서 바뀐거고,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는 ‘아열대의 밤’이었어요. 아열대의 밤. 제목 끝내주죠? 지독하게 덥고 습한 밤. 대본을 보면서 딱 떠오르는 음악이 있었어요. 모그 음악감독과 술 마시면서 “모그야 나는 이 대본을 읽는데 <흑인 오르페>에 나오는 보사노바풍 테마곡이 생각난다. 장경철, 이 친구 좀 슬프지 않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왜 하필이면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부터 슬픈 살인마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걸까? 이런 운명론적인 것도 생각해보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거죠.
나는 아직도 불완전하고
갈 길이 멉니다. 어떤 가공의 인생을
표현한다는 건 완성이 없습니다.
40여 년간 배우님을 도전하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도전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싶은 거죠. 내가 지금까지 보고 느낀 이 세월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진짜 티끌일 거예요.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모든 걸 경험해보겠습니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인간 군상이 있는데. 내 목숨이 붙어 있는 그 순간까지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궁금해할 것입니다. 자기가 경험한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다 아는 척하지 말자’ 이거죠. 그런 꼰대가 되기는 싫습니다. 우리같이 창작하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면 끝나는 거예요. 계속 새로움을 추구해야 해요. 그렇다고 강박이 있는 건 아니에요. 바란다고 해서 새로운 게 오는 것도 아니고.
준비한 질문을 좀 바꿔야겠네요. ‘도전’이 아니라 한 번 맛보고 싶은 인생이 있으세요?
그런 말이 있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어떤 역할이든 천 갈래 만 갈래 수백만 갈래 마음, 사라지고 나타나고 사라지고 나타나는 그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백수의 삶도 궁금하긴 하네요.(웃음)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안 하고 경제 활동도 없지만, 그 나름대로 많은 번뇌가 있지 않을까요.
“연기는 한 번도 식지 않은 사랑이다”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정말 식을뻔한 적도 없으세요?
그건 거짓말이겠죠. 싸움도 많이 했고, 헤어져, 안 해라는 마음도 품어봤고. 하지만 연기를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애정이 식은 적은 없어요. 주변 환경의 시스템이나 메커니즘 때문에 딴 생각을 할 때는 있었죠. 국수를 좋아하니까 국수 장사를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 그런데 내가 끈을 놓지 않았고, 이제는 생활이 되었죠.
그런 흔들림 속에서도 그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뭘까요?
겸손이 아니라, 난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영화라는 작업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아까 관객들이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그건 결과물이 나오고 관객들과 만날 때 이야기고, 작품을 할 때는 안 그래요. 내가 관객을 신경 썼다면 <악마를 보았다>를 찍으면 안 되죠. 더 멋있게 보이려면 어떻게든 뱃살을 빼고 <파묘>를 찍었겠지. (웃음) 이렇게 하면 관객들이 좋아할까 싫어할까 같은 생각을 한다면 배우인 척하는 거예요. 정말 가감없이 말하는 건데, 난 한 작품도 그냥 선택한 게 없어요. 그건 자부합니다. ‘노느니 뭐해’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하지 않아요. 놀면 놀았지, 하기 싫은건 안 해요. 5년간 쉰 적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기적인 거죠.
5월 7일에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이순재 배우님이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특별 무대를 선보이셨죠. 함께 작품을 해보고 싶다며 최민식 배우님도 언급하셨고. 배우뿐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감동을 전했는데, 배우님에게는 어떤 울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흔히 한 분야에 자신의 일생을 다 갈아 넣은 사람들을 가리켜 장인이라고 하죠. 비단 배우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요. 평소 <생활의 달인>(SBS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감동을 많이 받아요.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는 한 아저씨는 순식간에 그 무거운 걸 엄청난 높이까지 쌓아 올리는 거예요.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그분만의 요령이 있는 거죠. 그 정도 기술을 습득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고무 냄새를 맡았겠어요. 손도 다 까지고. 어떻게 보면 단순 반복이지만, 평생 그 일만 파서 예술의 경지에 오른 거죠. 그 세월의 깊이가 참 숭고해 보이더군요. 이순재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분의 60여 년 연기 인생을 내가 어떻게 다 알겠어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배우 생활을 하신 분인데. 새카만 후배로서 한평생 연기자로 살아온 대선배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경외심마저 들어요. 그분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고.
배우님도 그 길을 걷고 계시잖아요. 앞에서 말씀하신 달인은 시간이 쌓이면서 숙련된 기술을 얻지만, 예술을 하는 배우는 어떤가요?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겠죠. 어떻게 보면 배우는 수행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과 심리를 깊이 캐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거죠. 이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얼핏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네요. <올드보이> 후반 작업을 할 때였어요. 관세청 앞 빌딩 지하에 있는 녹음실에 ADR(후시녹음)을 하러 운전해서 가고 있었어요. 일요일 오전이라 강남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할아버지 두 분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결혼식이나 모임에 가시는 건지 양복에 보타이까지 매고 곱게 차려입으셨어요. 그런데 두 분이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흔들면서 걷는 거예요. 소년처럼 웃으면서. 그 모습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래서 그 할아버지 뒤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봤죠. 저 연세에 뭐가 그리 기쁜 일이 있으셨는지. 보기가 좋으면서도 그분들이 살아온 세월이 서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분들도 청년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오만 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까요. 이 말을 왜 하느냐면 ‘저 노인네들은 왜 애들처럼 저렇게 걷는 걸까’라고 잠깐 생각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난 그런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느끼고 싶은 거죠. 이런 게 내겐 노력입니다. 하나씩 데이터베이스에 다 저장해놓는 거죠. 새로운 느낌의 조각을. 때로는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도 있지만, 노력하는 거죠.
그 말을 들으니 배우님의 청춘에 대해 묻고 싶네요.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의 기분을 아직 기억하세요? 1990년 KBS2 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꾸숑’이었을 텐데. 아, 그럼요.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웃음) 카메라 불이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TV 드라마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교통사고 당하듯 느닷없이 찾아온 역할이죠. 주변에서 “너 그거 안 하면 평생 후회한다”고 부추겨 그 작품만 하고 끝내려고 했죠. 사실 막 결혼했을 때라 먹고살아야 했어요.(웃음) 그때는 큰 꿈 없이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했는데.
그랬는데, 지금 이 자리까지 오신 거네요.
그래서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예요.
한성자동차 청담전시장
2F Mercedes-Maybach Exclusive Lounge+
‘최고의 것에서 최고를 창조한다.’ 마이바흐가 100여 년간 굳건히 지켜온 철학이다. 장인정신이 깃든 최고급 소재에 대한 집념으로 럭셔리의 가치를 재정의한 마이바흐.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 한성자동차는 그 헤리티지가 담긴 공간을 대한민국 서울에 오픈했다. 바로 세계 최초로 마이바흐만을 위한 인테리어 콘셉트를 적용한 청담전시장 2층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익스클루시브 라운지 플러스
(Mercedes-Maybach Exclusive Lounge+)’이다. 한성자동차는 마이바흐 브랜드 가치와 의미가 담긴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차량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갤러리, 공연, 라이프스타일 강연까지 마이바흐 고객의 품격을 높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도약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14, 한성자동차 청담전시장 2층 문의 02-6421-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