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로운
현재에 충실하고 지금을 사는 로운. 그는 변수 속에서도 제법 훌륭한 답을 찾는다.
오늘 화보 콘셉트가 ‘새벽부터 황혼까지’였는데, 어땠나요?
재밌었어요.
예전에 제주도 본태박물관에서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전시를 본 적이 있어요.
공간에 빛이 들어오는 것에 따라 느낌이 달라져서 인상 깊게 봤거든요.
이번 촬영도 빛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흥미로웠어요.
다양한 빛 속에서 촬영했어요. 그중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쨍한 빛은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반쯤 들어오는 빛이나 은은한 초록빛 돌던 때가 괜찮았어요.
최근 해외 팬 미팅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왔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가 있나요?
처음 혼자 간 거라 부담되기도 하고, 걱정도 좀 됐어요. 나름의 도전이었죠.
근데 하나의 벽을 깬 것 같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공연하는 날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팬들과 헤어지는 게 아쉽기도 하고,
‘내가 이런 느낌을 또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감사한 마음이 커서 마지막 순간을 정할 수 있다면 지금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굉장히 인상 깊은 순간이었나 봐요.
제가 보수적인 편이에요.
잘하고 싶은데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었어요.
부담감을 갖고 열심히 준비한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죠.
그래서 더 값진 것 같아요.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그램 <더 아이돌 밴드> MC로 합류했어요. 아이돌, 배우 그리고 MC까지 엔터테이너로서 한 걸음 더 내딛는 과정 같아요.
아니에요. 그건 절대 아니고(웃음) 좋은 기회로 하게 됐는데, 예쁘게 봐주셨으면 해요.
MC는 처음이죠?
예전에 잠시 음악 프로그램의 MC를 한 것 말고는. 오디션 프로그램 MC는 처음이에요.
6년 차 선배로서 아이돌을 꿈꾸는 이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잘 모르지만, 그 나이 때만 가능한 것들이 있잖아요.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지만, 실수를 해도 용인되는 나이기도 하고요.
물론 선을 넘는 실수는 안 되지만. 너무 틀에 갇혀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저건 저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 않았으면 해요.
정답은 없으니까요. 자신의 색깔을 잘 드러내면서 그 순간과 과정을 즐기길 바라요.
(촬영일 기준) 그저께 생일이기도 했어요. 27번째 생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일 끝나고 일본 직원들과 함께 회식했어요. 사실 생일에 점점 무감각해지더라고요.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하는 것 말고 제 생일에는 항상 일을 해서 딱히 감흥이 없어요.
그래서 솔직히 다행이었어요. 팬들과 함께해서 의미 있었죠.
존재감을 되찾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다가 내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건
타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럼 내가 대중문화 예술인으로서
긍정적 에너지를 전해야겠다 싶더군요.
어느 순간 완벽주의자가 된 것이,
팀에서 개인 활동을 비교적 많이 하다 보니 팀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도 상대가 편하도록 먼저 말을 건네는 편이라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본 로운은 본디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인간 관계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는 편이에요.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자기방어적 태도죠. 예전에는 타인과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한 부분을 이젠 다르다고 인정해요.
내 생각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생각도소중하니까요.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면을 보며 배려심이 깊다고 느낄 거예요.
사실 제가 배려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타인에게는 관대해도 (연예인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냉정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대중들의 인식에 있어서든 자기 계발적인 부분에서든.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주위의 평판이 곧 저라고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지 못할 때 타인이 바라보는 내가 진짜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런 좋은 얘기도 듣게 되네요.
아까 후배들에게 조언한 것과 달리 자신에게는 잣대가 너무 엄격한 게 아닌가 싶네요
다행히 전 이게 좋아요. 제 완벽주의적 성향을 인정하고 즐기기로 했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평소에 독서도 즐기는 편이죠?
한때 독서를 많이 했지만, 요즘은 게임에 빠졌어요. 롤토체스라는 게임인데요.
롤 캐릭터로 체스를 하는데 미치겠어요.(웃음) 너무 재밌어요.
이 게임이 모바일, PC 둘 다 있거든요. 스케줄 이동할 때 하기 편하니까 저는 주로 모바일 게임을 해요.
그 게임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 있나요?
경우의 수가 많아요. 어떤 캐릭터에게 어떤 아이템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어렵지만 흥미로워요.
원래 게임을 좋아하세요?
별로 안 좋아해요. 이렇게 빠진 게임이 거의 처음이에요.
배틀그라운드나 롤도 안 했어요?
배틀그라운드는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어디서 절 죽일지 모르잖아요.
예전에 PC방 가서 한 번 했는데 헤드셋을 끼니까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거예요.
놀라서 저도 모르게 막 소리를 질렀어요.(웃음)
롤도 했었는데, 제가 정말 못하더라고요. 욕이란 욕은 다 먹었어요.
그때부터 둘 다 좀 멀리하게 됐죠.
롤토체스는 개인이 하는 게임이라 부담도 덜하고 욕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웃음)
실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궁금했어요. 영상이나 인터뷰에서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 구사력이 남달라서.
고민이 있거나 힘들 땐 책이랑 영화를 많이 봤어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요.
그럴 순 없잖아요. 욕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편해지려면 어떤 게 필요하지?’ 생각하다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알프레트 아들러가 쓴 철학, 심리학 책을 읽었어요.
모든 구절을 이해할 순 없지만,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은 있더라고요.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답을 얻었어요.
‘현재에 충실하고 지금을 살자.’
요즘은 마음이 편안하니까 독서를 좀 멀리하고 롤토체스를 가까이하고 싶고.(웃음)
좋은 소식이네요. 영화도 많이 봤다고 했는데, 인생 영화가 있나요?
저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좋아해요. 에단 호크의 연기가 미쳤죠.
제 상태에 따라 마음에 들어오는 대사나 상황이 다르잖아요. 저한테 용기를 많이 준 영화예요.
<파이트 클럽>이란 영화도 정말 좋아하고요.
스트레스나 고민을 건강하게 잘 해소하고 있네요. 배우, 연기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연기하는 사람에게 남는 건 캐릭터와 카타르시스, 메시지라고 한 적이 있어요.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남은 메시지가 있나요?
최근작 <내일> 같은 경우 소재가 무거웠어요.
죽음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사람에게 제가 해주는 위로의 말이 가볍게 느껴질 까 봐요.
그 부분에 가장 신경 썼어요.
저는 문제에 연연하기보다 매일의 삶을 성실히 사는 게 잘하는 거라고 결론 내렸잖아요.
극 중 죽음을 앞둔 이에게도 ‘그래, 어쩌면 너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전 한 거죠.
내게도 좋은 메시지가 될 수 있겠다고 해서 선택한 작품인데, 괜찮은 생각이었다는 걸 느꼈어요.
캐릭터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게 해주는 것 같아요.
대본의 상황이나 대사들이 캐릭터 입장에선 이해할 수 있지만,
사람 김석우가 봤을 땐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에서 극 중 윤송아 역을 맡은 원진아 배우를 데려가 연인이 바람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하는 장면이 있어요.
캐릭터로서 연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모진 것 같아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아 사람 김석우는 이렇게 느끼는구나’ 생각했어요.
카타르시스는 작품 <연모>를 할 때 많이 느꼈죠.
<연모>는 후반부로 갈수록 이휘 역의 박은빈 배우와 제가 맡은 정지운 역 둘의 서사가 비극적이라 더 몰입이 됐어요. 아이러니한게 제가 아무리 좋아도 대중의 반응은 미지근할 때가 있고,
나는 큰 감동이 없는데 반응이 뜨거울 때가 있더라고요.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김혜윤 배우의 가방끈을 당겨 “안녕?” 하고 인사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민망해서 미치겠는데, 반응이 좋은 거예요. 이런 불확실성이 재미있기도 해요.
본인에게 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스트레스의 끝이지만, 현장에 나가면 그 스트레스가 또 해소돼요.
예전에는 제 성격상 모든 걸 다 정하려고 했거든요.
대본을 봐도 여기선 어떻게 걸어야지, 뭘 해야지 했는데 막상 가면 다를 때가 많아요.
그 변수들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변수 속에서 그럴싸한 답을 찾아 즐기는 것 같아요.
순간의 변수에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해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대중문화 예술인’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온 우주에, 이 세상에 나 혼자라면 사고라는 걸 할까? 원초적인 식욕, 수면욕, 성욕을 빼고 과연 고민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내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건 타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럼 내가 대중문화 예술인으로서 긍정적 에너지를 전해야겠다 싶더군요.
잘생긴 얼굴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작품을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는 걸 수도 있겠죠.
그럴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작품이 촬영에 들어가면 10개월에서 길게는 1년을 찍어요.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1년이 넘어가요. 그렇게 완성된 드라마가 시작하면 두 달 정도 방영하잖아요.
짧은 시간 안에 1년이라는 시간을 평가받는 게 아쉬울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시청자들이 그 시간을 투자해준다는 게 그저 고마워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 김석우의 이름 뜻은 ‘주석 석, 도울 우’고,
활동명 로운도 ‘슬기로운, 이로운, 지혜로운’이란 뜻으로 본인의 소신과 관통하는 것 같네요.
네. 최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께 너무 감사하죠. 참 감사해요 진짜로.
로운에게 판타지의 존재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제가 활동하는 이유.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하지만 팬들이 주는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사랑을 받는 데 있어 제 몫도 크다고 생각해요. 정말 감사한 존재들이죠.
저는 누구를 이렇게까지 응원해본 적이 없거든요.
사실 몇 번 얘기해서 팬들도 알 텐데, 팬들 머릿속에 들어가보고 싶어요.
왜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지.
친구 간 우정, 연인 간 사랑, 가족 간 사랑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팬들의 사랑은 또 다르거든요.
그게 참 신기해요.
아까 영상 인터뷰에서 특별한 목표는 없다고 했어요.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아티스트 로운으로서, 사람 김석우로서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게 있나요?
아티스트로서는 좋은 작품 만나는 것. 그리고 사람
으로서는 잘 먹고 잘 사는 거요.(웃음)