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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새록

금새록, 지나온 마음의 기록.

카메라 앞에 선 금새록의 표정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빛을 향해 몸을 돌리거나 스스로 리듬을 바꿔가며 순간을 조율한다. 주어진 장면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다가가 만들어내는 사람. 그런 태도는 금새록이라는 배우의 10년을 관통하는 움직임이다. 고요한 방 안에서 그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스스로의 톤으로 다시금 기록하고 있었다.

알파카 울 스카프 디테일 재킷과 보디슈트, 스트레치 코튼 팬츠, 레더 하이힐 부츠 모두 Burberry.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실제 목소리가 생각보다 또랑 또랑하고 밝아요. <사랑의 이해> 속 ‘박미경’과 완전히 달라서 놀랐어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세요.(웃음) 미경은 말투부터 호흡까지 다 내려놔야 했거든요. 실제 저는 말도 빠르고, 톤도 더 높고 경쾌한 편이에요. 그래서 미경을 만들 때 제 목소리를 최대한 눌렀어요. 그 결이 만들어지니, 오히려 제겐 또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런 부분이 모여 미경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졌군요. 맞아요.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했어요. 극 중 상류층 출신인 미경은 여유 있는 아이인 만큼 한 문장을 말할 때도 여백이 많아야 했어요. 그리고 자세, 걸음걸이, 힐을 신었을 때의 중심 이동. 이런 것도 전부 다시 만들었어요. 집에서 와인잔에 물을 따라놓고 돌리면서 대사 치는 걸 촬영해보고, 손끝의 힘을 아주 미세하게 조절하는 연습도 했어요.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재즈 음악까지 찾아 들었다고요. 맞아요. 사실 처음엔 (미경이가) 클래식을 들을 것 같았어요. 미경은 단정하고 우아한 사람이니까. 근데 음악을 틀어보니 너무 ‘정답’ 같더라고요. 미경은 자기 안에 조용한 열망,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을 향한 솔직한 힘 같은 게 있는데 그 결이 재즈에 더 잘 맞았어요. 걸음의 리듬, 말의 길이, 눈을 들어 올리는 속도까지 음악에서 많이 가져왔어요.

그런 노력 덕분에 금새록의 ‘인생 캐릭터’라는 평을 받는 것 같아요. 작품명인 ‘사랑의 이해’를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사랑에도 이해득실이 있지 않나?’였어요. 이익과 손해, 마음의 저울추 같은 것들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감정이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 계산이 꼭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사랑 앞에서 얼마나 솔직해지는지를 보여주는 말 같았어요. 보는 순간 관심을 집중시키는 작품명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저는 그런 의미로 곧 개봉을 앞둔 <실연 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이 궁금합니다. 작품이 정말 좋아요. 사랑하고 있는 사람도, 이별 한 사람도, 앞으로 사랑할 사람도 다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죠. 제가 출연한 장면이 어느 정도 편집되긴 했지만, 영화 흐름을 보니 그게 맞았어요. 분량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가 너무 좋아서 아쉽지 않았거든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출연한 장면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담담하게 들려요. 이전에는 다르게 받아들였을까요? 네. 그땐 속상했을 거예요. 근데 지금은 이야기가 더 잘 살아난다면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조금은 어른이 된 걸까요?(웃음)

레더 트렌치코트와 레더 롱부츠 모두 Tod’s,
컨티넨탈 GTC 스피드 Bentley.

불안감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꾸미거나 포장하는 성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여도 괜찮다 싶었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든, 서럽게 우는 모습이든 모두 지금의 나니까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방증이겠죠. 지나온 길에 대한 마인드셋 같은 게 있었나요? 맞아요. 예전엔 뭐든 더 잘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나의 안정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게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도 금방 떨어지더라고요. 이젠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오히려 일이 더 잘 풀리기도 하고, 제가 하는 선택이 덜 흔들리더라고요.

tvN 예능 <무쇠소녀단 2> 출연 이후 금새록이라는 사람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한 느낌이 들어요. 본인은 어때요? 저도 그렇게 느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흔들리는지 아주 선명하게 보여줬거든요. 그 고난의 과정을 계속 겪다 보니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어요. 못 해도 괜찮고, 오늘의 내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예능 프로그램은 이미지 소비에 대한 부담도 있잖아요. <무쇠소녀단 2>에 처음 도전할 때 불안감은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웃음) 제가 꾸미거나 포장하는 성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여도 괜찮다 싶었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든, 서럽게 우는 모습이 든 모두 지금의 나니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힘들었어요? 권투를 하는데 ‘잽’이 되면 ‘투’가 안 되고, ‘투’가 되면 ‘잽’이 안 되고. 안 되는 게 너무 명확하게 느껴지니 서럽고 속상한 순간이 많았어요. 근데 감사하게도, 그럴 때마다 “너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해보자”, “너 늘고 있어”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이 주변에 늘 있었어요. 그 말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되더라고요.

퍼 트리밍 재킷과 플레어 팬츠 모두 Valentino, 니티드 헤드밴드 Valentino Garavani.

글로만 존재하던 장면이 현실에서 숨 쉬기 시작하는 순간, 그때의 공기와 사람들의 호흡이 저를 계속 이 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 같아요.

흔히 많은 배우가 연기에서도 체력의 중요성을 거론하죠. 그럼요. 체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감정을 꺼내려면 몸의 에너지가 버텨줘야 해요. 어떤 장면을 어떤 조건에서 촬영할지 모르잖아요. 밤새 진행할 수도, 추운 날씨에 진행할 수도, 감정 신을 오랫동안 반복해야 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한 번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일을 이어가다 보면 중간중간 휴식도 필요할 것 같아요. 평소엔 어떻게 쉬는 편인지. 저 완전 집순이에요. 스케줄 있는 날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그런지, 쉬는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해요. 뒹굴거리다 밀린 작품 보고, 운동 조금 하고, 다시 자고. 아, 최근엔 시어도어 멜피 감독의 영화 <히든 피겨스>를 다시 봤어요.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크게 각인됐죠.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조금 더 능동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오늘 촬영장에서도 유독 에너지가 크게 느껴졌어요. 포즈나 분위기를 직접 이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아, 정말요?(웃음) 확실히 주어진 걸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내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화보 촬영은 특히 순간의 리듬이 중요하니까, 좋은 그림이 떠오르면 일단 바로 몸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요.

시퀸 프린지 톱과 스커트 모두 Self-Portrait.

새록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금새록 필름’도 그런 주체적인 모습의 연장선 같아요.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무드, 제가 보고 느끼는 하루를 나만의 방식으로 담아보고 싶었어요. 편집하다 보면 ‘지금 내가 이런 톤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게 보여요. 요즘엔 오히려 그런 기록이 저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로 데뷔한 지 올해 10년이 되었더라고요. 체감하고 있었나요? 그러니까요! 최근에 알았는데, 시간 참 빠르죠. 그때 참 열심히 하던 게 생각나요.

신기하게도 새록 씨의 데뷔 초반 단역도 또렷하게 떠올라요. <암살>에서 전지현 배우에게 향수를 뿌려주던 백화점 직원이라든가, <밀정>에서 송강호 배우에게 맥주를 건네던 바텐더처럼요. 짧았는데도 꽤 강한 인상을 남겼거든요. 감사합니다.(웃음) <밀정> 촬영 때 제가 했던 일본어 대사가 있어요. “なにか かいますか?(나니카 카이마스카?)” 이걸 아직도 기억해요. 제일 처음 외운 일본어 대사라 그런지 갑자기 시켜도 바로 나와요. 그 시절엔 정말 작게 스쳐 지나가는 역할이었는데도요.

작은 역할이라 해도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그때 처음 느꼈어요. 대사는 한 줄, 분량은 몇 초였지만 내가 맡은 장면은 끝까지 해보고 싶었거든요. 백화점 직원도, 바텐더도 그냥 지나가는 인물이 아니라 ‘그날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짧아도 표정이나 호흡, 컵을 잡는 손목 힘 같은 디테일까지 계속 연습했죠. 그렇게 촬영한 장면을 누군가 기억해준다는 걸 알게 되니까 ‘아, 작은 것도 작은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쌓여 10년 동안 계속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플리스 재킷과 실크 톱, 자수 디테일의 시폰 스커트 모두 Prada, 니하이 울 부츠 Vivaia, 헤어밴드 Brown Hat.

지나온 10년만큼 다음 10년의 여정도 중요하겠죠. 내년에는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해요? 음, 더 행복한 사람이요. 올해 정말 열심히 일했거든요.(웃음) 내년엔 여행도 가고 ‘금새록 필름’도 더 재밌게 찍고, 좋은 작품도 만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저를 존중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지만, 변함없이 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제일 다행이에요. 이 마음으로 또 10년을 걸어가고 싶어요.

건강한 포부네요. 행복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잖아요. 새록 씨는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나요? 하나의 장면이 살아날 때요. 글로만 존재하던 장면이 현실에서 숨 쉬기 시작하는 순간, 그때의 공기와 사람들의 호흡이 저를 계속 배우라는 직업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다시 차오르는 것처럼요.

에디터 박찬 사진 테드 민 헤어 임안나 메이크업 안세영 스타일링 세하 차량 협찬 벤틀리 서울 장소 협조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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